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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에밀 시오랑

by librovely 2014. 5. 31.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에밀 시오랑                        2013             챕터하우스

 

쉽지 않은 정신상태인 요즘 폐허의 철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는 작가의 책을 집어든 건 과연 잘한 일일까?

그리 잘한 일은 아닌 것 같다...읽으면서 잠이 쏟아졌는데 그게 쉽지 않은 내용 때문만은 아닌...

뭔가 회피의 방어기제...

 

 

앞부분을 읽는 데 뭔가 만신창이가 되는 이상한 느낌이...

뒤로 갈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그래도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글이 산만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 이해력 떨어지는 내 탓이겠지...

 

 

앞부분에서 계속 하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같았다 

메멘토 모리

난 이걸 너무 세게 해서 문제인듯...내 머리 속 어딘가에는 항상 죽음...이 자리잡고 있다

자살하고 싶어...뭐 이런 게 아니라...난 언젠간 죽고 그 죽음이 그리 멀지도 않다는 생각...

인간이 살아봤자 몇 년이겠어...이런 생각을 안하려면 몰입할만한 그러니까 저자의 말대로 하자만 열광할 게

있어야 하는데...저자는 그 열광할 대상으로 이성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그게 맘대로 되나요...

 

 

읽어볼만한 책이다

세상이 너무 밝고 아름다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책도 읽어봐야 함...

난 안 읽어도 되는 인간일지도....

괜히 읽었어...ㅡㅡ;;

 

원작 제목 그대로 절망의 끝에서...를 제목으로 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거의 은둔하며 살아온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80살도 넘게 살다가 자연사한 것 같다...

실존주의가 뭔지 모르지만 그런 것과도 좀 통하는 것 같고 저자는 일도 안한 채 파리대학 구내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살아간 모양이다...자세한 삶이 궁금해짐...

 

이 책은 23살 쯤에 쓴건데 그래서 그런지 이 허무하고 부조리한 삶에서 사람이 열광을 느끼며 살 수 있는

방법은 남녀간의 사랑에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뭔가 의외였지만 그런가보지 뭐...내가 어찌 알겠어...ㅜ

 

 

 

 

 

 

 

 행복의 극치에서 스치듯 강렬하게 죽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

이는 마치 사랑을 막 느끼기 시작하는 불안한 순간에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나 버림받을 순간을

예감하는 연인들의 심정과 같다

그러한 경험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적다

죽음에 대한 끈질기고 두려운 생각을 의식 속에 두면 인간은 파멸한다

 

주관적 경험이 가장 생생한 이유는 삶의 본질과 만나기 때문이다

실상 가장 깊고 생생한 내면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이 서정이다

 

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겠다

왜 친구 갈망 희망 꿈을 가져야 하는 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소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은둔하는 편이 백 번 낫지 않을까

 

무엇인가를 겪고는 살 수 없는 경험들이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하는 경험들이다

그래도 살고 있는 것은 끝없는 긴장을 객관화하면서 진정 시켜주는 글쓰기 덕분이다

창작은 죽음의 마수에서 우리를 일시적으로 구원한다

 

건강한 사람들은 정신적 삶을 변호한다

삶의 고뇌를 경험한 적도 없고 존재의 본질이 모순이라는 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은 졸렬한 자들만이 갖는 특권이다

그들만 정상적 온도에서 살 수 있으며 나머지는 격렬한 내면의 불로 소진한다

 

죽음은 이미 삶 속에 내재하므로 삶 전체가 거의 죽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평범한 사람의 생활은 죽음을 의식하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삶이 긴 죽음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을 천진난만함의 틀에서 떼어내어

그 무가치함과 무의미함을 폭로하고 삶 자체의 부조리한 본질로 다가가는 것이다

 

내게 삶은 형벌이지만 나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명분에서든 나 자신을 희생시킬 만한 절대적 가치를 믿지 않으니까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왜 내가 계속 살고 있는지 왜 내가 삶을 중단하지 않는지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증오 절망 혼돈 허무 혹은 사랑을 강렬하게 느끼며 각 경험마다 자신을 소진하고 죽음으로 향하는 사람들

절정 상태 외에서는 숨을 쉴 수 없고 특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항상 고독한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직선적 변화를 따를 수 있으며 체계의 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왜 슬픈지 알고 있지만 왜 우울한지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나는 벌써 혼자가 아닌가

사람됨을 포기하는 것은 내게 일상의 갈망 너머 이상 너머에 아마도 초의식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베풀어 줄 것이다

나는 영원에 도취되어 세상의 허무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존재가 비존재만큼 순수해지고 영적이 되는 도취상태 그것을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완벽한 사랑에 대한 욕구는 필연적으로 파괴에 이를 수밖에 없다

내가 경탄해 마지 않는 인간의 범주는 둘뿐이다

어떤 순간에도 미칠 수 있는 사람과 매 순간 자살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진실로 나를 감동시키는 이들은 현실의 한계와 끊임없이 접촉을 유지하는 사람들뿐이다

 

삶에 대한 맹목적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인위적 방법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삶의 비이성적 힘들과 단절하지 않고도 초연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아함뿐이다

우아함이란 삶의 순진무구한 매력과 무질서한 리듬이 생생하게 유지되는 사심없는 충동이며

쓸모없는 도약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본질적 형태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성간의 사랑은 순수한 성욕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즉 그 풍부함을 쉽사리 알아챌 수 있는 정서적 상태의

총체를 함축한다 신을 위해 자연을 위해 예술을 위해 자살한 사람이 있었는가?

사랑이란 개별성 구체성 유일성을 띨수록 그만큼 강도가 높아진다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그녀의 존재를 특별하고 유일하게 만든다

지극한 사랑의 순간에는 아무것도 그녀를 대신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열광이란 모든 난관을 이기고 목적은 안중에도 없이 자발성과 활동력을 즐기므로 실패를

모르는 의미나 유용성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달리 어떻게 할 수 없어 행동에 뛰어드는 것을 말한다

열광이란 죽음의 의식이 전혀 침투하지 못하는 유일한 존재 형식이다

 

순간을 온전하게 체험하고 그 매력에 빠져 들어가는 것

이는 시간을 무효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되기 위해 너무 많이 일한다

일이란 쾌락의 탈을 쓴 저주이다

계속해서 꾸준히 일하는 것은 사람을 평범하게 만들고 바보로 만들며 몰개성하게 만든다

일은 개인적 흥미의 중심을 주관적 영역으로부터 무미건조한 객관적 영역으로 이동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나 내적 변화에 관심을 잃고 아무것에나 매달린다

 

인간에게는 모두 같은 단점이 있다

살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순간을 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실존은 도덕이 중단되는 곳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설령 장애물이 현실적 실행을 방해한다 해도 바로 거기서만이 모든 것을 시도하고 모든 것을

걸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허락되는 영역에 도달하려면 무한히 많은 해탈이 필요하다

도덕을 초월해본 그러한 인간은 최고호 관대한 인간이다

습관을 합리화하고 삶을 도식화하는 도덕은 관대함과 양립할 수 없다

관대한 행위는 비상식적이다

자신의 저열함과 무가치함을 감추기 위해 도덕으로 휘감고 있는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체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