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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 정여울

by librovely 2019. 10. 6.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정여울         2017                 민음사

 

재미있게 읽었다 큰 기대 안했는데 글이 좋았다

읽지 않은 책도 나오지만 읽는 데 무리가 없었고 이 책을 읽고 나서 찾아 읽으면 될 일이었다

좋은 책이다

문학 책을 많이 읽어서 남의 인생도 경험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책장을 덮었다...

결심만한 듯...ㅜㅡ

 

 

 

 

 

 

 

 

문학작품 속에서 나를 매혹시킨 주인공들은 어딘가 나와 닮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다

완전히 똑같은 상처는 아닐지라도 뭔가 상처받는 마음의 패턴이 비슷한 존재들에게서

나는 피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상처란 이렇다 극복하려고 애쓸 때는 꿈쩍도 안 하다가 때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르르 극복된다

 

치유는 행복한 상태로 곧바로 나아가는 것이라기보다 행복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상태에 가깝다 무너진 결혼 생활을 억지로 재건하기 위헤 싫어도 꾹 참고 사는 것이 치유가 아니라

그 없이도 홀로 설 수 있음을 깨닫고 과감히 이별을 선택하는 것이 더욱 치유적일 수 있다

행복한 사람보다 주체적인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의 진정한 목적이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지 않아도 좋다 행복도 불행도 우울도 불안도 그 자체로 견디고 묵상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치유의 징후다 진정한 치유란 급작스러운 해피엔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향한

오랜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니까

 

이 소설의 제목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이별의 인사 아듀가 아니라 만남의 인사 봉주르다

슬픔의 세계로 입문하는 순간 우리들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슬픔에 굴복하지 않고 슬픔 속에서 더 깊은 생의 진실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바람직한 인간관계란 과연 무엇일까 좌충우돌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잠정적 결혼은 이렇다

인간관계란 거리 두기의 기술이 아닐까

평생의 트라우마 그것은 바로 그 중국인과 자신의 비밀스러운 관계였다

정말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거리를 둘 수가 없다

하지만 상대를 위해 또 자신을 위해 우리는 언젠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도록 거리를 내어 주고 내가 내 마음을

보살필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부디 엄마들이여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한 것을 아들딸에게서 받아내려 하지 말자

우리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인생 내부에서만 얻을 수 있으므로

때로 사랑이란 이름의 올가미는 지독한 보상심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의 속내를 우리는 평생 이해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편은 아내의 비밀을 몰랐고 아내는 사랑의 비밀을 몰랐다 버지니아 울프의 <유산>

 

그의 머리가 세기 시작한 지금 그는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안나 세르게예브나와 그는 아주 가깝고 친밀한 사람처럼 남편과 아내처럼 절친한 친구처럼

서로를 사랑했다 그들은 서로를 운명이 맺어 준 상대로 여겼다  그가 왜 결혼을 했고 그녀가

왜 결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두 마리의 암수 철새가 잡혀 각기 다른 새장에서

길러지는 것 같았다 그들은 과거의 부끄러웠던 일들 현재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 용서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자신들을 바꿔 놓았음을 느꼈다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건강한 사람은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모자라면 어때 이게 바로 나야 하고 웃어 넘길 줄 안다

자신의 그림자를 돌보지 않는 사람 콤플렉스와 페르소나와의 거리를 생각해 보지 않는 사람은

이상적인 자아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곧 자기라고 생각해 버린다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외모나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거나 사회적 지위와 체면에 대한 강박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이 싫어 사회생활을 기피하곤 한다 이와 반대로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회생활을

기피하는 소셜포비아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내가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치부는 차라리 못 본 척 하고 싶듯이

이상 <날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피하기 알아채지 못하게 놓치기 상처받지 않도록 말 돌리기 그냥 받아 넘기기와 같은

형식으로 삐걱거리는 순환을 빠져나가는 방편 이것이 바로 패싱케어다

남편이 아픈 자신과 함께 있는 것보다 자신의 직업적 성취를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자 앨리스는 절망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서로를 믿고 살아왔던 그들의 결혼생활 전체에 위기를 느낀다 질병만큼 무서운 것은

바로 이런 관계에서 느끼는 절망이다 <스틸 앨리스>

 

나는 그토록 사랑했던 강아지가 죽었으니 최소한 사흘은 잠도 못 잘 것이고 밥도 안 먹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날 바로 잠이 쏟아졌다 배도 맹렬히 고파 왔다 어른이 된 후 더욱 뼈아픈 상실의 슬픔을 겪었을 때에도

또 다시 맹렬하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내가 싫었다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상으로 복귀했다고 해서 슬픔의 의례가 끝난 것이 아니다 장례식 등의 사회적

의례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기나긴 내면의 애도가 시작된다 상실의 슬픔은 산사태처럼 한꺼번에 존재를

휩쓸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낙숫물이 매일 바위에 떨어지듯 천천히 마음에 거대한 상실의 구멍을 만든다

매일매일 나를 깎아 내고 부서뜨리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갔다

<가든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