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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by librovely 2016. 12. 18.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2016           나무생각

 

읽은 지 열흘 정도 지났을 뿐인데 내용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그래서 발췌를 먼저 해봤는데....

일요일 밤에 읽기 아주 적당한 내용의 책이었구나...일요일 밤도 아니고 그냥 일요일...왜 하필 일요일?

모르겠다 사실 일요일이 뭔가 쉽지 않은 이유를 나는 표면적으로는 내일이 월요일이고 출근을 해야

해서라고 말을 하고 다녔지만 에리히 프롬이 말하듯이 그건 그냥 핑계고 사실은 무기력감...무력감....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이게 맞게 살고 있는건가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도 되는건가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따위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마 기분이 이상했던 거 같다...

 

사실 나는 나름 솔직하게 내가 저딴 생각 내가 스스로 답을 구하지도 못할 생각들로 불안감에

휩싸이곤 한다는 것을 떠들어대기도 한다....에리히 프롬은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지만

그건 질문을 던진 후 답을 용기있게 찾아가고 또 자신이 내린 결론대로 삶을 이끌어 나갔을 때

해당되는 것이겠지...나는 그냥....아 저런 생각이 또 시작되었어....망...이러고 불안해하다가 딴 거

한다...딴 생각을 하거나 뭔가 먹거나 뭔가 읽거나 뭔가 보거나 아니면 자거나 아니면 누군가

만나거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거나...나름대로 회피하는 셈....

 

실존주의가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사르트르가 했던 그 말들과 다 통하는 내용들.....

사회에 만연해있는 그 상식이라는 것 이렇게 살아야 마땅하다는 것 인간은 이러해야 해

따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세상에 던져진 존재인 제각각의 인간들은

모두 저마다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하며 그렇게 각자의 진짜 삶을 살아가다보면

그것들이 모여서 인간이라는 종의 특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그러니까 어느 지점에서는

인간이기에 마땅히 그러해야한다는 것도 가능한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통한다

 

무서워도 불안해도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가 언제 행복한가 어떻게 느끼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스로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것 다들 이러이러하게 살잖아...는 답이 아니라는 것...그렇게 남들

눈이나 의식하면서 사회가 원하는 인간이 되어 살다보면 얼핏 안정감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지만...우리는 스스로가 그런 게 가짜 삶이고 연기일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무력감 허무함에 빠져들게 되고 급기야 신경증적인 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행복한

삶을 아니 진짜 삶을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수십년 전의 글이겠지만 지금 오히려 더 필요한

내용들이 가득한 책....관습에서 벗어나서 진짜 너만의 삶을 살라고 에리히 프롬을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럴려면 무엇을 보든 원래 그래..가 아니라 감탄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고 과거나 미래에 저당잡혀

현재를 놓치지 말고 현재 하고 있는 그것에 집중 그러니까 몰입(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생각남....

몰입하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하는 능력이 필요하고...카르페 디엠...ㅋㅋㅋㅋ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진짜 경험을 하라는 것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렇게 세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살짝 중심이 잡히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 내가 남들과 다르게 사는

어느 부분...뭐 정확히 말하자면 똑같이 살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해서...ㅋㅋㅋㅋ 강제로 그렇게

된 부분에 대해 괜찮다고 하는 것 같아서 아니 오히려 그런 게 너 다운거고 네가 자유롭게 선택한

결과야...라고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편안해진? 뭐 나만 그럴까 누구나 다 남들과 다른 지점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그 부분이 불안을 조성할 수도 있는데 에리히 프롬 말대로라면 그런

점이 있는 삶이야말로 진짜 삶에 가까울 수 있는거니까...다들 힘냅시다....ㅋㅋㅋㅋㅋㅋ

 

평등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보통 똑같아야 평등이라고 생각하는데 평등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적에 의한 수단이 되지 않음에서 평등함의 의미를 찾는다....

사실 이러이러해야 해....라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들 중 상당수가 다 타인을 위한 수단으로

만드는 뉘앙스가 없지 않다는 생각도.....다름의 허용이 오히려 평등이라는 것...같은 게 아니라...

책에는 결혼에 대한 예시가 나오는데....정말 스스로 결정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게 그냥 흘러가서

자기도 모르게 한 경우도 있을거라는 얘기...그 부분에서 나는 예전에 왜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라고 질문했다가 그런 멍청한 소리는 처음이라는 식의 친구 반응이 갑자기 떠올랐다...음...내가

맞는거다...ㅋㅋㅋㅋ 출산이건 결혼이건 뭐가 되었든 간에 당연한 건 없는거다...잘 생각해보고

자신이 결정해야하는것....삶에는 저마다의 답이 있는거고 그게 진짜 자기다운 삶으로 가는 방법이고

그런거구나....여태까지는 어쩌다보니 똑같이 살기에 실패해서 이렇게 살았는데 이젠 좀 생각 좀 하면서

살아야겠다....뭔가 삶의 방향을 결정지을 때 남이 어떻게 볼까는 저 멀리 던져버리고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는 것...가족이 원하는 삶에서도 벗어나서...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무척이나 식상한 소리 한 번..

내 맘대로 살아야겠다....

근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고 무섭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하던데...그렇겠지.....

 

인간의 수단화....이야기도 뭐 다 지당하신 말씀....인간관계에서 조차 타인을 이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내가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이 아마 저런 경우였던 거 같다...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 인간 왜 저렇게 빡쳐~

있지? 혹은 이상한 반응을 보이네..의 순간은 대부분이 저것들이 나를 이용해먹어...라는 생각 혹은 착각에

빠져있을 때....사실 뭐 어따가 이용해먹을 것도 없는 부족한 인간이지만 하여튼 누군가가 나를 이런저런

자기 목적을 위한 의도로 써먹는 거 같을 때 나는 불같이 화가 났고 그런 경우 될대로 되라 행동이 막

나갔던 거 같다....물론 나 스스로가 선택해서 자발적으로 남에게 이용당하고 싶어서 어떤 행동을 한 경우는

아무 상관이 없지.... 결과보다는 의도....결과가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해도 알고보니 의도가 좋지

않았던 경우에는 화가 나는거고 설령 피해를 주게되었더라고 의도가 좋았다면 속이 상할지언정 화는 전혀

나지 않는 것....내가 저런 거에 민감해져서 머리를 굴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아마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인간관계조차 서로의 목적을 위한 도구화가 빈번하게 일어나서 그런거겠지....나는 그런 적 없나....?

없는 거 같은데....난 그럴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데...는 뭐 합리화겠....ㅡㅜㅜㅜ 나라고 다를까....

 

읽으면서 또 발췌하면서도 잡다한 생각에 빠지게 한 아주 좋은 책이다...

마음이 이상하게 흔들릴 때 읽으면 좋을 책

내 주변에 진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게.....

가짜 삶을 연기하면서 남에게도 그 잘난 가짜 삶을 연기하라고 강요하는 사람 다 꺼져....

꺼질 인간이나 있냐? 아 그러네....인간이 주변에 별로 없....다들 저 말을 하며 나보고 꺼지라고 핸나봄...ㅋㅋ

 

에리히 프롬 책은 뭐든 무조건 읽어야한다....

그렇지만 내용이 밝을 수가 없다...그 내용 안의 불쌍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다 내 이야기라서....

가사가 다행히 영어라서 먼소리...?? 로 들었기에 뭐 또 워낙 가사를 안 듣고 음만 듣는 멋진 귀를

갖고 있어서...하여튼 도깨비에 삽입되어서 인기를 더 끄는 것 같던데...가사는 안 어울리겠지만

뭔가 슬프고 차분한 곡의 분위기가 발췌 부분 비지엠으로 괜찮을듯....

 

 

인성과 성격을 연출하며 외부의 자아 정체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 특정한 약력 성공한 사람 자의식이

강한 사람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 공감할 줄 아는 사람 등의 역할을 껴입고 그것을 최대한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동일시는 그 사람과 주변 환경이 노력해야만 겨우 그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어떤 모습이 진짜 그인지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진행된다 그래야 진짜 본질이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그가 그의 역할을 진짜로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 경험이 집단 암시의 결과인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자아 경험을

하기 때문에 고유의 사고 감정 행위로 경험하는 것이 집단 암시의 결과물은 아닌가에 대해 의심해 볼

계기가 사라진다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면 모두가 완벽한 진짜 삶을 산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연출된 자아의 삶이 순조로울 수 없는 이유는 모든 것을 묵묵히 감수하지 않는 우리의 정신 덕분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해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지만 이것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부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처럼 본능적으로만 살지 않는다 자연에서 거의 뿌리가 뽑힌 존재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문제를 떠안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로 가야할까 어떤 의미를

삶에 부여할까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모두가 자기 밖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

분명 시간은 절약된다 하지만 시간을 절약해 놓고는 막상 그 절약한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한다 기껏해야 시간을 죽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일주일에 3일만 일을 해야만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시간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일어나는 영혼의 붕괴를

수용할만한 병원은 아직 충분치 않다

 

무엇을 질병으로 불러도 되는지를 주입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해서 죽겠다고

삶이 무의미해서 죽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불면에 시달린다고 술을 마시고 싶어 미치겠

다고 직장이 불만스럽다고 말한다

 

칸트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한에서 평등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평등을 동일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등한 권리를 원한다면 타인들과 동일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우리는 소비하고 고대하지만 우리가 생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계속 실망한다

우리는 사물을 생산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극도로 비생산적이다

 

문제는 사생활을 누릴 수 없는 무능력이다 반드시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이것을 우리는 팀워크 소속감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

자신이나 이웃의 은둔을 참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는 19세기의 중산층

이나 상류층이 개인주의 자기중심주의라 부르던 행동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확정된 인간 본성 인간 본질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 일조한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다

인간 본질이라는 개념이 자주 악용되었고...

플라톤 아리스트텔레스는 물론 18세기 철학자들까지도 인간의 본질을 들먹이면서 노예제도를

변호했다 국수주의와 인종주의 역시 인간 본성을 들먹이며 탄생했다

인간 본성은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할까 그런 결론은 명백하게 확정된 본성의 개념만큼이나

많은 위험을 내포한다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본질이 없다면 인간의 단일성도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가치와 규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키르케고르 마르크스 윌리엄제임스 앙리베르그송 일련의 철학자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생산한다는 사실 인간이 자기 역사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자유를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 심리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두 가지 가능성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비합리적 열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한다

 

너 자신으 알라는 명언은 자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친다

잠재적으로 우리인 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시몬 베유의 말대로 억압이 자유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각에 이르는 만큼만 현실을 인식하는 만큼만 자유로워진다

 

삶에 의미가 있을까 왜 나는 계속 살아야 할까

 

우리는 존재를 추구하지 않고 소유를 추구한다

많은 경우에서 소유가 존재보다 더 강한 현실성을 갖는다

자신을 소유자로 소외시키는 우리는 우리의 소유물일 뿐 인간 인격으로서의 자신이 되기를 중단했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 <1984>

 

대중매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과 인간의 실제적 소통은 날로 힘들어졌다

현대인들은 인간과 인간의 실질적 소통의 가능성에 진지하게 의문을 품는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작품 속 한 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말로 사랑을 사랑받을 것이라는 기대라고 생각한다면 지옥은 다름 아닌 타인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아이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답은 바로 자발성이다

자발성은 그것을 느낄 감정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만큼 무감각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강하게 호소한다 어린아이나 예술가에게서 발견하건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하건 사실 자발성만큼

매력적이며 설득력 있는 것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어도 순간이나마 자신의 자발성을 경험하고 동시에 그 순간을 진정한 행복으로

느낀다 어떤 풍경이 아름답다고 자발적으로 느낄 때 고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틀에 박히지 않은

종류의 감각적 쾌락을 느꼈을 때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솟구쳐 오를 때 그런 순간 우리 모두는

자발적 체험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그런 체험이 이렇게 드물지 않게 세련되게 찾아온다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어렴풋이나마 예감하게 될 것이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결코 자기의 것이 아닌 감정을 느끼도록 가르친다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무비판적으로 친절하며 미소를 지으라고 가르친다

미처 교육이 다 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나중에 사회적 압력이 해결해 준다

웃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 눈에 상냥한 사람이 아니다

친절과 명랑 미소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전기 스위치처럼 켜고 끄는 자동 반응이 된다

진짜 친절 역시 가짜 감정으로 대체되면서 말살된다

 

현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원하는 게 마땅한 것만 원한다

현대인은 자신의 목표라고 우기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엄청난 모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지만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고도 자기 자신의 목표를 정하는 데에 심각한 공포를 느낀다

역할이 분배되면 모든 배우는 열심히 자기 역할을 연기한다

 

타인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비난을 받아 고립될 위험에 처할 뿐 아니라 인격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정신적 건강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타인의 기대에 순응하고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체성에 대한 이런 회의를 침묵시키고 어느 정도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그 대가는 크다

자발성과 개성을 포기하면 삶은 좌절한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아직 살아 있지만 그의 감정이나 영혼은 이미 죽었다

계속 움직이긴 하지만 생명은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인간은 죽도록 불행하다 실제로 그는 절망의 끝에 서 있다

절망의 심정으로 개성이란 것을 붙들고 늘어진다

다르고 싶고 어떤 것을 다르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칭찬을 알지 못한다

오늘날 인간은 삶에 굶주려 있다

하지만 순응주의지이기에 삶을 자발적으로 경험할 수 없고 자극과 스릴의 형태를 띤 대용품을

움켜잡는다 술과 스포츠가 주는 스릴이나 스크린의 허구적 인물을 통해 경험하는 스릴 말이다

 

인간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였고 공장과 집을 지었으며 자동차와 직물을 생산하고 곡식과 과일을

수확했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만든 결과물로부터 소외되었고 자신이 지은 세계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한다 인간이 창조한 세계가 인간의 주인이 되었다

강도 높은 무의미함과 무기력의 감정이 그를 사로잡고 있다

 

현대인이 느끼는 고립과 무기력의 감정은 인간관계를 통해 더 강화된다

인간은 서로 조종하고 서로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며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모든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에서 시장 법칙이 통한다

 

사고가 자기 생각의 결과 즉 자기 행동의 결과인가 하는 점

사고의 내용이 옳은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혼을 한다고 생각한다

분명 의무감이나 책임감 때문에 의도적인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한 남자가 정말로 원해서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한 남자가 혹은 한 여자가 자신은 특정인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의식적으로 믿지만

실제로는 결혼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에 휘말려 들었고 일체의 취소 가능성이 막혀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결혼 몇 달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이 결혼을 원한다고 철썩같이 믿었다

상당히 늦게 나타난 그가 어쩌면 결혼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첫 번째 징후는 그가

결혼식 날 갑자기 패닉에 빠져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이것 말고도 일상 생활에서 수많은 사례들을 찾아 열거할 수 있다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특정한 것을 원하지만 내적 혹은 외적 압박에

굴복하여 바로 그 일을 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례들 말이다

인간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한다면 스스로 결심을 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관습을 지키거나 의무감에서 혹은 아주 단순한 압박감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깨닫고 깜짝 놀랄 것이다 개인의 결정의 자유를 존재의 초석으로 삼았다던 사회에서 독자적

결정이 상대적으로 드물게 나타나는 형국이다

 

무력감을 깨닫는 정도는 그 강렬함의 정도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다

무력감을 그 자체로 의식하는 경우도 많다

무력감을 완전히 깨달을 때 생겨나는 정신적 고통은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깊은 공포 인생의 무의미함을 규칙적으로 느낀다

 

일자리를 잃을까 봐 친구가 너무 오래 연락을 안했다고 화낼까 봐 방이 너무 추울까 봐 겁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결국 그는 무력감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적절한 항복처럼 보일

때까지 너무나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을 마구 지어낸다

 

무력감을 희미하게 의식하면서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뾰족한 가시가 무뎌지는 경우

과보상 행동과 은폐 목적의 합리화로 대체된다

과보상의 가장 흔한 경우가 분주함이다

깊은 무력감을 억압한 사람들이 특별히 활동적이고 분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도한 단체활동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쉼 없는 걱정 카드 게임 술집에서 장시간 환담을

나누는 것 또한 다른 형태의 가짜 활력이다

 

보고 응답하고 인식하고 인식 대상을 알아보는 감각을 갖추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진짜 삶의

첫 번째 조건은 감탄의 능력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술과 학문의 모든 창조적 결과를 낳는 조건이다

두 번째 조건은 집중력이다 우리는 늘 분주하지만 집중하지 못한다 지금 여기만 존재하는 것

세 번째 조건은 자아 경험의 능력이다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가 자신의 자기와

자아를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를 자기 세계의 중심으로 자기 행동의 진짜 장본인으로

경험한다 그것이 바로 독창성이다 독창성이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기원을 두는

경험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자기 자신의 감정 즉 정체감이 필요하다 이 자아 감정이 없다면

우리는 미치고 말 것이다

 

진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태어날 준비 모든 안전과 착각을 포기할 준비느 용기와 믿음을 필요로 한다

안전을 포기할 용기

타인과 달라지겠다는 용기

고립을 참고 견디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