본문 바로가기
문학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 - 조지오웰

by librovely 2013. 4. 28.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                                                         조지오웰                    도서출판 세 시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조지오웰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동물농장, 1984라는 소설 이름도 많이 들어봤지만 읽은 생각은 안했다

물론 언젠간 꼭 읽어봐야지 했지만 당장은 아니었다...그리고 언젠가 읽으면 분명 내가 좋아할거라는 생각도 했다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코너에서 보고 그냥 빌려와서 읽었는데...이 책 제목은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은데 하며...

소외된 사람 어쩌고 하는 표지의 글이 마음을 끌어당긴 이유도 있긴 하다...소외...난 어딘가에 잘 소속되어 있거나

활발한 인간관계를 맺고 사는 편이 아니기에... 소외 지수라는 것이 있다면...그래서 소외 정도를 1-10까지 척도로

나눈다면 난 어디쯤 속할까? 내 또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나의 정도를 따진다면... 한 2정도?? 그 정도 소외? ㅎㅎ

아니 소속감을 두고 한다면 아직 정상적인 가정도 못 만들었으니 1에 속하나? 모르겠다... 사실 소속감이나 인간관계

의 폭을 놓고 보면 양 극단은 다 문제가 있는거다...너무 아는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 친분을 쌓았다는 건 그만큼 진짜

속을 터놓을 사람은 없는 게 아닐까? 사람이란 한계가 있는 법이고...관심을 주고 받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테니...

물론 나처럼 얕은 관계만 약간 맺어가며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ㅎㅎ 사실 사람간의 관계 특히 여자들 사이의 친구

관계는 그게 참 부질없는 경우인 일이 많은 것 같다...나만 당한(?) 건지도 모르지만...그게 당했다는 표현이 이상한

거고 그런 게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지만...간혹 느끼는 건 여자들의 우정 따위는 어쩌면 진짜 자신의 소울 메이트

를 찾기 이전의 외로움과 심심함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닌가 하는...그러니까 지금 딱 2명 정도가 생각나는데...

사실 난 생일이고 뭐고 내가 김일성도 아니고 뭐 대단한 존재라고...딱히 챙겨주고 말고 중요하다고 생각 안하는데

그런 나에게 너의 생일이니 꼭 만나자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만나면 괜시리 손에 뭔가를 쥐어주어서 괜한 부담감에

어색하게 미소를 짓게 하곤 했던...그녀들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자 그때부터는 생일에 문자 하나 없어지는 것....

그게 그녀들과 나의 우정의 실체인거지..ㅋㅋ 이야기가 또 완전히 엉뚱하게 가고 있는데...

일단 이 책은 그런 소외감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소외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그런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문제에

처해 있는 말 그대로 거지?들의 이야기...

 

다시 말하자면 난 소외 어쩌고 런던 파리 어쩌고 하길래... 가난하지만 자신만의 삶의 미학...중권느님이 말씀

하셨듯 남과 다른 자기만의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런던과 파리의 가난하지만 정신만은 풍요로운 인간들에 대한

낭만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겠지 했는데...아니다...이거 하드코어군...그러나 그 힘겹기 그지 없는 생활을 담담하게

그리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들려주니...그게 조지오웰이 말한 미학적 경험이라는 거겠지... 자조적이며 헛웃음을

유발하는 과잉되지 않게 실체를 드러내는 글쓰기...조지오웰은...그랬다...완벽한 내 스타일의 글쓰기를 하셨음...

이리하여 조지오웰 덕후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다...덕후가 아니 되기가 더 힘든 그런 멋진 책임...

 

조지오웰은 그 명문학교 이튼 스쿨을 졸업했는데 장학생 졸업이라고 하는 걸 봐서 돈이 많아서 간 게 아닐지도...

하여튼 그렇게 교육을 잘 받았고 영국 식민지 미얀마에서 경찰로 일하면서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내동댕이치고 집으로 가긴 좀 그랬는지 영국으로 간다...거기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하루 하루 살아가다가

그 일자리가 사라진 후 빈곤의 길로 빠져들게 된다...그리고 물건을 하나 하나 팔기 시작하고 방세를 내기 힘들게 되고

자신과 같은 처지의 누군가와 함께 돈 벌 궁리를 하는데...그렇게 이리저리 치이고 사기도 당하다가 결국 안착한 곳이

레스토랑의 밑바닥 일인 접시닦이...그것도 황송하게 생각하고 하루 종일 미친듯이 고생하며 그의 표현대로 노예처럼

살아나가는데 또 다른 레스토랑의 개업을 믿고 친구가 일자리를 옮기자고 해서 그만두었는데 그 레스토랑은 개업을

하지 않았고...극심한 궁핍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그리고 영국으로 건너가서도 역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결국

거기에서는 걸인이 되어 수용소를 떠돌며 생활하게 된다...그 수용소의 생활은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보다 더욱 비참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는 이런 저럼 사람을 목격하게 되고...그런 일들을 사실적으로 써 내려간 책이 이 책이다...

소설은 소설인데 완전 허구는 아니고...그러니까 책 표지 글처럼 자전소설...쯤으로 생각하면 되려나...

 

처음에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들에 정신이 팔려 되게 재밌네 하며 읽었는데 읽어나갈수록 씁쓸함...이 진해져 왔다

100여년 전에 그렇게 고생하다가 소리없이 생을 마감한 수많은 하급 노동자들과 부랑자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느 면에서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나 또한 그들처럼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 속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불쌍하기도 했고 또 지금의 우리나라에도 멀쩡한 직업으로 불리나 그들처럼 한낱 남의

무가치한 사치를 위해 자신의 기본권을 저당잡힌 채 육체 혹은 감정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지 않나 하는 생각

도 들었다

 

요즘 뉴스에서 시끄러웠던 승무원과 어느면에서는 상당히 전형적인 어느 아저씨...의 이야기...과도하게 하나 하나

챙겨가며 응대하는 일...이 꼭 필요한 일일까? 어느 정도 음식을 가져다 주거나 뭐 그 정도면 되는데...그 아저씨는

그 이상의 감정의 사치를 누리고 싶었던 걸까? 책에 나오는 그 지가 걸어다니면 되는데 걷는 걸 천하게 여겨 걷지 않는

인도 부자들 때문에 인력거꾼이나 조랑말들이 도그고생하는 내용...그냥 지가 걸어가면 쉬운 것을 걷지 않아서 조랑말

의 목 살갗이 벗겨져 나가는 일이 벌어지는 것...무가치한 사치...로 타인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앗아가는 일...

(예전에 딱 한 번 마사지를 받은 일이 있는데 그때도 그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관절이 부러져라 두드리고 주무르니

마사지사에게 미안한 마음과 뭔가 남을 착취하는 느낌이...그녀는 안색이 안좋았는데 자신은 정작 이 일을 하느라 힘들

어서 얼굴이 이렇다고 웃으며 말했었다...ㅡㅡ;)

 

손님이 왕이다...라는 누가 지어낸 건지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우리나라 서비스직종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

각종 서비스직도 그러하고...또 24시간...그 24시간 영업...이 난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한다...사람은 밤에는 자야지...

햄버거 가게나 요즘 카페 체인까지 24시간 영업을 하던데...그러면 밤 새 고생하는 건 적은 시급을 받고 일하는 힘 없는

사람들이고...또 더 해볼까? 야근...야근을 밥먹듯이 시키는 회사...는 일이 많아서라기 보다는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조금

뽑아서 그런거라고 나는 생각한다...인건비 아끼려고 그러는 거 아닐까? 2명이 야근을 해야할 일이라면 3명을 뽑아

칼퇴근 사수를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간단한 게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수십여년 전 런던과 파리에서 그러하

였듯 조지오웰의 말처럼 법률 탓이다...우리나라에는 법률이 있다고? 법정 근로시간 하루 8시간? 일주일 40시간?

ㅎㅎ 있으면 뭐하나 안 지켜도 제재를 가하지 않는데....아주 너그럽게도...안 지켜도 별 문제가 없는 법은 법이 아니지...

장식품이지... 그럼 왜 안 키지나? 법을 만들고 그걸 강력하게 감시하거나 말거나를 조장하는 그들이 부자라서...

부자에게 이익이 되게 나가는 게 당연한거고...그렇다면 그걸 막기 위해서 노조를 만들어서 단체의 힘을 보여주면 되지

않느냐...음...노조...그것도 어찌보면 가진자의 것이지...그러니까 대기업 소속들이나 노조 만들어서 파워를 보여줄 수

있는거니 그나마...물론 대기업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중소기업의 경우 사람 수 뻔한데 어찌 노조를 만들어서...

게다가 계약직의 경우...안그래도 눈치가 보일텐데...노조 한다면서 시끄럽게 하면 내동댕이 감이 될 수도?

잘 모르겠지만 야근 하느라 하루 하루 힘든 삶인데 노조 활동까지 생각이 가는 건 쉽지 않을거다...조지오웰이 그랬듯

접시 닦이들이 미친듯이 일하고 퇴근 즈음에는 녹초가 되어 있는데 무슨 노조를 만들어 단체행동을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가끔 신의 직장 노동자들이 이러저러한 문제로 시끄럽게 일을 진행해 나가면

오히려 같은 노동자들이 더 꼬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 월급 받으면서 뭘 그러느냐...는 식으로

인터넷 뉴스 댓글따위를 보면...근데 이것도 조지오웰의 책에 나온다...아예 부자들은 넘볼 수 없으니 같은 노동자들

끼리는 자신보다 좀 나은 처우의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미워하지만 부자에게는 그런 생각도 못한다고...음...

이런 말을 주절대는 나는? 나도 똑같다...눈치보여서 아무 짓도 안한다...실직은 끔찍한 일인거지...노조에 조용히

발만 담그고 그들의 일에는 전혀 나서거나 참여하지 않는 게 내 모습이고 나같은 인간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변하지

않는거겠지 ㅜㅜ 참고로 나의 직장 전체 노조 가입률은 10%도 되지 않는다...수준이 이런거다...그 점에서 난 가입

이라도 했지...하지만 열심히 이거 저거 나서는 이들을 보면 무임승차라는 단어만 머리에 둥둥...만약 뭔가 노조

가입으로 불이익을 당할 일이 생기면 난 냉큼 발을 빼겠지...이게 바로 내 수준...

 

조지오웰은 직접 걸인의 삶을 경험하면서 그들이 딱히 게으르거나 하자가 있어서 그렇게 사는 게 마땅하다거나

경멸을 받아야 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임을 강조한다...게으른 사람은 절대 접시닦이를 할 수 없는 법이라는 말이..

그리고 걸인도 나름대로 그 고작 생존을 위해 하루에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 수고를 한다는 것...즉 게으름이

원인은 아니라는 것...그리고 이상한 사람이 많음은 인정하나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설명도 상당히

옳은 지적이라는 생각...이건 다른 상황에도 적용이 가능할 수 있을 이야기...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때 그저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면 저 인간이 저러니까 저러고 살지..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만약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저런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저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면도 있는거야...로 볼 수 있겠지...

라는 말을 하며 스스로 죄책감이 느껴짐...

 

걸인들이 무시당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조지오웰은 다른 직업이 뭔가 더 나아서 그런 대접을 받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단지 다른 직업은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기에 멀쩡한 직업으로 대접을

받는 건 아니냐는...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보면...불필요한 것을 괜히 자꾸 자꾸 사게 만드는 모 업종 종사자들이나 ...

과도하게 불필요한 성형수술까지 하게 만드는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 부모의 불안감을 부추게 별 쓸데 없는

것까지 사교육을 받게 조장하는 다양한 업종 종사자들...과장된 광고를 해대서 화장품을 팔아먹는 이들이 하는 일이

과연 다른 이에게 큰 도움을 주느냐의 문제...그들이 멀쩡한 직업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단지 돈을 잘 번다는 이유

때문이 아닌지...하는 일에 내재된 어떤 가치가 아니라... 조지오웰의 지적은 상당히 예리했다...나에게는...

물론 난 게을러서 걸인이 된 사람도 있다고 본다...현대의 모든 실직자들이 단지 사회 구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있다...알콜 중독이나 기타 등등의 본인이 만들어낸 잘못으로 그렇게 된 일도 분명 있을거고

조지오웰은 다들 그렇게만 보니까 그런 경우는 아예 빼고 말한듯 하지만...뭐 이상한 인간은 걸인 속에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그렇게 존경받는 의느님 중에서도 음란 사이트나 벌레 사이트를 만들어서 폭리를 취하며 살고 계신

경우도 있는거고 ㅎㅎ

 

읽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고...

걸인들이나 접시닦이들의 삶에서 아주 조금 부러운 면은 그들은 생존의 문제에 처해 있기에 우울감은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는 것...? 왜 사는가 뭐하러 이러고 사는가...의 생각이 끼어들 곳이 없게 그들은 아 배고파...내일은

어디에서 먹고 어디에서 자야하나...로 골똘했을테니...동료 중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의 거주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 동네에서는 뭔가 난폭한 일은 적으나 우울감에 빠져서 그걸로 괴롭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하였다... 돈이 없건 많건 인간이 마냥 행복하게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잘 곳이 없어서 일렬로 앉아서 철 끈에 팔을 놓고 그 위에 얼굴을 기대고 자고 일어나는 곳도 있었다는 이야기...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찍 죽어버린 여자 이야기...

생존 문제에 허덕이기에 결혼 따위는 생각도 못하는 걸인들의 비참한 삶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 남은 옷을 벗고 있는 다른 걸인에게 벗어주고는 알몸이 된 채 돈을 얻는 장면을 묘사한 이야기...

담담하게 들려주지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불과 100여년 전에 그 낭만적인 도시 파리와 지적인 도시 런던에서

벌어진 일들...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되어 나온 벨 에포크 시대나 1920년대의 멋진 생활의 뒤에는

누군가의 노동력을 심히 착취하는 그러니까 무의미한 사치의 문제가 숨어있었던 거다...니들이 파티하고 맛있는

것을 먹어대고 방을 여러 개 갖고 있고 아기를 유모가 키우는 기타 등등이 가능한 이유는 누군가의 삶을 잡아

먹었기에 가능한거지...라는 생각이 들자 그 영화에 제대로 몰입이 되지 않았다...그리 낭만적이지 않더라고...

난 누군가의 삶을 빼앗는 사람인가 아니면 빼앗기고 있는 사람일까? 자기 합리화인지 모르지만 난 조금 빼앗기며

살고 있는 것 같다...많이는 아니고 조금... 아니 많이 빼앗기며 살아오긴 한 것 같기도 하고...일단 책상 놓을

공간이 없어서 이놈의 침대를 버리고 벙커 침대를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걸 보니 난 현대의 걸인인가보다라는

생각도 든다... 100여년 전의 걸인은 잘 곳이 없었지만 현대의 나는 책상 놓을 곳이 없다....

 

어쨌든 뭔가 불공평하고 그 시대의 걸인들이 너무 불쌍하고...그리하여 난 꼭 사후세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정의를 위해서라도...물론 난 기독교인이니까...사후 세계를 믿는데...남에게 당하고 산 사람들은 믿음이 다소

약해도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조지오웰도 일찍 죽었는데...난 그게 왠지

젊어서의 고생에 원인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편한 삶을 버리고 자발적으로 가난의 세계로 뛰어든 조지오웰...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알리기 위해 책을 쓴 조지오웰...의 삶이 너무 멋지다...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네...

평생 궁핍함에 시달렸고 엄청난 양의 글을 써댔다는 조지오웰...

난 쓰레기야 인간은 다 쓰레기야....아 짜증나...할 때 약으로 처방할 인간 하나 추가요~

조지오웰~

심하게 인간애로 가득찬 작가다... 나에게 약이 되는 작가임...

조지오웰의 책은 하나 하나 아껴 읽어야겠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불의에 대한 의식이다 책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자 지금부터 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책을 쓰는 이유는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

이고 사람들을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차적 관심은 사람들을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 쓴다는 것이 동시에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책을 쓰지 못하고 잡지에

실릴 글조차도 쓸 수가 없다

-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방들은 비좁고 더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곳엔 하녀도 없었고

여주인인 마담F는 청소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과 방을 나눈 벽은 성냥개비만큼 얇았다 때문에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고 그 틈 사이에는 빈대들이 들끓고 있었다 천장에는 온종일 군대가 행진하듯 빈대들이 길게 줄을 지어 지나갔고

밤이 되면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투숙객들은 거의 모두가 뜨내기들이었고 대부분이 외국인이었는데 빈털터리로 와서 한 주일쯤 묵었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들은 직업도 가지가지였다 구두장이 벽돌장이 석수장이 토목잡역부 학생 작부 넝마주이

그들 중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락방 중의 하나에는 불가리아에서 온 학생이 있었다 그는 미국 시장에 팔기위해 무도회용 신발을 만들었다

그는 아침 6시부터 12시까지 침대에 앉아 열두 켤레의 신발을 만들어 35프랑을 벌었고 나머지 시간은 소르본느

대학에 강의를 들으러 갔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여관에는 별의별 종류의 인간들이 모여 있었다 파리의 빈민촌은 그런 별난 인종들의 집합소나 다름 없었다

그들은 소외되고 억압받고 뒤틀린 삶을 살아왔고 미래의 삶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한 사람들

이었다 돈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난은 사람을 상식적인 정상적인

행동 규범들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이 여관에 묵고 있는 투숙객 중에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조차 없는 기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극도의 가난 체험 이것은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가난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왔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고 언젠가는 닥쳐오리라고 각오하고 있던 것이

었다 하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가난이라는 손님은 정말 달갑지 않은 불청객이었다

 

막연한 짐작으로 매우 단순하리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매우 복잡한 것이었다 몹시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실제

로는 단지 궁색하고 구차함뿐이었다 맨처음느끼게 되는 것은 가난이 지닌 특유의 비열함이다

떨어진 빵부스러기로 접시에 남아있는 음식물찌꺼기들을 닦아 먹는 궁상맞음 같은 것들이다

 

가난에는 꼭 따라다니는 게 있다 바로 거짓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하루 6프랑의 수입으로 버텨야하는 상태로 전락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그 거짓말 역시 쉽지만은 않다 정기적으로 보내던 빨래감을 세탁소에 보내

지 않으니까 길거리에서 만난 세탁소 부인네가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묻는다  바로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거리는 것을 보고 다른 세탁소에 보내는 것으로 오해한 그녀는 당신과 적이 되고 만다

또 담배가게 주인은 당신에게 왜 담배량을 줄였냐고 줄기차게 물어댈 것이다

답장을 하고 싶어도 우표 살 돈이 없어 포기하고 만다

 

그리고 가장 골치아픈 문제 그것은 바로 끼니를 때우는 문제이다

매일 식사 때마다 마치 식당에서 정상적인 식사를 할 것처럼 의젓하게 나서지만 실제로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멀거니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빈둥거리다가 나중에 끼니를 때울 음식을 사가지고 호주머니에 숨겨 숙소로

돌아온다 먹을 것이란 빵과 마가린 또는 빵과 포도주뿐인데 여기에서도 거짓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당신은 가정용 빵이 아닌 호밀빵을 사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호밀빵은 값은 좀 비싸지만 둥글넓적하여 호주

머니에 숨겨 널어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루 1프랑을 더 들게 한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는데도 비누와 면도날을 떨어지고 없다 길게 자란 머리카락을 스스로 깎으려다가

실패하여 결국 이발소에 가는 바람에 하루치 식비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하루 온종일 거짓말 그것도 돈이 드는 거짓말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사고에도 당신의 하루 끼니가 몽땅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주머니를 툴툴 털어서 마지막 남은 80 상팀으로 반 리터의 우유를 사 가지고 알콜램프 위에

데운다 그런데 빈대 한 마리가 팔뚝 위로 기어오른다 그래서 손끝으로 튕겼는데 하필 우유통으로 퐁당

빠져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별도리 없이 우유를 쏟아버리고 굶는 수밖에 없다

 

빵을 사려고 빵집에 간다 여점원이 다른 손님에게 1파운드의 빵을 잘라주고 있을 동안 기다린다

그런데 여점원이 서툴러서 1파운드가 넘게 빵을 잘랐다

빵은 1파운드에 1프랑이다 그리고 지금 호주머니엔 딱 1프랑밖에 없다 내게도 2수우를 더 내라고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불안하다 여점원에게 더 낼 돈이 없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칠 것 같아

도망치듯 빵집을 나선다 다시 그 빵집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실로 몇 시간을 버리해야만 한다

채소가게에 감자를 사러 간다 감자는 1킬로그램에 1프랑이다 그런데 그 프랑에 벨기에 동전이 들어 있다고

점원이 받기를 거절한다 슬그머니 감자를 다시 내려놓고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게 된다

 

어쩌다가 번화가를 걷는데 공교롭게도 맞은편에서 잘 사는 친구가 오는 것이 보인다

그를 피하려면 바로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일단 카페에 들어갔다 하면 뭔가를 마셔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50상팀을 커피 한 잔 값으로 날려 버려야 한다

이런 재난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예기치 않은 시간에 불쑥불쑥 찾아와 허기를 더하게 한다

 

이 정도의 일들은 사실 궁핍한 생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곧 배고픔이 무엇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또한 가난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권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무 것도 할 게 없을 뿐 아니라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것에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

한 나절을 침대에 누워 뒹굴다 보면 보들레르의 시 속에 나오는 젊은 말라깽이가 된 기분에 빠져든다

먹을 것이 없으니 자리에서 일어날 기분도 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마가린 바른 빵으로만 연명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몇 개의 신체기관들을 달고 있는 밥통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하루를 6프랑으로 사는 사람들의 인생인 것이다

이보다 더한 예들도 얼마든지 쓸 수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파리에서는 악전고투하는 예술가와 학생 운이 나쁜 창녀 등 여러 종류의 실업자 등 수천 명이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

 

지난 3주간은 참으로 힘든 나날이었다 그러나 더욱 암담한 것은 앞으로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하루하루의 생활은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것보다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궁핍한 생활을 계속해서 해나가다 보면 배고픔 이외의 모든 어려움을

버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무기력하고 궁핍한 삶을 꾸려나가다 보면 극심한 배고픔이 닥쳐오지만 그와 동시에 가난 속에는 커다란 위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장래라는 것 희망이라는 것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돈이 적을수록 걱정도 적어진다는 속담은 분명 어느 정도까지는 진리다

백 프랑이라는 거금을 지니고 있다면 안절부절못하며 불안하겠지만 달랑 3프랑만 지니고 있다면 세상만사

겁날 게 없다 3프랑이면 내일까지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 이후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믿기 힘들겠지만 궁핍한 생활이 주는 위안도 느낄 수 있다 극도로 궁핍한 상황에 빠져본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바닥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랄까

아니면 희열이라 할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늘 조심스럽게 해왔지만 막상 극한 상황애 처하고 보니 오히려 모든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병신같은 놈 그러고도 웨이터라고 떠들어대겠지 너 같은 놈은 네 어미가 살던 창녀촌의 마룻바닥도 제대로

못 닦을 놈이야 머저리같은 놈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내뱉던 그는 식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손에 요리 접시를 들고

백조처럼 우아한 걸음걸이로 나아갔다

 

나와 교대했던 여자는 60이 넘은 노파였는데 일 년 내내 주에 6일동안 하루 13시간씩 설거지통 앞에 서서 일한다

그녀는 자신이 유명한 배우였다고 했지만 내 짐작으로는 그녀는 창녀였던 것 같았다

대부분의 창녀들은 잡역부로 생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 나이에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그녀는 항상 화려한 금발가발을 쓰고 마치 이십대 처녀들처럼 짙은 화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주일에 78시간의 고된 노동도 사람에게서 삶의 희망을 빼앗아가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웨이터는 손님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 돈을 많이 모으면 저들처럼 할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동경하고 있는 대상에 봉사하며 쾌락을 얻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웨이터들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될 수 없다 노동자 조합도 만들지 못하고 하루에 열두시간씩 일을 한다

 

접시닦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장시간의 노동시간 동안 한시도 쉬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체력과 숨이 막히는

환경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인내력뿐이다

한 번 접시닦이에 발을 들이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 그들이 받는 급료로는 한 푼도 저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주일에 60시간이 넘는 노역에 시달려야 하는 만큼 다른 기술을 배울 시간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접시닦이들의 가장 큰 소망은 경비원이나 화장실 관리 같이 육체적으로 좀 힘들지 않은 직종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토록 악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접시닦이들도 나름의 긍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많은 일이 몰려온다

해도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이다 접시닦이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호칭은 해결사다

 

손님들은 최상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그 서비스는 눈속임일 뿐이다

먼저 청결함을 예로 들어보자

호텔의 종업원들이 일하는 곳을 들여다보면 당장 구토를 일으킬 정도이다

우리가 일하는 식품저장실에도 수년 동안 묵은 쓰레기가 구석마다 쌓여있다

빵을 보관하는 곳에는 바퀴벌레가 우글거렸다

내가 버터를 만지기 전 손을 씻으려고 하니까 다른 동료들이 비웃었다

하지만 청결함을 보여야 하는 곳에서는 철저히 청결함을 지켰다

테이블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하고 구리그릇들은 번쩍번쩍 빛이 나게 닦았다

스테이크를 주방장이 검사할 때 손가락으로 누른 후 빨아 먹는다 그 손가락은 오전중에만 해도 백 번은

넘게 빤 손가락이다 검사가 끝나면 행주로 손자국을 지우고 웨이터에게 넘기면 그의 손가락을 고깃국물에

담근 채 들고 간다 그의 손가락은 윤기 흐르는 머리칼을 쓸어 오리던 더럽고 기름 때가 묻은 손가락이다

값비싼 음식일수록 손님들은 그 음식을 통해서 더 많은 땀과 침을 먹게 되는 것이다

 

호텔 일은 내게 잠의 진정한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마치 굶었을 때 음식의 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수면은 단지 육체적인 필요에 그치지 않았다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탐닉과 같은

안락이었다

 

그 거리에 사는 사람들은 결혼생활은 꿈도 꾸지 못하고 계획하고 준비할 미래도 없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 밤의 술판이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이며 삶을 가치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지하철 막차는 텅텅 비어 있기 때문에 15분쯤이나마 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1시 반쯤에 잠자리에 들었다 때로는 막차를 놓쳐서 레스토랑의 바닥에서 자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시간쯤 되면 길바닥의 보도블록 위에서라도 단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녹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묵던 여관 근처의 어느 술집에도 일년 내내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식사시간 외에는 잠시 앉아보지도

못하고 줄곧 일만 하는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춤추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한 적이 있다

그녀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몇 달 동안 그 동네조차 벗어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결국 폐병에 걸렸고 내가 파리를 떠날 무렵 죽었다

 

특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파리의 접시닦이 생활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밝혀두고자 한다

현대의 대도시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일처럼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 더럽고 숨막히는 지하에서

접시를 닦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제기하고자 하는 의문은 어째서 이런 생활이 계속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접시닦이가 현대세계에 잔존하는 노예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들이 불쌍해서 동정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그들은 막노동꾼들 보다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시장에서 매매되던 노예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의 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급료는 겨우 목숨을 연명할 정도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휴가란 해고되었을 때뿐이다

운좋게 결혼을 한다 해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혹시 감옥에나 간다면 몰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파리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하루 열 시간 내지 열 다섯 시간 접시를 닦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다 게으른 사람은 절대 접시닦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고가 불가능하게 하는 단순반복 생활의 쳇바퀴 속에 휘말려 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접시닦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사고 능력이 있었다면 벌써 오래 전에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라도 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겐 여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사고도 하지 못한다

그들의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노동은 대부분 무의미한 사치를 위해 허비되어버리고 만다

 

무의미한 사치

인도의 인력거꾼이나 역마차를 끄는 조랑말을 살펴보자

인력거꾼 50이 넘은 늙은이도 있다 조랑말들...주인은 먹이 대신 채찍을 휘두른다

때로는 목 둘레의 껍질이 벗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말은 살갗이 벗겨진 채 하루 종일 짐수레를 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의 고통이나 벗겨진 살갗의 아픔보다 채찍의 고통이 더욱 심해 노동의 고통이나

살갗의 아픔은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력거나 역마차가 존재하는 것은 걷는 것을 비천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사치다

그것은 아주 초라하고 볼품없는 사치라는 것

조금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그 편리가 인력거꾼의 수고와 동물의 고통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특권층이 이렇듯 무익하고 권위적인 일을 영원히 지켜나가려고 하는 데에는 민중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민중은 저급한 동물이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면 위험하다

때문에 일이 너무 바빠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 해야 안전하다

이런 성향은 지적이고 교양있는 사람들일수록 강하게 드러난다

지식인들의 연간수입은 대부분 4백 파운드가 넘는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당연히 부자편을 들게 된다

그들의 민중에 대한 두려움은 미신과도 같다 그러한 미신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에는 마치 흑인과 백인 차이

처럼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근본적인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술주정뱅이도 적었고 싸움도 거의 볼 수 없었지만 파리보다 활력이 없어 보였다

런던 시민들은 약간 영양이 모자라 보였지만 두 시간 간격으로 홍차와 빵 두 조각을 먹어대며 견뎌내는 것 같았다

파리가 술집과 부당한 노동착취의 도시라면 런던은 홍차와 직업소개소의 도시였다

 

그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으로 시기하고 질투를 했다

부자들은 예외였다

부자들은 사회적으로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계층이기 때문이었다

 

보조는 불편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마치 게가 옆으로 걷는 것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그는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분필통은 어깨에 메고 걸었다 다리 위를 지나가다 그는 다리 난간을 잡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쉬고 있었다

저기 저 알데바란 별 보이지? 저 색깔 좀 보게 마치 붉고 큰 오렌지같지

별로 대단한 게 아냐 별똥별에 대해 글을 써보냈다가 왕립 천문학 연구소로부터 두 번 감사 편지를 받은 적이

있지 요즘도 가끔 별똥별을 살피지 하늘의 별들은 공짜로 볼 수 있잖아 돈 한 푼 들지 않는 최고의 쇼란 말일세

아무튼 인간이란 무언가 취미를 갖는 게 좋지

마음을 다스릴 줄 알면 빈부에 관계없이 일관된 삶을 살 수 있다네 책을 읽고 머리를 쓰면 되는 거야

다만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할 필요는 있지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나는 자유스럽다라고 말일세

그는 스스로 자신은 다른 걸인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불어도 곧잘 했으며 졸라의 소설도 몇 권 읽었고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과 수많은 에세이를 읽었다

그는 말재주가 있었고 그의 두뇌는 활발하게 돌아갔다 또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난에 무릎을 꿇는 법이 없었다

비롯 헐벗고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책을 읽고 사색하고 별똥별을 관찰할 수 있는 한 그의 정신만은 자유로웠던

것이다

 

걸인들이 생계수단과 사회적으로 그럴 듯한 생할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인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토목공사의 일꾼은 곡괭이를 휘두르면서 일을 한다 회계사는 숫자를 계산함으로써 일을 한다 그리고 걸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에서 지내면서 정맥류나 만성기관지염 등에 걸리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직종의

생계 수단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면 아주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 중에도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걸인들은 제약회사 판매업자에 비하면 정직하고 일요신문 사주에 비하면 고결하며 월부 판매원에 비하면 싹싹하고

온순하다 요컨대 걸인은 기생충임에는 틀림없지만 별로 해를 끼치지 않는 기생충인 것이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얻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자기 혼자 근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일 뿐이다 그것을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하고 있으니

윤리관에 비추어 보더라도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사회에 진 빚을 고통스러운 삶으로써 갚아나가는 것이다

 

나는 걸인들을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차별해서 비하할 아무런 근거도 없으며 현대인들이 그들을 경멸할 권리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일이 유익하냐 무익하냐 생산적이냐 기생충적이냐 하는 것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오로지 중요시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해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돈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어버렸다 걸인들은 이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경멸당하는

것이다 만일 구걸 행위로 일주일에 10파운드를 벌 수 있다면 구걸이란 직업은 존경받는 직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걸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여건 내에서 최선을 다해 생활비를 벌고있는 근로자이다

걸인들은 대다수의 현대인들과는 달리 명예를 팔지 않는다 단순히 부자가 될 수 없는 장사를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

을 뿐이다

 

욕설에는 참으로 알 수 없는 비밀들이 많이 숨겨져 있다 본질적으로 살펴보면 욕설 자체는 엉터리 주술처럼 비합리적이다

욕지거리가 노리는 목적은 상대에게 충격을 주어서 상처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욕설로서의 기능을 다하고

나면 그 본래의 뜻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부랑자들은 일자리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워낙 게을러서 일을 하려 하지 않는 겁니다 그 점이 가장 잘못된 거죠

그들은 인간 쓰레기들이라구요

내가 그의 견해가 잘못되었다고 반박하려 하지 그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부랑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도대체 어떤 이유로 부랑인들이 존재하게 되었는가?

묘한 이야기지만 부랑인이 방랑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보랑인 생활의 명백한 이유는 아주 가까운 데 있다

 

부랑인이 방랑하는 것은 그가 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자동차가 좌측통행을 해야 하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에서다

즉 그들을 그렇게 떠돌게끔 만드는 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궁핍한 자는 교회의 교구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할 수 없이 부랑인 수용소의 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용소는 하루밖에 재워주지 않으니까 계속 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방랑 생활을 계속하는 까닭은 법률상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다

 

부랑인이란 단지 일자리를 잃은 영국인에 지나지 않고 엉터리 법률 때문에 떠돌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괴물 같다는 부랑인에 대한 허상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삐뚤어진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생활양식의 결과에 의한 것이지 원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의 삶은 말할 수 없는 정도로 소외되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쾌한 생활이다

그 세 가지 악조건

굶주림  여성들과의 신체접촉이 전혀 없다  무료함

 

그들은 단순히 걷는 데에만 매일 에너지를 무익하게 낭비하고 있다

부랑자 전원은 몫을 합하면 십년 가까이 될 시간을 매일매일 멀거니 실내의 벽을 바라보며 허비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이러한 세계를 좀 더 철저하게 탐구해 보고자 한다

나는 잠시 지나치는 만남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친구가 되어보고 싶다

접시닦이나 부랑인 그리고 강둑에서 자는 사람들의 세계를 이해해보고 싶다

 

궁핍한 생활을 통해서 배운 것도 많다

나는 앞으로 결코 부랑인들이 모두 술주정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걸인에게 돈을 주며 고마워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직당한 사람이 무기력하게 있어도 섣불리 간섭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구세군에게 헌금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옷을 전당포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광고 전단지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