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나라는 여자 - 임경선

by librovely 2014. 11. 3.

나라는 여자                                                       임경선                   2013                  마음산책

 

이 책은 얼마 전인가에 빌렸고 좀 읽었던 책이다 좀 읽다가 뭐야 자기 우상화 공주병 뉘앙스가 사알짝 느껴져

내던진 책이었는데...(빌려본 주제에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표현을...흠...ㅋ) 다시 읽어보니 그런 뉘앙스 별로

없는데... 아마도 제목 탓인 느낌도 좀 드는 게...나라는 여자...라니요...이거 뭔가 여자들이 자기가 귀여울 줄

알고는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불러가면서 애교떠는 듯한 불편~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그런 제목 아닌가...

하여튼 그랬는데

 

독한양주님 블로그에 이 책이 쓰여 있었고 발췌된 부분을 읽어보니 그 또한 괜찮았고 해서 다시 빌림

다시 읽어보니 재미있고 워낙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았기에 안해본 다양한 생각들도 머리에 둥둥 떠오르게

만들었고 좋았다

이 책에 늘 연애하는 여자들은 뭐가 다를까라는 글이 있는데 저자가 그런 류에 속하는거고 나는 그 반대

그러니 이 책은 신세계 경험용...나랑 무척이나 다르게 사는 그녀들의 삶을 살짝 구경할 수 있는...

그런 구경은 주변에서 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개 끼리끼리 놀 수밖에 없으니...

 

많이 아팠고...그러니까 몸도 정말로 아팠었고 또 여러가지 일로 마음에 상처도 많았을 것이고

외교관 아버지 따라서 이 나라 저나라...가 얼핏 보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어린 여자애에게는 감당하기

쉬운 일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는거였고...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단련되어 지금의 임경선이 만들어진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경선의 사진을 보면서 어릴 때는 그렇게 깜찍하고 예쁘더니 결혼하고 저렇게 살이

찐건가 했는데 그런데 그게 살이 쪘다기보다는 아파서 그렇게 된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음 그랬구나

했다... 지금은 다 나았다고 했나?  허지웅도 이 병에 걸려서 얼굴이 부었다고 하던데 신경이 예민한 사람들

에게 쉽게 오는 병인 것 같다...예민한 사람들이 살짝 힘든 일을 겪으면...난 잘 알고 있지...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왜 책으로 썼을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거고 또 이렇게 쓰면서 극복하는 거겠지

 

 

 

 

 

 

자신의 전혀 잘나지 않은 미흡한 부분들이야말로 스스로를 더 사려 깊게 설명한다

후회가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만약 지난날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아마 난 똑같은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 더도 덜도 아닌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낯선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어렴풋이 달랐던 공기의 습도나 내음이라든가

 

그럴 때마다 우리가 서울에 있었더라면 아마 말도 섞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도 여러 의미로

이런 여자는 난생 처음 보네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조심조심 챙겼던 이유는 물론 나를 여자로 좋아했기 때문인데 그 마음에 보답 안할 걸 알면서도

때론 그 마음을 이용했다 그도 알고 있었지만 멋쩍게 웃기만 했다

당시 내가 통제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의 감정을 교묘하게 이용했다고 생각한것도 하찮은 자의식

과잉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그냥 묵혀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살기 위해 죽은 듯이 살아내야 하는 시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나는 세월의 흐름이

안겨준 재생력에 겸허히 감사해야만 했다

 

그 자기조롱 능력을 이루는 것은 자기 객관화와 유머 감각일텐데 반대로 그것들이 결여되면 적신호 반짝

전염병 환자처럼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외톨이로 전락하게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연애하는 여자들은 그 어느 때나 연애를 하고 있고 연애 안하는 여자들은 그 어느 때나 연애를 안 하고

있었다 나는 늘 연애하면서 살았던 여자다 애초에 스스로를 감정면에서 잘 통제할 수 있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었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그 외의 것들이 무의미해지거나 그 사랑을 위해서만 의미있는 것들로 탈바꿈

되었다  그녀들은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라는 깨달음  원래 그런 여자들을 따라하는 건 이미 시작

부터가 지는 게임이다 (음....슬프네...)

 

사실 연애하는 여자들은 운명적인 사랑을 믿을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 대신 그녀들이 직접 목격하고 만지고 느낄 수 있었던 운명적인 사랑의 순간들

그 찰나의 황홀경을 느끼게 해 준 몇 번의 운명적 순간들이 다음 사랑을 낙관적으로 꿈꾸게 할 만큼 깊고

강렬했던 것이다

 

좋아하는 남자가 내게 선을 긋는 걸 지켜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친구나 부모님에게 소개하지 않거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인색한 것은 선 긋기의 전형적인 예다

그 외에도

좋아하지만 사랑은 아니야

성적 매력을 느끼지만 사랑은 아니고

선 긋기가 잔인한 것은 여자를 더없이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완곡하게 차이는 상황인건지 아니면 앞으로 나 하기 나름이라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헷갈리든 말든 어차피 더 좋아하는 사람은 나였기에 완전히 끝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더 좋아하는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기다림의 시간들이었다

 

 사람은 함부로 남 얘길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유부남과 연애하는 여자를 가리키며 흥분하며 욕할 순 있지만 그런 유혹은 어느 날 불현듯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우리는 어쩌면 홀리듯이 감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게 될지도 모른다

감정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랑에 빠지면 감정의 결이 보송보송한 털처럼 하나하나 살아나 금방 흥분하고 아리고 울기도 잘 운다

연애의 즐거움은 보이지 않는 상대 마음을 상상하며 느끼는 스릴에 있는데 상대의 언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서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려는걸까 말풍선이 생기는 것이나 감정을 담은 침묵

어린 눈동자의 응시도 fuzzy한 감정에 한몫한다

그러나 이윽고 그 영롱하고 따뜻한 느낌이 가시고 시야가 선명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할 때임을 알았다  사랑이 식은 후 그 사람의 표정이 몸짓이 말투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어떻게 이렇게

하루 아침에 변할 수 있느냐고 나는 통탄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 애초에 그들이 책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짧든 길든 심리적으로 외톨이였던 시절이 있어서 일거라고 생각했다

또한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책의 힘을 빌릴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혼자서 밥 먹는 것쯤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자 잘 지낼 수 있는 독립적인 성향과 사실은 깊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공존했다

 

그는 잠시 표정을 굳히고는 곧 결혼하게 될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시야가 먹색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난 사실 공부에 아무 관심도 없었고 오로지 그가 유학의 이유

였음을. 오기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겠지만 도중에 학업을 그만두리라는 것을. 훗날 그 모든 것은

정말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정확히 그 시점부터 연애에서 체념하는 습관을 배웠다

가끔 이토록 악감정이나 미움이 안 남는 걸 보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 적이 없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관계에 대한 낙관성은 그 남자가 나를 놓고 가버림으로써 내게 주고 간 선물이었다

 

지난 연애들에서 나는 주로 차이던 여자였다

가끔 왜 그토록 차이기만 했을까 생각하곤 한다

불평하거나 원망하느라 그러는 건 아니다 정말 궁금해서 그런 것뿐이다

여러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내가 먼저 그를 차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내가 차인 거라고

먼저 차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상 악역은 필연적으로 그의 차지였다

내게는 상대를 찰 이유가 없었다 애초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아예 시작도 안 했고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남자와는 최소한 내 쪽에서만이라도 불씨가 꺼지지 않게 연료를 바지런히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의 열정이 충분했다 게다가 나에겐 내가 그를 좋아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는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 데에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니 상대와 자존심을 건 누가 누구에게 먼저

상처를 주나 같은 의자 놓이를 할 이유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