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봉현

by librovely 2015. 6. 1.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봉현                                2013                    푸른지식

 

책 날개에 써 있는 글을 보고 이 책 내용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빌려왔었는데 역시 좋았다

책 날개에서 본 글은 '서울, 떠나서 돌아오지 않으려 했다' 였다

외국으로 떠나서 아예 돌아오지 않을 생각을 했다는 게 외국에서의 생활에 로망이 있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떠나버리고 싶은 그런 상황이고 마음 상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궁금했다

 

전체적인 책 분위기를 슬쩍 보고는 남자가 쓴 책이라고 생각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뭐 그런 내용일 거 같았는데 여자가 쓴 책이었다 글이 웃기건 아닌데 솔직하고 어느 정도는 예리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어서 아껴가며 읽었다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는 읽은 지 좀 지나서 기억이 잘 안나는데 발췌해보면

생각이 나겠지... 그림도 좋았다...라고 쓰다보니 조금은 내용이 생각나네... 있던 돈을 탈탈 털어 여행을 떠난다

상당히 긴 기간동안 여기저기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점점 짐은 줄이게 되고 생각은 정리가 되었나

그리고 아마도 서울에서는 세련된 미술을 전공한 그런 도시 여자였던 거 같은데 그냥 장기여행자의 외모로 변했

나 그랬던 것 같고...그런데도 여행 기간에 누군가와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잘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기했던 건 여행지에서 돈이 떨어질 즈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식으로도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그림 잘 그리는 건 여러모로 좋구나... 근데 내가 봐도 사고

싶어질 만큼 그림이 멋진 것 같다  책을 읽다가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곤 했으니까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

하여튼 좋은 책!

 

 

 

 

 

 

 

 

 

이곳이 싫었다

사람들끼리 얽히고 설켜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혼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날들이

길어졌다 내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못생기고 살찌고 가난한 내가 부끄러웠다 아무하고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외로워져서 누군가를 만나 밤새워 놀다 보면 다시금 허무해졌다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에게 쉬 마음을 열지 못했다

결국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주위에는 외로움을 많이 타면서도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이제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투성이였다 우리는 함께 있는 듯했지만 헤어지고 나면 허전함에 잠 못

들어 했다 절대 솔직한 감정을 말하지 않았다 사실 무엇이 솔직한 감정인지 깨닫지 못해서 맴돌 뿐이

었다 하루하루 별 일 없이 지내는 것 같지만 늘 불안에 떨면서도 아닌 척 웃고 떠드는 날들이 계속되

었다

 

해야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다

 

자연주의를 다루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다

채식에 대단한 뜻을 두려는 것은 아니었다 동물을 사랑해서 죽이고 싶지 않다거나 지구를 살려야겠다

는 영웅 심리도 아니었다 다만 지나치게 먹고 마셔 살찌고 늙는 내 모습이 싫었을 뿐이다 가진 것보다

더 많이 먹고 버리는 것들이 아까웠다 배가 불러오면 드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사실 그저 내 만족 같은 것을 뿐이었다

니어링 부부가 멋있어 보여서 따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람의 진심을 아는 데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많은 말을 거짓을 지어낼 뿐이다

사실 외롭고 쓸쓸한 순간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많은 사람 속에서 내가 혼자임을 느낄 때였다

 

내가 여행 가방을 쌀 때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은 스케치북과 10년 넘게 써온 낡은 필통이다

그리고 여행서나 회화집이 아닌 책 한 권을 반드시 챙긴다

이번 여행에는 <월든>을 들고 갔다 헬렌 니어링의 책과 소로의 책 중 고민하다가

 

짐은 인간을 말해준다 짐은 물질적인 형상으로 나타난 인간의 분신과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많은 초콜릿 판을 지니지 않고는 길을 떠나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런 것보다는

프루스트의 전집이 필수라고 생각하고 제3의 인물은 저녁에 해가 저물어 잠자리를 구할 때 적어도

이미지 관리는 해야 하므로 정장 양복은 꼭 넣어서 떠나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예찬> 중

 

아직도 많이 부족한 나를 보면서 각오를 다진다

매일 각오뿐이지만 이번에도 다시 한 번 각오한다

열심히 정성스럽게 살자

 

마치 여행이 아닌 듯 파리에서 지내고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점점 외로움에 무뎌진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다가 잠시 샌드위치를 먹고 다시 미술관에서 보내는 일상

매일 보아도 매번 새롭다

여전히 나는 가난하고 외롭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다

내 그림도 누군가에게 즐거움이 위안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의 그림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가끔 세느 강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래 괜찮아 나는 살아 있을 이유가 충분해 잘 살아가고 있어

 

모두 수많은 사연과 서로 다른 이유로 이 길에 찾아와 걷는다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 계속된다

 

살아있는 순간이 이렇게나 멋진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날들

삶이 이렇게나 단순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나날이다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이 땅에 잠시 머물다 감으로써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에머슨

 

세상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를 수없이 시험에 들게 하고 해답을 알려주지 않은 채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힌트를 준다 때로는 고통이고 때로는 기쁨이다

그때마다 나는 정신없이 휘둘려가며 견뎌내야만 했다

 

인생은 그 무엇도 준비해놓은 것이 없거나 모든 것을 준비해놓은 채 나를 맞이한다

나는 늘 서툴고 부족하다

 

때로는 작은 방 안에서 세상을 들여다본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그래도 이젠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