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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캐롤 CAROL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by librovely 2016. 3. 27.

 

 

       

캐롤 CAROL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016             그책

 

영화를 먼저 봤다 2월에 이미 영화를 봤었다 영화가 재미있긴 했는데 뭔가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고

원작 소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아이에프씨 영풍문고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 앞부분을 좀 읽어봤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작가의 문체? 하여튼 글 자체가 술술 읽히면서 상당히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책을

살포시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와서 도서관에 있나 찾아보니 이미 대출중...예약을 걸었고 드디어 손에 넣었다

금요일 밤에 읽기 시작해서 토요일까지 내리 읽어서 다 읽었다 450 페이지 정도지만 책이 작고 편집이 여유있게

되어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다 내용도 지루하게 끄는 부분 없이 흥미롭게 넘어간다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에 여자 둘 그러니까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가 나와있고 이런 글이 적혀있길래...

인생에 단 한 번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걸 보면서 제발 레즈비언 스토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역시 그런 내용이었다

어찌보면 되게 뻔한 내용이지만 김연수가 <소설가의 일>에서 그랬나 아닌가 김영하가 그 에세이 시리즈에서

그랬나? 하여튼 이 세상의 소설은 완벽하게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쓴 거라는 그 말...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같은 장면도 세밀하게 잘 그려내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야말로 제대로된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앞에서 제발 레즈비언 스토리가 아니었음 좋겠다고 한 건 뭐 그게 역겹다 그런 소리는 전혀

아니고... 난 교회에 다니지만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뭐가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게

어차피 남녀간의 사랑이건 남남간의 사랑이건 여여간의 사랑이건 모두 다 나에게는 똑같은 일일 뿐이기에

그게 무슨 소리냐면 어차피 다 상상으로만 가능한 그런 일이라능...이라고 쓰고 잠시 울자....혼자있고 싶네

아니 이미 충분히 혼자 있었....다시 울고 싶네...잠시 울게요...또 다시 혼자 있고 싶네...이미 넌 충분히 매일

지독하게도 혼자였잖아...나 그랬어? 아...울고싶다...혼자있고 싶....ㅋㅋㅋㅋ ㅜㅜㅜㅜㅜㅜㅜㅜㅜ

 

영화랑 소설이랑 비교하자면 이건 거의 답이 나와있는 질문이긴 한 거 같다...왜냐면 영화가 소설을 이기기가

쉽지 않기에...디테일...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물론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면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인 그런 경우는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그 매드맥스같은 영화는 당연히 영화가 이길거고(그게 원작

소설 같은 게 없지 아마...) 하여튼 캐롤 역시 영화도 좋았지만 소설이 이김...한 가지 아쉬운 건 영화를 먼저

봐서 두 여주인공을 이미 고정시켜놓은 채 읽어야 한 것...아...내가 주인공을 상상할 자유를 빼앗김...ㅜㅜ

그렇지만 캐스팅이 어느 정도 적절했기에 아주 나쁜 건 아닌 것 같기도.... 그리고 내용이 살짝 다르다...

영화와 소설이 살짝 다름... 첫 부분에서 캐롤이 테레즈를 조금 밀어내는 부분이 있는데 소설에는 그런

장면이 없다...영화에서 캐롤의 집에 놀러갔다가 혼자 기차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분에서 테레즈가 상처

받고 울기도 하고 전화를 걸었다가도 거부당했나 뭐 그런 장면이 있었는데 소설 속 캐롤은 그런 무리한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 캐롤이 소설 속 캐롤보다 좀 더 불안정해 보였다 나는 당연히

소설 속 캐롤이 더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의아했던 부분이 도대체 둘은 왜 끌렸냐는 것 그게 잘 설명이 안되었는데

백화점에서 서로 눈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같은 퀴어 영화인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두 여주인공이

길에서 지나치며 눈이 마주치고 반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하긴 이런 장면은 이성애자 영화에서도 흔히

등장하지? 라고 쓰다보니 그 말이 생각나네 게이더....하여튼 이성애자의 사랑은 이런저런 조건들이

끼어드는 경우도 있는 거 같은데 퀴어 영화에서는 유독 한 눈에 서로 알아보고 반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그들의 마음에 진정성이 있다고 느껴지는 게 그게 그 관계가 일단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장난으로 혹은 어떤 다른 이익을 위해 그런 상황으로 몸을 던질만한 일이 불가능할만큼 쉬운 일이 아니기에

게다가 이 소설은 1940년대 후반에 쓰여진 것이니 그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쉬운 일이 아니었을 때이고...

그런 상황을 감수하면서도 뛰어든다는 게 이미 진정성은 보장해드림...의미가 되는 게 아닌지...라고 쓰다

보니 예전에 친구랑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걔는 내 눈에는 상당히 보수적으로 보였기에 이런 것에

거부감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 애 말로는 자신보고 그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그렇게

살겠다는데 그걸 왜 싫어하냐고 하더니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우리같은(?) 인간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게 무슨소리인가 했더니...우리처럼 연애 실패 종족 그러니까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하여튼 연애 자체를 안하고 사는 인간도 상당히 소수자에 속한다는 것...그러니까 이런

저런 소수자들을 존중해줘야 우리같은(?) 인간도 붙어 살 수 있는거라는 그런 논리를....ㅋㅋㅋㅋㅋ

듣고보니 상당히 맞는 말이었음....이라고 쓰고 다시 울자...눈이 이미 충혈된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늑힘이

 

다시 둘이 만나는 장면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영화에서 나는 그냥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그냥 끌린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같이 본 동행인은 캐롤은 모르겠지만 테레즈는 자신과 다른 모피코트를 입은 금발의

캐롤에게 선망 비슷한 마음이 생겨 끌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음...나는 그건 아닌 것 같은데...돈 많은

여자야 백화점에 얼마나 많았겠어...물론 서로 달라서 끌렸다라고 말한다면 그건 어느정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남녀간의 끌림도 서로 비슷해서 끌리기도 하고 나와 너무 달라서 끌리기도 하는 것이니

사실 서로 몰라야 끌리는 것 같기도...처음의 마음은 대개 그런 거 아닌가? 궁금하다 알고싶다..호기심...

물론 그 호기심이 생길려면 그 이전에 호감이 있어야하겠지만...다시 떠오르는 생각 하나...누가 그랬지?

소개팅을 하고 와서 한 숨을 푹 쉬더니 대체 그 사람에 대해 하나도 그 무엇도 궁금하지 않더라고 말한..

내 경우는 소개를 받고 와서 한 숨을 푹 쉬며 보통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쩜 그렇게 1도 긴장이 되지 않냐..

좀 더 써보자면...예전에는 그 남자가 별로라서 그런거야 하고 넘어갔는데 요새는 누굴 만나도 계속

그럴 거 같고 그게 이젠 내 문제인 거 같아서 한 숨이 더 세게 나온다는...물론 누굴 만날 일도 점점 없...

하여튼 소설에서는 그래도 영화보다는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줌....

테레즈는 캐롤이 자신에게 다가올 것을 직감하는데 나중에 캐롤은 그냥 네가 가장 한가해 보였다고

말하는데 그게 뭐 그냥 한 소리였을듯...

 

캐롤은 이미 결혼을 했고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지만 뒤늦게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깨닫게 된듯

근데 분명 남편과 결혼할 때 남편도 사랑했다고 말한다 뭐지? 사랑이라고 믿은 마음이 그게 아니었던건가

테레즈는 아직 잘 모르는 상태..남자친구가 있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남자친구와 데이트는 하는데 동성간의

만남처럼만 만나는 설정이라서 깨달음이 오긴 했다...아직 정확히 모르지만 스스로 이미 어느정도 이성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구나...소설에서는 영화와 다르게 시도(?)는 했으나 잘 되지 않았음으로 나오는데 아마

소설에서도 테레즈는 어렴풋이 자신이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고 캐롤을 만나기 전에

길에서 지나가다가 어떤 여자를 보고 궁금해져서 그 곳으로 가보고 싶어했던 일도 있었고...하여튼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제대로 흔든 캐롤을 만나고 테레즈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거침없다 이런 점이 인상적

이게 비단 성적 지향성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수 있으니까...얼마나 나답게 남의 이목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나답게 삶을 살아나갈 것인가...이게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니까...'일반적'이라고 정해진 그

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비난의 눈초리...그런 걸 극복하고 나다움을 찾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용기...내 경우 이런 용기가 있는 듯...항상 말했듯 난 10라 ㅂ ㅅ 같이 그리고 외롭게 잘

살아나가고 있다...이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라는 말씀...쉽지 않아요 아무나 못해요...자랑이군...ㅜㅜ

 

하여튼 그 보수적인 시대에 그것도 여자가 세상의 비난...그리고 캐롤의 경우 딸과의 관계마저 포기한 채

나답게 사는 편을 선택한 게 인상적이었다 멋진 여자들임...이런 여자들이 존재했기에 그나마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리도 한 번 해보고...그런거다...여자의 삶이 오로지 결혼과 출산만을 위해 존재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물론 결혼과 출산도 멋진 일이고 가치있는 일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그리고 소설과 영화가 달랐던 것 중 하나가 테레즈의 직업...테레즈는 영화에서는 독서광이고 작가? 기자가

되려고 하는데 소설에서는 미술 분야 그러니까 무대 디자인? 그런 게 꿈인 걸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건

영화의 설정이 더 낫다는 생각... 고아인 테레즈에게 책이 친구였다는 게 상당히 그럴싸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상황에서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거리낌없이 나아가는 게 독서로 내공을 쌓은

여자라는 설정이 더 어울리기도 하고 백화점에서 일할 때 자신만 엉뚱한 곳에 있는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뭔가 책을 많이 읽는 캐릭터가 어울리는데...하여튼 책에서는 미술 분야의 꿈을 가진

여자로 나오고 남자친구인 리처드도 화가 지망생으로 나온다 영화에서 리처드는 그냥 뻔한 일을 하는

테레즈와 그렇게 큰 신분 차이가 없는 남자로 나오는 것 같은데...이런 건 영화 설정이 더 어울리는듯

 

이 소설은 출판된 당시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해피엔딩에도 있다고 했다 보통 퀴어 스토리

엔딩은 안 좋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당시 어쩌면 그게 리얼리티 있는 것일 수도 있었던 거 같은데

소설은 뭐 어떻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어쨌든 둘은 같이 잘 살아보려고

한다로 이야기가 끝이 나니까 해피엔딩이 맞는듯...둘 사이를 막을 그것들을 다 놓아버리고 둘은 각자

직업을 구하고 독립적으로 나답게 살 궁리를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나니까...그러니까 이 소설은 단순하게

퀴어 소설에서 끝나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페미니즘이 뭔지 모르지만 ㅋㅋ 그런 느낌도 주는 소설임

 

어떤 부분이 좋았다고 쓰지는 못하겠고 그냥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발췌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마음의 빛깔을 잘 보여주기에 읽는 동안 행복했다

완벽한 간접경험....

지루하고 외롭고 찌질하고 심심하고 비루한 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소설 속에서 이런 저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한 일이다 주말에 그렇고 그런 뻔한 데이트를 한 너희들보다 내가 소설

안에서 한 이 색다른 경험이 훨씬 재밌고 의미있는 일이다 라고 스스로도 믿지 못할 소리 주워섬기며

마무리....하고 또 다시 울자...이미 혼자이니까 울기만 하면 됨...자...1분만 울고 발췌를....

여기서 잠깐.... 캐롤 영화를 보고 혹은 소설을 읽고 인상깊었고 감동받았다는 식의 소리를 써 놓으면

너 혹시...? 라고 생각할 사람들을 위해 괜히 한 마디...나 같은 경우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아냐고...난 남자가 아닌데도 남자끼리의 사랑 이야기를 보고 꺼억꺼억 울고 앉아

있었다고...난 죽었다 깨나도 게이 남자가 될 수는 없는것인데 그래도 공감이 세게 되더라고요....

아니 뭐 저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엄따...남녀간의 러브 스토리를 보고도 나도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거니까 말 다한 거임... 남녀간의 러브 스토리 역시 백퍼 철저하게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그런

일이니까요...이젠 정말이지 통곡을 하고 싶어진다...아름다운 밤이다....ㅋㅋㅋ

 

사실 소설 속 인물에게 공감하는 건 그게 얼마나 나에게도 일어날만한 일인가에 있는 게 아니라 작가의

능력에 달려있는 걸지도...그 인물의 내면에 들어갈 수 있도록 얼마나 자세히 그럴싸하게 안내를 해

주었는가 하는....그 소설 속 인물이 되어보는 경험의 질에 달린 게 아닌가 하는...여기서 또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 렛미인의 명대사...

잠시만 내가 되어줘...

이 소설에서는 잠시 테레즈가 되어볼 수 있었다 책 제목은 캐롤이지만 소설 속 화자는 테레즈...

잠시만 내가 되어줘...를 보니 지코 노래 제목이 생각나네....

너는 나 나는 너

넌 나고 난 너야....넌 나고 난 너야....

난 맨날 나임...나는 나임 나는 나 나는 나 ....난 나고 난 나야...또 울고싶다...그만 쓰고 발췌나 해야겠다....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 하나 마지막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끌리는 일은 상당히 묘하고 흥미로운 일인듯....

정말 요상한 일인듯....그런 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삶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루했겠는가....

 

 

하나 더

책 날개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

중년에는 자신을 카프카 지드 카뮈 같은 훌륭한 심리소설가로 인정해준 유럽으로 건너가 집필에

매진했다는 말...그렇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리 묘사는 정말 탁월한듯....

근데 이 소설의 경우 작가 자신이 레즈비언이기에 더 자세한 순간 순간의 묘사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경험에서 우리나온 장면이 많을거라 생각되어서...

 

 

 

 

 

 

 

 

다들 누군가에게 영혼을 담보 잡힌 채 살아가는 것 같았다

타인의 심금을 울려보지 못한 사람들 남의 심금을 울려보겠다고 작정해도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쓴 채

입으로 뻔하디 뻔한 말을 내뱉으니 누가 봐도 입발림이라고도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거지?

 

테레즈는 리처드가 읽어 준 T.S. 엘리엇의 시 한 구절을 떠올렸다

그건 내가 바란 게 아니었네 전혀 아니었네

 

리처드를 만나기 전에 만난 남자들은 테레즈가 그들과 잘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떠났다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맞닿았다 테레즈는 상자를 열다가 고개를 들었고 때마침 여인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두 시선이 부딪쳤다 테레즈는 저 여인이 분명 자기에게 올 것임을 직감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처럼 흘러가는 순간순간을 의식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행복감

마지막 순간 다시 못 볼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그때 희미하게나마 또다시 느껴지는 게 있었다

뭔가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밀려왔다

마침내 테레즈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때 회색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여인이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몇 시간 지난 줄 알았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15분이 흘렀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기분이었다

뭐라고 적을까? 정말 멋지신 분이에요 라거나 사랑해요 라고 적을까

결국 뻔하고 사무적인 문구를 적어 내려갔다

 

어머니가 프랑스계나 영국계든 헝가리계든 중요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일랜드계 화가였든 체코 출신의 변호사였든 돈을 많이 벌었든 못 벌었든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오늘 이 시간부터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부모와 배경 따윈 아무 필요 없다

 

정말 특이한 여자군요

왜요?

별에서 온 사람 같아요

 

테레즈가 캐롤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사랑에 가까웠다

다만 캐롤이 여자일 뿐이다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어떻게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테레즈는 웃었다 누구든 캐롤과 함께라면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캐롤과 함께라면 그게 무엇이든 웃음이

절로 나올 것 같았다

 

테레즈는 고개를 들어 캐롤을 바라보았다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지만 꿋꿋이 시선을 맞추었다

지금 이 순간 죽어도 상관없었다

 

테레즈가 다급히 물었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어요?

 

테레즈는 단 한 순간도 마음속에서 캐롤을 지운 적이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 모두 캐롤을 통해 보는 것 같았다

 

두 사람 서로 떨어져 우주를 헤매는 듯한 헛헛한 침묵이 이어졌다

 

당신의 모든 걸 알고 싶어요

 

뭐라고 불러야 하지? 친구 파트너? 아니면 인생을 공유할 사람이라고 할까 어떤 말이 좋을까

사실 다른 식이라면 훨씬 쉽게 찾을 수 있는데도 다들 꼭 섹스를 통해 찾으려 하는 것 같아

-다른 식이라면?

그건 각자 알아서 찾아야지

 

어디든 다 좋아요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어렴풋한 질투심이 바늘처럼 그녀를 찔렀다

 

3주 전 이곳에 섰던 테레즈와 지금의 테레즈는 달랐다 오늘 아침 테레즈는 캐롤의 집에서 눈을 떴다

캐롤은 비밀처럼 테레즈의 몸 속에 스며들어 이 집 안으로 퍼져 나갔다

 

나이 남자 좋아하는 남자 얘기가 아니라 두 사람이 갑자기 사랑에 빠진거지

이를테면 남자 남자 여자 여자 끼리

-나 더러 그런 사람 아냐고 묻는거야?

그건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지 안 그래?

 

사람들은 늘 갖지 못하는 것과 사랑에 빠지나 보죠?

 

캐롤이 고개를 돌렸다 테레즈가 가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갑자기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난 당신을 알지도 못한 채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요

 

어떤 일들은 늘 애매한 법이야

 

남은 저녁 내내 어떤 기분일지 뻔했다 울적함과 반발심이 반반씩 번갈아가며 치밀어 오르는 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캐롤과 말 한 마디 섞지 않았더라도 심정은 똑같았을 것이다 캐롤이 매장 한가운데에 서서 바라보는 시선을

테레즈가 느낀 순간 이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남녀가 자기 짝을 알아보기란 너무 쉽다

테레즈는 캐롤을 알아본 것이다

 

테레즈는 같이 나눠 마시는 잔에 커피를 더 따랐다 블랙커피가 무슨 맛인지 알아가는 중이었다

처음 이 컵을 쥐었던 날 얼마나 떨렸는지 알아요? 그날 커피 기억나요?

-기억하지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그날 넌  

그날 크림은 왜 넣었어요?왜 떨렸는데?

테레즈는 캐롤을 바라보았다 당신 때문에 너무 설레어서요

순간 캐롤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테레즈가 감정을 밝히거나 그녀를 극찬할 때면 캐롤은 두어 번 이런

표정을 지었다 좋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불쾌해서일까 테레즈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테레즈는 창틀에 기대어 서서 시카고를 조망했다

저 멀리 비추는 자동차 불빛이 나무 뒤로 지나가면서 점과 선으로 쪼개졌다

행복했다

 

캐롤의 얼굴이 코앞에 와 있었다

이게 옳은 거냐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해줄 필요가 없었다

이건 더 이상 옳을 수도 완벽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특징은 죄다 갖추었거든

 

저들이 널 내게서 떼어 놓은 후 난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어

이런 게 바로 타락 아니겠어?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기질대로 살지 못하는 것 그걸 정의하자면 타락인거야

 

테레즈는 캐롤을 향해 걸어갔다

 

 

 

 

 

저자후기

별 다를 것 없는 판매 과정을 거쳐 여자는 돈을 지불하고 떠났다 그런데 나는 머릿속이 이상하고

어질어질해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동시에 환영을 본 듯 기분에 들뜨기도 했다

평소와 다름 없이 퇴근한 후 나는 혼자 사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당시 내가 쓰던 공책인지 가계부인지에

여덟 쪽 정도 끼적였다 이것이 캐롤의 줄거리가 되었다 여기까지 쓰는 데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몇 주간 이 이야기가 서서히 끓어오르도록 내버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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