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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 이연식

by librovely 2015. 2. 21.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이연식            2013              이봄

 

미술작품에 대해 다루며 그 안의 멜랑콜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주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재미없지도 않고 그냥 읽었다

 

멜랑콜리는 뭐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살 수 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깊게 파고들 용기가 있는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거겠지...

 

솔직히 살짝 아쉬운 감은 남는다

그러나 편하게 즐겁게 읽긴 했다

 

 

 

 

 

 

 

 

멜랑콜리는 때로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여겨진다

당장 일상의 절박한 문제와 맞붙어 씨름할 때 멜랑콜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로부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을 때 숨 가쁜 국면이 지나간 직후에 우리는 문득 이런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멜랑콜리를 통해 사물과 인간에 대한 깨달음에 이른다

묘하게 우울한 느낌에 잠겨 있다가 뭔가 좋은 생각이나 세상살이 사람 됨됨이에 대한 통찰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통찰과 영감을 얻으려는 예술가들은 멜랑콜리에 주목했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자 멜랑콜리를 특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흐름이 생겼다

피렌체 인문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

신적인 재능의 영역에 속하는 창조적인 열광은 오로지 멜랑콜리에만 부여된다고 썼다

멜랑콜리 기질이 있는 사람을 멜랑콜리커라고 한다

이후 낭만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멜랑콜리커는 예술가의 동의어가 되다시피 했다

 

멜랑콜리는 바깥세상에 대한 민감함에 기인한 고통 의기소침 사물과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습성

자신의 처지와 성취를 좀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리키게 되었고 이러한

성향에 창조력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여겼다

 

브뢰헬은 불구자를 그리는 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 불완전함은 인간의 기본 속성이다 그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내세우지도 않았다

브뢰헬의 마음 밑바닥에 두텁게 깔린 그것은 냉소라기보다는 숙명론이다

먹은 것은 배설되고 살아 있는 것은 죽으며 지어진 것은 부서지고 무너진다

또 서 있는 것은 쓰러져 뒹굴 것이다 그의 그림 구석구석에서 들쑥날쑥 드러나던 이런 생각이 말년

에는 그림을 가득 채우게 된다

 

예술가가 결혼이나 연애와 담을 쌓고 예술에 몰두해왔다는 신화가 널리 퍼져 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데 화가 드가는 평생 혼자 살았다 고독한 화가를 따지자면 반 고흐를 얼른 떠올릴 수도 있지만 반 고흐

는 행복을 얻지 못해서 그렇지 길지 않은 삶 속에서 여러 여성들에게 구애하며 정열을 불태우기는 했다

반면 드가는 여성과 이렇다 할 감정 교류 없이 오래도록 지냈다 그렇다고 목석같은 타입도 아니고 중년에

접어들면서 고독이 점점 사무쳤다

 

20대의 드가는 내 까다로운 성격을 받아줄 여성이 어딘가에 있을까 라고 노트에 썼다

 

과거 유럽에서의 처형은 오랫동안 민중을 위한 축제의 일환이었고 죄수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군중은

열광했다 대부분의 처형 방식은 죄수가 금방 죽지 않고 되도록 오래 고통을 겪게 하고 군중은 이를 보며

복수심을 만족시키도록 고안된 것이다 참수형은 느낌이 달랐다 절제된 형식인 것이다 참수형은 신분이

높은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야

요컨대 사람들이 내 그림에 대해 화가가 깊이 날카롭게 느끼고 있다고 말할 경지에 이르고 싶어

빈센트 반 고흐

 

밤을 새우는 사람은 늦게 자는 사람 즉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다

불편과 고독을 감내하면서도 일상적인 리듬에서 비켜나가려는 사람이다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은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우수 성적인 긴장과 일탈의 전조를 묘사하는 한편

밤을 새우는 예술가를 떠올리게 한다

 

일을 하려면 쉬어야 하고 움직이려면 잠을 자야 하고 남들과 대면하려면 외출 전후로 옷을 벗고 씻어야 한다

일상은 이처럼 상반된 요소들로 구성되고 우리는 남들에게 보여줘도 되는 부분만 골라서 보여주면서 일상을

꾸려간다 보여주기 어려운 부분을 함께하면 내밀한 관계가 된다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고독하다

한데 고독은 욕망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호퍼의 그림은 잘 보여준다

 

쿠르베의 말대로

결혼하게 되면 예술에서는 반동적이 된다

 

예술가는 예술을 감당하는 사람이다

예술을 감당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걸 안다

감당한다는 건 재료비 작업실 임대료 활동비 그리고 평판을 둘러싼 온갖 복잡한 과정을 감수하는 것이다

어쩌면 예술가에게 순교자라는 타이틀은 필요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타이틀은 죽음과 파멸을 요구한다

 

 

앤디 워홀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