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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말하다 - 김영하

by librovely 2016. 3. 1.

 

말하다                                                                             김영하              2015                  문학동네

 

읽다 보다 말하다 이렇게 3권이 나온 거 같은데 이제 읽다만 읽으면 되는구나

보다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은 그 책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아....명쾌한 글...내용이나 문체나 깔끔

명확한 자기 생각이 있고 그걸 개운하게 보여준다 분명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철학 책을 읽은

것처럼 어떻게 살아야겠다 따위의 생각도 드는 것 같고...김영하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이 책에 줄을 긋지

않았고 그래서 발췌도 못하겠고 뭐라 말을 할 수 없지만 그저 읽고 나니 답답했던 어느 부분이 시원해진 것을

느꼈다...라고  해야할까?  정말 좋은 책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읽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모두

공감 공감 또 공감....어느 부분에서는 아 내가 저런 이유로 책 읽는 걸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김영하가 이런 말을 했는데...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해서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상당히 정확한 표현인듯...정말 좋은 영화를 봤을 때 딱 이런 상태가 되었던 거 같다...

정말 좋은 영화는 오히려 보고 나서 그 영화에 대해 뭔가를 쓰지 못하겠더라고...

영화 <렛미인>이 그랬다 나는

 

 

그리고 작가의 일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새로웠다 나는 전혀 몰랐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작가 아니니까

난 소설가가 소설을 쓰기 전 미리 줄거리를 다 구상한 후 쓰기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일단 아무 생각 없이

책상에 앉아 첫 문장을 쓰고 거기서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 것이었다니 무엇을 쓸지는 써봐야 알 수 있다니

생각도 못했던 답...그리고 소설가는 쓰는 일 자체가 기뻐서 쓰는 것이지 다 쓴 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은

사실 그렇게까지 큰 의미가 없다는...그리고 경제력만 된다면 발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는 말도

상당히 신기했다 그런거구나...아 신기해...신기해....

 

비관적 현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아주 즐겁게 재밌게 읽었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좋은 책....

 

 

 

 

 

 

 

 

 

 

그런데 왜 소설같은 걸 읽을까요? 크게 도움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도 힘들게 일하고 집에 돌아와서 책을 보려고

노력하고 제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듣기도 한단 말이죠 그건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인간다움 존엄을 지키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분명하게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못하겠습니다

왜냐면 어른들의 바람은 늘 그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대학만 들어가라 졸업만 해라 결혼만 해라 아이만 하나 낳아라

그 다음부터는 네 마음대로 살아라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그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실패 전문가다 소설이라는 게 원래 실패에 대한 것이다

문학은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없지만 실패가 그렇게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것 때로 위엄 있고 심지어 존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니 인생의 보험이라 생각하고 소설을 읽어라

 

비관적 현실주의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기도 어렵고 가족도 바꾸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 뿐이다 자기계발서들이 말하는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 자신이라도 바꿔라 저는 그것마저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대책 없는 낙관을 버리고 쉽게 바꿀 수 있다는 성급한 마음을 버리고 냉정하고 비관적으로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나치의 수용소와 소련의 그 악명높은 수용소 군도에 대한 연구에서 보면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이들은 낙관주의자나 비관주의자가 아니라 비관적 현실주의자라고 합니다

곧 나갈 수 있을거야라고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죽고 말거야 라고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기서 나가기는 쉽지 않아 어쩌면 나치는 영원할 수도 있고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도 있어 나는 오래지 않아

가스실로 끌려가 비누가 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때까지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면도부터 해야겠다 수용소에서 누가 본다고 면도를 하냐고? 그럼 뭘 하지? 가만히 누워서 죽을 때를 기다

리나?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헛된 희망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허황된 자존심에 목숨을 걸지도 않습니다

비관적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은 너무 답답하고 지루할까요? 오히려 낙관주의자로 살아가는 삶에 함정이 더

많습니다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에 우울증 환자가 왜 이리 많은가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지만

긍정적 사고 낙관적 태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모두 긍정적이고 활발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일 때 거기서 자기만 뒤처진 것으로 보일 때 우리는

급격하게 우울해집니다 봄에 우울증이 늘어나고 자살률도 높아지는 사실 역시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집단은 어딘가로 쏠리게 마련입니다 비관적 현실주의를 견지하려면 남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 남이 침범할 수 없는 내면을 구축하는 것

자기도 모르게 타인에게 동조될 때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개인주의를 저는 건강한 개인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건강한 개인주의란 타인의 삶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독립적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이때의 즐거움은 소비에 의존하지 않는

즐거움이어야 합니다

 

감성 근육이 발달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느끼면서도 부담을 느끼지 않습니다

잘 느끼는 것은 왜 중요할까요?

자기 느낌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워졌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요시모토 바나나가 어릴 때 친구도 안 만나고 책만 읽었대요 작가의 아버지는 유명한 학자인데

일본 같은 사회에서 친구 없이 지낸다는 건 좀 위험한 일이다 아이가 이상하다 주변에서 걱정을 하니까

그가 그렇게 말했대요 친구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애가 그냥 책을 읽게 내버려두라 

인간에게는 어둠이 필요하다고 했다는 거예요 동감이에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어둠이에요

 

산책가로서의 여행으로 관심이 넘어가고 있어요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옮겨다니면서 사는 삶에 가깝죠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앞으로 10년밖에 못 산다면 뭘 할까? 지금 마흔셋이라면 쉰셋에 죽는다고

가정하는 겁니다 그러면 인생의 우선순위가 명쾌하게 정리되죠 우선 각종 경조사에 가지 않을 겁니다

친구 아기 돌잔치? 안 갑니다

 

글쓰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잊고 싶었던 과거를 생생하게 우리 앞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써 나가는 동안 우리에게 변화가 생기고 이게 축적됩니다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한 글자 한 글자 언어화하는 동안 우리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것을 내려다

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좀더 강해지고 마음속의 어둠과 그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힘을 잃습니다

우리 내면의 두려움과 편견 나약함과 비겁과 맞서는 힘이 거기에서 나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롤랑 바르트에 의하면 플로베르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연결한 것뿐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뭔가를 하겠다고 할 때 그들은 묻습니다 이건 정말 마법의 질문입니다

그건 해서 뭐하려고 그래?

힘이 쭉 빠집니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뭘 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지요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

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니까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미래는 우리 모두가 다중의 정체성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체성 중 하나는 예술가였으면 좋겠습니다

 

서재는 오래된 목소리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영혼에 접속하는 일상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타자를 대면하는

공간입니다 서재는 자아가 확장해가는 공간인데 자기와는 생각이 다른 자기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또는 자기는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욕망들을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문학의 본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대화예요 그런 대화에 맛을 들이면 현실의 인간과의 대화를 오래할

수 없게 돼요 더 근사한 게 있는데 시시하게 뭘 굳이 이야기하죠?

 

최고의 소설이란?

다 읽었는데 밑줄을 친 데가 하나도 없고 그럼에도 사랑하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는 거잖아요 걸린데가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도 왠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것을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남에게 요약하거나 발췌해서 전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런 소설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그런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살아지는 것 나로서 끝나는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인간들이 어리둥절한 채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은 죽어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때 철학 개론을 보면서 제 철학적 입장을 정리한 적이 있어요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게 에피쿠로스학파예요

스토아 학파처럼 금욕적이진 않지만 높은 형태의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고 그 밖의 다른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아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느끼는 고통과 기쁨 이런 것들에 점점 집중하게 돼요 그에 비하면

책을 내는 일은 지루한 일이에요 큰 즐거움을 주지 않아요

 

어떤 일을 할 때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이 나에게 깊은 수준의 만족감을 주느냐 그게 아니라면 그만두는거죠

 

이상하게 소설이라는 것은 쓰기 직전까지도 무엇을 쓰게 될지 몰라요

앞으로 무엇을 쓰게 될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어요

책상 앞에 앉으면 생각이 나겠죠

 

작가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감히 꿈꾸지 않는 것 감히 경험하지 않는 것

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경험하고 그 경험을 사회로 가져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서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장편을 쓸 때 행복해요 저는 어떤 인물을 만들어 놓으면 한동안 그 인물이 할 법한 말을 하고 그 인물이

들을 만한 음악을 듣고 읽을 만한 책을 읽고 하거든요

그런 것도 소설가로 사는 즐거움인 것 같아요 어떤 인물 속에 들어가 1년 2년 살고 나오는 거요

아무래도 장편을 쓰면서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제가 변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기초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문장을 쓸 수 있잖아요 그런 정도만 되면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고 그때 중요한

것은 자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자유롭게 발언하는 거예요 저는 거기서 기본적 희열이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해방감

 

쿤데라를 또 인용하자면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다

 

토니 모리슨이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서가를 둘러보고  거기에 없는 책을 쓴다

또 어떤 작가는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쓴다고 말했죠

 

쓸 때는 즐거운데 발표할 생각을 하면 좀 복잡해지거든요 발표를 하는 순간 그 작품은 독자의 것이 되고

저에게서는 떠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떠나보내기 싫은 작품이 있어요

정말 돈이 많은 작가라면 쓴 작품의 반도 발표 안 할 것 같아요 샐린저 같은 사람이 그런 행운을 누린 경우죠

호밀밭의 파수꾼이 성공하고 난 다음에 발표한 두 작품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자 이후에는 발표를 안 했죠

사람들은 그가 절필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한 인터뷰를 보면 실상은 전혀 달라요 그는

난 매일 쓴다 예전과 비슷한 속도로 쓰고 있으며 그 원고들은 금고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그리고 난 지금

무척 행복하다 발표해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어요 전 그게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알아요

 

영화나 연극에도 인물이 있고....

소설의 인물들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각인됩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많은 것이 비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어느 정도는 그 인물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창조했기 때문에 소설 속 인물의 일부는 독자 안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하는 일과 독자가 하는 일이 너무 달라요 작가는 글을 쓰는 것으로써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반면 독자는 글을 읽음으로써 즐거움을 누리거든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다른 거예요

 

진짜 깊은 수준의 소통은요 대화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소설은 인간과 인간이 정말 깊은 수준의

교감과 공감을 하게 해줍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는 이 은밀한 기쁨을 다른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현대의 독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한 권의 책과 그것을 읽은 경험은 독자 개인에게만 고유한 어떤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렇다면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독서를 왜 할까요?

그것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는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거의 모든 것이 공개돼 있습니다 모든 것이 털리는 시대

그러나 책으로 얻은 것들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독서는 다른 사람들과 뭔가를 공유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 내면을 구축하기 위한 것입니다

 

읽은 책이 다르고 설령 같은 책을 읽었더라도 그것에 대한 기억과 감상이 다릅니다

자기 것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에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 고유한 나 누구에게도 털리지 않는 내면을 가진 나를 만들고 지키는 것으로서의 독서

그렇게 단단하고 고유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 자기 세계를 가진 이들이 타인을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세계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모습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면 조용히 자기 집으로 돌아가 소박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자기 침대에 누워 어제 읽던 책을 이어서 읽는 삶 자기 서재와 마음속에서만큼은 아무도

못 말리는 정신적 바람둥이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세상이 제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입니다

 

무라카미는 열광적인 미국문학 숭배자라고 들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한다고 하죠

레이먼드 카버를 찾아가 번역가로서 인터뷰를 했던 무라카미는 그를 일본으로 초청했고 온다면 자기 집에서

묵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카버도 흔쾌히 이에 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 침대는 작지 않습니까?

카버는 키가 190센티 정도 되는 거구거든요 그래서 무라카미는 그를 위해 침대를 직접 주문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러나 레이먼드 카버는 하루키의 방문 이후 갑자기 죽게 되고 결국 하루키에겐 특별 주문한 커다란 침대만

남았죠 스티븐 킹의 팬으로도 유명한 하루키는 미국 메인 주애 있는 스티븐 킹의 집까지 차를 몰고 가서는

멀리서 그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대요

 

대학 신입생 시절의 일이다 나는 철학개론 수업을 듣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학생식당에 간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방금 전 철학개론 수업에서

어설프게 감지한 바를 조금 흥분한 어조로 친구에게 떠들어댔다 친구는 육개장 그릇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야 밥은 좀 편하게 먹을 수 없을까?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나는 대화라는 것이 꼭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실망스런 기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후로 내가 주로 소통해온 사람들은 현실의 인간이 아니라

책 속의 인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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