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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겨울 여행 - 아멜리 노통브

by librovely 2012. 5. 2.

 

 

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2010                문학세계사

 

아멜리 노통브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라고 말하기 민망하게 그녀의 책을 단 한 권도 사지 않았구나...

한 권이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이...그래도 괜찮아...워낙 세계적인 작가니까...하며 일단 죄책감을 좀 덜어내고...

 

표지에 작가 얼굴이라니...특이하다

제목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겨울 여행...으 뭔가 뻔하고 고리타분하고 그런걸...이라고 쓰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겨울에 여행가는 걸 좋아하는데...

보통 다들 여름에 여행을 가지만 난 겨울이 좋다...더운 것 보다 추운 게 낫고 추울 때 거리를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나 핫초코를 먹는 즐거움...그리고 동남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비수기이기에 사람이 적어서 번잡하지 않고

그만큼 현지인들을 더 구경하기 좋고 그리고 또...하여튼 다들 여행가고 난리일 때 혼자 집에 처박히는 게 좋고

아무도 여행 가지 않을 시기에 가는 게 좋다...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아 얘기하다보니 여행가고 싶구나...

 

 

이 소설 당연히 노통브의 소설이니 재미있다....아주 재미있다...

아멜리상의 소설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독특하다는 것...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스토리를 들려준다는 것...

캐릭터가 특이하다는 것...그런 게 좋다...좀 사이코같은 면도 있고~ 화성인스러운 주인공...

 

주인공은 어떤 여인을 사랑하게 되지만 둘의 사랑에는 큰 걸림돌이 있다....

끔찍한 걸림돌이 데이트조차 못하게 만든다...항상 달라붙어있는 느끼한 덩어리같은 존재...그녀는 작가...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은 그 작가를 돕는 여자...이 둘을 갈라놓을 수 없고 좌절한 주인공은 사랑하는 여인이

가장 좋아하는 건축물인 에펠탑을 비행기로 폭파시키기로 한다

어차피 그녀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거라면 세상에 존재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걸까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던 건축물을 폭파시켜서 그녀가 반성이라도 하게 만들 생각이 있었던 건지도...

 

아 이런 의도도 있던거구나....

 

내가 저지른 짓을 알게 되면 아스트로라브는 나를 경멸하고 증오하다 못해 우리가 만난 그 날을 저주하고

내가 보낸 편지들을 찢어버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편지들을 경찰에 가져다 줄지도 모르겠다

어떤 남자가 그녀의 생각을 그렇게까지 완전하게 점령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

 

나의 결심이 선 것은 그때였다

아스트로라브는 우주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고결한 존재였다 그렇게 우수한 존재가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한다면

세상은 내 손에 파괴되어야 마땅했다

 

이 책 또한 읽은지 상당히 오래되어서 기억이...역시 독후감은 3일 이내에 써야...ㅡㅡ;

발췌하다보면 기억이 나겠지

어쨌든 나에게는 노통브의 소설 중 사랑에 대해 가장 잘 말해주는 소설로 느껴졌다...

 

 

 

 

타인의 평범함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평범함의 극치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십니까?

-알리에노르 이분이 자기한테 물어볼 게 있으신가봐

비정상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뭐야 소설가가 저 여자였단 말이야?

-이것 좀 봐 이분이 네 책을 가져오셨어 사인을 해 드리지 않을래?

비정상이 좋다는 뜻으로 추정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알리에노르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게된 후 그 이름은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렸다

그 이름에서 이엘리언이 연상되었던 것이다 그랬다

그녀는 영화 속 그 무엇과 닮아 있었다

 

아스트로라브

이 비행기를 납치하려는 결심을 한 것은 당연히 그녀 때문이다 물론 그녀가 안다면 기겁을 하겠지만

할 수 없다 세상에는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 있고 어쩔 수 없이

실천에 옮겨야만 하는 행위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다 그야말로 속단 중의 속단이다

우선 사랑 이야기의 성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대체 언제 사랑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저지른 짓을 알게 되면 아스트로라브는 나를 경멸하고 증오하다 못해 우리가 만난 그 날을 저주하고

내가 보낸 편지들을 찢어버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편지들을 경찰에 가져다 줄지도 모르겠다

어떤 남자가 그녀의 생각을 그렇게까지 완전하게 점령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사랑 이야기가 성공적이라는 게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에는 실패가 없다는 것이다

사랑의 실패라니 말 자체에 모순이 있지 않은가 사랑을 느낀다는 건 이미 승리를 쟁취한 것이기 때문에

왜 더 많은 것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생사를 좌지우지하는 말의 힘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스트로라브의 편지가 늦어졌기 때문에 나는 하루가 다르게 심각해져 갔다

나의 존재는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언어에 아니 그 언어가 존재할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편지를 쓸 주체에 적용된 양자물리학이랄까 관리인 아줌마가 각 세대의 현관문 밑으로 우편물을 넣어 주는 시간이

되면 나는 계단에서 들려오는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두근대는 감정이 초자연적인 고난으로 변화하는 무아지경을

경험했다 편지가 고지서나 광고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신이 나를 버렸다는 극심한 허탈감에 빠져 순식간에

존재감을 상실했다

 

나로 인해 설레었다니 뜻밖이었다 그렇지만 그 말은 분명한 거절보다 더 나빴다

나의 이상형을 찾았는데 웬 비정상이 그녀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나의 결심이 선 것은 그때였다

아스트로라브는 우주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고결한 존재였다 그렇게 우수한 존재가 그런 식으로 행동을 한다면

세상은 내 손에 파괴되어야 마땅했다 안타깝게도 내겐 이 세상을 파괴할 만한 무기가 없으니 대신 내가 가장 혐오

하는 대상을 선택해야 했다

2001년 9월 11일 이후로 사람들은 인류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해를 끼치는 방법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품지 않는다

 

숭고한 아름다움만이 그것을 파괴하고픈 열정을 낳는다

미시마 유키오 소설 속의 주인공은 교토의 풍경을 망치는 새 건물이 아니라 유서 깊은 미의 상징인 금각사를 불태웠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죽인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명언을 건축학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구스타프 에펠이 아멜리라는 이름의 여자를 미치도록 사랑했대

그래서 A에 그렇게 집착하게 되었다지 그래서 1세기가 넘도록 파리를 굽어보고 있는 에펠탑의 형태가 A모양인 거야

 

일부러 그런 척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아스트로라브와 거리가 생겼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다음 아스트로라브가 아파트로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그 초대를 거절했다 그녀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거절에 마음이 상한 것이 눈에 보였다 그녀가 그렇게 실망한 표정을 한 달만 먼저 보여주었더라면

난 기쁨으로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고 에펠탑 공격 D데이 계산 같은 것도 하지 않았을텐데

너무 늦었다

난 아스트로라브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이렇게 타이밍을 못 맞추다니 아무튼 여자들이란

 

이런 편지를 읽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든가 아니면 그 황당무계함에 웃어 젖히든가

그나마 내겐 일말의 사랑이 남아 있어서 단어들에 감동한 나의 머리가 샴페인 병마개처럼 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눈을 덮었던 콩깍지가 얼마간 벗겨져 나간 상태였기 때문인지 어쩐지 우스꽝스러운 뉘앙스가 느껴졌다

사람은 불 같은 사랑에 빠져 있을 때만이 한없이 너그러울 수 있는 법

조금이라도 그 열기가 식으면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가혹해진다

나는 이 두 상태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이젠 봄이 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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