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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태연한 인생 - 은희경

by librovely 2015. 10. 27.

 

태연한 인생                                                                    은희경                         2012                  창비

 

얼마 전에 3분의 1쯤 읽다가 집중이 안되길래 멈췄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읽어볼 생각이 들어서 다시 대출

다른 책의 이해력도 그다지 좋지 않지만 난 유독 소설에 약한데 그게 당연한거다 소설은 어렵다 시는 더 어렵지

그래서 시집은 아예 읽을 생각도 못한다 어려운 이유는 메시지가 그대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일거다 아마

 

은희경의 다른 책들 물론 좀 가벼운 책을 읽긴 했지만 그리고 읽고나서 괜찮네 생각했지만 아주 좋다는 느낌이

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은희경이 다시 보임...무척 날카롭다 특히 앞부분이 아주 아주 좋았다

70페이지 정도까지 그러니까 류의 엄마 이야기가 아주 좋았다 은희경은 천재구나...소설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타고나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으면서 여태 읽었던 다른 사람들의 어설픈 소설들이 떠오르면서

그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따위의 별 이상한 생각이 다 떠오르고 그랬다 소설가 지망생은

이 소설을 읽으면 뭔가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들지도...하여튼 읽으면서 이거구나...이렇게 쓰는거지 소설은...

이라는 생각도 하고 문장 문장 감탄하며 읽었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평이한 문장 사이에서 좋은 문장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는건데 이 소설은 좋은 문장 사이에 평이한 문장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뒷부분은 내 머리로 이해가

잘 안가서 그런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앞부분은 내가 읽어본 한국 소설 중 최고임...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부분만 단편으로 나왔더라도 되게 좋았을 것 같다 물론 그 다음 부분도 다 좋긴 좋았다 근데 좀 어렵긴 했던 거

같기도 하고...어렵고 난해하게 쓴 건 아니고 명쾌한데 내가 잘 이해가 안되는 그런 느낌...

 

재밌게 읽었다고 하지만 주제도 잘 모르고 엉망으로 읽은 게 분명하다 자세한 거야 뭐 인터뷰도 찾아 읽고

이동진 글도 찾아 읽고 그러면 될 일이고...왜 앞 부분의 류의 어머니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은 것일까...

뭔가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드는 삶에 어쩌다보니 흘러들어갔지만 어쨌거나 그 안에서 묵묵하게 견디며

삶을 이어나가는 그런 모습...그러다가 감당이 안될 때 극장에 가서 왼쪽 가슴에 오른쪽 손을 올려놓곤

하는 모습이 상당히 불쌍해보였고 또 역시 그 안에서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거다...류와 요셉의 이야기는

뭐 그냥 그런 사람들도 있구나 했지만...류의 어머니 이야기는 이상하게 심히 나같다는 생각도 들게 만들고

또 내가 두려워하는 그런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지금도 어느정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연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견뎌내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는데 여기에 뭔가 더 그런 삶이 추가될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거겠지...태연한 인생을 사는 것...그러면 사람들은 보통 잘 살고 있다고 해주는 것 같다...평범한

삶...태연한 삶...그렇지만 그게 연기일 확률도 높은거겠지...패턴이라고 부르는 그 룰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은 게 아닐까...물론 패턴 따라가기에서 실패한 경우에도 또 그 나름의

태연한 인생 태연하게 보일 인생을 위해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고독을 저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잠재워야 하는 게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패턴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요셉의 삶도 내 눈에는 그다지 뭔가 벗어난 느낌이 없다...그 정도의 유부녀와

바람피고 제자와 노는 모습 그리고 뭔가 속물적인 모습이 솔직하게 사는 거 같긴 하지만 그 또한 어떤

패턴 안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그것도 뻔해....그렇게 사는 게 과연 즐거울까 그게 아무렇게나 사는

걸까 아무렇게나 사는 게 정말 요셉의 말처러 쉬운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내가 뭘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지가

가장 어려운 문제일지도...내 욕망이 뭔지도 모르겠고 그걸 따를 용기도 없는 게 보통이 아닐까...

 

류의 어머니는 고독해지지 않기 위해서 남편의 부정을 보고도 오랜 시간동안 눈을 질끈 감았다 상실하지

않았지만 고통스러웠고 그래서 자신의 가슴을 다른 손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거겠지 류는 그런

엄마의 삶을 봤기에 연인의 부정을 확인한 순간 바로 연인을 놓아버린다 상실했고 고독해졌지만 고통스러운

상태로 연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류가 맞는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마 나중에 류의 어머니는 결국 이혼을

결정한거겠지...소설에서 류의 아버지는 쉽게 매혹되는 감정적인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나쁜

건 아니겠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무척이나 이기적이로 책임감이 없다는 게 문제....인데 감정적인 사람은

그런 게 당연한 건지도...하여튼 영 추해서 류의 아버지에 대한 설명 부분은 그냥 짜증이 밀려들 지경이었다

정말 싫어하는 부류....

 

이해력 미달로 뭔가 더 쓸만한 게 없는데 그냥 똑똑이들의 리뷰나 찾아 읽어야겠다

어쨌거나 앞부분 그러니까 류의 어머니 이야기는 정말 좋았다...뭔가 마음을 쑤시는 감이 있었지만 그게

의미가 있었기에...

 

 

 

아무나 무조건 읽어봐도 좋을 책

태연한(척 하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누구나 지나간 일은 자기 식대로 편집해서 기억한다

제각기 근거가 있고 심지어 또다른 자기 버전으로 편집하는 증인까지도 등장하기 십상이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것이 과학자나 철학자 들이 밝혀내려고 했던 세상의 정돈된 이치였다면 아버지의 기질이

그렇듯 태생적으로 무책임하고 이기적이었다

 

일주일 뒤 어머니는 옷 몇가지와 신분증과 결혼사진이 든 가방을 들고 낯선 외국인의 집으로 떠났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알던 사회와 누려왔던 신분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고

 

어머니의 우려와 달리 그녀가 가져가는 돈과 보퉁이 덕분에 아버지의 얼굴은 점점 화색이 돌았다

거기 비하면 어머니는 갈수록 지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남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도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는 2주에 한번씩 오기 시작했다 3주에 한번 언제부턴가 한달에 한번씩 왔고

그리고 마침내 한달하고 2주가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날이 닥쳐왔다

 

류의 어머니는 오랜 시간 그 모든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의 흐름과 길어지는 그림자 속에서 어머니가 또 한가지 본 것은 자기 인생의 퇴락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미 의심이 시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물리치기가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자존심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인생을 자기가 아는 방법으로

보전하려는 의지였다 그녀는 자기가 의존해온 틀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긍정과 교활한 평화가 어떻게

사람들을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안으로 끌어들이며 또한 자신조차 신뢰하지 않는 채로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데 앞장서게 만드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의심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으려면

의심스러운 것을 의심하지 않아야 했다 어머니는 불현듯 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갖다댔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은 십육년을 함께 살았다

 

요셉은 사춘기도 되기 전에 이미 개인의 고유성에 눈떴기 때문에 어떤 종류든 틀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는 자연을 싫어했다 온갖 동식물들이 앞다투어 먹이를 구하고 짝짓기를 하고 영역을 챙기면서 생명을

구가하는 세계란 너무 소란스러웠다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그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태도 역시 천박

하기 짝이 없었다

 

패턴이라고 불리는 금속 형판을 떠올렸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머릿속도 그것과 비슷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안처럼 자신의 무지를 순수함이라고 착각하는 부류들은 걸핏하면 자신이 그 이유로 상처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곤했다

자기 인생이 대하소설이라고 스스로 감탄하는 사람의 이야기일수록 상투적이었다

 

아버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길은 길거리 쇼윈도우의 디스플레이 인형에 박힌 유리 눈알

처럼 차가웠다 어머니의 오른쪽 손은 아까부터 왼쪽 가슴 위에 올려져 있었다

 

자신이 남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악의의 권력적 측면에 도취해 있었다 자신이 품은 악의가 아니면

절대로 남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는 종류의 여자였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맡은 배역의 감정을 잡은 다음 어머니는 천천히 무대로

걸어나갔다

 

소모적 감정이나 공허한 명분 때문에 고통을 참아내면서 인생을 낭비할 만큼 어머니는 어리석지도

무능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가 믿지 않게 된 것은 아버지뿐 아니라 아버지를 포함한 타자로서의

모든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이사를 가든 어차피 같은 세계 안이고 천국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어두운 극장의 구석 자리에 앉아 어머니가 보고 있었던 것은 영화가 아니라 스크린일 뿐이었다

영사기가 돌며 보여주는 것은 흘러가는 시간이었고 그동안 어머니는 왼쪽 가슴 아래에서는 자기 삶에서

고통을 추출하는 원심분리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매번 영화가 끝난 뒤 고통이라는 침전

물이 담긴 자신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환한 극장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제 몫의 인생 속으로 태연히

되돌아갔던 것이다 그 침전물이 고통이 아니라 고독이었다는 걸 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요셉은 말을 싫어했다 그가 클래식 연주음악을 반기는 것은 단지 가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또 팝송의

가사를 무심히 흘려들을 수 있다는 것에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보람을 느끼곤 했다

 

자신이 심심해서 키우는 것이면서 동물애호가를 자처하는 건 자기 자식을 키우면서 인류애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자기 인생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행동은 그렇게 해서 같이하게 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필사적으로 믿는 것뿐이었다

 

요셉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류가 자신이 즐겨 읽던 책의 작가와 생각이 비슷하다고

한마디 말했을 뿐인데 요셉은 이미 자신이 그녀와 치명적인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각기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의 앱을 뒤적였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애인을 다른 사람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분명 혼자는 아니었다 그들 모두는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지만 독립적이었다 심심할 수는 있지만 고독해 보이진

않았다 어쩌면 각자 눈에 보이지 않는 부스안에 들어가서 비용을 지불하고 그 댓가로 고독에 대한 통각을

차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에피소드에는 속편이 없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일회성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나쳐가는 수많은 버스들과 비슷하다 한순간 내 앞에 머무르지만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에피소드 형태로 등장하여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버스

가운데 어떤 것이 일회성 우연이며 어떤 것이 내 인생의 플롯으로 가는 노선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을

포착하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할까

 

개인이 되는 것 그게 왜 중요하냐면 어떤 식으로 살든 스스로 선택한 개인의 고유한 삶은 품위가 있거든

 

어머니가 적국에 부역하는 포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이데올로기의 딜레마 속에서 살았다면 아버지는 남의

나라에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곳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며 그것을 상실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부조리한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패턴에 굴복하며 살고 있다는 거지

 

너는 아무렇게나 살 수 있어? 아무렇게나 살 만한 베짱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아 아무렇게나라는 건 이전에는

없었던 방식이지 그게 그 사람의 고유성이야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은 아무도 무시 못해

 

천년 뒤에 태어날 모르는 사람을 위해 침향을 만드는 허무와 낙관의 스케일이 그때의 요셉에게는 욕망의

서사로 다가왔다 가장 먼 것에 대한 욕망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게 소유할 수 있는 욕망이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류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들어 왼쪽 가슴에 갖다댔다 어두운 극장 안의 어머니와

똑같은 자세였다

 

류는 자신이 매료된 것이 태연함 속에 깃든 파탄의 맛이라는 것을 열렬한 삶 속에 깃든 차고 날카로운 죽음의

맛이란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류는 자기기만의 부역보다는 상실을 택했다 고통보다는 고독을 택한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톡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작가의 말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며

운명이란 주어진 운명애서 도망치려 할 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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