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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 이애경

by librovely 2016. 4. 24.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애경             2015         북라이프

 

 

읽은 지 좀 지나서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여행을 좋아하고 종종 가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내용이 쓰여있었다

 

 

 

 

 

여행은 고정되어 있던 것 단단하게 굳어가던 마음을 한 번씩 흐뜨려트려 질서를 다시 잡고

뭉친 마음의 근육을 풀어조눈 처방전과도 같다

 

잘 지내냐는 물음에 그냥 똑같지 뭐 라고 대답하는 나를 발견할 때 그 때가 바로 익숙함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때다

 

여행이 즐겁고 자유로운 이유는 내게 반응을 요구하는 메시지들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지가 말했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어젯밤 내가 몸을 뉘인 곳이 익숙한 내 침대가 아니라는 건 눈을 뜨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내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 베개 버석거리는 침대 시트

 

여행을 다닐 때 다소 감상적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굳게 다잡고 있던 마음의 끈이 풀어져서가 아니라

아이처럼 단순하고 무능력해진 나 자신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인생의 어느 지점에 놓아버렸던 누군가는

그렇게 멀어지다 결국 사라져버리는 건지

 

일상적인 것들에서 뭔가가 빠져 있을 때 생겨나는 허전함

큰 빈자리가 아니라 소소한 자리들 그건 그녀가 만들어냈던 소리와 그녀의 향수 냄새 같은 그런 것이다

길들여진다는 건 어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소리들에 익숙해진다는 것

그래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그 소리가 아닌 소리의 주인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

내가 가는 곳

내가 먹는 것

내가 만나는 사람은

거의 정해져 있다

그것을

깰 수 있는 건

여행뿐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든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

 

2주 후면 북유럽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다 어쩌면 내 마음이 더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생겼거나 혹한을 견딜 정도로 단단해졌는지 시험해보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무엇이어도 좋다 이미 깊어진 겨울을 향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달라진 나를

증명하는 것이니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고

낯선 도시에서 이방인으로 때론 철저하게 홀로 존재해보는 것 내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것들을

소유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의 웃음을 보는 것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생각보다 많다

 

나는 떠난다

내 안의 상처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낯선 사람들에게서 받는 친절을 경험하기 위해

스스로 쌓은 벽을 빠져나와 다시 한 번 깨어지기 위해

떠나고 싶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떠나야 한다는 걸

지금까지의 여정이 증명해주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