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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프레데리크 그로

by librovely 2014. 10. 20.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레데리크 그로              2014            책세상

 

신간코너에서 보고 그냥 제목과 책 표지에서 괜찮을 거 같은 느낌이 왔다....슬쩍 펴보니 편집상태 좋음

읽어보니 아,...재미있다  기대보다 더 재미있다...읽은 지 거의 한 달도 더 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홍대 와우북 페스티벌에 갔을 때 책세상 출판사 코너에서는 이 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아...책세상에서 미는 책이군.... 책세상은 뭔가 수준있는(?) 나름 가치있는 책을 펴내는 것 같다...

돈보다는 가치...를 추구하는 출판사라고 머리에 인식이 되어 있으나 나는 그런 회사의 고퀄 서적을 빌려서 보네...

 

걷기에 대한 책이다

걷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작가나 철학자 등 걷기를 즐긴 유명인들의 일화를 언급하며 책이 진행되기에

참 재미있다...니체...부분에서는 되게 마음이 아팠다...토리노의 말이라는 그렇게 보고싶은데 못 보고 지나간

영화 제목도 있더니,,.그게 그런 내용인가?  마부에게 얻어맞은 말을 부여잡고 펑펑 울던 니체...이 때는 니체가

정신을 놓은 그 시절이었을거다...니체의 글은 이해도 잘 못하지만...하여튼 뭔가 니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는 것 같은데...이상한 일이지...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의 책 내용도 이해 못하면서도 뭔가 마음이 간다는 게

그리고 니체랑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게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화가일 거 라고 여겨지는 고흐...

둘 다 뭔가 죽기 전에 정신이 완전히 놓아버린 것도 비슷하고 하여튼 되게 아주 심각하게 불쌍한 느낌이 들면서도

또 어따대고 비교냐고 할지 모르지만...니체가 발 밑의 심연을 본듯 친구에게 매달려 울어댄 부분에서는...

뭔가 나도 그 심연을 본 듯한 느낌이 뭔지 아주 약간은 알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드는게...이 증세는 보통 일요일

오후 할 일이나 딱히 고민거리가 없을 때 찾아드는데...하여튼 이상하게 허무의 구렁텅이로...보면 안되는 어떤

무서운 것의 근처를 슬쩍 본 것 같은 그 느낌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여튼 걷기에 대한 이야기를 유명인들의 독특한 삶과 연결지어 들려주니 참 재미있다

걷기란 뭔가 벗어나는 것인가보다 집에 틀어박혀 내 소유물들 그리고 남이 나를 어찌 바라볼지 의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빈손으로 훌훌 모든 것을 놓고 잠시나마 걷는 그 순간 자유를 느낄 수 있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고

제대로 현존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걷는다는 행위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인간은 걷도록 만들어진

것인듯 하고 많은 유명인들은 걸으면서 비로소 생각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난 사실 걸으면서 어떤 생각에 몰두

하게 되지는 않고 오히려 앉아 있을 때 생각하게 되고 걸으면 무념무상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걸으면 잘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아마 맞겠지...걸으면 혈액순환이 잘되고 뇌에도 산소가 잘 공급이 되는건가?

 

책을 읽으면서 걷기를 여행이라는 단어로 바꿔도 아무 어색함이 없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사실 여행은 어쩌면 걷기를 대대적으로 하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여행갈 때 가장 먼저 신경쓰는 게 편한 신발이고

실제로 여행할 때 엄청나게 걸어다니게 되고 그러면서 별별 안하던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그렇게 심신을 모두

충분히 사용한 상태로 하루를 기분좋은 피로감에 마무리하면 푹 잠에 빠져들게 되고...그런 과정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저런 것이 어쩌면 여행의 참된 즐거움이 아닐까? 아 인간이 이렇게 하루 하루

생생하게 즐겁게 기대감에 차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쓰다보니 여행가고 싶네

 

실제로 이 책에서는 여행 혹은 순례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한다 그것과 걷기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겠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걷기는 산책인거고 어느 기간동안 대대적으로 걷기에 빠져 사는 건 여행 그리고 거기에

종교적 색채가 더해지면 순례가 되는 것이겠지... 평소 걸음을 많이 걷긴 하는데 그게 다 트레드밀 위에서인

내 삶이 비참하게 느껴졌다...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산책했을 거리처럼 예쁜 거리가 우리집 주변에는

없다...보기 싫은 너저분하게 번쩍이는 간판이나 각종 음식 냄새의 진동 자동차 배기가스 이런 걸 보면서 걷는 건

진짜 걷기가 아니라는 생각이...걷기 좋은 거리나 산책로가 조성된 그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가본 나라는 정말 매일 산책해도 좋을만한 거리가 많았는데...우리나라는 어쩌다가 거리가 이 꼴이 된건지..

우리 동네만 이런건가...개천도 있긴 하지만 거긴 너무 단조로워서...재미가 없는데...역시 일상에서 걷기 좋은

곳은 주말이면 자주 기어 나가는 그 동네들이구나...명동에서 종로에서 광화문에서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

혹은 홍대 앞과 합정 상수...여기는 주말이면 너무 붐비긴 하지만... 근데 저런 동네는 집 값이 비싸구나...

역시 산책도 돈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는건가? 소유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 위해 산책을 하려는 건데

그걸 제대로 하려면 돈이 있어서 괜찮은 동네로 이사가야 하네...ㅋㅋ

그냥 집 근처에서 그나마 눈 아프지 않은 길로 내 산책로를 한번 뚫어(?)봐야 겠다...

 

책을 읽으면서 여행을 가는 이유 중 하나가 신나게 마음껏 걸어다니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다음에 언제 여행을 갈지 모르지만 그때는 정말 신나게 마음껏 걸어다녀보고 해가 저물어 가며 하루가

다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자연과 함께 하루를 보내고 알싸한 피로감에 노곤해진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들어보고 싶다

 

 

 

 

 

 

 

 

 

 

 

그냥 산책만 해도 우선 멈춤의 자유를 얻게 된다

이런저런 걱정거리가 안겨주는 부담을 덜고 잠시나마 일을 잊을 수 있는 것이다

먼 길을 며칠씩 걷다보면 일탈의 움직임이 한층 더 강해진다

 

걷다보면 어떤 사람이 되어 하나의 이름과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싶다는 유혹을 하나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된다

우리는 두 다리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짐승 키 큰 나무들 사이의 순수한 힘 한 번의 외침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순간

모든 것이 풍성하게 주어진다 현존의 힘 그 자체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름 나이 직업 경혁 등 우리가 지옥에서 살았다는 걸 보여주는 오래된 특징들을 떠올리는 순간

바로 모든 것이 다 가소롭고 사소하고 덧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니체

니체는 특히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게 열광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디오게네스의 글에서는

제도 너머의 인간이 보인다는 것이다

 

많이 멀리 걷고 깊은 고독에 빠지기로 한 것이다

만일 어딘가에 작은 집이라도 한 채 가질 수 있다면 여기서처럼 하루에 여섯 시간에서 여덟 시간씩

걸으며 깊은 생각에 잠길텐데 그리고 그 생각을 종이 위에 단숨에 써내려 갈텐데

 

나는 아침에는 평균 한 시간 오후에는 평균 세 시간씩 정상적인 걸음으로 항상 같은 길을 걷는다네

 

오버베크는 토리노로 급히 달려갔다

토리노에 도착한 그는 피노라는 사람의 작은 셋방에서 겨우 니체를 찾아냈다

셋방 주인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니체는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부에게 두들겨 맞은 말의 목에 매달린 채 오랫동안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며 여기저기 되는 대로 걸어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장광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자기가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장례 행렬을 따라가기도 했다고 한다

오버베크가 방으로 들어가 보니 니체는 안락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최근에 쓴 글의 교정쇄를 얼이 빠진

듯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치켜뜬 그는 자신의 평생 친구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친구에게 매달려 울었다 오버베크는

꼭 자기 발밑에 열린 심연을 본 듯했다 라고 썼다

니체는 미쳐버렸다 미쳐버린 니체는 바질 병원에 입원했다 결국 그의 어머니가 집으로 니체를 데려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을 때까지 인내와 사랑을 다해 7년동안 씻기고 보살피고 위로하고 산책시키고 돌보았다

니체는 자신을 침묵 속에 한층 더 격리시켰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등이 서서히 마비되어 갔다 자신의 손을 몇 시간 동안 바라보거나 책을 거꾸로 든 채 중얼대며 투덜거렸다

어쩌다 한 번씩 결국 죽었어 라든지 난 머리카락을 심지 않아 이젠 빛이 없어 라고 말할 뿐이었다

 

천천히 걸어야 할 날들은 무척 길다 이런 날들은 걷는 사람을 더 오래 살게 만든다

 

 

랭보

그는 멀리까지 여행하고 싶어했고 홀로 방에서 언어들을 배웠다

1876년 그는 빈도 지나지 못하고 한 마부에게 두들겨 맞아서 서류도 없이 반쯤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1891년 무릎이 굽혀지지 않았다 무릎 위를 잘라냈다 나는 목발을 하나 주문했다... 걸어볼 겁니다

랭보는 다시 떠나기로 결심한다 마르세유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에 입원했다 여행이 그를 완전히 무너

뜨렸다 랭보는 난 지금 의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나고 싶으니까

그의 몸 전체가 경직되면서 마비되었다

 

 

정말 혼자 걸어야 하는 것일까?

누군가와 동행하면 어쩔 수 없이 부딪치고 방해하고 헛걸음을 해야 한다 걸을 떄는 자신의 기본 리듬을 알아내어

그것을 유지해야 한다 기본 리듬이란 각자에게 잘 맞아서 열 시간을 걸어도 지치지 않도록 해준다

 

 

루소

루소는 자기가 걸어야만 정말로 생각하고 구성하고 창조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단언한다

나만의 도보 여행에서만큼 많이 생각하고 많이 존재하고 많이 체험한 적은 결코 없었다

감히 말하건대 이 여행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결코 없다

 

호모 비아토르 걷는 인간

그의 걷기는 세상과 번뇌로부터 멀어지고 고독으로써 자신을 정화하고 하늘에서의 운명을 준비하고자

사막으로 가서 걷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손에서 나온 인간을 절대적인 원시인을 자기 속에서 다시 발견

하기 위해서 걷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어떤 역할을 할 필요도 없고 어떤 지위에 있지도 않으며 어떤 인물 조차도 아니다

걷는 동안 세계는 더 이상 현재도 미래도 갖지 않는다

그저 아침과 저녁이 반복될 뿐이다

 

소로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자네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 대신에 이걸 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만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다면 그 일을 그만두게 왜냐하면 그 일은 삶의 필연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그 누구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네

누군가 우리를 대신하여 일을 해줄 수는 없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걸어줄 수는 없지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이것일세

 

서너 시간 몸이 만족할 만큼 오랫동안 산책을 하던지 동물들 숲 속에서 벌어지는 빛의 유희

호수에 비치는 깊고 푸른빛 같은 자연의 정경을 공짜로 원없이 즐기는 것

그냥 검소하게 살아갈만큼 돈을 벌려면 1주일에 하루 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외에 일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 하찮은 것 호사스러운 것을 얻고 필수품을 탕진하기 위해서다

정확히 계산을 해보면 내 집을 유지하는 데는 28달러가 조금 넘게 들 것이다 라고 소로는 말한다

 

노동은 부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가난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가난은 부의 반대가 아니다

가난은 부의 보완물이다

부는 청산하기보다 획득하기가 훨씬 쉬운 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책을 읽는 데 할애하는 것과 같은 시간을 글을 쓰는 데 할애하기로 결정한다

에머슨에 따르면 소로는 걷기에 걸리는 시간과 똑같은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한다 문화와 도서관이 파놓은 함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책은 우리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살고 싶은 욕구 다른 식으로 살고 싶은

욕구를 제공한다 즉 삶의 가능성과 그것의 원칙을 우리 안에서 발견하고 싶은 욕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책은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을 또 다른 삶으로 옮아가도록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중세시대 때 순례자라는 것은 법적 자격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배낭은 필요한 것의 대부분을 신에 대한 믿음에서 얻을 수 있기에 좁아야 하고 고행을 상기시킬 수 있도록

짐승 가죽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항상 맞바꿀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몇 달 동안 비를 맞고 추위에 시달리거나 타는 듯한 태양 아해서 걸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견디기 힘든

시련이 아닐 수 없었다 피로는 더러움을 씻어내고 자만심을 타파한다

오래 걸어서 굳은 살이 박인 두 발과 먼지로 뒤덮인 옷가지가 증언하는 겸허함으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성인에게 말한다

 

 

견유주의자의 발걸음

일체의 타협 결혼 위계의 존중 강한 물욕 이기주의 남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 비열함 습관 악덕 탐욕

등의 관습이 야유받고 조롱당하고 진흙탕 속으로 끌려간다

 

방랑자라는 상황이 일으키는 두 번째 체험은 날것의 체험이다

디오게네스는 살아있는 닭을 먹으려다가 죽지 않았는가?

음식에만 날것 상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언어도 날것이고 그들의 태도도 날것이다

 

바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호통치던 디오게네스에게 어떤 사람이 고깃살이 붙어 있는 뼈다귀를

개에게 던져주듯 집어 던졌다 디오게네스는 후다닥 달려들어 그걸 집어 들더니 게걸스럽게 뜯고 나서

연회장으로 돌아와 식탁 위에 올라가고는 흥청망청 놀고 있던 자들에게 오줌을 누었다

여러분들 나는 여러분들처럼 먹고 여러분들처럼 오줌을 쌉니다

 

 견유학파 철학자는 부도덕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인간들이 자연에 대해 말할 때 교육과 습득한 가치

위선으로부터 얻어내는 모든 것을 고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그것의 생물학적 기능을 긍정할 뿐이다

오내하면 자연은 책상물림 현인들에 의해 사회적 관습과 문화적 도식을 전달해주는 통로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곳을 슬그머니 지나간다 날것은 혁명적이다

 

세 번째로 견유학파 철학자는 확실하게 밖에서 산다

그에게는 거처가 없다 그는 외투를 몸에 덮고 구덩이 속이나 성벽 옆에서 잠을 잔다

이 야외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전통적인 구분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적인 것은 익숙해진 열정의 내밀함과 욕망의 비밀 벽의 보호 소유를 의미한다

공적인 것은 야망과 명성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경쟁 타인들의 시선 사회적 정체성을 뜻한다

인간세상 밖에 존재하고 야유를 하고 빈정대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서로 겹쳐 놓는다

 

어느 날 디오게네스는 손바닥을 모아 물을 마시던 소년을 보고

디오게네스 너는 너보다 더 강한 자를 만난 것이다! 라고 말하고 별로 든 게 없는 바랑에서 나무 잔을

꺼내 멀리 던져버렸다 그는 행복했다 또 다시 짐을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유용한 것의 범위를 넘어서 정복된 이 필요품은 궁핍의 의미를 뒤바꾸어 놓는다

 

그 어느 하나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은 부자다

견유학파 철학자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몸을 눕힐 수 있는 땅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발견하는 먹을거리 지붕을 연상시키는 별이 총총한 하늘

유용한 것과 무용한 것을 훨씬 뛰어넘는 꼭 필요한 것은 문화적 사물들의 세계가 돌연 인간을 소외시키고

빈약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높은 산을 오르는 등산은 불순하다 자기도취적 만족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

걷는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가장 근원적이고 자연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기 몸을 느낄 때의 그 단순한 즐거움

아이가 첫발을 떼는 모습을 보라

 

걷는다는 행위 저 너머에는 충만함으로 이해되는 존재의 즐거움도 있다

하루 종일 걷고 나면 두 다리를 쭉 뻗고 그냥 실컷 먹고 편안한 기분으로 갈증을 풀고 끝나가는 하루를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랭보의 시 전문

나는 너무너무 행복해서 두 다리를 식탁 밑으로 쭉 뻗었지...

배가 고프지도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고 고통스럽지도 않은 몸은 그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단순히 스스로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가장 크고 순수하고 강렬하며 절대적으로 소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산다는 즐거움 그것은 자기가 여기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의 현존과 세계의 현존이 이루는 조화를 맛보는

즐거움이다 유감스럽게도 너무나 자주 너무나 오래전부터 우리는 충만함이 재물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

사회적으로 얼마나 더 인정받느냐에 좌우된다고 믿게 만드는 나쁜 이미지들에 매달렸다

 

 

제라르 드 네르발

네르발의 작품에서는 많이 걷는다 산책하고 기억하고 상상하고 노래하면서 자기 자신을 데리고 다닌다

희귀한 육필 원고를 발견하고 존재할 법하지 않은 가계도를 만들고 누락된 게 있는 이야기들을 재구성

하느라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뒤마가 이름을 붙여준 것처럼 쓰기가 불가능한 책을 오랫동안

쓰거나 그냥 필사하고 몇 명 안되는 친구들을 찾아가고 저녁에는 극장에 가서 오직 한 여인(멀리서 바라

보며 열렬히 사랑했던 여배우 제니 콜롱)을 욕망했다 그리고 틈틈이 산책하고 방황했다

그는 무척 어둡고 더럽고 외진데다가 상당히 좁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비에유-랑테른 거리에 도착한다

뒤마가 말했듯 한밤중에 이곳에 간다는 것은 지옥으로 내려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살

그것은 되찾았으나 견디기 힘든 명철함에 대한 쓰라린 감정일까 아니면 정신착란의 극단적인 섬광과

그것의 완성일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왜 걷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칸트

니체와 비슷하지만 그 강도는 다르게 칸트는 글쓰기와 독서 외에 오직 두 가지에만 관심을 두었는데

바로 산책의 절대적 필요성과 먹는 것이었다 니체와 칸트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니체는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걸었으며 그가 걷는 길은 길고 때로는 가팔랐다

그리고 마치 은자처럼 거의 먹지 않았으며 약한 위를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애써 단식 횟수를 늘렸다

반면에 칸트는 왕성한 식욕으로 먹었고 과음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마셨으며 오랫동안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상당히 신경을 썼다 그의 산책은 쩨쩨하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는 땀 흘리는 것을 잘 견디지 못했다

 

새벽 5시면 잠에서 깨어 아침을 대신해 몇 잔의 차를 마신 다음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12시 반까지 일하고

글을 썼다 다시 옷을 차려입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과학 철학 날씨 얘기를 나누었다

반드시 요리 세 가지와 치즈 때로는 몇 가지 디저트 그리고 포도주 작은 병 하나씩 준비해 늘어놓고 손님을

맞았다 이들은 오후 5시까지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고 나면 산책을 할 시간이었다

날씨가 좋든 좋지 않든 산책은 반드시 해야 했다 혼자 산책했는데 길을 가는 동안 입을 꼭 다문 채 코로

숨쉬기 위해서였다

항상 같은 길을 다닌 칸트 덕에 공원 안으로 나 있는 이 산책로는 훗날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정도였다 평생 딱 두 번 길을 바꾸었다 루소의 <에밀>을 일찍 손에 넣기 위해서 또 한 번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보를 얻으러 가기 위해

산책이 끝나면 밤 10시까지 책을 읽고 나서 자리에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번밖에 하지 않았다

 

 

재기발랄한 여성들 대부분은 뤽상부르 공원이나 튈르리 공원에서 산책하는 걸 좋아하는데

이곳에 가면 새로운 남자를 매일같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예쁜 여자들처럼 여기서는 자연스런 발걸음으로 걸으려 하지 말아야 해요

신비롭게 보이기 위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제게만 말해야 하고 쾌활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웃어야 하고 언제 어느 때라도 목구멍을 보여주어야 하고 눈이 커 보이도록 동그랗게

떠야 하고 입술은 물어뜯어서 붉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답니다

<파리 산책>

 

산책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여기로 와서 자신들의 키와 얼굴을 경매에 부친다

바로 여기서 그들 모두가 서로를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가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파리 산책>

 

 

피로와 점진적 도취 상태로 도달하는 정신의 초연함

피로해진 정신은 두 발의 피로에 반항하는 것을 잊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