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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 장 폴 사르트르

by librovely 2014. 10. 22.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이학사

 

이 책 제목은 어디선가 들어보긴 한 거 같은데...그런데 읽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든 건 영화 속 대사

가장 따뜻한 색, 블루라는 올해 초에 본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또 다른 주인공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해주었기에 내용이 궁금해졌다 사실 그 영화 때문에 이 책 보다 더 미친듯이 읽고 싶어진 책이 있었는데

수업시간에 같이 읽고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이 된 소설...그런데 그 소설은 아직 한국에 번역되어

출판되지 않았고 궁금해도 읽을 길이 없다... 피에르 드 마리보의 <마리안의 일생> 정말 정말 정말 읽어보고

싶다....영화 속에 나온 그 짧은 구절들도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다...아 궁금해...600페이지? 양도 많던데

언제 출판되려나...출판되면 잘 팔릴 게 당연한데...왜 안하는거지....나만 궁금할까? 이 영화 본 사람은 다들

궁금병이 생겼을텐데...그렇게 입소문 나면 잘 팔릴텐데...600여페이지면 빌리기보다는 사서 읽을 확률도 높고..

불어만 잘하면 프랑스에서 직구하고 싶네... 정말 안 빌리고 사서 읽을게요...출판사 사장님 이 책 좀 출판을...

 

하여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엠마가 자신이 좋아하는 고등학생인 아델에게 권해주는 책이

바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라는 책...나름 실존주의에 대한 책 중 이해가 쉽다며 추천해주길래 어 그거 내가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바로 빌렸는데 그 때 읽고는 여태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서 발췌.... 저 영화에는 여자

동성애가 나오는데 그게 프랑스 사회에서도 되게 드문 일이고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일인 모양이고 그런 사회

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던 엠마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그런 책인셈..

 

책 내용은 복잡하지는 않은 거 같다... 나처럼 뭐가 뭔지 자다가 봉창 제대로 두드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실존주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의 의미로 했던 강연의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펴낸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다른 책 보다는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 거겠지...그러나 막 쉽지는 않음...나에게는...

 

일단 사르트르는 무신론자인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무신론자라는 것을 신경쓰지 않고 읽어도 된다

그게...일단 사르트르는 그런 말을 하는데...이게 사실 나도 가끔 하는 생각이라서...종교가 있는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하다가 무서워서 어딘가 깊숙한 곳으로 밀어넣곤 했을 그 생각...

기독교를 예로 들면 성경이라는 것...그게 진리라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쓴 것이니

성경이 진리다...그럼 그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그게 착가이나 망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아느냐...책에서는 이런 내용을 아브라함의 불안이라며 설명한다

아브라함이 들은 음성이 천사의 음성인지 아닌지 자신이 아브라함인지 아닌지 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난 종교가 있지만...어쨌거나 이런 이야기에 대해 그렇지 않다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얼마 전 간증을

듣고 돌아가는 길에 동행인에게 간증에 나온 그 음성을 들어서 이렇게 했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나는

솔직히 이해를 못하겠다  그냥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나 그 뜻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건 사실 교만 아닌가? 그 음성이 하나님

음성인지 아님 자기 그냥 생각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니 동행인은 그게 내가 믿음이 없어서

이해를 못하는 것이지 자신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니 그게 느낌이 온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하니 이를테면 자신이 전혀 생각못할 생각들이 기도 중 떠오르기도 한다 그게

네가 체험이 없어서 그래...뭐 이러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고...저런 식이라면 더 이야기해도 답이 없네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아...하여튼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어쨌거나 인간은 뭔가 스스로 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건 확실한거다...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서 신의 음성을 듣는다고 해도 그것도 사실 자신이

신의 음성임이 확실해...라며 결정하고 선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니까...

 

사르트르는 그래서 기존에 주어진 진리란 없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보통 우리가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종교 경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도 인간이 받아 적은 것이니 인간이 선택한거라는 이야기를...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같은 성경을 놓고도 다른 해석을...하여튼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라고 하는데 그건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인간이 무엇인지를 정한다는 것...즉 세상에 던져진 인간은 어떤 존재라는

정해진 진리는 없는거고 그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에 의해 자신의 본질이 결정되는 것이라는 이야기

내가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건 나 또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에 인간이라는 종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것에도 기여한다는 그런 이야기...

 

그리고 또 강조하는 게 행동...각종 핑계 따위는 의미가 없다...행동에 의해서 나의 실천에 의해서만 본질이

결정된다는 것이다...이 이야기와 앞서 말한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내가 기여하는 부분을 합해보면 연대라는

것이 떠오른다...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도 감독이 다소 노골적으로 강조했던 그 행동의 중요성 그리고

연대의식

 

동성애를 다룬 영화에서 사실 그 설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게 이 책의 내용과 통하는 것 같다

정해진 건 없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 누가 말할 수 있나 그건 자신 스스로 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인류에 영향을

주는 것이고 그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성경책에 동성애는 죄악이라고 써 있다고? 그 성경은 누가 썼는데?

하나님의 임하심을 입어 썼다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증명하지? 모든 자기 생각이나 사회에 만연한 사상을

아무 생각이나 의심 없이 반성 없이 신이 그렇게 말씀하셨어...라며 값싸게 던져버리고 너는 왜 그렇게 사니?

하면 내 운명이 이래...아니면 내 상황이 이래서 그래...라며 책임감을 던져버리고 환각에 빠져 사는 인생에 대해

네 꼴은 결국 다 너의 책임인거야...네가 결정한거야 라고 말하는 느낌이...그러니 실존주의가 불편함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난 기독교인이지만...

사르트르의 책이 불경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원래 진리란 생각해볼수록 의심할수록 더욱 진가가 드러나고 명확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원래 진리라는 건 없다고 사르트르가 말씀하셨지만...하여튼...닥치고 믿어~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종교라는 건 과학으로 증명이 불가능하고 내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는 생각한다

다만...누군가가 네가 믿는 신이 이렇게 하라고 했어 인간은 이래야만 하는 존재라고 자의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해보아야 한다는 생각...그런 방향으로 실존주의는 기독교인에게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그래야 더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아주 쉽게 생각해보면...중세시대에는 마녀사냥이 옳은

일이었잖아...그리고 설교시간에 들었던 거 같은데... 성경책도 여러 권이 있었는데 그 중 골라낸 것이라는

이야기도... 물론 성경책에 있는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님 탄생 뭐 그런 걸 의심하겠다는 건 아니고....

 

음...그렇다면 절대적인 규범이란 없는 것일까...그런 생각도 드는데...

일단 살인하면 안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그런데 존엄사? 안락사 문제나 뭐 낙태에 대한 것들...

뭔가 상반된 의견을 가진 문제들 앞에 서면 우리는 모두 실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건지도...

어떤 문제에 대한 나의 생각은 결국 내가 선택한거고...그게 나를 규정하고 인류를 규정하는 게 되는 셈이고?

불과 몇백년 전만 해도 흑인은 백인에게 동물처럼 부리고 지배할 존재로 인식되었었고 그때는 그렇게 인간의

본질을 선택한거고 지금은 한 명 한 명의 행동과 참여로 그런 이상한 짓이 많이 개선되었고 (인종차별은 존재함)

인류가 생각할수록 더욱 괜찮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결국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 되는 걸수도 있겠다

근데 휴머니즘이 뭐지?

사전 찾아보니

박애 정신을 바탕으로 인종, 국적,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사상  

라고 나온다...그러네...실존주의가 휴머니즘이 맞네...실존주의는 지금 주어진 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다시 생각해보고 스스로 내린 결론에 맞게 행동하라고 하는거니까...그래서 자신의 옳은 생각을

인류 전체에게 퍼트리자 뭐 그런 거 같다... 옳든 그르든 그게 다 운명이고 인간이란 사회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거다...라는 비관주의 자기 스스로의 객체화...인간 소외보다는 실존주의는 참으로 긍정적이고

희망찬 휴머니즘인거구나... 그리고 결국은 신이 원하는 상태의 인간의 본질에 가까워지게 만들어 줄거라고

난 그렇게 생각....난 기독교인이니까~  사르트르 말대로 실존주의는 신의 존재 유무를 벗어난 문제인거다

 

맞게 읽은건지 내가 뭔소리를 하는건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재밌게 의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

나는 내 삶을 통해 어떤 것들을 앙가제하고 있는걸까? 어떻게 기투하고 사는 걸까?

내가 선택한 인간의 본질 내 행동으로 만들어 낸 인간의 본질은?

인간은 더럽게 이기적이고 화가 나면 폭식하고 남의 뒷담화나 하는 존재...

망했네 망했어...나같은 경우 참여의식 따위는 도그를 주는 게 인류에 덕을 쌓는 방법이 되겠구나...

또 다른 방향의 앙가제....

인간의 짝짓기 시기를 확 늦추는 방향으로?  아마 나의 실존적 불안 조성의 가장 큰 원인은 저거겠지...

때 되면 그냥 적당한 아저씨 만나 적당한 아줌마로 살아야 한다는 진리(?) 앞에서 나는 자유롭게 그냥 되는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결혼 못한 아줌마로 늙어가고 있는데 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였기에

이 세상의 많은 노처녀들과 연대의식을 가지며 우리가 좀 더 정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데는 기여했으나 나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건가 하는 불안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또 사르트르가 한 말 중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이 꼴이다라는 건 도그소리라는...상황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그 모양이라서 그렇게 된거라는데 뭐 딱히 할 말은 없구나..ㅜㅜ

 

어쨌거나 이 책은 누구나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그래도 일반적이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내 생각대로 해도 되나 아님 다른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일반적이라고 하는 것에

맞춰서 그냥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냥 니 맘대로 살아...니 본질은 니가 결정하는 거란다...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든 의미 있는 책이고 누구든 실존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결론...

 

홍상수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퐁주의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에서 따온 제목이었구나

 뒷부분 토론 부분은 안 읽어보았다...아껴두었다(고 해두자.,.)

 

제대로 이해한건지 미지수지만

어쨌든 좋은 책!

 

 

 

 

 

 

 

 

 

 

 

 

 

 

 

 

강연의 상황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무기력한 또는 냉소적인 인물로 보였다

사르트르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특히 내 소설 속 인물들을 힘들 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이 그들의 명철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인지를 알며 또 그 무엇이 되기를 선택한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 말은 인간이 먼저 세계 속에 실존하고 만나지며 떠오른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 정의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라는 것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구상하기 위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 뿐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주체성이라 부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존주의의 첫걸음은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인가에 대해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존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

인간은 모든 인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뜻

우리 각자 스스로를 선택하며 모든 인간을 선택한다는 것을 뜻함

 

만약 내가 체념하면 이때 나는 나 자신의 경우에만 앙가제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를 앙가제한 것이 된다

내가 결혼해서 자식을 갖기 원한다면 일부일처제의 길 위에서 인류 전체에도 또한 앙가제하는 것

스스로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인간을 선택하는 것

이런 사실이 불안 홀로 남겨짐 절망 같은 약간 과장된 말이 지닌 뜻을 이해하게 해준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곧 불안이라고 즐겨 선언한다

자신을 선택함과 동시에 인류 전체를 선택하는 입법자이기도 한 사실을 인식하는 인간은 결코 자신의 전적이고

깊은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많은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만 앙가제한다고 믿지만 이런 그들에게

만약 모든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되지? 라고 물어야 한다

 

키에르케고르가 아브라함의 불안이라고 불렀던 불안

한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 이 말을 한 천사가 정말 천사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 천사가 정말 천사일까? 내가 정말 아브라함일까? 무엇이 내게 이것을 증명할 것인가

음성이 지옥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온 것이라고 무엇이 증명할까?

결국 나는 나 자신을 납득시킬만한 어떤 증거나 증표도 찾을 수 없다

그 음성이 천사의 목소리라고 결정할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우리는 실존주의지가 기술하는 이런 종류의 불안이 타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에 앙가제한다는 사실

 

하이데거가 즐겨 쓰는 홀로 남겨짐을 거론할 때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딱 하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실존주의자는 가능한 한 값싸게 신을 제거하고자 하는 세속적인 도덕의 유형과는 반대된다

실존주의자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매우 거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지 가능한 하늘 속에서 가치들을 발견할 모든 가능성이 신과 더불어 사라지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더이상 선천적인 선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라고 썼고 이것이 실존주의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

퐁주는 그의 매우 아름다운 글에서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 라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이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나를 진정 떠미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어떤 말은 그 일을 했을 경우에만 할 수 있는 말이다

 

징표의 해독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홀로 남겨짐은 불안을 동반하는 것

사람이 무언가를 원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개연적인 요소가 존재하는 법

 

정적주의 그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타인들이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

내가 제시하는 독트린은 정확하게 정적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왜냐하면 이 독트린은 오로지 행동 속에만 실재가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

이 독트린은 멀리 나아간다

인간은 자신의 기투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인간은 자기 스스로 실현하는 한에 있어서만 실존한다

따라서 자신의 행위 전체와 자신의 삶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런 둑트린이 몇몇 사람에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이유는...

그들은 종종 그들의 비참함을 참아내는 단 하나의 방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이 좋지 않았어 나는 그때 내가 그랬던 것보다 더 가치가 있었는데 말야

내가 위대한 사랑을 갖지 못한 이유는 그럴만한 남자나 여자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야

아주 좋은 책을 쓰지 못했지만 그런 책을 쓸만한 여가가 없었기 때문이지

말하자면 실존주의자에게 있어 이루어지는 사랑 말고 다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사유가 자신의 삶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혹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오로지 실재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주며 꿈 기대 희망은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정의한다는 것을 이해시켜준다 하지만 우리가 너는 너의 삶과 다른 것이 아니야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예술가는 오로지 그의 예술작품에 의해서만 평가되리라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이것은 낙관적인 엄격함이다 무기력하고 약하며 비겁한 존재들까지도 묘사하는 우리 소설 작품을 사람들이

비난할 때 이 비난은 단지 묘사된 존재들이 무기력하고 약하며 비겁하거나 나쁘기 때문만은 아니다

졸라가 자기 소설에서 그랬듯 환경과 사회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다고 묘사하지 않고 이 비겁한 사람이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비겁한 것은 비겁하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비겁한 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겁한 기질이란 없다

 

실존주의는 정적주의 철학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인간을 행동을 통해서 정의하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비관적이지 않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의 운명이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점에서 이것보다 더 낙관적인 이론은 없기 때문

실존주의는 인간의 행동 의욕을 가라앉히는 시도도 아니다

실존주의는 오로지 인간의 행동 속에만 희망이 있다고 말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살아가도록 하는

유일한 것은 곧 행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가 인간을 그의 개별적 주체성 속에 가두어버린다고 비난한다

대단한 오해다

우리의 출발점은 실제로 개인의 주체성이 맞다 그리고 그것은 엄격하게 철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진리위에 기초한 독트린이기 때문..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진리 말고 다른 진리가

있을 수 없다 

 

실존주의는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이론이며 인간을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 유일한

이론이다  

상호 주체성 타인은 나의 실존에 필수적이다

보편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선택함으로써 보편적인 것을 건설한다

 

선택은 사실 한 방향으로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택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선택을 할  수 있다

설령 내가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나는 여전히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린 예술가에게 그가 선천적으로 성립된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고 비난한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예술가가 그려야 할 그림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반드시 그렇게 그려야 할 것으로 정의된 그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예술가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 자신에게 앙가제한다는 것

그려야할 그림이란 정확하게 말해서 예술가 자신이 그리게 될 그림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사실

또 선천적인 미학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예술과 도덕 사이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두 경우 모두에서 우리가 창조와 발명을 본다는 점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선천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이다

 

실존주의는 결코 인간을 목적으로 취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콩트 식으로 우리가 찬미할 수 있는 그 어떤 인성이 존재한다고 믿어서도 안된다

인간은 계속해서 인간 자신의 밖에 있다 자기 자신 밖으로 스스로를 기투하고 자기 자신 밖으로

스스로를 잃어버림으로써 실존할 수 있다  그가 초월적인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실존주의는 일관된 무신론적 입장으로부터 모든 결과를 끄집어내려는 노력과 다른 것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결코 인간을 절망 속으로 밀어넣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비신앙의 태도를 절망이라고 부른다면 실존주의는 근원적인 절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힘을 쏟는 그런 의미의 무신론이 아니다

신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 실존이 결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관점이다

신이 실존한다고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신의 실존 여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인간 자신을 되찾아야 하며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

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

기독교인들이 자신들 고유의 절망과 우리의 절망을 혼동한 나머지 우리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들의 자기기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