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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어의 정원 言の葉の庭 The Garden of Words 2013 일본

by librovely 2014. 8. 24.

언어의 정원

작년 여름에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언제부턴가 영화 개봉 소식도 잘 안 찾아보고 그래서 이런 영화가 있었는 줄도 몰랐는데

아마 5월이었을거다 한참 심신피폐모드였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 즈음 어느 금요일 9시 정도에

씨네프에서 언어의 정원이 막 시작하는 것을 우연하게 보게 되었고 거의 TV도 책도 보지 않던 그 시기에

이 영화는 그렇게 보기 시작했었다

근데 신기한 건 이 영화 내용이 별로 특이할 것도 없는데 뭔가 그 당시 많은 위안이 되었다는 것

하지만 한참 보다가 전화가 와서 통화하느라 30분 정도를 놓쳤고 이미 영화는 끝이나며 엔딩곡이 나오고 있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중간을 끊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엔딩곡이 또 왜 그렇게 위안이 되었던건지

 

그리고는 얼마 후 또 TV에서 하는 걸 한 차례 봤고 또 지난 주 금요일에 하길래 꽃보다 청춘은 재방을 보기로

하고 이걸 다시 봤다 

역시 좋았다

근데 이상한 건 이 영화는 그냥 분위기만 남고 구체적인 대화나 줄거리가 자꾸 잊혀진다는 것... 왜일까?

비가 오는 날

정원의 의자에 20대 후반의 여자와 16살 고등학생이 앉아있다

한참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대체 왜 이렇게 있는걸까?

 

비오는 날 둘은 어색하게 앉아있다가 말을 조금씩 섞게 되지만 신상에 대한 그런 대화는 아니다

고등학생인 타카오는 비오는 날에는 학교에 가지 않고 공원에 와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인 구두 디자인을 한다

디자인이라는 거창한 말은 어울리지 않고 그냥 수첩에 끄적거리는 것...

엄마와 형과 같이 사는데 엄마는 새로운 연인이 있고 형 또한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게 되어서 애매한 상황이었나

아니 형과 같이 사는 중이고 하여튼 형편이 좋지는 않아서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보다는 구두 디자인에

흥미가 있고 그게 꿈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보이고 남들이 비웃을거라 생각하고 사는 게 나름대로 복잡하고

그래서 비가 오면 그 날에라도 학교에 안가고 공원에 와서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들었던 것일까

둘은 비가 오는 날에만 이 곳을 찾아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카오와 말을 하게 된 유키노는 이런 시를 읊어준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텐테

이 시에 대한 타카오의 반응은? 나중에 하는 타카오의 말에 의하면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정도?

 

비오는 도쿄의 신주쿠 한 공원에서 그렇게 만나고 여자가 타카오의 구두 그리는 것을 살짝 보게되고 타카오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그녀의 발 사이즈를 재가고 그녀는 그에게 구두 디자인북을 선물한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가 맞나? 맞을거다 아마

로맨스라도 하면 보통 너 없으면 나는 죽는다 영원히 함께하자 기타 등등 난리난 요란한 것들 떠오르긴 하지만

꼭 그런 사랑만 있는 건 아니다...어쩌면 진짜는 조용하게 오는걸지도 모르지

 

둘은 수차례 공원에서 만나고 묘한 감정이 분명 생겨나지만 전혀 접촉은 없다

아마 저 발 사이즈 재는 장면이 유일할거다

저 장면을 보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영화의 귀를 뚫어 귀고리를 걸어주는 장면이 떠오른다

 

하여튼 진짜는 이렇게 조용히 오고 서서히 자라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잔상이나 애틋함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지

유키노의 경우는 모르겠지마 타카오의 경우 이게 첫사랑이 아니겠는가?

그게 무슨 사랑이냐 대체 둘이서 뭘 했다고?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이 오히려 큰 일이었을 수도

있는거지...  아마 유키노의 경우에도 이게 비롯 첫사랑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런 색의 감정은 느껴본 일이 없었을

테니까 그녀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자신은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타카오는 구두 디자이너의 꿈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 바탕에는 유키노..  마음에서 점점 자라나는 누군지 알지도 못하지만 좋아지는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인정해 주었

다는 그 사실이 아마 크게 작용하였을 것...

타카오는 그렇게 더 열심히 산다 열심히 구두를 만들고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이젠 아예 유키노의 구두를

만들기로 한다

비가오는 날

비가 오기를 둘은 기다리지만 장마가 끝이 나고 둘이 만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비는 언젠가는 올거고 타카오는 열심히 산다 열심히 유키노의 구두도 만든다

유키노도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주변을 다시 정리하려 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하려는 듯이

 

 

그러다가 유키노와 타카오는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다

그 장소는 학교

유키노는 교사였고 어떤 남학생이 혼자 좋아했는데 그의 여자친구가 샘이 나서 그녀에 대해 이상한 소문을

냈고 그 문제로 유키노는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학교에서는 조용히 일을 무마시키려고 그냥

그녀가 그만두기를 바라거나 그냥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 같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남자친구에게도 이별

통보를 받았던 모양이다...그녀를 믿어주지 않았던 셈...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학교에 안가고 그 일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미각도 잃어 초콜릿과 맥주 맛만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비오는 날 맥주와 초콜릿을 잔뜩

들고 공원에 갔던 것이고....타카오와 마주친 날은 아마 마지막 출근을 했던 모양이다 그만두려고...

나중에 이것저것 알게된 타카오는 거짓 소문을 낸 상급생 여자를 찾아가 따귀를 때리고 그녀의 친구들에게

실컷 얻어맞는다....그리고는 다시 만난 유키노에게 왜 다쳤냐는 질문에 유키노처럼 맥주마시고 지하철

선로에 떨어져 다쳤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유키노의 모습에서 진심을 보고 마음을 본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았던 유키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오해하는데 그 반응에 유키노는

자신이 학교에서 이미 유명하기에 알 줄 알았다고...시를 읊어준 것도 하나의 힌트였다고 문학교사라는...

하여튼 둘은 다시 친해진다...서로를 더 알 수 있게 된 셈이지...

 

타카오는 상황 파악이 된 상태에서야 그녀에게 답을 한다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머무를 겁니다

(아오 로맨틱해라~~ )

 

그리고 유키노의 집에 가서 같이 요리(라고 해봤자 달걀말이인가? )를 해서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둘 다 각자 그런 말을 한다

지금 가장 행복한 것 같아....

그래...진짜 행복은 그런거겠지...뭔가 거창한 게 필요한 건 아닌거다 

그러면 계속 그렇게 지내~ 같이 밥 먹고 차 마시고 그렇게 지내..

 

타카오는 그럴려고 했다 그래서 유키노에게 나름대로 고백 비슷한 것도 한다

좋아하는 것 같다고

 

유키노도 마찬가지였겠지...하지만 그녀는 일단 학교를 그만 두었어도 나이도 그렇고 교사였었고...

게다가 그런 문제로 학교까지 그만두게 되었던 것이고....물론 소문일 뿐이었지만...

그런 유키노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정색하고 그게 무슨말이냐고 회피해버리고 그런 모습에

타카오는 실망하고 돌아가겠다고 하고 그렇게 나가자 유키노는 울면서 뛰어 나가 타카오를 빗속에서 끌어안는데

타카오가 실망하고는 그녀에게 쏟아내던 대사도 참 좋았는데 디테일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아마 그래서 이 영화는 볼때마다 새롭고 좋은가보다...이 영화 너무 좋다

 

아 퍼온 예고편을 보니 이 대사가 있었구나...가슴에 확 와서 박혔던 그 대사

당신은 평생 그렇게 중요한 말은 절대 입밖으로 내지 않고

난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평생 홀로 살아가겠죠!

타카오가 유키노에게 고백했을 때 유키노가 자신은 별 감정 없는 척하며 선을 그었을 때 내뱉은 대사 

음..길지 않은 인생...확실한 도덕적 기준 또한 없는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마음가는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게 어려운거지...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되는거다...남의 눈과 알 수 없는 기준들에 얽매이면..

피하지 말고 솔직해지는 게 필요한거겠지...스스로의 감정에...그게 이상한 짓 같아도....그걸 누가 판단하겠어

이상한 짓이라는 것도 그 기준도 계속 변하고 있는데...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만든건데...

 

 

누군가는 더러운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근데 여기서 둘의 나이차가 많고 학생 교사 사이였다는 것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그건 그냥 설정일 뿐이고

진짜 중요한 건 다른거지... 저런 이상한 설정을 한 이유는 아마도 저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끌렸다는

것이 더 진짜임을 확실하게 알려주니까 그런 거 아닌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라는 영화가 감동적이었던 것도 여자끼리의 사랑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동성애는 하나의 설정일뿐...이 영화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동거하고 마음가는대로 행동했다가

중요한 것인거고....

 

이 영화에서도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유키노와 그 전 남친의 관계는 사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던거다

둘다 교사였던 거 같고 나이도 비슷했을테고 아주 문제 없어보이는데 둘 사이에는 믿음이 없었고 어쩌면

사랑같은 것도 없었던거다...겉으로는 문제 많아 보이는 유키노와 타카오는 어쩌면 아무 문제 없을 사이가

아니겠는가 좋으면 된거지 뭐...진짜 좋았잖아...그게 가장 어려운거다...

 

하여튼 둘은 그렇게 마음은 확인했으나 당장 뭘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좋아한다고 당장 뭘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꼭 같이 있어야 하고 꼭 연락을 수시로 해야하고?

100일 기념 이벤트를 하고 커플링을 하고 선물을 하고....그런게 아닐지도 모른다...어쩌면...

저런 요란법석은 어쩌면 확신이 없어서 더 하게 되는 게 아닐까

진심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그냥 느껴지는 것이겠지....내가 뭘 알겠어....

 

몇 달이 흘러 그녀는 다른 지역에서 교사를 하고 타카오는 일상을 열심히 살아나가는데....

뭔가 마무리가 안된 상태로 그렇게 영화가 끝나는데...

아마 해피엔딩이겠지...타카오가 졸업을 하면 둘은 다시 만나겠지...영혼이 닮았으니까 둘은

사실 그냥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나에게는 해피엔딩이다...

그런 기억만 있더라도 그것도 해피한 거 아니겠는가...엄청난 행운이 아닐까....

도쿄에 다시 가게 된다면 비가오는 날에 꼭 언어의 정원 배경이 된 정말 영화랑 비슷하다는 그 공원에 가봐야지

그리고 그 벤치에 앉아서 구두를 반쯤 걸쳐놓고 발을 흔들며 맥주를 마시고 메이지 초콜릿을 씹어먹어봐야지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니까 파리에 갔을 때 비가 와도 좋을 것 같고

이 영화를 보니까 도쿄에 갔을 때 비가 와도 좋을 것 같다 아니 비가 오면 더 좋겠다

이런 비오는 설정의 영화들이 더 많이 만들어지면 여행가서 비온다고 불행함을 느낄 사람들이 줄어들겠네..ㅎ

 

엔딩곡이 주옥같다....



이 노래도 이 만화영화 스토리도 사실 별로 특별할 게 없는데 왜 이렇게 좋을까...

이 영화 되게 좋다...

대사가 기억이 안나서 뻘글로 끝이나는데... 진짜 중요한 것들을 건드리지도 못한 글을 써버린 느낌...

이 영화는 5번은 더 보고 썼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예고편

 

오프닝


 

어찌보면 참 못난거다

학교에 적응 못하고 남학생이 학교에는 안가고 비 오면 구두나 그리고 앉아있고

교사가 처신을 똑바로 못해 소문에 휘둘리고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남자친구에게도 차이고...

그래도 그냥 그런 약한 상태 상처입고 힘든 상태라도 그냥 그 자체로 좋은 것

니가 이러이러한 것을 가지고 있고 이런 능력이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나처럼 적응 못하고 그런 힘든 일을

겪었으니까 더 좋아 아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너니까 좋다...존재 자체가 좋다...는 그런 거겠지?

 

이 영화에서 뭔가 되게 순수하고 진심 그런 게 느껴진 이유는 저런 이유겠지 아마

그리고 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거니까 감동적인걸테고...으음

 

 

 그리고 또,

영상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