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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죄 - 이언 매큐언

by librovely 2015. 9. 29.

 

 

속죄                                                                              이언 매큐언             2003             문학동네

 

이동진이 무척이나 좋다고 한 책이라고 내가 직접 들은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 글에서 본건지 하여튼 그래서

언젠가는 꼭 읽어보리라 생각한 지 거의 1~2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아니 그 이전에 어디선가 이 책 제목을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 같다...

 

도서관 서고에 있기에 못 빌렸었다가 이번에 빌렸다 긴 연휴기간에 읽어야지 하면서...

연휴 전 하루 그리고 연휴기간의 하루 2회에 걸쳐 읽었다 소설은 읽다가 놓았다가 다시 읽으면 앞 내용이

기억이 안나기에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그래도 이 소설은 다른 책들에 비해 등장인물도 단순하고

스토리도 단순하다 그 단순한 이야기를 작가가 아주 세밀하게 풀어 써 놓았는데 그게 실력이겠지...묘사가...

어찌나 섬세한지...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이라고 하는데 그 영화는 분명 극장에 가서 보았는데...오만과 편견의

주인공과 감독이 다시 만나 만든 영화라고 해서 엄청나게 기대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별로였거나 보면서 딴

생각을 많이 했는지 내용이라곤 맨 앞 부분의 브리오니 신과 중간에 키이라 나이틀리가 녹색 드레스 입은 장면만

떠오를 뿐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보고서도 아무 글도 남기지 않았었구나 남자 주인공이

너무 내 취향이 아니라서 더 몰입도가 떨어졌던 것도 같고...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이건 영화보다는 책....

책으로 접하는 게 적당하다는 게 내 생각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아래의 글이나 발췌 부분은 읽지 않는 것이 좋다

모르고 읽어야 한다

게다가 뒷부분에 반전이라는 뭔가 싸구려 표현을 쓰고 싶지는 않지만 하여튼 그런 것도 있다....

난 영화를 보긴 본걸까 전혀 몰랐으니...

 

 

책 많이 읽고 이야기 속 세상에 빠져 살던 브리오니는 자기 집 파출부의 아들인 로비를 좋아하는데

브리오니의 언니 세실리아도 로비를 좋아한다 이걸 깨달은 지 얼마 안된 시점...에서 둘의 관계가 이제서

시작되려는 그 시점에서 브리오니는 정확하지도 않은 것을 진실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서 로비를 감옥으로

보낸다 어느정도 그게 진실이 아닐거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했을거고 거기에 대한 힌트는 뒷부분에 나온다

로비는 왜 브리오니가 자신에게 그렇게 했는지 이해해보려고 하면서 그 기억을 떠올리는데 그건 브리오니가

그 일이 있기 2년 전 쯤이던가 당돌하게 로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던 장면...그렇지만 로비는 그걸

받아줄 그런 상황이 아니었고 그냥 꼬마 여자아이의 철없는 행동으로 느꼈을 뿐이고 그게 브리오니에게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은 많은 브리오니에게는 아마 상처를 줬을거고 자신을 거부했다는 그 기억과

세실리아에게 준 쓰지 말아야 할 내용이 쓰여있던 편지와 세실리아와 로비가 서재에세 달라붙어 있던 것을

목격했던 그런 것들이 뒤범벅이 되어 브리오니는 당시에는 정확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믿어지던 그런 이야기

를 하게 된거고 결국 그게 로비와 세실리아를 갈라놓게 된 것이었다 이런 일만 없었다면 두 연인의 앞날을

그냥 밝기만 한 것이었는데 브리오니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로비는 의대에 갔을 것이고 세실리아와도 서로

모르고 있던 그 마음을 확인한 시점이니 잘 되었겠지...하지만 그 일로 인해 로비는 감옥에 갔다가 전쟁터

에 가게 되고 세실리아는 가족과 연을 끊고 편안한 삶이 충분히 가능했지만 집을 나와 혼자 간호사가 되어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로비를 다시 만날 생각만으로 로비 또한 짧지만 강렬했던 기억을 붙잡고 다시

만날 날만 기다리며 감옥을 전쟁터를 견딘다 브리오니 또한 머리가 크자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게 되었을거고 스스로도 속죄의 의미였는지 간호사의 길을 택했고 고된 삶에 자신을 던지고 사람

들과 연을 끊고 고행하듯이 하루하루 지낸다 그러다가 전쟁의 기운이 영국에까지 넘어오게 되고 눈으로

전쟁의 고통을 확인하며 사는 도중 로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던 롤라와 그녀를 진짜로 건드렸던 남자인

마셜의 결혼 소식을 엄마의 편지를 통해 알게되는데 이걸 알려준 엄마...도 아마 로비가 진짜 그렇게 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그냥 파출부의 아들인데 자기 남편이 의대까지 지원해주겠다고

해서 좀 못마땅해서 그 일을 막아주지 않고 그저 방관한 게 아닐까 그러다가 그 진짜 범인이 그렇게

잘 살게 되는 것을 보자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아닐까 하여튼 그 둘의 결혼 소식을 듣고

브리오니는 결혼식에 찾아가지만 그리고 이 결혼에 이의가 있으신 분 할 때도 그녀는 용기가 없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냥 뻔뻔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진짜 범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왔을 뿐이고...

그 다음 언니를 찾아가는데 언니의 허름한 집에서 잠깐 휴가(?)를 나온 로비를 만난다 둘은 그렇게 잠시

지만 재회를 했던거고 그들을 찾아간 브리오니는 자신이 다시 증언을 번복하겠다는 나름의 최선책을

제시하는듯 하고(이미 편지로도 얘기는 해 두었던 말들) 그런 그녀에게 화를 내지는 않지만 로비나

세실리아는 그녀를 용서하지 않은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다시 브리오니는 간호사의 일을 하러

돌아가고..돌아가면서 브리오니는 증언을 바꾸는 일과 가족들과 연락하는 것에 대해 계획을 중얼거리고

그걸로 소설이 끝이 난다 그리고 1999년 런던이라는 소제목으로 이야기기 시작되는데 브리오니는 유명한

작가가 되어 있고 그녀는 나이가 많아 병원에 가보니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그런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데 그녀는 다시 예전의 그 어릴 적 집에 자기 생일이라서 찾아가고 거기에서 조카들이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연기하는 자신이 그 옛날 공연을 하려다가 못한 <아라벨라의 시련>을 공연한다

그 공연이 아마 다시 그 집에서 있었던 그 날의 일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켰을거고...

브리오니는 자신이 쓴 속죄라는 소설에 대해 다시 언급한다 사실은 이렇다고 사실은 이렇지만

소설 속에서 사실대로 쓸 필요가 있겠느냐고 자신의 행동은 아무리 노력해도 속죄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자신은 노력했다고 소설 속에서라도 속죄하기 위해 둘을 만나게 했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노라고 하지만 자신을 용서하게는 쓰지 못했다고 그럴만큼 이기적이지는 않았다고...

 

앞부분은 그럭저럭 읽었는데 중간에 브리오니가 죽어가는 머리를 심하게 다친 군인을 간호하는 부분

그리고 마지막에 브리오니가 소설과 다른 실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은 정말 슬펐다

1부는 이 소설의 주된 스토리가 전개되고 2부는 로비가 감옥에서 나와 전쟁터에서 살아서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걷는 장면 그리고 브리오니의 간호사로의 삶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정말 리얼하게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줬다 살기 위해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만 하고 지나가는데 널려있는 시체들

그리고 좀 도와주다가 더이상 같이 뛸 수 없어서 놓고 갔고 그 뒤 폭격에 죽게된 아이와 엄마를 바라

봐야하는 끔찍함 전진이 불가능해 생사를 함께 하던 말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쏴 죽여야 하며 자기가

죽을 차례를 담담하게 기다리는 말들...어린 나이에 군대에 들어가 뇌가 상당부분 사라져 정신이 오락가락

하며 살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못한 군인...소설의 의미가 이런 것에 있는거겠지...뉴스에서 한 줄로 나오고

지나가는 그런 일들의 실제 의미 실제 모습...그런 건 이런 소설 속에서 비로소 조금을 알 수 있게 되는거겠지

 

그리고 마지막에 무척이나 담담하게 늘어놓는 브리오니의 소설과 다른 실제 이야기는 그게 너무 담담해서

더 슬프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일이 그렇게 해결되지 못한 채 끝이 나버린 실제 이야기가 얼마나 브리오니의

마음을 힘들게 만들어왔을까 해결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자신의 소설 속에서

그 둘을 살려놓는 것 뿐이었겠지 둘을 다시 만나게 하고 다시 사랑할 기회를 주는 것 그렇지만 그 안에서 조차

자신을 용서하게는 만들지 못했을만큼 브리오니의 죄책감은 심했나보다...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두 명의

삶을 완벽하게 망쳐놓았으니까...

 

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뭔가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말고 읽은 책이라고는 <체실비치에서>

뿐이지만... 둘 다 어떤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그 실수는 어쨌거나 뭐랄까 웃기게 쓰자면 성교육의 부재로 인한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오해가 빚게 된

비극적인 실수?   이 책에서는 그 실수 말고도 어떤 한 순간의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선택이 앞으로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하는데...그건 로비가 세실리아에게

편지를 쓰다가 장난스럽게 상스러운(?)표현을 말미에 붙여버린 순간(나중에 이 편지를 잘못 전달하게 되니까)

그리고 그 편지를 하필 브리오니에게 전달하게 만든 순간 그리고 마지막 순간은 그 사라진 쌍둥이를 찾으러

혼자 떨어져서 나서기로 한 순간...누군가와 함께 찾아다녔더라면 그런 오해를 받았을 리 없지 않은가...

저 세 가지 순간에서 단 한 부분이라도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그들의 미래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 꼭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르지...그 일이 아닌 다른 일로 또 비슷한 결과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왜냐면 브리오니의 저런 거짓말의 가장 큰 원인은 무지로 인한 오해보다는 로비에게 고백한 자신의 마음을

로비가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고 보기에...상상력 풍부하고 감수성 터지는 브리오니가 다른 방법으로

로비에게 복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좀 들기에... 하여튼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에는 한 순간의 오해

한 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함께 행복할 수 있었을 사람을 놓치게 되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인 것 같고 또

해피엔딩이 아닌 것도 비슷하고...누군가가 그 일로 인해 평생을 후회하며 힘겹게 살게 된다는 것도 비슷하고

하루 하루 나의 일상이 내 삶을 만드는 것이듯 한 순간 순간의 별 것 아닌듯한 결정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나도 어떤 순간의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런데 생각해봐도 놓쳐서 회한으로 살만한 일 자체가 시작된 경험도

없는 것 같아서... 내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 인물들을 내가 이겼노라...ㅡ.ㅜ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나를 망쳐놓은 것보다 더 힘든 게 이런거겠구나

내가 나를 망쳤으면 그 결과도 내가 감당하면서 속죄가 가능한데 남을 망친 경우 속죄가 되겠느냐는...

그리고 앞부분에서 대충 대학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세실리아가 떠나야지 하면서도 사실은

별로 떠날 생각이 없다는 부분 그리고 나중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지만 분명했던 로비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순간 아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세실리아가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로비를 좋아하기에 무의식적으로 집에 머물고 싶었던 게 아닐까...로비는 세실리아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서툴러서 오랜만에 만난 그리웠던 세실리아 앞에서 허둥대고 어색한

행동만 보였던거고 그게 사실은 양말에 구멍이 나 있어서 그랬나 아님 신발이 더러웠었나 하여튼 뭔가 숨기려

하다가 세실리아가 로비가 자신을 싫어하나 하는 식의 오해도 하게 만들고 하여튼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 연인

들이 자주 하는 행동은 좋아하는 마음은 진짜지만 자꾸 오해하게 만드는 상황들...자연스럽지 못해서 그렇다

좋아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닌 엉뚱한 짓을 하게 만들곤 하니까 이쯤에서 생각나는 가사 하나...

너 땜에 하루 종일 고민하지만
널 어떡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어 난
그 눈빛은 날 아찔하고 헷갈리게 해
내 이성적인 감각들을 흩어지게 해 
마네킹 인형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색하지
평소같이 하면 되는데 또 너만 보면 시작되는 바보 같은 춤
눈 코 입 표정도 팔 다리 걸음도 내 말을 듣지 않죠
심장의 떨림도 날뛰는 기분도 맘대로 되질 않죠
낭만적인 영화를 난 꿈꿔왔지만
네 사랑은 내 손에 늘 땀을 쥐게 해
남동생 로봇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색하지
어떡하지 고장 났나 봐 숨을 쉬는 방법도 다 까먹었어 나

어색한 게 자연스러운거겠지...자연스럽다면 좋은 게 아닌거다 처음에는 말이지...

저 가사 쓴 사람 많이 허둥댄 기억이 있나보다...

나도 누군가가 마음에 들었을 때 물을 옷에 쏟았던 기억이 난다 그 장면이 하도 바보같아서 여태 생생하게 기억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을 마시기 위해 컵을 들어서 기울였는데 물이 나는 3분의 1쯤 있다고 생각하고 기울였는데

물이 거의 가득 차있었던거고 그냥 주루룩 옷에 반 정도를 쏟아버린거다...근데 쏟아진 것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물 흐른다며 티슈를 집어 줘서 그제서야 내려다보고 그렇게 된 걸 알았다...세상에 이런 상바보가....

이게 싫어서 그런게 아닌걸 왜 세실리아는 모르냐고...좋아서 바보같은 춤을 춘거지....

갑자기 예전에 읽었던 남자를 위해 쓰여졌던 연애 기술(?)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여자 앞에서 일부러 긴장한 척 하고

실수를 하라고...음...아마 그렇게 하면 여자도 마음에 있으면 속으로 내심 좋아할거고 마음이 전혀 없다면 저 사람

마음에도 안드는데 세상에 ㅂ ㅅ 이네...라고 더 싫어하겠지...그래서 그 분이 날 더 싫어하셨던 거군...ㅜㅜ;

 

 

이언 매큐언의 소설 좋다

다 읽어봐야겠다 

이동진이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빨간책방도 찾아 들어봐야겠다

재혼해서 영국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이언 매큐언님 소설 더 많이 쓰세요

이상 항상 빌려보는...서고까지 찾아서 결국 빌려보는 애독자 올림...

 

 

 

 

 

 

 

 

 

 

 

 

 

브리오니의 생활에는 숨겨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흥미롭거나 수치스러운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브리오니에게 특별히 고통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떤 일이 해결되고 난 뒤 먼 훗날 생각해보니 그것이 고통스러웠던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글쓰기는 자기만의 비밀이 생겼다는 짜릿함뿐만 아니라 세상을 축소하여 손 안에 넣는 즐거움까지 맛보게

해주었다 단 다섯 페이지 안에 세상을 그려넣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누군가가 자신을 못떠나게 잡고 있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좋아했다 때때로 그녀는 브리오니를 위해서 혹은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거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했고 집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 끝까지 참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짐을 꾸려 아침 기차를 타고 떠나자고 생각해봤자 별로 신이 나지 않는 것이

었다 떠나기 위해 떠나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는 회의가 밀려올 뿐이었다 지루하지만 안락함을 느끼며

이곳에 머무는 것이 세실리아가 선택한 자기 학대이자 형벌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런 가학적인 일에

즐거움까지 느꼈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었다

 

세실리아는 마셜이 연설을 시작한 후 몇 분간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꽤 괜찮은 외모에 엄청난 부자이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식해 보이는 이런 남자와 결혼을 하면 얼마나 감미로운 자기 파괴가 될지를

생각하며 그녀는 유쾌한 허탈감을 느꼈다

 

대학에 들어간 후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 대다수보다 자신이 영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그는 마음을

구속하던 열등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열등감이 없어졌으니 일부러 오만한 태도를 보일 필요도

없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세실리아는 마음속으로는 짐을 꾸리지도 못하고 꾸리더라도 기차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을 발목이 잡힌 듯 망설이고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어쩌면 떠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몰라 그러나 그녀는 좀더 단호한 어조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낯익은 얼굴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지만 우스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경이로울 뿐이었다

로비는 이 여인 자신이 오래 전부터 알아온 이 소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이 변화가 완전히 자신을

장악했고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출산만큼이나 근원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특별하고 중요한 일이 일어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소리로 어린아이가 발음 연습을 하듯 또박또박 로비 라고 불렀다

뒤이어 그가 그녀의 이름을 속삭였을 때 그녀의 이름은 완전히 새롭게 느껴졌다

철자는 달라진 게 없었지만 그 의미가 완전히 새롭게 변해버렸다

마침내 그는 어떤 저속한 문학작품이나 인간의 위선으로도 깎아내릴 수 없는 세 단어를 그녀에게

속삭였다

 

세실리아를 독차지할 수 없다면 그도 브리오니처럼 혼자서 쌍둥이들을 찾아나서겠다고 이미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앞으로 수없이 인정하게 될 일이지만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기다릴게 돌아와 여기에는 아무리 희박하다 해도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편지와 새 주소가 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생존해야 할 이유였고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독수리처럼 맴돌며 먹이를 기다리는

스투카가 있는 주요 도로를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언제 어디에서도 지난 일들이 그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녀와의 유일한 만남의 기억에 사로잡혔다

1939년 감옥에서 나온 지 육 일째 되던 날이자 앨더샷 근처의 부대로 입대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스트런드에 있는 찻집 조 라이언스에서 만나기로 한 그날 그들은 삼 년 육 개월 만에 서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너는 항상 내 생각 속에 있어

 

어느 겨울날 로비는 코냑에 엄청나게 취해 그애를 총검으로 찌르는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그것은 이성적이지도 않았고 그저 브리오니를 계속 증오하려는 데서 나온 행동이었지만

그에게 힘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육체의 불편과 고단함 덕분에 브리오니의 정신적 시야는 가려져버렸다

매일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으므로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줄었다

 

근무가 없을 때에는 단순한 의학지식을 열심히 머리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다른 일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늦은밤 잠자리에 들기 전 창가에 서서 불이 꺼진 도시와 강을

바라볼 때면 병실뿐만 아니라 저 밖의 거리에도 퍼져 있는 마치 어둠 같은 불안을 기억해냈다

 

명찰과 간호사복 뒤에 숨은 그녀의 진정한 자아가 비밀스럽게 자리하여 조용히 쌓여가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일기장이 그녀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증인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겉으로는 수련 간호사로 행동하며 살아갈지 몰라도 사실은 변장한 위대한 작가라는

긍지를 갖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가족과 집 친구 등 그녀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단절된

지금 글쓰기만이 이전과 지금의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피오나는 자기 앞에 펼쳐진 길을 따라 걸으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겪으면서 그냥 울고 웃으며

살면 되었다 그러나 브리오니에게 주어진 삶은 도망갈 문이 없는 방 안에 갇혀 사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붕대를 완전히 풀어버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조금 푸니까 그 아래에서 멸균 처리된 두꺼운 수건이

피에 젖은 거즈와 함께 미끄러져내렸다 뤽의 머리 한쪽이 날아가고 없었다 두개골이 사라진 주변은

머리카락을 빡빡 밀어놓았다 울퉁불퉁하게 이어진 뼈 아래로 치아머리에서부터 귀 끝까지 닿아 있는

넓이가 3, 4인치는 될듯한 심홍색 해면질의 뇌가 드러나 보였다

브리오니는 그를 마주보았다 이제야 왜 자신을 여기로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물었다

날 사랑하나요?

브리오니는 잠시 망설였다

그럼요

다른 대답을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분명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가족을 멀리 떠나온 사랑스러운 청년이었고 곧 죽을 터였다

 

브리오니는 피오나와 나란히 걸었다

둘 다 말이 없었지만 팔짱을 꼈을 때는 마치 온갖 시련을 다 겪으며 평생을 살고 나서 웨스터민스터

다리를 다시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병실에서 겪은 일들 그리고 그 일들이 그녀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는 말로는 절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랑하기 전에 먼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그 진리를

 

그러나 이제 나는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로비 터너가 1940년 6월 1일 브레이 듄스에서

폐혈증으로 죽었다는 사실은 혹은 세실리아가 같은 해 9월 밸엄 지하철역 폭격으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해에 내가 그들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런던을 가로지르는 나의

도보 여행은 클래펌 커몬의 그 교회에서 끝이 났다는 사실을, 겁쟁이 브리오니는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언니를 마주 대할 용기가 없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병원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연인들이 주고받은

편지는 지금 모두 전쟁박물관 문서 보관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런 일들이 어떻게 결말이 될 수 있겠는가 연인들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했고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누가 믿고 싶어할까 냉혹한 사실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을 빼면 그런 결말이 가져올 장점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그들에게 그런 짓까지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늙었고 너무 겁을 먹었고 내 앞에 남은

삶의 단편들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게다가 내게는 망각이라는 파도가 다가오고 있다 더이상 비관론을

끝까지 지켜나갈 용기가 없다 내가 죽고 마셜 부부가 죽고 마침내 소설이 출판되면 우리는 모두 내 창작물

안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지난 오십구 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를 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고 필요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연인들을 살려두고 마지막에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함이나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이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그럴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아직 그만큼은 아니다

내 생일 축하 파티에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려낼 힘이 있다면... 아직까지 살아 있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서재에 나란히 앉아 <이사벨라의 시련>을 보며 미소 짓는 것으로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우선 잠부터 좀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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