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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내 책상 위의 책들 - 정은지

by librovely 2016. 5. 15.

 

내 책상 위의 책들                                                   정은지             2012    아트북스

 

읽은 지 오래된 책

저자 사진을 보니 예쁘고 날씬한 거 같은데 먹는 것에 심취한 내용의 책을 쓰다니 뭔가 살짝 의아했다

뭐 먹는 것을 즐기는 미식가이지만 조금만 먹는 거겠지... 책도 좋아하고 먹는 것도 좋아하고 해서...

책 속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에 대한 책을 쓰게된 모양이다 아주 흥미롭게 읽은 건 아니지만 그냥

소소하게 즐겁게 읽었다

 

저자 얘기를 좀 더 하자면 서울예고에서 성악을 전공하다 때려치고 서울대 국제경제어쩌고 진학..박사까지

그리고 글도 쓰고 번역도 한다고...게다가 외모도 괜찮아 보이고.....먹는 거 좋아해도 살도 안 찌고....

음... 이런 사람을 보면 좀 억울한 느낌이 든다.... 신이시여...유전자 몰빵을 이렇게 하시면....곤난(곤란아님)

저에게 와야할 유전자 중 일부가 잘못 들어간 거 아닌가요?  음.....아니라고요? 아 넵....ㅜㅜ

그래도 유전자 빈익빈부익부 너무함.... 더 쓸 수 있는데 너무 찌질해서 멈춰야겠....

 

 

 

 

 

 

나는 혼자 먹는 밥이 좋다

왜냐하면 더 탐욕스럽게 온전히 먹는 것에만 몰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아하는 것은 그래서 혼자 먹는다

 

하루키 소설 남자 주인공보다 팔자 좋은 사람은 없다 부와 권력은 없지만 하루하루 느긋하고 안락한 일상

안빈낙도나 소박한 삶과는 관계 없다 그가 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쾌락이고 사치다 하지만 거창한 것은

아니고 작지만 확실한 행복

 

하루키에게는 그런 재주가 있다 종일 빈둥거리다 문득 외출 분비를 한다 단지 밥을 먹기 위해서다

약속은 없고 피치 못하게 밖에서 때워야 할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에서도 만날 만드는 스파게티를

굳이 밖에서 먹는가 하면 대낮부터 메밀국수집에서 맥주를 걸치기도 한다 시간 많구나 그리고 돈도 많아

그것은 난생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이자 끝내주게 멋진 쿨한 삶이었다

하루키적 삶의 유혹은 강렬했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지지자가 속출했는데...

 

아침마다 주인이 졸린 눈을 비비며 차를 몰고 가 막 구워낸 크루아상과 롤빵을 사 온다

커다란 접시에 가지런히 담은 햄과 치즈 아침에 낳은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드에그 갓 짠 주스와 커피가

있고 프루트 칵테일 뜰에서 딴 과일들 애플파이까지 나온다

 

일본을 떠날 때 하루키는 서른일곱 살 데뷔 8년차였다 대단한 인기 작가는 아니라도 전업 작가로 살

정도는 되었다 30대를 넘기면서부터 그는 줄곧 생각했다 마흔 살이라는 나이는 하나의 전환점이라고

그가 떠난 것은 정신적으로 탈바꿈하고 나서는 더 이상 쓸 수 없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유럽에서 보낸 3년 동안 그는 두 편의 소설을 썼는데 그중 하나가 노르웨이의 숲이다

 

내가 하루키의 수필과 사랑에 빠진 것은 <지하철 긴자 선의 원숭이의 저주>를 읽은 순간이었다

하루키는 역시 소설보다 수필이라는 사람이 적지 않다 나 역시 그중 한명으로서 최고는 이 책이다

먼 북소리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그리스로 다시 이탈리아로 또 오스트리아로 하루키의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외롭기보다는 편안했던 것 같다 그의 글의 매력은 세련된 비틀림이지만 가끔은 그것이 지나치게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반면 먼 북소리는 정제되지 않아서 오히려 맘이 가는 종류의 글이다

 

우리는 왜 여행에 매혹되는가 낯선 곳은 외롭다 그래서 편안하다 평소에는 못 먹는 걸 먹고

못 입는 걸 입고 못하는 짓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못하면 또 어때 일상을 벗어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왜 기내식에 매혹될까 나를 홀리는 것은 여행 자체보다는 그것에 대한 기대다

왜냐면 환상은 언제나 현실보다 우월하며 기만은 필연적으러 진실보다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비행기에서 싸구려 쟁반을 받아 들고 플라스틱 뚜껑을 여는

순간이다

 

변하지 않는 삶은 잿빛이다 그래도 살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그래서 호기심은 중요하다

특히 요긴한 것보다 쓸데없는 것일수록 더 북돋워야 한다 왜냐하면 유익한 것은 안 그래도 충분히

탐구하고 있으니까 사소한 것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모험의 나날

 

나에게 파스타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동시에 돈값 못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내 돈 주고 사 먹을 일은 단호하게 말하지만 없다

 

과즙 짜는 날 소년은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다

엠마가 건네준 과즙을 마신 순간 한스의 심장은 멎었다 온몸이 나른해지고 현기증이 났다

사랑이란 그런걸까 두려움이 가득한 기쁨으로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걸까

하지만 이는 음주 후 증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사랑의 위대함에 순순히 경의를 표하는 대신 영문판을 찾아보았다 그러면 그렇지

한스가 마신 건 사과즙이 아니라 사이더cider였다

 

소박한 의문이 있다 어째서 몸에 나쁜 것은 맛있을까

밀가루는 나쁘다 기름은 나쁘다 설탕은 나쁘다 혼자서도 충분히 나쁜데 셋이 뭉치면 기절하게 나쁘다

여자아이들은 그런 걸로 만들어졌다 설탕과 향료 그리고 좋은 것들 은근슬쩍 얼버무린 뭐든 좋은 것은

기름과 밀가루가 틀림없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나쁘다

 

파워퍼프걸은 방영 즉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에미상 후보에도 다섯 차례나 올랐다

하지만 비판도 많이 받았는데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만화 사상 유례없는 폭력성 때문이다

어린 소녀들뿐 아니라 성인 여성들까지 열광한 건 오히려 그래서다

툭하면 납치되어 구해주기만 기다리는 여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건 남자들뿐이다

강인하고 독립적인 현대 여성은 직접 악당을 물리칠 수 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든 손이

닿은 사소한 격려뿐이다

 

캐비아 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푸아그라는 프랑스어로 지방간이라는 뜻이다

맛은 있지만 칼로리가 엄청나고 값도 비싸다 하지만 불편한 건 따로 있다 바로 푸아그라의 생산 벙법이다

기금류의 식도는 쉽게 늘어난다 이를 이용해 도살 며칠 전부터 목구멍에 펌프 달린 튜브를 꽂아 강제로

옥수수를 먹인다 이를 가비주라고 하며 이 과정에서 오리나 거위의 간은 열 배까지 비대해진다

 

스웨덴의 잼 사랑은 남다르다 전 세계 이케아 매장 식품 코너에는 각종 베리 잼이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되어 있다 스트로베리나 블루베리처럼 익숙한 것도 있지만 클라우드베리나 구스베리처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베리들로도 잼을 만든다 스웨덴 베리의 승자는 누가 뭐래도 링곤베리다 영하 40도의

겨울에도 파릇파릇하지만 뜨거운 여름에는 오히려 시들시들한 링곤베리는 스웨덴 삼림지대 어디서나

자라는데 그냥 먹기에는 너무 시어서 보통 잼이나 주스로 만든다

 

동양의 홍차가 서양에서는 블랙티고 흑차는 보이차다 반대로 서양에서 레드티 하면 루이보스티다

 

조지오웰은 20세기 초 영국 문화의 가장 예리한 관찰자였다 또한 전체주의의 탁월한 비판자에

거리로 뛰어들어 밑바닥 삶을 체험한 실천적 지식인이자 언론인이기도 했다 주당 32실링의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는 가정이 차와 설탕에 2실링 이상 소비하는 현실에 오월은 분노했다

빵과 차는 노동자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값싼 식품이었다

설탕을 듬뿍 넣은 차는 그들의 초라한 삶에서 유일하게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것이었다

오웰의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저소득 가정의 장바구니에 채소나 과일은 담기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건 즉석요리나 과자고 외식이라면 닭튀김이나 피자다 온통 싸고 기름지고 짜고 달고

매운 것이다 노동계급의 홍차 소비가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사실을 오웰이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오웰이 홍차 혐오가였던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는 홍차에 대한 가장 유명한 글을 쓴 사람이다

 

일본을 필두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영국의 홍차 문화를 상류층의 고상한 문화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칼로리가 넘쳐나는 대량 소비시대에도 홍차는 여전히 노동자의 문화였으니 이른바 노다가의

홍차builder's tea야말로 영국 홍차의 표준이다 노동자들은 진하게 우린 차에 우유를 듬뿍 붓고 설탕을

수북하게 두 스푼 넣어 큼직한 머그로 하루에도 몇 번씩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상류층의 말석을 차지한 지식인으로서 얄팍한 자의식에 괴로워하다 결국 스페인 내전의 전장으로

떠났다 (조지오웰)

 

메인 주 캐슬록 인구 1500명의 이 작은 마을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 서른 번 가까이 등장한다

주민들은 모두 그곳에서 나고 자란다 고등학교 동창과 결혼해 아이를 기르며 살고 죽을 때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킹의 공포는 환상보다는 현실이다 소도시의 삶이 얼마나 끔찍한지야말로

그의 소설들을 관통하는 주제다 그는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들의 편견과 아집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폭력에 대해 집요하게 말한다

 

클레오 버지니아 앤드루스는 10대 시절 학교 계단에서 떨어진 후 평생 휠체어에 의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포기하는 대신 통신교육과정을 마친 끝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했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쉰 두 살에 출판사에 보낸 원고는 자극적인 맛이 부족하다는 메모와 함께 반송되었다

4년의 퇴고 끝에 1979년 마침내 출간된 그 소설의 제목은 다락방의 꽃들이다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단은 혈당치를 높인다 췌장은 혈당치를 낮추기 위해 당 흡수를 돕는 인슐린을

방출한다 과도하게 흡수된 당은 지방으로 저장된다 반대로 저탄수화물 식단에서는 인슐린 분비가

덜 촉진되며 따라서 지방 또한 덜 저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