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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불안의 사회학 - 하인츠 부데

by librovely 2016. 6. 19.

 

 

불안의 사회학                                           하인츠 부데                       2015                    동녘

 

독일의 탁월한 사회학자라.... 잘 썼겠네...하며 빌렸다.. 불안이라는 단어나 사회학이라는 말도 구미를 당김

불안은 항상 느끼는 것임... 마음이 안정된 편안한 상태인 적인 태어나서 있었을까? 없었던 거 같다

항상 뭔가 불안한 거고 그게 사는 것인듯... 다만 그 불안의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책이 뭔가 읽었을 때 아주 정돈된 머리에 쏙 들어오는 구성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발췌한 걸 다시 읽어

보니 내용이 좋구나....진짜를 써 놓음....역시 여러 책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자유로 인한 불안함도 언급

되어 있고... 외부지향성에 대한 내용도 끄덕이게 만들었다...기준이 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밖에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있을 때 그건 노예 상태나 마찬가지라고...근데 그 노예상태가 사실 불안감을 줄이는

데에는 개꿀임...남들이 옳다 너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해주니까 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거야 식의

불안감을 줄여주는 것으로는 효과적인....그렇지만 그게 쭉 가면 좋지만 어느 순간 이게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올 것이고...물론 그게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 계속 남의 시선 열심히

의식하다보면 바쁘니까...남들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정해준대로 하나 하나 밟아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까 정신없이 흘러가는거고...그러다보면 죽을 날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끄덕끄덕...그러나 무섭다....음....사실이지만 안 그랬으면 좋겠네...근데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니까 무서워할 필요도 없는걸지도....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나는....ㅋㅋㅋ ㅜㅜㅜ

자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독한거래요...아무리 사귀고 사랑하고 그래도 말이죠...뭔가 위안이 되네..껄껄

그리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이고 평생을 약속한 사이라도 결국은 어쩔 도리 없는 타인인거고...별 다른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듯 아무 이유 없이 사랑이 식을 수도 있는거고 사랑 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인간

관계란 언제든 깨어질 수 있는거고 의식적으로 끝내고 마음가는대로 거절할 수 있는 것에서 자아효능감

을 느낄 수 있다는데....나는 과연 어떤가 생각해봤다...음...나는 거절을 못하는 인간인가? 아니...전혀....

거절 되게 잘 함...보기 싫은 사람을 보고 산 일은 없음...근데 거절할 일이 없었어...ㅋㅋㅋ 보기 싫은

사람이 나에게 치대는 일이 없음...그 반대의 경우는 좀 있었던 듯...?? 이라고 쓰고 잠시 울자...ㅋㅋㅋㅋ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나에게 상처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라는 게 아....섬뜩하면서도

너무나 맞다는 생각이...그런 의미에서 나는 참으로 인생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도...사랑이라는 거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그것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거다...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인듯...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힘이 너에게 있고 그 힘을 나에게 휘두를 수 있음을 인정해버리는 거

쉽지 않구나....

 

블링키 팔레르모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뮤지컬과 크리스마스 장터를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 문장 맘에 들었다...ㅋㅋㅋ 나는 뮤지컬을 싫어하기에....음...그래...설치미술 따위를 좋아하면 뮤지컬을

싫어할 수도 있는거지...취향이라는 게 딱 맞긴 힘들지만 그래도 뭔가 경향성은 있는 거 같다...이런 취향이

맞다면 이런 이런 부분도 맞을 확률이 높은 뭐 그런식으로....

 

누가 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냐는 것

하나의 관계가 이뤄질 때 선택받는 것도 선택의 일부를 이룬다

자신이 상대에게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이 부분... 내가 강제 무성애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그냥 갖다 쓰면 될듯...ㅋㅋㅋㅋ

 

사람은 끈끈한 유대관계 없이는 잘 살 수 없는듯 하다 하지만 이런 유대 관계는 우리를 불안에

빠뜨릴 수밖에 없는데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끈끈한 관계가 될수록 타인에게 어느 부분 종속되어버리는 문제....으

 

가족 사회학에서 오늘날의 가족은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삶의 형태를 띤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가족을 형성하는 이유는 아버지 어머니 두 가문의 정신적 신체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섹스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두 사람의 사랑에 어떤 의미를 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양쪽 모두 결코 끊어지지 않는 관계인 아이를 얻기 위해서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이 부분은 영화 더 랍스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둘의 관계가 약해지는 시점에서 투입되는 아기...

이 세상의 모든 관계 중 절대 끊어질 수 없는 관계로 1등이 부모 자식의 관계가 아닐까...그리하여...

아기는 부부 그리고 가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존재로도 큰 의미가....라고 쓰면 사이코같지만

그런 면이 없지 않다...정도로 인정하고 넘어가야지.... 자녀를 낳는 문제를 더 생각해보자면...음

사랑하면 무조건 둘 사이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걸까? 꼭 그래야 하는 걸까? 이런 소리를 누군가에게

하면 미친거 아냐? 하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이건 너무나 당연시되는 그런건데...음....

 

사람들은 마치 큰 불안을 피하기 위해 광장의 좁은 통로 앞에서 작은 근심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불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딱 한 뼘 정도만 열어볼 수 있는데 문 뒤에 있는 공간의 벽들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고 바닥은 텅 비어 있어서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펼치는

전력이 자아에게는 되려 잔인할 수 있다 요가를 배우고 인생 코치와 대화도 나누며 좋은 주말을

보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무섭지만 끄덕거리게 만드는 부분... 살아남기위해 헛헛하지 않고 나 잘 살고 있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기 위해 요가를 배우고 선배와 대화도 나누고 강연도 찾아 듣고 이런저런

뭔가 가치있다는 것들로 주말을 채워봤자....뭔가 부족하다는 느낌...허~~~한 느낌은 어쩔 수 없이

찾아온다는....음...나는 정말 그렇더라고...근데 이제 그냥 이걸 받아들이기로 했다...일요일에 특히 입을

쩌억 벌리는 허무의 구렁텅이에 나는 그냥 매주 굴러떨어지고 다시 조금씩 기어나오고 그러고 있음...

 

하이데거가 말한대로 근원적 고독을 받아들이고 내 내면에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서 사는 게 답인 거

같은데.... 쉽지 않지...쉽지 않다...그래도 조금씩 노력해봐야지....음...사는 게 좀 무섭게 느껴지는구나...

고독을 끌어안아야 해...인생 혼자 와서 혼자 처 가는 게 맞는듯.....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어쩔 도리

없이 그래야 한다는 거니까 또 조금은 위안이 되는....ㅋㅋㅋㅋ 

 

 

 

 

 

 

 

 

 

한 줌의 먼지 속에서 공포를 보여주리라

T. S. 엘리엇

 

불안이란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있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에 낙담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불안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안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그 누구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다

불안은 그것을 이야기함으로써 가장 잘 해소할 수 있다

사회이 구성원들은 불안이라는 개념으로 공동체의 상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시민들은 두려움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주체적 결정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

키에르케고르

 

대중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삶을 벗어나지는 않았는지 불안해하는 마음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될지 모른다는 위협

 

다양한 방향으로 향하면서도 동시에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리스먼은

심리적 나침반이라고 부른다

만일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낯선 세계에서 찾기 위해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사회에서 성공하여

행동의 지침이 되었던 고향을 떠나면 필연적으로 불안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시각이 넓어진다는 것과

스스로의 가치를 믿는다면 이는 용기있다는 의미이다

내부 지향적인 성격은 자신의 견해를 넓히고 양심을 점검하려고 애쓴다

 

외부지향성

또래 집단들의 판단에 흔들리고 최신 유행과 대세에 영합하며 의심이 들 경우 부딪히고 저항하기

보다는 입을 다무는 편이다 게다가 고독하고 지친 순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바람 때문에

정작 자신은 억눌려 있으며 노예가 되어있다고 느낀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자기 삶의 기분이 결정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무엇을 생각하는지 이런 상상이 사회적 불안의

원천이 된다

 

불안이 드러나는 양상을 보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아와 타인의 관점이 뒤죽박죽 섞임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에는 절대적이며 극복하기 어려운

경계선이 존재한다 이와같은 역설적 체험은 성행위를 한 뒤에 비애감을 느끼는 상태와 같다

담배를 피움으로써 상대방과 하나가 되었다가 다시 분리된 느낌을 속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까

자아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고독하다는 게 진리인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 맺어지는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란 언젠가는 서로 헤어질 조건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순간적으로 깨닫는 사람은 큰 비애를 느낀다

의식적으로 끝을 내고 마음 내키는 대로 거절 가능한 이른바 소극적 자유는 대체로 오늘날의

자아가 지닌 자유의 근원을 이루고 있다

자아는 거절함으로써 자기효능감을 강하게 경험한다

 

그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지만 우리의 반려자는 늘 타인으로 머물러 있다

사랑의 관계란 자유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상대는 나처럼 그 어떤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또는 크게 실망해서 나를 거부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나를 홀로 두고 자신의 자유를 찾아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연인관계 역시 근본적으로 깨질 수 있다

 

사랑이라는 무모한 모험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심지어 그 힘의 사용을 허락하는 것일까

 

취향 사교성과 삶의 목표라는 질문에 대해 공통적인 대답이 나올 수 있다면

블링키 팔레르모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뮤지컬과 크리스마스 장터를 좋아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블링키 팔레르모 - 독일 설치작가) 비록 두 사람 모두 부엌 용품은 이케아에서 구입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누가 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냐는 것

하나의 관계가 이뤄질 때 선택받는 것도 선택의 일부를 이룬다

자신이 상대에게 유일무이하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게 하는 사람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귀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런 노력은 사귀게 될 경우에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끝난다

 

알다시피 나만 상대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상대도 나를 선택해야 한다

 

가족 사회학에서 오늘날의 가족은 아이들에게 집중하는 삶의 형태를 띤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가족을 형성하는 이유는 아버지 어머니 두 가문의 정신적 신체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섹스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두 사람의 사랑에 어떤 의미를 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다 오히려 양쪽 모두 결코 끊어지지 않는 관계인 아이를 얻기 위해서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함께 애를 키우지만 배우자로부터 채워지지 않은 바람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은둔할 수도 있다

소위 행복한 가족의 삶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비슷하다

 

사람들은 관계가 폐기될 수 있다는 강박 때문에 더욱더 애착 관계를 맺고자 한다

마지막에 가면 그 누구와도 자신의 삶을 나눌 수 없다는 불안을 안고 어떻게 살겠는가

사람은 끈끈한 유대관계 없이는 잘 살 수 없는듯 하다 하지만 이런 유대 관계는 우리를 불안에 빠뜨릴

수밖에 없는데 나의 자유가 타인의 자유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큰 불안을 피하기 위해 광장의 좁은 통로 앞에서 작은 근심을 붙들고 있는 것 같다

불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딱 한 뼘 정도만 열어볼 수 있는데 문 뒤에 있는 공간의 벽들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있고 바닥은 텅 비어 있어서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펼치는

전력이 자아에게는 되려 잔인할 수 있다 요가를 배우고 인생 코치와 대화도 나누며 좋은 주말을

보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밤에 깨어났는데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식은땀이 흐른다

외부지향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추려고 하지만 이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갑자기 텅 빈 것 같은 공허감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은 바로 외부지향적인

특징을 가진 사람들의 양면성이다 아니오 라고 거절하는 게 어렵기 때문인데 사실 그들의 예

라는 답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이 거기에 동의하는지 알기 전에 나오는 대답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나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사소통에 능하고 협력하는 데

익숙한 자아는 의심이 들 경우 자신이 정해둔 목표와 계획보다 흐름에 따르는 것을 더 중시한다

하지만 불안의 다른 측면 즉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뭔가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는 측면에서 불안하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저마다 삶에서 중요한 결정은 살다보면 뒤늦게 깨닫게 된다

 

키에르케고르는 현대적 현상으로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가야 함을 깨달았다는 것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은 자아를 불안으로 몰고가는데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우리 존재는 우리 스스로가 되어야 하며 결국 無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하이데거에게 불안은 반드시 부정적인 개념만은 아니다 불안은 죽음을 향한 존재인 인간일지라도

타인 및 타인의 평판과 결별한다면 주체성을 지닌 긍정적인 존재가 되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내면에 준거를 두게 된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실존적 영웅주의에 따르면 내적으로 완전한 자아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근원적 고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