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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단순한 열정 - 아니 에르노

by librovely 2013. 1. 17.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2001            문학동네

 

 

댓글에서 보고 휴대폰에 책 이름을 저장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있다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같은 사람을 보고 참 다르게 느껴서 그것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했었는데

난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은 별 생각도 의욕도 없는 것 같고 정말 평범해 보인다...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은 정말 우아하고 지적이고 똑똑하고...그런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런 말을 하면서 하나 덧붙인 게 누군가가 비싼 물건을 사면 그 사람은 아니 그 돈이면 책이 몇 권인데...

라고 말한다는 것...그리고 그 분은 정말로 책을 사서 읽는다고 했다....그렇구나 그녀는 책을 사서 읽어...

 

책을 빌릴 때마다 느끼는 죄책감...

그래도 발췌해서 홍보(?) 하잖아요...하며 넘어가자....

근데 그렇게 본 사람도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그래도 읽다보면 정말 좋은 책을 살거 아닌가요...그러니까 넘어가자...

 

 

책 제목이 좋았고 작가 이름도 좋았다

낡은 책 표지가 좋았고 얇은 것도 맘에 들었다

작가의 말 말고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 나온 첫 문장도 맘에 들었다

 

작년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작가가 본격적인 소설을 시작하기 전 쓴 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번 글쓰기에서 이런 정사장면(앞서 묘사한 포르노 영화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아주 적절한 설명이었다

포르노를 보는 남자는 어떤 감정을 느낄 지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여자들은 당혹감 곤욕스러움을 느낀다

그런 장면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타인의 사적인 면을 너무 노골적으로 그대로 보여주기에 느끼는 감정

이 소설도 그랬다...

 

 

당혹스러웠다 약간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였다면 아름다워...라는 반응을 보였겠지...

대부분의 사랑 이야기에서 그 둘의 아주 노골적인 감정 상태나 육체적인 문제는 생략되곤 한다...

드러내도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어쩌면 포르노 영화도 사랑 이야기가 아니겠는가...다만 너무 노골적으로

육체적인 측면만 드러내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겠지... 남에게는 감추곤 하는 부분을 드러냄에 의한 불편함

그것도 감정적인 전후 설명 없이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육체적 탐닉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도 특징이고...

 

이 소설도 그렇다...

이 소설에서 작가와 그 남자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없다...

다만 둘은 어떻게 좋아하게 되었구나...추측할 뿐이고 단지 지금 그 상황에서 작가가 어떤 심리 상태로 그 남자를

갈망하는 가를 아주 사실적으로 나열해 놓았다...물론 사랑에 빠져드는 과정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았으나

사랑에 빠진 상태에 대해서는 이보다 더 자세히 들려줄 수 있을까? 사랑에 빠진...아니 살짝 미친 상태의 작가가

어떻게 일상을 보내는가...얼마나 그 남자가 그녀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런 갈망에서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육체적으로 즐거워지는 것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함도

솔직하게 드러냄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일상적인 장면에서 그 남자만을 생각하게 되는 작가의 내면 묘사도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왜 나에게는 이 소설이 뭔가 노골적인 날것의 이야기로 느껴졌던걸까... 너무 감상적인 표현 없이

느껴지는 사실 그대로를 나열해서 그런걸까?

 

사실 내용 자체는 나에게 그다지 신기하지는 않았다...물론 이런 이야기를 어떤 소설에서도 본 일은 없지만...

이성에게 빠져들었을 때 이런 비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에 빠져들게 된다는 건 오히려 상식적인 일...

읽으면서 내가 그랬을 때가 생각났다...작가만큼 밀도있게 심도있게 그랬던 건 아니지만 비슷한 류의 감정을

느껴본 일이 있으니...누구나 그럴거다...특히 여자라면 많이 공감할 내용들...

 

 

뭘 어떻게 느낀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았다...읽고나니 좋았다

이건 어떻게 보면 뭐랄까... 사랑이야기에 한해서는 상당히 실존적인?? 실존적인 게 뭐야? 모르겠는데...

하여튼 그렇다고...뭔가 그대로 보여주는 면이...그게 추하든 아름답든 그딴거 따지지 않고 인간이 누군가에게

빠져들었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꺼내 보여준다...작가가 서두에서 말했듯 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서 일단

그냥 사실을 그대로 접하는 것...그대로 보는 것...그건 잘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읽으면 더 잘 살 수 있고 더 잘 사랑할 수 있는건가? 

 

이 소설에서 작가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외국인이고 작가의 나라에 가끔 찾아오고 그럴 때 만나는 사이

내가 느끼기에 작가만큼은 아닌 것 같다...그는 가정도 있고...다만 외국에서 잠시 자신의 열망을 불태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사랑은 아닌 것 같다...그걸 작가도 아는 것 같다...알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그냥 충실할 뿐인 것 같다...그는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서로 좋은거니까...어쩌면 그만큼의 소유욕이

그에게 생기지 않는 건 작가도 그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너무 좋아서 그의 상황을

개의치 않는건지 아니면 그 정도만 좋아해서 감당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보통 남자는 여자의 몸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여자의 경우에는 그런 게 불가능하다고...

여자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 남자와 정신적 교감이 있어야만 마음이 먼저 끌려야만 육체적으로 끌린다는 그 말

작가는 아니라고 할 것 같다는 생각...나도 마찬가지다...사실 내 여행기 중 가장 역겨운 이야기를 써놓은 것에서도

말했듯... 나만 그런건지도 모르겠지만...솔직히 난 대부분의 여자들이 거짓을 이야기하는 거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에 놓인 일이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갑자기 왜 이런 이야기를..?

그건 이 소설이 그렇다는 것...누군가가 비난을 할만하건 역겹다고 할만하건 상관없이 작가에게는 엄연하게

존재하는 그 감정들을 사실대로 늘어놓았다는 것...그게 참 좋았다...

 

 

유부남 외국인과 남들은 싸구려라고 천박하다고 말한만한 그런 사랑에 빠져 있지만...

그걸 사실대로 들려주고...난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었고...

작가는 절대 둘의 관계를 미화하지 않는다...몇 시간 함께 하고는 사라져 버리는 그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도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건지 아닌지 확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다만 자신의 감정만 확신할 뿐

어쩌면 그는 단순히 쾌락을 위해서 자신을 만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작가는 과잉이 없다...꾸밈이 없다...그래서 좋았다...아무리 아름다워보여도 꾸미고 과장한 건 역겹다..)

 

 

책을 다 읽고 찾아봤다... 일단 저자의 얼굴이 궁금했다...예쁘더라...

그리고 이 소설의 끝 부분 역자 후기에서 이 이야기가 사실이었고...그 상대는 작가보다 어린 외국인 유부남이었고

작가는 이 소설이 발표된 당시 유명한 상을 수상한 유명 작가이자 대학 교수였고 그런 그녀가 가진 불륜을 사실대로

펴낸 것이 상당히 논란을 일으켰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재밌는 건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그녀보다 33세 연하

가 접근하여 5년간 연인으로 지냈고 그 일을 또 사실대로 이번에는 그 남자가 포옹이라는 소설로 펴냈다는 것

신기하고 흥미롭다

 

어떻게 보면 매장당할 수도 있을 그런 이야기를 왜 아니 에르노는 펴낸 것일까?

역자는 그녀가 그 사랑의 감정을 붙잡아 놓고 싶어서라고 생각했던데... 그게 그런거라면 굳이 남에게 드러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내 생각에 그녀는 어떻게 보면 부도덕하고 이상한 일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의 광기를

체험하게 되었고 그걸 작가이기에 써야 한다는 생각...강하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껴서...그래서 쓴 건 아닐까

매장당할 위험성 비난당할 두려움보다 더 강했던 거겠지...사랑의 광기...만큼 쓰고 싶게 만드는 소재가 있겠는가...

대상이 유부남이라서 연하라서 짧게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는 꼭 육체적인 쾌락만을 위한 만남 같게 느껴지는 게

(어쩌면 그게 사실일지도) 논란거리를 만든거겠지...사실 그녀가 그 만남에서 느낀 감정은 논란거리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것이고 아주 단순한 열정이었을 뿐

 

근데 책에서 그녀도 밝힌다 그 순간에 머물고 싶어서 쓴거라고...

그러나 나는 그런거라면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었을거라고...그러니까 내 생각에는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그 글을

그가 읽게 되리라는 생각에서 쓴 것일 수도 있다는 것...그런게 아닌가요 아니 에르노 할머니?

 

 

 

 

 

 

이번 글쓰기에서 이런 정사장면(앞서 묘사한 포르노 영화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인상 또는 고통 당혹스러움

그리고 도덕적 판단의 유보 상태에 줄곧 매달리게 될 것 같다

 

 

작년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책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문장은 남녀관계를 표현한 대목이었다

그런 내용은 내게 그에 관한 무언가를 가르쳐주었고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책에 씌어진 그 밖의 다른 내용은 그 사람과의 다음 번 만남까지의 빈 시간을 메워주는 수단일 뿐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말고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 조차 피했다

 

나는 이 남자와 침대에서 보내는 오후 한나절의 뜨거운 순간이

아이를 갖는 일이나 대회에서 입상하는 일 그리고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보다 내 인생에서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람이 떠나자 엄청난 피로가 나를 짓눌러왔다

곧바로 집안을 정리하지 못했다

하나하나 어떤 몸짓이나 순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그 물건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싶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지니고 있기 위해 다음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를 제외하고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건 새 옷이나 귀고리 스타킹 등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하나 하나 몸에 맞춰보는 때였다

언젠가 그 사람이 다른 여자에게 욕망을 품게 되기라도 하면 이런 치장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열정이 다하면 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어느 날 오후 펄펄 끓는 물이 들어 있는 커피 포트를 잘못 내려놓는 바람에

거실의 카펫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불에 탄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열정적인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고통과 우정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꼈다

일 없이 벤치에 누워있는 사람들 창녀촌에 단골로 드나드는 사람들 그리고 통속소설에 빠져 있는

여자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와의 관계가 그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가끔 그와 정사를 나누며 보낸 오후가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일지 자문해 보았다

정사를 나눈다는 것 그 자체일 뿐이었겠지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노출증이란 같은 시간대에 남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는 병적인 욕망일 뿐이니까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사람은 6개월 전 프랑스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새벽 두시면 어김없이 잠에서 깨어났다

내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느날 밤 에이즈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내게 그거라도 남겨놓았는지 모르잖아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지만 그가 떠난 지 두 달쯤 지난 후부터 나는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떄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아니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받으려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보았다

혹은 그들이 언제 어디선가 읽었다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내 글들을 통해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바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열정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예전처럼 그렇게 내 일상을 집요하게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 글을 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읽힐 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지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쓴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내게 준 어떤 것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사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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