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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간의 마음 - 에리히 프롬

by librovely 2008.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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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     The Heart of Man                               에리히 프롬                  2002'             문예출판사




어디에서 봤더라?
책 중에 좋은 책은 나를 얼마나 변화시켰느냐에 있다던데
비슷하구나...
영혼의 인간?을 만나면 좀 더 나은 내가 되도록 만들듯이 영혼의 책을 만나면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영혼의 책을 읽으며 영혼의 인간을 만나면 인간 말종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겠군.   ㅡㅡ.



에리히 프롬을 처음 알게 된 사랑의 기술
그 책을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실 별로 정립된 생각도 없었기에 바뀌었다기 보다는 뭔가 살짝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가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읽은 에리히 프롬의 책은 대부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야말로 좀 더 나은 내가 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최소한 그 책들을 읽기 전의 나와 비교해 보자면 말이다.



이 책은 내가 궁금해하던 그런 이야기를 다루어 주기에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인간...나도 인간인데 인간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도 나를 잘 모르고 그래서 사는게 그리 쉽지가 않다
인생은 항상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내 뜻대로 풀리지가 않는다  후회할 일 투성이고 나이는 많지만 여전히
사춘기스러운 정신상태...  나이값을 하는건 나날이 늙어가는 외모뿐인 느낌이 든다.



나를 잘 모르기에 당연히 남도 잘 모른다
왜 그들은 그런 행동을 하며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내가 맞는건지 철수가
맞는건지 미쓰리(이거 여성 비하 표현이던가?)가 맞는건지 도통 모르겠다는 말씀...
그래서 그래서 난 이런 인간에 대한 책에 흥미를 느끼는 모양이다.
사실 모르기에 흥미롭게 느껴지는 거라면 그 어떤 분야든 흥미롭지 않을 것이 있겠느냐만은...



에리히 프롬이 정신분석학자가 되도록 만든 이유 중 하나가 전쟁이었다는데 나치즘이 그에게는 아주 인상적인
것이었던 모양이다.  이 책의 내용에서도 드러난다. 에리히 프롬은 설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에 빠져들어 남이나 자신의 목숨을 거는 것인지...인간이란 대체 무엇이기에 그러는
것인지...뭐가 잘못되어서 그들은 그러는 것인지...거기에 대한 설명을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프로이트의 선연구
결과를 토대로 삼으며 풀어나간다.



아주 재미있다.
내용도 쉽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당연히 미지수...엉뚱하게 읽고는 쉽다고 헛소리를 하는건지도 모른다.
하여튼 에리히 프롬은 나와 같은 일반인이 어느 정도로 무지하게 사는지 잘 알고 계시기에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니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도 아주 쉬운 예를 들고 하다못해 말초적인
인간들의 관심사인 남녀 꼬시기 예를 드는 것을 보고는 범인들이 흥미롭게 읽도록 만들기 위해 애를 쓴
에리히 프롬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ㅡㅡ;;
마지막 부분에서는 직접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까지 하고 계신다....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도 항상 궁금해하던 질문이다.
인간은 본래 어떤 존재일까?
물론 나의 종교인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악하다고 말한다.
그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정확히 나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다. 인간은 선함과 악함을 모두 갖고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악하다고 말한다.
무슨 말이냐면... 100% 선함이 있다면 선하다고 할 것이고 100% 악하다면 악하다고 할 것이다.
그럼 섞이면? 80% 선함과 20% 악함이 함께 있다면 그렇다면 악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악한 존재라고 말한다고 생각했다.
하여튼 그랬는데 아...에리히 프롬....그의 설명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인간은 선함과 악함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선함과 악함이 인간의 마음에서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그것이 인간의 본래 상태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마음을 끌고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라는 것...
삶의 방향 혹은 죽음의 방향... 둘 다 인간적인 것이다...인간의 마음이란 본래 그랬다는 것...
답이야 물론 삶의 방향 즉 선함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서 자유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자유?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정말 그렇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자유라면 내 맘대로 행동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내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는게 자유다?
그러나 에리히 프롬은 그건 자유가 아니라고 말한다. 얼핏보기에는 자유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건
자유가 아니라 복종이라는 것....



인간이 아무 생각없이 살면서 자기 마음가는대로 행동한다는 건 절대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한다? '마음이 가는대로' 라는 것이 '진짜 내 마음이 가는대로인가?' 를 살펴보라는
말씀이다.  이게 무슨소리냐면....
우리의 마음은 욕망하는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욕망이란 진짜 내 욕망인가?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가?
무의식을 들여다보면 그건 참다운 내 마음이 아니라 그릇된 무의식적 문제로 인한 욕망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나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난 단 음식을 먹거나 아무 생각없이 음식을 과도하게 먹을 때가 있다.
이럴 때 표면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한다. 뭘 다이어트를 해...그냥 이렇게 '자유'롭게 살다 죽으면 행복한거지~
그러나 진짜 나는 과식이나 단 음식을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정말 이런 행동을 원했던 것일까?
이런 행동은 사실은 죽음의 본능에 이끌린 나의 내면에서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파괴하고자 하는 마음
뭔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이런 행동을 하게 되는걸 보면...그리고 사실 이런 행동 후에 마음에 남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자괴감에 더 가깝다.  컬쳐코드라는 책에서 그랬나? 과식의 진짜 이유는 사람들과의 단절
이라는...단절로 인해서가 아니라 과식을 해서 남과 혹은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켜버리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원인이라는 그 내용을 보고 상당히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또 다른 면을 들여다보자면...
에리히 프롬이 그렇게 강조한 사랑에 대한?
누군가 좋다면 나는 과연 순수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면...
나는 아마 좋긴 하지만 알 수 없는 아니 조금은 알만한? 이유로 인해 자신감이 없어질테고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는 그냥 포기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뭐하러 연애를 하고 뭐하러 결혼을 하니...그냥 '자유'롭게 살면 행복한 거 아니니?
그러나 이는 연애를 막는 무의식적인 문제로 인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이건 절대 자유로운
상태라고 볼 수 없는 것이고...물론 스스로 싱글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독신주의자의 경우 그건 진짜 
자유로운 상태라고 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문제로 인해 그릇된 선택을 한다면 이건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선택을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원하는대로 선택한 것이나 사실은
무의식이 정해놓은 대로 바보같은 길로 나아간 것 뿐이다.  이건 자유가 아니라 그릇된 무의식에 복종한
셈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에 의해 행동을 하고는 진짜 원인이 되는
무의식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행동을 나름대로 합리화 시키고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생각하라고 말한다
자각하라고....각성하라고...(그게 그 소리구나)
각성이라함은 정확히 보라는 것이다. 상황이든 자신의 마음이든...
이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진짜 자신의 마음인지 아니면 그릇된 무의식으로 인한 것인지



그리고 상황을 잘 알게 되었으면 자신의 각 선택에 의한 결과를 충분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오니 이렇게 해야겠다...뭐 그런 생각을 하라는 말이겠지...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선택이 이뤄지는 시기가 언제이냐를 제대로 파악하라는 것이다.
이 말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에리히 프롬이 예로 든 것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남자가 맘에 드는 여자와 침대로 가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고 치자...이 결정은 제대로된 각성과 결과예측의
결과였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이 남자가 어느날 그 여자와 쇼 구경을 갔다가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기 전에
한잔 하자고 제안한다. 표면상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는 한잔 한 후 낭만적인 분위기에
의지력도 약해져 그녀의 집에 가서 한 잔 더 하고 틀림없이 자게 될 것이다.  여기서 선택이 이뤄지는 그
시점을 그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사실상의 선택이 이뤄지는 시점은 쇼 구경을 하러
가거나 잠자리를 하게 된 때가 아니다. 한 잔 하자고 말한 그 시점이 바로 선택을 한 시점이 되는 것이다.



이 선택의 실질적인 시점에 대한 또 다른 예도 재미있다.
드라마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 상황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녀의 배경이 별로다 남자의 부모는 그녀가 맘에 안든다 헤어지게 하고싶다
부모는 남자에게 유럽여행을 제안한다   거기에서 생각을 한 번 더 해본 후 와서 정해도 늦지 않다고...
그는 유럽 여행길에 오르기로 선택한다. 여행지에서 그녀와 떨어져 있으며 외국 여자들과 어울리고
돌아와서는 그는 그녀와 헤어지겠다는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자...어느 시점에서 그녀와 헤어지겠다는 선택이 이뤄진걸까?  여행 후가 아니라 여행에 가기로 결정한 순간
그는 헤어지기로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그녀와 유럽여행을 교환한 것이다  혹은
부모의 그늘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여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튼 그의 선택 시점은 그러하였다는 것



우리가 일상에서도 이런 선택이 이뤄지는 시점을 착각하여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결정하여서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자각도 중요하고 그 자각한 상황에서 각 선택의 경우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생각해보난 것도 중요하고 더불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실질적인 선택이 이뤄지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것...그 때를 알아야 그 선택에 대해 신중할 수 있으니까...갑자기 그 말이 생각난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선택 시점을 착각하면 정작 자신이 뭔가 선택을 하려 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는
불상사를 낳는 것이다?



선택의 시점이라고 하니 뭐가 또 생각난다....
보통 누군가를 소개 받고 나서 3번 정도 더 만나면 이젠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즉... 4번 째로 또 만날 것인가 아니면 만나지 말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그 사람과 사귈 것인가 말 것인가
를 결정하는 시점이 된다는 것이다.  근데 이 때를 선택의 시점이라고 여기지 않는 여성분과 소개팅을 할
경우 남자는 그야말로 낚이게 되는 것이다. 난 사귀는 줄 알았는데 뭐? 6개월이나 만나 놓고도 앞으로 어찌
할지 확신이 안 선다고? 뭐 이런 식으로....여기서 교훈은? 남자는 소개팅하기 전에 그 상대 여성분이
선택의 시점 정도는 명확히 아는 여자인지 체크를 하시라? 안 그러면 낚일 수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리히 프롬의 인간의 마음을 읽었는지 체크를 하시라...난 분명 읽었다는...ㅡㅡ;



에리히 프롬은 선과 악을 각각 삶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사랑으로 설명한다
그럼 문제가 되는 죽음에 대한 사랑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왜 그렇게 되었느냐...
숱한 심리학 책에서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매우 강조하는 그 분...엄마와의 관계에서의 파탄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관계에서의 파탄들...파탄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관계에서 맞딱드려지는 파탄이란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건 이 파탄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믿음의 파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관계의 파탄이라기 보다는...



이 믿음의 파탄에 대한 반응은 이렇게 나뉠 수 있다
특정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을 그만 두고 자립적인 인간이 되어 또 다른 믿음직한 벗이나 스승 애인을 찾는다
아니면 회의적으로 변해 믿음을 찾아 줄 기적을 바라고 남들을 의심하고 시험하고 그런 것에서 실망하면
교회나 정당 지도자 처럼 권위의 품속에 몸을 던지거나 돈이나 권력 명성 등 세속적인 것에 집착하여
믿을을 잃은 상실감을 이겨낸다
혹은 삶 자체를 증오하기 시작하고 냉소하며 파괴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삶을 증오하기에 죽음으로 향하는 것.



인간은 창조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통해 자신이 피조물이라는 것에서 초월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창조 아니면 파괴 둘 중 하나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파괴로 향한 마음은 피를 사랑하고 타인이든
아니면 짐승 학대든 남을 장악하였고 파괴하였다는 것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우월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참된 악의 본질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사랑
자아도취
어머니에 대한 공생적 고착
물론 이 세 가지 특성이 있다고 무조건 병적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아는 여자에도 나왔듯이 양성과 악성이 있는데 양성의 경우 별 문제가 없다는 것...



죽음에 대한 사랑은 타인이 파멸되는 것을 바라보며 가장 깊은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는 삶을 몹시 두려워하는데 이유는 삶의 본성이란 무질서한 것이고 지배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 갑자기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생각났다...
이들에게 죽음은 사실상 삶에서 단 하나의 가장 확실한 것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창조는 죽음에 대한 사랑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삶을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삶과 성장의 과정에 매혹되며 그는 현상을 유지하기 보다느
건설하려 하고 경탄할 줄 알며 새로운 것을 보고자 한다. 그는 확실성보다 삶의 모험을 사랑한다
삶에 대한 사랑을 발달시키려면 어린 시절 애정어린 사람과 자주 접촉하고 자유롭고 위협이 없는 상태
내면적 조화와 힘을 기르는 원리의 가르침 살아가는 기술에 대한 지도 남에게 자극과 영향을 받고 이에
반응 하는 것, 참으로 즐거운 생활방식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순수하게 죽음을 사랑하는 자는 미친자이고 순수하게 삶을 사랑하는 자는 성인이고 보통의 인간은 이
두 가지가 섞여 있으며 어떤 것이 지배적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에리히 프롬은 자주 언급하는 핵문제에 대해 또 말하는데 그가 보기에 핵전쟁이 가능한 상황이 상당히 황당한
모양이다.ㅡㅡ;; 그는 왜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을수도 있는 핵문제에 대해 별 반응이 없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삶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많은 이가 죽음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면적 전쟁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문화가 과거보다 다양하게 발달한 요즘에
왜 이런 일이? 그는 우리가 추구해온 모든 자극과 재미는 삶에 대한 기쁨 및 사랑과 전혀 관계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조직적 인간 자동인형적 인간 소비적 인간 기계적 인간
흥분되는 순간의 전율을 취하며 소유하고 사용할 것이 많아질수록 활기있어 질거라는 환상속에서 사는 인간



두 번째 악의 본질인 자아도취
양성 자아도취는 자신의 성취에 대해 자신을 멋지게 생각하지만 악성 자아도취의 경우 그가 갖고있는 것에서
자아도취감을 느낀다. 이를테면 몸 모습 건강 재산  난 노력할 필요도 없이 이런 것들을 갖고 있기에 위대하다
고 생각한다  이는 집단적 자아도취로 확대될 수 있다. 백인우월주의 나치즘 우리나라의 학연 지연 혈연도
뭐 이런 맥락과 통하겠지...이런 자아도취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 이성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된다고 한다.
객관성이 없고 합리적 판단을 못한다는 것...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사랑에서도 자아도취적인 대상으로 연인을 바라보는 경우 건강한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서로를 분리된 존재로 경험하면서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건 사랑의 기술에서 강조하던 그 내용이다....분리를 먼저 경험해야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인간이 완전히 성숙하기 위해서는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야 하며 가장 쉬운 방법은 자아도취적 에너지를 감소
시키지 않고 그 대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종이나 정치체제 따위의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그 대상을
인류로 확대하는 것이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경험...그리스 시인 안티고네가 말을 인용한다.
사람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오드리 헵번과 안젤리나 졸리가 떠올랐다...ㅡㅡ;;



또 다른 자아도취 극복 방법은 비판적 사고, 객관성, 현실 직시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휴머니즘적 철학과 인간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하긴 어찌보면 상당히 바보스럽고 비합리적인 자아도취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해...이 얼마나 바보스런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악의 본질인 근친상간적 유대(어머니에 대한 공생적 고착)
불안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자궁속으로 퇴행하려는 경향
근친상간적 유대는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원하며 동시에 어머니를 감정적으로 두려워하기도 한다
어머니 고착이 심한 남성의 경우 독립성을 발달시키지 못하며 어머니처럼 돌봐줄 여자를 찾는다.
어머니 고착의 가장 심각한 단계인 근친상간적 공생에 이르게 되면 그는 연인과 숙주처럼 한 덩어리로 존재
하길 바란다.  그는  이 사람 없이는 못산다고 생각한다 (앙드레 고르는 역시 부인과 건전하지 못한 관계였던
것일까? 함께 자살을 해 버렸으니까...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는데 그도 근친상간적 유대였던걸까?)



숙주는 반드시 살아있어야 하는건 아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사람이거나 심지어 죽은 사람인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이러한 공생은 어떤 문화에서는 조상숭배로 제도화된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고 말하는데....
음 우리나라가 딱 맞아 떨어진다...솔직히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들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좀 속상하기도 했다....



극단적인 퇴행적 공생 형태는 자궁으로 되돌아가려는 욕망 이는 바다에 빠져 죽고 싶다거나 대지가 나를 삼켜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으로 상징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연인에게 집착하거나 의존적인 사람들이 떠올랐고...
연인과 헤어지면 곧바로 누군가와 바로 연인관계를 만들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도 떠올랐다.
역시 내가 추구하는 그 조건...몇 년 꾸준히 연인이 없었던 이성이 괜찮다...는 신빙성있는 조건으로 결론...ㅡㅡ;
그리고 말 그대로 엄마와의 고착....나도 좀 이런 측면이 있는데...한 때 마마걸이라는 별명도 살짝 있었고...
전화가 오면 볼 것도 없이 그냥 받으면서 엄마? 라고 하면 될 정도로 통화를 꾸준히 해서 그랬던건데...
사실 가끔 엄마가 돌아가시면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할까...감이 안 올 정도로 심리적으로 의존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뭐 이건 나이가 드니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경향이니까 난 멀쩡하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젠
오히려 너무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고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
뭐든 적정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면서도 힘든 것인 모양이다...



의존적....
이 근친상간적 공생의 폐해가 의존적이라는 것이라는데...과연 진정으로 인간이 의존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엄마 - 친구 - 이성 - 배우자 - 자식
이 순서로 의존의 대상을 바꿔가며 인간은 근근이 살아간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에리히 프롬이 말한 문제가 되는 그 상황이란 의존이라는 것이 너무 심각한 경우를 말한 것이겠지만...



3가지 악의 본질의 반대는?
죽음에 대한 사랑의 반대는 삶에 대한 사랑이고
자아도취에 대한 반대는 사랑이고
근친상간적 공생의 반대는 독립성과 자유라고 한다.
에리히 프롬은 이 악의 본질에 반대되는 3가지를 성장의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사랑 / 독립성 / 자유




사실상 우리가 선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각성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의 친절한 시선, 새의 노래, 풀밭의 푸르름에
감동할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한다면
어떠한 각성도 우리를 도와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사람이 삶에 무관심하게 되면
이미 그가 선을 선택하리라는 희망은 없다




아주 좋은 책이다.
사랑의 기술과 연달아 읽으면 좋을 책이다.
뭘 먼저 읽으면 좋을까?
사랑의 기술~





책의 표지도 예쁘고 다 좋은데...
중간중간 두꺼운 글씨체를 넣어놓은 것이 거슬렸다 상 당 히 거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