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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파리 에스파스 - 김면

by librovely 2015. 8. 6.

 

 

 

 

 

 

 

 

 

파리 에스파스                                                                   김면                                2014      허밍버드

 

장 보드리야르를 좋아하고 파리에서 10년 거주한 건축 디자이너가 쓴 책

글이나 사진이 감각적이면서도 깔끔하다

더 할 나 위 없 는 괜 찮 은 책

 

 

 

 

 

 

도시의 풍경과 공간을 대할 때 우리는 소리 냄새 온도 시간 빛 살갗을 스치는 공기에 따라 각자의 몽타주를

갖게 된다

한 문화의 감수성은 그렇게 도시의 다양성 안에서 사물과 공간에 대해 사유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형성

되는 것이 아닐까

 

파리징엥들은 광장을 통해서 자신들의 목소리와 사회적 요구를 드러낸다

마니페스타시옹 (시위 행사 표명) 줄여서 마니프

가슴 속에 있는 생각이나 요구사항 따위를 표출하다라는 의미

소규모 광장은 파리지엥들의 일상과 맞닿아 있어 사람들은 휴식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이곳에서 여유롭게

머물곤 한다 책이나 신문을 읽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눈다

광장은 공터와 다르다 공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인가로 메워져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지만 광장은 비어

있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도시의 오브제다 생각해보면 이 도시에서 샌드위치라는 음식이 여전히 잘 팔리는 건

광장 덕분일지도 모른다 값 비싼 음식이 아니라도 이처럼 꽤 좋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프랑스는 유럽 최대의 농업국이기도 하다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거주지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생활권을 카르티에라고 부른다

파리지엥들은 자신이 속한 카르티에에 대한 애착이 꽤 큰데 이 카르티에를 중심으로 시장이 열린다

 

이들은 사람이나 물건의 장점이 돋보일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강조해 가치를 높이는 것을 중요시 한다

고깃집을 예로 들자면 붉은 줄무늬 제복에 넥타이를 매고 모자까지 쓴 종업원이 상품을 하나씩 설명하고

보는 앞에서 손질해 준다 소시지 단 네 조각을 팔더라도 예쁜 종이에 맛깔스럽게 포장해 준다

 

1936년부터 유급 휴가제를 도입했을 만큼 프랑스인들에게 여름 휴가는 상당히 중요하다

1년 중 30일은 비우다라는 의미의 바캉스를 통해 태양이 주는 비타민 D의 축복을 온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는 연대의식 같은 것이 존재한다

 

한 사람이 생애를 다해 지어도 완성을 보기 힘들 정도로 긴 시간을 들여 지은 건축물 앞에 섰을 때

그 감흥은  아름다움을 넘어 엄숙함과 경외심에 가깝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성당 뒤쪽에 위치한 다리인 퐁 드 라르셰베셰

를 걸으면서 이 건축물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파리에서 한동안 생활했던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만은 파리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디

그 어떤 도시도 파리보다 더 책과 깊숙하게 연결된 곳은 없다

파리는 그 자체로 센 강이 가로지르는 도서관의 거대한 열람실이다

보들레르 랭보 발자크 사르트르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인들과 사상가들이 걷고

사색하고 영감을 얻어 글을 썼던 곳 파리

 

파리에서는 원하는 책의 주제나 자신의 기분에 맞추어 도서관을 골라 갈 수 있다

 

미술관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어야 한다

예술에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감상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또한 예술을 전시하는 방식과 감상하는 방식 모두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 만들어진다

 

봉 마르셰는 물건에 가격표를 달고 최초로 정찰제를 시행했다

당시에는 여성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많지만 봉 마르셰는 시대를 앞서 가며 기발한 마케팅 기법을 고안했다

12월이면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상품을 판매

기간을 정해 할인 교환 광고책자 최고급 상품 라인 별도 관리 VIP에게 호텔 투숙 서비스

여타 백화점과 달리 봉 마르셰는 고객들을 상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단체로 들어와 물건을 사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상업적인 백화점이 아닌 예술품과 함께하는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끼며 쇼핑할 수

있도록 한다  파리지엔느와 파리지엥을 위한 백화점이라는 정체성 고수

문화의 리더야말로 진정한 시장의 리더라는 것은 이곳이 문을 열고 16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진리일테니까

 

통로를 통칭하여 파사주라고 하고 그중 철과 유리로 지붕을 씌운 파사주로서 주로 서점 부티크 등 고급

상점이 길게 늘어선 공간을 갤러리라고 한다 아치형 천장으로 이루어진 통로를 아케이드라고 부른다

 

벤야민은 소비에 빠져 있는 군중을 도시의 발명품이자 특정 계급이나 집단이 아닌 다양하고 모호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무리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그러한 대중은 자본주의의 달콤한 유혹에 취해 있는

상태다 이들에게는 유행에 따라 구입한 새로운 상품들이 삶의 권태에서 벗어나게 하며 사회적 신분

마저 상승한 듯한 환상을 가져다준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동네에 들어와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런 변화 속에서 서점들은 힘겨운 문화적

싸움을 견뎌야만 했다 문학적 장소성이 없다면 생제르맹은 더 이상 생제르맹이 아닐 것이다

 

파리지엥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나는 실내가 어두침침하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 그 어색함의 정체는 공간을 밝히는 것과 비추는 것의 차이임을 알게 되었다

파리지엥들은 전등갓을 활용한다 해질 무렵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아파트를 올려다보면 창가에

하나둘 켜지는 실내조명의 조도가 모두 다른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