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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뉴욕 - 김영주

by librovely 2011. 7. 10.

뉴욕                                                                       김영주                  2008                     안그라픽스


잡지회사에서 일한 사람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거쳤고 어릴 때 뉴욕에서 유학을 했던 경험이 있는 아마도 40대 중후반의 여자
당연히 결혼을 했겠지 하며 읽었는데 미혼  그래서 더 색다르게 느껴졌다
그 나이의 미혼 여자가 쓴 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읽어본 결과는? 음..항상 그렇듯 나이를 먹는다고 사람이 크게 변하는 건 아니라는 것
지금의 나와 비슷한 걱정과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나쁘다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것을 확인
했다는 것...사람이 흔히 생각하는 어른이라는 것이 되는 시점은 없는 것 같다...그 깊이나 방향은 달라지겠지만 사람
이기에 고민해야할 것은 항상 따라다닌다...안정이라는 것은 죽음 직전까지도 오지 않는다...몇 살이기에 다 컸고 난
세상을 삶을 알아...라고 말할 수 없을거라는 것...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그냥 열심히 살고 생각하고 읽고 쓰고...



읽은 지 한 달도 더 지나서 거의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뉴욕에서 2-3달 머물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일기처럼 써내려간 책
글이 좋다...워낙 글을 쓰는 일을 했던 사람이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미혼이고 여자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공감이 가는
내용이 대부분이었고 뉴욕에서 머물고 싶은 마음을 어느정도 가라앉게 해줄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중간 어느 지점 또 어느 지점 또 어느 지점 간혹 지루해 지는 곳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책 좋다


단지 뉴욕에 머물러보는 경험 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인간관계의 패턴을 지닌 누군가의 경험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보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뉴욕에 대한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뉴욕은 정말 특유의 공기를 지닌 도시인 것 같다
확실히...








나는 베이글을 생략한 채 카페라테와 사전만큼 두꺼운 뉴욕타임스 일요일을 사들고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
사람들을 지나 아파트로 돌아왔다




고개를 5도만 돌려도 바로 옆자리 맞은편 사람과 눈이 마주칠 정도지만 아무도
이 안의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곁눈질하지 않는다
뉴욕 사람들은 남에게 신경 안 쓰기 대회에 출전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
덕분에 나는 혼자라는 사실조차 잊은 채 들고 온 타임아웃을 정독하며 디저트까지 편안히 끝냈다



전혀 흥분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보고 살았나 보다
삶의 경험과 문화적 습득이 많아질수록 새로운 것의 범위는 자꾸 줄어든다
나이듦의 대가로 받는 세상으로부터의 슬픈 선물이다



휘트니 박물관 앞의 할머니 행렬
문화적 호기심을 끝없이 부추기는 뉴욕에서 노년의 매너리즘을 비웃는 사람들



뉴욕이 좋냐고요?
그냥 있어도 힘이 나잖아요



여행을 하는 데 즐거움 같은 것은 없다
즐거움은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더욱 위대하고 중요한 지혜와 같다
알베르 카뮈가 역설한 여행의 의미에 위안을 찾아보려 했지만 지혜의 힘마저 나를 외면했다



뉴욕 출신의 수필가이자 시인이었던 E.B. 화이트가 쓴 <여기에 뉴욕이 있다>
만일 어떤 기묘한 상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뉴욕은 그에게 외로움과 사생활의 자유라는 선물을 수여할 것이다



얼마 전 제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뉴욕의 대규모 공연장에서는 흑인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어떤 책에서였던가 여러 문화 창작물 중 비창작의 반응 정도가 가장 민감하고 빠른 것으로 음악을
가장 더디고 어려운 것으로 미술을 꼽았던 기억이 난다



뮤지컬이든 연극이나 무용이든 최대한 많이 보고 가  다른 데 돈을 아껴서라도
살면서 뭐가 중요하겠냐 남는 것은 이것 밖에 없더라
내 나이가 예순인데 아직 한참 젊다고 느껴 매일 뭔가를 고민하고 구상하니까
뉴욕을 정기적으로 오는 이유도 그런 거란다 여기 있는 동안 네가 누릴 수 있는 문화는 다 갖고 가
두고두고 행복해질테니



만일 뉴욕에서 한번만 살아 본다면 그 순간 뉴욕은 당신의 집이 되고 말 것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집이 되기에 이보다 더 합당한 곳은 없다
-존 스타인 백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괜히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게 느껴진 것은 젊을 때나 나이 들어서나
일을 할 때나 안할 때나 매한가지였다
연휴에 환호하며 패키지 여행을 떠날 만큼 여유롭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일상사를 그대로 유지하자니
전 국토가 올스톱 분위기에 휩싸여 있어 혼자 부산을 떨 수도 없다
이때만 되면 나는 스스로 정지모드를 걸고 빨간 날의 들썩거림 뒤로 숨어 버렸다
그런데 생일은 마음먹기 나름이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개인사다
기대가 크면 바라는 것이 많아지고
담담하면 소소한 것에도 감동한다



굳이 타향살이를 하지 않아도 입양아의 운명을 갖게 되거나 혹은 다수의 집단에서 소수로 살지 않아도
정체성의 의문은 누구에게나 포진해있다



나는 남겨진 날들을 두손으로 움켜잡고는 놓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순리대로 흘러갈 세월이지만 이번만큼은 두 팔과 다리를 곤두 세워 힘껏 가로막고 싶었다
(뉴욕을 떠날 때가 다가오자...저자는...ㅜㅜ)



과거의 어느 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미래가 바로 지금일 수도 있는 일
이제라도 알아차렸으니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나는 아직도 로비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
카페에서 늦은 점심까지 먹으며 온종일 이곳을 설설거렸으면서도 계속 멈칫하고 있다
미술의 비옥백과는 포만감 대신 아쉬움을 남겼다
더 연장되기를 바라는 목마름의 여운이다
이래서 문화가 필요하고 나같이 평범함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기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연다
마음의 풍요가 얼마나 큰 힘으로 삶을 지탱해주는지 알기 때문이다
르누아르가 말했다
창작의 고통은 사라지지만 미는 남는다고
예술가들이 고통을 감수하며 완성시킨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이 나의 반나절을 청아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나이가 찬란해보이고 새로운 열정이 신나게 요동쳤는데 뭘 더 바라겠는가
마침내 나와의 화해가 끝났다
언젠가 뉴욕에 다시 와서 살아보는 거다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면 어떤가 그때 되면 이 도시가 또 다른 만찬을 준비해 놓고 기꺼이 맞이해줄텐데



저자의 지인 제이 제이리 포크
뉴욕이 나를 훈련시키는 게 있다
배우고 실행하고
이런 일들은 매일 벌어진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배경이나 현재의 지위와 소속에 무관해지면 그 순간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열린다 뉴욕이 그런 사고를 갖게끔 해준다 (살짝 과장이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이..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