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철학이 필요한 시간 - 강신주

by librovely 2014. 12. 7.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                           2011              사계절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다

이책 저책 읽다 던지고 읽고 던지고 하다보니 정신이 없고 정리도 안하게 되고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내용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고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비효율적이다...다음부터는 한 권씩 끝까지

읽고 바로 바로 발췌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렴풋이 지나치며 들었던 철학자들의 핵심적인 이야기를 아주 쉬운 언어로 들려주고 그래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 그런 그런 의미의 이야기를 했었구나 하며 슬쩍 엿보는 정도의 재미를 주는 나와 같은 철학 왕초보를 위한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내용은 쉽지만 그 안에 담긴 것들은 골똘해지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것들...좋은 책이라는 말씀

 

확실히 어느 분야건 정통한 사람은 쉽게 풀어서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읽으면서 소개된 책들에 관심도 생기고 여러모로 좋은 입문서이다

마냥 대중적인 건 아닐지도 몰라 생각했지만 책이 너덜너덜...각종 강연과 출판물로 강신주는 돈을 꽤 벌 것 같다

나는 전혀 일조하지 못했지만 하여튼 강신주가 돈도 많이 벌고 계속 좋은 책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요새 TV 츨연은 안하는 것 같던데...

 

 

 

 

 

 

솔직함과 정직함은 모든 인문정신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김수영 시인은 위대했던 것이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통념에 브레이크를 건다

영원회귀의 가르침에 따르면 굴욕과 비겁으로 점철된 고통의 순간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10만년 주기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우리가 순간의 굴욕과 비겁을 선택할 리는 없다

순간으로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무엇을 의지하고 실행하려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10만 년 전에도 반복되었고

그리고 10만 년 뒤에도 반복될 것이라는 것만을 안다

그러니까 온갖 억압과 고통을 극복하여 현재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영위해야만 한다

자신의 삶을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아주 오래전 인간의 삶이란 연극에 불과하다는 통찰에 이른 철학자가 한 명 떠오른다

바로 에픽테토스이다

에픽테토스에게 작가는 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에 따르면 신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연기해야 할 배역들을 모두 정했다는 것이다

왕이 되었다고 뻐길 것도 없고 거지가 되었다고 해서 슬처할 이유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충실하게 자신의 배역을 잘 소화하고 연극판을 떠나면 된다

괜히 신이라는 작가에게 투덜거려서도 안 된다

 

이지는 동료나 후배 유학자로부터 욕을 먹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책에 분서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태워버릴 책이나 태워지게 될 책이라는 의미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떄름이었다

 

승려인 임제는 부처 조사 그리고 나한과 같은 깨달은 사람들을 만나면 모조리 죽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승려 제자들에게 서슴없이 피력한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 즉 자신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지나친 소망 때문에 현재의 삶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다

부모와 친척도 만나면 다 죽이라고 한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현재를 역동적으로 살 수 있는 자유에

장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임제는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서 자유롭게 된다면 임제의 표현을 빌자면 해탈한다면 현재적 만남을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오래된 뇌가 행동을 담당하고 중간 뇌가 정서를 관장한다면 새로운 뇌는 합리적인 사유를 담당하고

있다 지층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합리적 사유도 시간이 지나면 정서나 행동의 영역으로 이행한다

이것이 바로 습관을 설명하는 현대 뇌과학의 방식이다

 

이미 습관이 된 것 지금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 그리고 나중에 습관으로 획득하게 될 것

이것이 바로 삶의 전부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맥락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 규칙을 따른다

 

모든 것을 다 해본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삶에 미련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오락산업은 일회용 반창고인 셈이다

호프집에서 카페에서 영화관에서 음악회에서 슬픔과 우울함으로 만들어진 종기를 핥고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로 제공된 기쁨 값싸게 구입한 쾌활함이 삶에 진정한 행복을 부여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삶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타자와의 관계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삶의 현장에서 기쁨과 유쾌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메를로 퐁티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우리는 순진무구함과 폭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체를 가지고 있는 한 푝력은 숙명이다  <휴머니즘과 폭력>

유한자인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것을 파괴해야만 한다

사실 나 한 사람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수천 마리의 닭과 물고기 등은 아직도 살아있을 지 모른다

나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 가족들 그리고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타인들을 떠올려보자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맥박을 짚어보면 인을 가장 잘 체득할 수 있다 병아리를 보라 - 이정집

병아리는 약한 존재 고통을 함께해야 할 타자의 삶을 상징하는 것

공감의 정신 정호는 마침내 주돈이가 왜 정원의 잡초를 제거할 수 없었는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자신들도 언제든지 잡초처럼 뽑히거나 병아리처럼 쉽게 병들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서 존재한다는 메를로 퐁티의 탄식이

묘한 공명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최소한의 폭력을 행사하려는 겸손함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주돈이 정호 그리고 메를로 퐁티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그가 누구이며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누군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알려고 하는

존재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를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진정으로 논리적인 사람이 되려면 시인처럼 예리한 감수성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장미의 이름으로 에코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웃음이 불가능할 때 인간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압되어 살게 된다는 통찰일 것이다

그의 통찰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운 사회란 웃음이 허용된 사회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여기서 우라는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의 <웃음>이란 책을 넘겨볼 필요가 있다

이 작은 책보다 웃음이 가진 혁명적 성격을 간파했던 책도 없기 때문이다

 

1997년 위환위기 때 정부는 비겁한 짓을 했다 경제위기가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마치 우리 국민들이 낭비와 사치를 일삼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선전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노동자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이 만든 상품을 활기차게 구매할 경우에만

유지되는 체제이다

자본주의의 비밀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베버의 책을 집어 던지고 좀바르트의 책을 펼쳐야 한다

 

자본은 대중매체를 이용해 우리의 내면에 신상품과 유행과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결국 우리는 여가시간마저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여가시간은 자유로운 창조의 시간이나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상품들로부터

유혹당하도록 고안된 시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 드보라는 여가 시간 동안 우리가 노동의

결과에 대해 굴복하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기 드보라 <스펙터클의 사회>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노자의 통치술이 압축되어 있는 구절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유비는 조자룡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아들을 던졌다는 것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마르크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주체라는 말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살았다는 표현은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나아가

그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싶어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고독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인가 자세히 생각해보면 그 반대가 진실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만 고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때 버려졌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바로 이것이 고독이 실체이다 그렇다면 이 고독으로부터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손을 내밀 때이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숙명이다

 

하위징아는 소중한 교훈을 준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수단이면서 목적일 때 우리는 기쁨으로 충만한 현재를 살 수 있는 반면

자신의 행동이 무엇인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고단함으로 충만한 현재를 견디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아마도 그는 자기 자신을 짊어지고 갔단 온 모양일세

몽테뉴 <수상록>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행을 제대로 다녀온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참다운 여행은 배움의 과정이어야 한다

첫 번째 배움은 여행지와 그곳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두 번째 배움은 더 심오하다 여행지에서의 삶이 충분히 편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자신이 떠나온

일상이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책을 읽는 것은 여러모로 여행을 가는 일과 유사하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통해 이중적인 배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