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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삶을 견디는 기쁨 - 헤르만 헤세

by librovely 2015. 8. 24.

 

 

 

삶을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2014                문예춘추사

 

헤르만 헤세의 글이라고는 데미안을 읽은 게 전부이지만 나는 헤르만 헤세가 좋다...

데미안 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가 떠오르는데 그 때 난 이상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뭐 고민할 것도 아닌건데 그 당시에 나는 집과 사뭇 다른 학교에서의 내 가식(?)적인 삶에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냥 나 스스로가 뭔가 역겹고 토할 것 같았다...집에서는 엉망으로 막 살면서

학교에 가서는 되게 바른 인간인 척 하는 게 너무 싫었고 그래서 엄마가 학교에 온다고 하면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었다... 학교에서는 내 머리로 알고 있는 옳은 짓(?)만 하고 살았기에 그렇게 선생님께서 말해줄거고 그러면

엄마는 얘가 집에서는 엄청 싸우고 버릇없고 말도 막하고 방도 어지르고 그런 나름 그 나이에서는 상당한 타격이

갈 치부를 드러낼 것만 같아서...그런 이야기를 안한다고 해도 내 집 밖에서의 가식떠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

다는 뭐 그런...근데 생각보다 별 일이 없긴 했다...아마 선생님은 나에 대해 그다지 칭찬을 안했던 모양이지..깔깔깔

하여튼 누구나 다들 그런 가식은 떠는 게 당연한건데 나는 그 당시 그게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알 수가 없고

또 그런 상황이 데미안의 이야기와 대체 뭐가 통한건지 모르지만 하여튼 데미안이 뭔가 위안을 주었던 기억이...

아무렇지 않은 척 가정에서 집 밖의 상황을 숨긴 그런 표면적인 스토리가 비슷하다고 느낀걸까 뭐지...

 

하여튼 헤르만 헤세가 좋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아마 제목 때문인 것 같다

삶을 '견디는' 기쁨이라...견딘다는 표현...그게 와 닿은 것 같은데...

짧은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인데 중간중간 헤세의 그림도 나온다 헤세는 40대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찾아보니 용산에서 헤세 그림 전시도 하는 것 같던데... 그림이 묘하게 마음에 든다...

헤세는 십대 시절 이미 자살 시도를 했었고 학교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서점에서 일하면서 밤에 글을 쓰기도

했고 9살 연상의 피아니스트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지만 부인이 정신병에 걸리고 스스로도 세계대전의 충격

때문인지 아님 성향 탓인지 정신을 추스리기 힘들어한 면도 있는 것 같다 글을 읽어보니 삶을 견디는 태도로

살아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것까지도 예민하게 다 느끼면서 삶의 부조리 허무함 죽음 따위의

문제를 생생하게 고민하고 뭐 그랬겠지... 그래도 자살하지 않고 80살 넘게 살다가 죽을 수 있었던 건 이렇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또 자연을 벗삼아서 가능했던 것 같다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 책은 40대 정도에 쓴

글이 많은 것 같은데 그 때 헤세는 사람들과 잘 만나지 않고 은둔하다시피 혼자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가끔

어울리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실망했던 것도 같고...그래도 자연에서 위안을 얻었고 글과 그림으로 해소하며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자신을 둘러 싼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극복하려 애쓴다기 보다는 그냥 고통은 고통

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지나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게 하나라는 그런 생각?

고통과 행복도 하나고 죽음과 삶도 하나고 다른 게 아니라 연결된 것이라는? 잘 모르겠지만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불교와 인도에 심취했던 것 같은데 내가 그 분야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

하여튼 책을 읽어보니 살아가는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헤세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을 용기있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견뎌냈던 것 같다... 굳이 도피하지 않고...일에 돈에 자식에 명예에 인간관계에 술에 각종 쾌락에

자신을 젖어들게 만들어 삶을 직시하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고...아마 그래서 힘들고 우울하기도 했던거

겠지...나는 삶을 직시하지도 않으면서(그럴 능력도 용기도 없음) 왜 이렇게 우울하고 허무한걸까...

어쨌거나 저런 대단한 사람도 삶은 견뎌내듯이 살았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위안이 되었다...

 

글의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잘 읽었다

헤르만 헤세는 진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핵심은 절제이다

굳이 어느 오페라 초연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유행이나 관습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몇 알고 있다

그들이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그들은 그런 용기를 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한 뼘의 하늘 초록의 나뭇가지로 뒤덮인 정원의 울타리 튼튼한 말 멋진 개 삼삼오오 떼를 지어 가는 아이들

아름답게 감아 올린 여인의 머리 우리는 아름다운 그 모든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면서 목숨을 연명해 가려는 우리 예술가들은 유서 깊은 법칙을 좇아가야만 한다

우리에게 인간성은 사치가 아니라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이며 삶을 위한 공기이고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여기서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을 알고 그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을 쌓아 올리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말한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볼 줄 알며 정신적인 아픔을 이해하고 인간적인 취약점을

감싸 주는 것은 참담한 고요 속에서 누군가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외로운 시간을 보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삶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삶을 익숙하게 뒷받침해 주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쉽지만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우리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행복과 고통은 우리의 삶을 함께 지탱해 주는 것이며 우리 삶의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만들고 강철처럼 단단하게도 만들어 준다

 

암울했던 날에 대한 기억도 아름답고 성스러운 기억의 한 토막이 되리라는 것

 

삶의 잔혹함과 죽음을 회피할 수 없음을 불평불만하지 말고 그런 절망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의 무시무시함과 무질서함을 자기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그런 거친 자연의 모습에

맞설 수 있고 그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써 노력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가운데 제일

뛰어난 것이며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것 말고는 동물들이 더 잘한다

 

힘든 고통을 겪었을 때 한편으로는 고통을 이기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도 하다가 다른 한편으로는

운명에 충실히 따르려는 마음을 갖기도 했었다

 

비겁한 사람은 운명을 독약이나 약물처럼 들이킨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와인이나 맥주처럼 마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운명이 달콤하게 느껴질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점점 고립되는 것 같지만 물러서지 않고 계속 전진하고 인습이나 전통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질문과 의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오랜 관습이 무너진 무대 뒤에

씁쓸한 진실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더 많이 보거나 적어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이뤄져야만 세계의 한 부분일지라도 진정으로 체험하고

거기서 전해지는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 가끔 아무런 이유 없이 어두운 그림지가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름이 그늘을 만들어 세상을 가리는 것처럼 나의 세상을 가려 버린다

기쁨은 가식으로 느껴지고 음악은 맥없이 풀어진 것처럼 들린다

무거운 마음을 짓누르고 사느니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힘든 시기에는 자연으로 나가서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자세로 그것을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약이 없다

 

얼굴에 쓴 탈을 벗고 이상적인 것을 무너뜨릴 때마다 끔찍한 공허함과 침묵이 몰려온다

무서울 만큼 위축되는 마음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외로움 그 텅 빈 황량함과 절망들은

지금 내가 다시 겪어 내야만 하는 것들이다

 

나는 오랫동안 직업도 가족도 고향도 없고 사회적인 친분도 없으며 어느 누구의 관심이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세속적인 믿음이나 도덕 기준으로 인한 심한 갈등을 겪으며 혼자서 살아왔다

물론 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나는 그들과 느끼는 감정과 사고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철저히 낯선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는 했지만 보통 이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머리에 방아쇠를 당길 용기를 냈다는 것과 그로 하여금 세상의 논리와 도덕 기준을 냉소적으로

비웃을 수 있었다는 것

 

고통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고통의 세계를 가장 빨리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지름길

나는 고통과 그보다 높은 힘에 나 자신을 내맡겼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그와 같은 힘에 맡겼다

 

일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몰이나 일출이라는 것이 존재하려면 먼저 위와 아래가 있어야만 한다

서로 반대되는 것은 모두 착각이다

흰색과 검은색도 착각이고 삶과 죽음도 착각이며 선과 악도 착각이다

 

나는 목숨을 내던지지 못하고 계속 부지해 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게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공허하고 무의미해진다

 

모든 고통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계에 이르면 고통은 끝이 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삶의 색채를 띠게 된다

고통스러웠던 것만큼 나는 또 고독했다

하지만 고독은 나를 더 이상 달랠 수도 없고 아프게 할 수도 없는 독약과도 같다

그 독성에 대한 저항력이 충분히 강해질 만큼 그것을 많이 마셨다

 

유머리스트들이 내세우는 제목과 주제는 모두 구실에 불과하다

사실상 그들의 주제는 예외 없이 단 한 가지뿐이다

즉 별난 슬픔과 더러운 인간사 그리고 삶이 그토록 비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근사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다

 

나와 같은 유형의 사람

근본적으로 인생의 가치를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자살이나 정신착란과 같이 순진한 사람들이 흔히

찾는 탈출구를 선택하지도 못하는 그래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예로 들어 자연이

인간이라는 실험에서 시도한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가망 없는 것이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이 세상

에 나온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당연히 좀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어느 정도 조예가 깊은 전문가로 통할 수 있는 자리인 그 문학 행사에서조차 또다시 나를 은자가

되게 만드는 고립감을 느껴야 했다 그 고립감은 나의 내면에 인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까닭 모를

욕구가 자리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가 알지 못하는 비밀스런 게임 규칙에 따라 인생을

유쾌한 단체 게임으로 여기고 함께 즐기는 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나태함은 정신적으로도 그와 같은 상태를 수반하는 법이다

 

이 세상과 타협하고 그 일원이 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향력을 가지며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지된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아 나는 이 시에 감탄했다 나는야 정말로 그 몹시 유쾌한 수요일에 대해 잘 알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