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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소소한 사건들 - 롤랑바르트

by librovely 2016. 3. 19.

 

 

 

소소한 사건들                                                       롤랑바르트              2014                         포토넷

 

롤랑 바르트가 그냥 일상에서 든 생각들을 소소하게 적어내려간 글을 모아 만든 책

소소하긴 하지만 글로 썼다는 것이 마냥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낼 일은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고

그냥저냥 읽었다 아주 재밌지는 않지만 어떤 순간에 든 생각을 가감없이 슬슬 글로 적어내려간 것을 읽는 게

또 아주 재미없지는 않았다  신기했던 건 나이가 많았음에도 연인을 찾아 나서는 롤랑바르트...역시 파리는

그런 곳이었던 모양이다 카페 플로르를 아주 좋아했던 것도 신기하고 롤랑바르트가 예술가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스트레이트가 아니라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뭔가 내면이 상당히 여자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모호한 느낌인데 그중에도 피로감은 결국 어딘지 감미로운 구석이 있다

매번 동요되는 것은 내 시선이 아니라 내 몸이니까 말이다

 

나는 거대한 현실들로부터 오직 그것들이 내게 부여하는 감각-냄새 피로감 목소리 돌아다니기 빛

즉 실재에서 어찌보면 무책임한 것 그리고 의미라면 오로지 훗날 잃어버린 시간의 추억을 형성한다는

의미뿐인 것-만을 취했던 것이다

 

주베르가 공식화해 놓은 이런 말

사람은 자기가 느낀 대로 속마음을 표현해선 안 되고 자기가 기억한 대로 표현해야 한다

 

열차 내 바의 종업원이 어느 역에서 내리더니 빨간 제라늄을 한 송이 따가지고 물 컵에 꽂아서

설거질할 찻잔이며 더러운 행주가 마구 널려 있는 어지간히도 지저분한 개수대와 커피 내리는 기구

사이에 놓아두었다

 

이베리아 항공사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은 웃음 짓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화장은 진하지만 메마른 느낌이고 아주 긴 손톱에는 핏빛 같이 빨간 매니큐어를

칠했다 오랫동안 몸에 밴 권위적인 동작으로 길쭉한 항공권들을 만지작거리고 접고 하는 저 손톱들

 

 

나 당신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야

그거 성가신 일인데 어떻게 하지?

당신 주소나 줘

 

나는 아미두가 쓰는 어휘가 좋다 발기하다와 쾌락을 느끼다 대신

그 애는 꿈꾸다와 터지다 라는 단어를 쓴다

터지다라는 말은 식물적이고 팍 튀고 흩어지고 퍼지는 느낌이다

쾌락을 느끼다라는 말은 정신적이고 자기도취적이며 포동포동하고 닫힌 느낌이다

 

할 일 없어 보이는 열차 검표원 두 사람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식당칸의 바에 가서 앉는다

둘 중 젊은 쪽이 싱긋 웃으며 나이든 쪽에게 커피 한 잔을 갖다 주니 나이 든 사람은 미소 지으며

됐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이 든 쪽은 보조 검표원에 지나지 않아 모자에 별이 하나뿐이고

젊은 쪽은 별이 세 개다

 

메히올라에서의 행복 한밤중 널따란 부엌 밖에는 폭풍우 팔팔 끓는 하리라 수프 커다란 등잔불 부탄가스

소소하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들락날락하는 움직임 따스함 젤라바 그리고 라캉 읽기

이런 평범한 안락함 덕분에 손에 잡은 라캉

 

보나파르트 거리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클로드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제라르L과 마주쳤다 나는 이런 즉흥적인

만남이 싫다 카페에 혼자 있으면서 여기 저기 쳐다보기도 하고 지금 하는 일 생각도 하고 그러고 싶은 것이다

 

집에 돌아와 힘 안 들이고 침대에 누우면 된다는 게 편안하고 행복하다

라디오에선 가느다랗고 밋밋하고 희멀겋고 느릿하고 권태롭고 마치 부적응자 저능아 같은 여자 목소리가 나오더니

베토벤 소나타 한 곡이 이어진다 나는 <사후의 회고록>을 기쁜 마음으로 이어서 읽는다 100일 부분을 읽고 있다

 

센트럴 카페에서 필립S를 기다린다 카페의 테라스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고 내겐 이 카페가 적대적으로 느껴진다

 

 

오후에 일하려면 언제나 이렇게 힘들다 나는 여섯 시 반쯤 발길 닿는대로 외출했다 렌느 거리에서 새로운 게이 녀석

한 놈이 눈에 띄었다 난 그에게 돈을 좀 주었고 그는 한 시간 뒤에 꼭 오겠다고 했는데 당연히 오지 않았다

아니 몸 파는 놈한테 미리 돈을 주다니 어떻게 했든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에 대한 욕망도 별로

없었으니까 관계를 하든 안 하든 여덟 시면 나는 내 인생의 똑같은 지점에 다시 가 있을 것이다

단순한 눈맞춤 몇 마디 말 나눔만으로도 성적으로 흥분되니까 난 그 즐거움의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그날 저녁 좀 더 지난 시간에 플로르 카페에서 우리 탁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 한 녀석...

 

되마고 카페가 다시 문을 열자 플로르 카페엔 사람이 전보다 줄었다 카페 내부는 거의 텅 비어 있다

난 거기서 자주 고개를 들어 주변을 봐가면서 파스칼의 <팡세>를 읽는데 그렇게 고개를 들어서 좋은 점도 있다

멀찌감치 술렁대는 사람들 한 패 첨단 패션으로 치장한 정신 나간 여자들 일행의 한복판엔 작디작은 매우 히스

테릭한 처녀

 

나는 양호한 몸상태로 가볍게 그 식당을 나오면서 여전히 다이어트 생각을 하고 빵 한 덩이를 사고 빵이 아주

바삭해서 끄트며리를 조금 뜯어 먹는다

 

15분 일찍 도착했는데 점퍼 차림으로 개봉관에서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당황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 가서 커피 한 잔 마신대도 15분은 못 채울 거라는 생각에(게다가 그 일대의 카페들은 너무도 후줄근했다)

대로를 따라 걸었다 난 플로르 카페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일렀고 만약 거기 간다면 저녁 시간이 너무

길게 늘어질 터였다

 

이 영화에는 일종의 '젊은'(젊음을 우대하는) 인종차별주의 같은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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