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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너의 세계를 스칠 때 - 정바비

by librovely 2014. 10. 4.

 

너의 세계를 스칠 때                                        정바비                   2014               알에이치코리아

 

정바비

이름 진짜 이상하다....바비인형? 여자도 아니고 무려 남자가 가명으로 바비라고 하다니...게이인가?

(게이를 비하하는 말은 절대 아님...그러나 게이가 늘어나는 것은 나로서는 좋아할 일은 아닌듯...

어차피 내꺼 아닐 바에는 차라리 세상에 게이가 많은 것이 덜 억울하려나...)

그리고 바비면 바비지 안 어울리게 한국 성에 외국 이름...정바비가 뭐야...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하여튼 존재를 전혀 모르던 작가 아니 가수인데 내 블로그에 댓글 많이 달아주는 브이브이아이피 방문자

독한양주님 블로그에서 글을 보고 바로 머리에 집어넣었던 이름...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대출중이라서

볼려면 좀 시간이 걸리겠군 했는데 다음에 방문해보니 어 오렌지색 책이 책장에 떡 꽂혀 있어서 바로 집어

들고 와서는 그 날 다 읽었다

 

독한양주님 블로그에서 읽었던 그 부분들이 가장 재밌고 기발했고 좋았던거고 다른 부분에서도 건질 게

있긴 했으나 너무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살짝 그랬지만 하여튼 지나친 기대감을 제거하고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가 재미있었다면 이 책도 좋을듯...뭔가 비슷해

언니네 이발관에서 둘이 같이 지낸 일도 있긴 한데 그게 원인인건지 아니면 둘이 성향이 비슷해서 같이

음악을 하게 된건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남자의 머리 속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약간은 해소가능한 책으로도 의미가 있다 얼마나 일반적인 남자인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석원은 결혼에 대한 날 것을 좀 보여줬다면 정바비는 연애만 하고 결혼은 아직 안한 30대 중반의

남자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데 정바비가 좋아한다는 홍상수 감독스러운(?) 그런 느낌도 좀 드는데

그게 뭔가 꾸며내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그게 실상이 찌질하더라도 그냥 사실대로 드러낸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그랬는지는 또 명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정바비 이름을 알고 나서 운영하는 블로그도 구경하고 거기 있는 글도 좀 읽어봤는데 얼마전 생일날에

작은 공연을 했던 것 같은데 그 공지를 보고는 음...참 인생이 괜찮구나...나도 내 생일에 공연한다고

소극장으로 번개 비슷하게 치면 남자들이 날 보러 주루룩 와서 앉아있어주는 인생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그게 무슨 소리냐면...저런 공지를 하는 경우 분명 팬이면서 여자들인 사람들이 와서 자리를

빛내(?) 줄게 분명하니까...책에도 몇 번 이야기가 나오지만 팬 그러니까 여자 팬도 꽤 있는 것 같다

정바비 같은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많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내용도 나온다 자신이 고백했는데 너는

안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여자가 있다는...누가 감히 이런 감성터지면서 외모에 큰 문제도 없고 무려 음악도

하며 학벌도 우수한 남자를 거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어느 부분에서 싫음을 느꼈을지

알 것만 같다...물론 근거 없는 추측이지만...책에는 그녀가 아마도 자신의 불안정한 삶에 문제를 느낀 거라는

뉘앙스로 나오는데 뭐 그녀가 어떤 성향일지 모르지만 정말 그 사람이 좋다면 그런 게 보일까? 아닐텐데 그건

사람들은 특히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이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나같은 경우에는 되게 잘 이해하는데...ㅎㅎ 나는 정말이지 나에게 이성으로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사람의 말에 무척이나 강하게 공감할 수 있다 아니 내가 그 당사자보다 더 강하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것만 같다?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는 건 졸려서겠지...

 

정바비의 음악을 들어본 일이 없지만...그래서 음악을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글은 무척이나 재미있다

정말 글을 잘 쓴다...요새 그의 블로그에서 읽어본 다른 책에 대한 추천사는 완벽한 추천사가 뭔지 모르지만

그것에 상당히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바비 인생에 별 이상하고 유쾌한 일이 많이 벌어져서 그가

이런 책을 쓸 소재가 잔뜩 생겼으면 좋겠다 각종 잡지에 쓴 글이나 인터뷰도 거의 다 찾아 읽어봤는데

아 대답이건 글이건 재미있다 일단 재미는 보장... 정바비와 이석원의 수필? 에세이? 하여튼 이런 독특한

류의 글을 일컬을만한 장르가 하나 생겨야 할 것만 같다 그럼 그 장르는 내 페이보릿 장르 중 하나가 될듯~

 

 

 

 

 

 

 

 

결혼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아무리 외로워도 결혼만은 하지 마라는 안톤 체홉의 펀치라인이다

체홉은 죽을 때도 나는 죽는다라고 말했다는데 혹시 진실만을 말하기로 악마에게 선서라도 하고 태어난

것일까

결혼에 관해 두 번째로 좋아하는 말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명작 <낙원에서의 곤경>에 나오는 주인공 마담

콜레의 대사다

마담 콜레는 청혼을 거절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결혼은 두 사람이 저지르는 아름다운 실수라고들 하죠

하지만 당신과 한다면 그건 그냥 실수일 뿐이에요

루비치 터치...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청혼할 때 당신의 뜰에서 꽃을 따고 싶다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서양 문물이 낯설던 20세기 초 I love you 를 옮길 일본어가 마땅치 않아 달빛이 아름답네요 로

번역했다는 나쓰메 소세키가 떠오르는 얘기다

또한 그들이 청혼을 거절할 때 뭐라고 얘기했는지 나는 정말 궁금하다

거기에 왠지 필연적으로 루비치 터치가 있을 것만 같다

 

남자는 단언한다

사귀는 상대(혹은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상처도 주지 않으며 더 나아가 현재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아무런 파장도 가져오기 않는 연애사건이라면 그걸 마다할 사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거라고

 

네가 날 거절한 이유를 굉장히 명확히 알게 됐어

넌 인생을 살아가는 일에 진지하지 않은 삶에 제 몫의 경의를 표허지 않는 사람을 파트너로 삼고 싶지

않았던 걸 거야

그런데 말야 적어도 로맨스에 있어서만큼은 달리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믿을 수 없는 말을 뱉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돈키호테 생각나네...) 참을 수 없는 기쁨에

자기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크게 웃게 되는 세계에서야말로 연애는 벌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녀도 연애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단지 그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 있는데)

 

내가 아는 네 얼굴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인데 네 빛나는 눈동자를 처음 본 이래 내 밤은 이렇게 쭉

백야인데 네가 긍정하고 부정하며 망설이는 동안 보여주는 그 모든 제스처에서 나는 러시아의 발레와

하와의 훌라 춤까지 수없이 많은 무용의 움직임을 보고 있는데 말야

이해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믿지 않기로 했어 아무리 많은 사람들 틈에 있어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실은 평범한 사람과 만나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고 있었다는 결말을

나는 믿지 않을래

(그녀를 정말 좋아하긴 했나보다...책에 이렇게까지 쓰다니...그녀가 누군지 모르지만 조금은 부럽...

얼마나 좋아했는지 약간 증오의 대상이 된듯...한 느낌도...이런 게 애증인건가? )

 

전화기가 꺼진 그녀의 집 대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밤을 샜다는 부분까지

응 그리곤 날이 샐 무렵에야 문이 열리더니 처음 보는 남자가 나오더라구

둘은 남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생일 축하연을 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위한 선물 같은 것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탄생에 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나는 여전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확실히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농담에 대한 사랑 -그것도 다분히 집착에 가까운- 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농담에 관해 나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집에 오니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와 있다 후배가 보낸 메시지다

인터넷 링크를 보냈는데 혼자 있을 때 보라는 거 보니 야한 내용인가 보다

아침부터 이런 영상을 보내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사는 게 뭐 대단한가

자기 앞가림 하면서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사는 거

케이트 업튼의 젖은 티셔츠 유투브 클립 같은 걸 발견하면 소중한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거겠지

 

자기가 긴 시간을 들였던 사람이 실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현실은 우리를 미치도록 우울하게

만든다

 

가상의 여자를 상상해봅니다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배려심이 많은 여자 책임을 나누어진 자리에서는 자기 몫을 똑부러지게 해낼

줄 아는 산뜻한 여자 낯선이에게는 상냥라고 어려운 이에게는 다정한 여자 조그만 인테리어 소품에서부터

위대한 예술작품까지 아름다운 것들을 두루두루 누릴 줄 아는 여자 언제나 밝게 웃고 그 생명력의 볕으로

인해 함께 있는 이의 마음까지 절로 따사로워지는 여자 말이에요

네 가상의 여자지만 사실은 이상의 여자에 가깝습니다

재밌는 건 저런 이상적인 삶에 남자는 필수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이지요

앞서 열거한 것들 중 남자가 필요한 장면은 단 한가지도 없으니까요

연애라면 남자가 있어야 가능하겠지만 사실 연애라는 것이 예쁘던가요

예쁘기는 커녕 온갖 밉고 추하고 못난 모습들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막장 연극으로 빠져버리기 쉽던데

말이죠 **는 또 어때요 죽어다 깨어나도 예쁠 수가 없죠

 

결국 우리의 주인공 역시 멋진 책을 읽고 화초를 가꾸며 보낼 수 있었던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남자와의 사랑싸움(을 가장한 주도권 다툼)으로 망치고 애인의 질투심 때문에 소중한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하겠죠

생식 능력이 없어진 다음에도 몇십 년이고 살아갈 수 있는 지구상의 거의 유일한 생물

그래서 그저 대를 잇기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기이기 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당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가 첫장을 펼치자마자 나온다

무언가를 배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한 나이를 먹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다

 

여행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은 자유다

그 커다란 과실을 가능한 한 제대로 음미하기 위한 3가지 선결조건을 들어본다

우선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어야 하며 모국어가 통하지 않는 곳이면 더 좋다

다음으로 할 일이 없어야 한다 업무관련 전화나 써야 할 원고를 떠안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최소한의 금전적인 여유다 적어도 배낭을 넣어둘 락커 이용료 때문에

고민할 정도는 넘어서야 한다

이런 자유 속에서 비로소 여행은 인간의 잠재의식을 활성화시켜 주고 감성을 풀어놓으며 다시 한 번

아이의 시선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이런 감각의 가장 큰 수혜자는 유머 감각이다 여행가면 별 게 다

우습지 않던가 그래서 내공 있는 유머리스트이 여행기는 나에게 늘 반가운 존재다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

마치다 코우 <동경 산책>

3권의 책이 공통적으로 갖는 가장 큰 미덕은 독서의 과정에서 부러움이나 질투 상대적 소외감을 느낄

일이 절대 없다는 점이다 남의 여행담을 듣고 나서 가스를 틀어놓고 손목을 그으며 건물 옥상에서

뚸어내려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선뜻 추천하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이다

나는 지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과 <극장전>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일정한 시간대에 오는 차를 타고 정해진 시간동안 일하고 주어진 여가만큼

어떻게 놀까 궁리하는 것 이것이 대부분 인간의 삶이다

삶이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면 모든 게 끝나버린 느낌이 들기 때문에 누군가는 일상이라는

단어를 발명하고 거기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자기 기만이 아니라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자신의 일상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은 분명 재능이자 축복일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를 완전히 다시 보게 만든 작품은 에른스트 루비치의 <나노치카>였다

 

누구나 다년간 다양한 환경에서 시험해본 결과 가장 자기에게 잘 맞는 방식으로 여가를 보내게 된다

취향을 놓고 우열을 가리는 일만큼 피곤한 것도 없다

 

사람들이 죽을 때 가장 많이 후회하는 일이 남들이 기대하는 대로 눈치만 보면서 인생을 낭비한 것이란다

못됐지만 내심 아 그럼 나는 아주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겠네 하고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희생하거나 내키지 않는데 책임감으로 무언가를 짊어진 기억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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