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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체실 비치에서 - 이언 매큐언

by librovely 2015. 8. 5.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2008            문학동네

 

속죄...

영화 어톤먼트 원작 소설...이동진이 예전에 빨간책방에서 엄청 강추날린 책인듯 하기도 했고

또 어디서봤더라? 하여튼 대단한 작품이라는...꼭 읽어봐야할 책으로 머리에 넣어둔 그런 책....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읽어보고 싶었는데 서고에 있었고 그래서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보니 아예 없다고 했나

어쨌거나 아쉬운 마음에 이언 매큐언의 다른 책이라도 읽어보자 하며 얇고 제목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근거 없는

생각에 빌려왔고 읽은 지 거의 한 달은 지난 책

 

이언 매큐언은 영국에서 살고 있는 작가 48년생이니까 60대의 나이구나 이 책은 그의 나이가 거의 60살이 되었을

때 쓴 책인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번역본을 읽은거긴 하지만 표현력이...어떤 상황에 대한 예리하고 독특한

표현...묘사가 인상적이다...이야기도 되게 묘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뭔가 특이..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치밀하고 세밀하고 하여튼 좋았다...여러가지로 특이해서 이게 뭐지 이러면서 읽음...

 

어찌보면 스토리는 단순하다 1년 정도 사귄 남녀...여자는 상대적으로 집안이 부유했고 바이올린 연주자였나?

남자는 집안이 좀 불우했는데 그렇다고 그런 것에 그다지 개의치 않았고 앞으로 자신의 삶은 희망차게 펼쳐질

거라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남자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예의바름 그런 것들에 끌렸던 것 같고

남자는 뭐에 끌렸더라? 플로렌스는 단단한 골격이고 아이큐가 상당히 높았다고 했나 물론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그는 그녀를 좋아했을거라고도 한다 그런 게 좋긴 하지만 그게 좋아하는 이유는 아닌거라고...이거 참 괜찮은!

너의 이러이러한 점이 좋은데 그렇지 않았더라도 좋았을거야...그냥 좋은거지...존재 자체가 좋은 것

 

둘은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고 어쩌면 정말로 문제가 없었던 거다...

그 시대는 아주 보수적인 시대라서 성에 관련된 것들은 뭔가 금기시되고...그래서 더 무지했을 것이고...

그게 오해를 낳은거고... 그녀와 그는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는 설명으로 스토리가 시작되는데...

잘 교육받았다는 게 여러가지 의미일 수 있는거겠지...비판적 사고가 높아질 수도 있는거고 반대로 그 당시

주류 사상이 그대로 주입된 경우도 있을 수 있던거고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쨌

거나 둘은 특히 플로렌스는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그 당시의 보수적인 사상에 젖어있었던거고 불필요한

두려움이 있었던 거고...사실 그게 보수적인 당시 분위기가 아니더라도 뭐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고..

거기에 배려심 있고 자제력 강한 에드워드의 성향이 더해져서 어찌보면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낸 건지도...

 

모든 게 완벽했고 둘은 정말로 끌렸고 사랑했고 특히 플로렌스의 마음은 정말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남자로 좋아하는 것 이상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사람이 좋은 그런 마음...이게 뭔소리...ㅎㅎ

그리고 결혼식도 그 이후의 해변에서의 식사도 로맨틱하기 그지 없었는데 첫날밤이 문제였던거고...

무지로 인한 오해로 그리고 어색함과 그로 인한 혐오감으로 인해 플로렌스는 화를 내서 에드워드를 민망

하고 자존심 상하게 했고 자신은 싫으니 다른 여자와 자라는 자기 나름의 해결책(?)까지 제시하며 황당하게

만들었을 뿐이고...에드워드는 이런 그녀의 반응에 일단 거부당했다고 오해하고 기분이 나빠졌고 그녀가

그런 이상한 성향이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속였다고 오해하고...에드워드도 무지하긴 마찬가지

였던거다...하여튼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용서하기 힘든 감정에 휩싸인거고...아마 자신의 마음이 컸던

만큼 배신감 또한 컸기에 그렇게 극단적인 결말로 치닫게 된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둘은 그 날을 마지막으로 헤어지게 되었던 거고...(읽은 지 오래 되어서 기억이 잘 안난다...)

 

사실 둘은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거다...서툴기 때문이고 잘 몰라서 그런거겠지...그런데 그걸로 서로 오해하고

그 소중한 감정을 체실 비치에 내동댕이친 채 남은 인생을 각자 살게 되고....나중에 에드워드는 그 날의 일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녀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자신이 더 사랑해주고 기다려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된다...그 날 그렇게 흘려보내지 말고 그녀를 잡았더라면 그녀에게 시간을 줬더라면 둘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거고 둘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날 기회를 얻었을거고...소설에서는 에드워드의 후회만 드러나는데....

아마 그 신혼여행지에서 선을 그어버린 건 그였기 때문일거다...플로렌스는 에드워드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해보려 나름의 최선을 다했던거고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고 그에게

실수를 했던거고 그래서 그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뛰쳐나간거고 나중에는 자신과 결혼해서 살되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져도 된다는 그녀로서는 전혀 유쾌하지 않을 제안까지 했던거고 그런 행동과 말들이 그녀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한거고 그에 대한 깊은 마음이 전제된 일이었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뒤늦게 깨달았던 거겠지...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와 그렇게 결혼을 망친 후 숱한 연애를 경험하고 자유롭게 살았던 모양이다...

플로렌스가 주지 못했던 것들을 맘껏 누린 그였지만 그게 마음을 채워주지는 못했던거다...

물론 그것도 중요할 수 있었겠지만 그게 본질? 핵심?은 아니었던거고...진짜 마음...진심을 준 건 그의 인생에서

그녀 뿐이었다는 것을 뒤는게 알게 되었던거다...그리고 그녀 또한 조금만 기다려줬다면...충분히 가능했던

일인거고...아무 문제가 없었을텐데...그랬다면... 자신의 전존재를 인정하고 좋아해준 그녀와 함께 인생을

살아나갔을거고 자신이 진짜 원하던 그런 일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나 보다...

 

결국 사랑 이야기...

미안해 에드워드 진실로 미안해...마지막으로 플로렌스가 에드워드의 곁을 지나가며 한 말....

진짜 감정이라도 저렇게 허무하게 끝이 날 수도 있는거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자신이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 있을 때는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지나고 보니, 성숙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그 때 그 감정이 진짜였어...이런 후회를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끔찍하기도 하다...

아니 그래도 그런 놓친 일이라도 있는 편이 아무 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

 

서로를 몰라서 서로의 입장을 몰라서 놓쳐버린....

가끔 떠오르곤 하는 영화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의 대사가 또 생각나는 시점이구나...

부탁이야 내가 되어봐 잠시만...

나는 너야...

그랬더라면 에드워드는 플로렌스를 그렇게 흘려보내지 않았을텐데...

 

 

 

 

 

 

 

 

 

 

그들은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둘 다 첫날밤인 지금까지 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요즘에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시절은 성문제를 화제에 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던 때였다

 

이 시대에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제약이자 엉뚱함의 표상이었고 결혼을 해야만 비로소

그 치료가 시작되는 당황스러운 질병과도 같았다 새로운 인생의 정점에 경이롭게 나란히 선 그들은

서로 거의 이방인이나 다를바 없었지만 이제 막 획득한 지위 덕분에 끝없는 청년기로부터 해방되어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오르리라는 기대에 함께 들떠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에드워드가 통과할 수 있도록 무슨 입구나 응접실로 변신해야 하는 것일까

플로렌스는 자신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남들과 사뭇 다른 자신의 실체가 이제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이제 곧 남자와 살을 섞게될 것이라는 사실에 그녀의 온 존재가

저항하고 있었다 그녀의 평온함과 본질적인 행복이 곧 파괴될 참이었다

그녀는 무조건 싫었다 그녀에게 기쁨을 더하는 요소가 될 수 없었다 기쁨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일

뿐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독특했다 지금껏 그녀가 만났던 누구와도 달랐다 그는 줄을 서거나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을 대비해 재킷 주머니 속에 늘 문고판 책 주로 역사책을 넣고 다녔고 몽당연필로 읽은

부분을 표시해두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의 왕성한 호기심 은근한 시골 말씨 엄청나게 센 손힘 이야기

도중에 삼천포로 빠지는 엉뚱한 말들 그녀를 대하는 상냥한 태도가 무척이나 좋았고 그녀가 말할 때마다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갈색 눈을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다정한 구름에 폭 싸이는 느낌을 주었다

 

그에게 플로렌스의 수줍음과 얽힌 긴 역사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존중하다 못해 경외하기에 이르렀고

일종의 내숭 즉 풍부한 성적 본능을 감추는 관습적인 배일로 착각했다 그것은 그녀의 복잡하고 난해한

성품의 일부이자 고귀함의 증거였다

 

두 사람은 이제 각자의 불안에 사로잡혀 계속 식사하는 시늉만 내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왜 이다지도 소심하고 순진했을까 그들은 운명을 믿기엔 스스로 너무나 세련됐다고

생각했지만 그토록 중요한 그들의 만남이 우연을 통해 이루어진 게 틀림없고 또 분명 그것이 수백 가지의

작은 사건들과 선택들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여전히 하나의 패러독스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민망하거나 사리는 마음 없이 일 분여 동안 다른 성인의 눈을 계속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들에겐 아직도

새롭고 현기증 나는 경험이었다 그는 이제 그들이 **에 아주 근접했다고 생각했다

 

기억은 제멋대로였다 기억은 그녀가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것을 떠올려 냈다

그녀는 그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당신이 어떤 사람일까 호기심이 생겼었지

 

그녀는 사랑에 빠짐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유별난지 나날의 생각 속에 갇혀 사는 자신의 습관이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 역시 자신이 느끼는 이 고통스러우면서도 달콤한 분리감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인생이 그 진정한 이야기가 어서 시작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서 떠날 날을 계속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이미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삶이며 자기는 아무 오캐스트라의 한직이나 꿰차고 앉아

그래도 한자리 얻었다고 자위하며 허송세월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 풍요로워서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하고 나면 매번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이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 크리켓 구장에서 시골집까지 산책했던 기억이 일 년이 지난 지금 결혼 첫날밤에 에드워드를 비웃고 있었다

어스름 속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던 그는 그때와는 정반대의 감정이 자신을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다

온힘을 다해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그녀에 대한 가장 관대한 생각을 붙잡아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걸 다 접고 그냥 포기할 것만 같았다

 

달과 조수 평소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물리적 세계의 무정한 법칙과 작용은 그의 처지에 떨끝만치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지나치게 자명한 사실은 너무도 가혹했다

어떻게 혼자서 아무 도움도 없이 헤쳐나갈 것인가 그리고 분명 그녀가 있으리라 추측되는 저 해변으로

내려가서 그녀의 얼굴과 어떻게 마주한단 말인가

 

그는 불평하지 않고 끈기 있게 버텼다 한마디로 예의바른 멍청이였다 다른 남자들 같았으면 더 요구했거나

떠났을 터였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자제하느라 애쓰던 끝에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중요한 순간에 실패했지만

그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긴 싫었다 바로 이거였다 그는 이 모욕을 거부했고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게 다 그녀 잘못인데 실망해서 악을 써대다니 방에서 뛰쳐나가다니 참으로 괘씸했다

그는 그녀가 키스하는 것 만지는 것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둘의 몸이 닿는 것도 싫어했고

심지어 그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관능적이지 않았고 욕망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녀는 그가 느끼는 것을 결코 느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에드워드는 너무도 쉽게 치명적으로 다음 단계를 밟았다 그녀는 이 모든 걸 알고 있었고 그를 속였던 것이다

그녀에게 남편이 필요한 까닭은 존중받기 위해서거나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거나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방식대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녀 자신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그에게 숨겼다 그녀는 정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전혀 없었다 문제가 있는 건 그녀였고

그녀뿐이었다

 

그녀는 사랑에 빠져 있고 싶었고 그녀다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다워지기 위해선 그녀는 늘 안돼라고 말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면 그녀는 더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상적인 삶의 반대편인 병적인 삶 쪽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녀는 갑자기 그들의 문제가 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너무 예의발랐고 너무 경직됐고 너무 소심했고 까치발을 든 채 서로의 주위를 빙빙 돌며

중얼거리고 속삭이고 부탁하고 동의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고 그럴 수도 없었다

침묵에 가까운 사교적인 배려라는 담요가 그들을 결속하는 만큼이나 그들의 차이를 덮어버리고 그들의

눈을 멀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그녀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려 할 때마다 종종 하던 식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말을 정말로 믿은 적도 결코 없었고 그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가 주지 못할 게 뻔한 뭔가를 그가 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안해 에드워드 진실로 미안해

 

그는 사주 침대에 누워 남은 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끝없는 순환의 무아지경 속에서 상념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난무했다

그와 결혼하고 그러고 나서 그를 거부하다니 기괴한 짓이야

그녀는 내가 다른 여자와 자길 원한다고 했어

 

일 년쯤 뒤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녀를 찾아가지도 편지를 쓰지도 못했다

플로렌스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까봐 두려웠고 그녀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자 그렇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유명했던 십 년이 끝을 향해 치달을 때쯤 그의 삶이 혼동을 방불케 하는 수많은 연애뿐 아니라 그 모든

새로운 흥분과 자유와 유행의 압박을 받던 시절에 이따금 그는 그녀의 이상한 제안에 대해 생각했다

이젠 그게 그렇게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확실히 역겹지도 모욕적이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든 여자든 그녀의 진정성에 필적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녀 곁에 머물렀더라면 그는 자신의 삶에 좀더 집중하며 의욕적으로 살았을지도 모르고 또 젊은 시절

꿈꿨던 그 역사책 시리즈를 집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그녀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싶었다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는 그 여자를 자신이 그렇게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

이었다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며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 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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