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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애도일기 - 롤랑바르트

by librovely 2013. 11. 20.

 

 

 

애도일기                                                            롤랑바르트                              이순

 

 

롤랑바르트....

이름이 왠지 멋지네...물론 그의 글은 더 멋지다

<사랑의 단상>은 내가 공감하기 힘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책

물론 나중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대상은 동성이었구나...에 살짝 놀라긴 했지만...정확히 말하자면 아쉬움이 샘

솟았지만...여기서 아쉬움이란... 그냥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었음에 대한 것

어쨌거나 동성간의 사랑도 이성간의 그것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빛깔을 띄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책은 서점에서 보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그렇다...나같은 인간이 출판의 위기를 초래...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누군가는 이 리뷰를 보고 한 권이라도 사지 않을까요...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본다

어쨌든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한 달 정도 기다려서 받을 수 있었다...광명시 도서관 만세!  최고야 최고....

광명시는 도서관이 많아서 선거 결과가 그나마 경기도에서는 내 맘에 들게 나오는 것 이라고 혼자 생각해봄...

물론 누군가는 광명시에는 서민들이 많이 살아서 그 모양이야...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하지만 서민들이 많다고 그렇게 나오는 건 아니지...서민이 더 무섭게 어떤 편을 들기도

하니까...

 

애도 일기

누가 죽은걸까...얼핏 생각하기에 누군가의 죽음을 버거워하다 못해 글을 쓰기까지 했다면 연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롤랑 바르트는 우리의 추측을 넘어서심...그가 애도하는 대상은 어머니...롤랑 바르트의 어머니...

 

두려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에 대해 자세히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으나 막연하게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엄마의 죽음

내가 병에 걸리는 것도 두렵고 내가 죽는 것도 두렵다 그러나 왠지 그것들보다 먼저 겪게 될 것만 같은 엄마의 죽음이

상당히 두렵다.... 어쩌면 내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해서 그런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상 일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일도 많고 어떤 면에서는 전전긍긍하지 않고 진심으로 쿨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여튼 엄마의 죽음...이라는 문제 때문에 난 두려웠고 교회에 열심히 다닐 때 난 배우자 기도 따위는 하지 않았어도

(그래서 지금 이 모양으로 초라하게 늙어가는지도) 부모님의 장수를 놓고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엄마 아빠가 100살 넘게 살게 하시고 병에 걸려 죽는 게 아니라 자연사하게 해주세요...

요런 기도를 진짜 했고 진심으로 했고 들어주시겠지...근데 이 기도는 사실 나를 위한 기도였다...

지금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으니 내가 준비할 수 있을 시간을 벌어보자는 심산이었던게다...엄마가 100살이면

나는 70살 가까이 된거니까 그 나이 먹었으면 나도 좀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서 부모님의 죽음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남은 인생을 그러니까 더이상 마음 붙일 곳 의지할 곳 없는, 나를 심히 걱정해주는 그런 존재가 더 이상

없는 그런 삶을 꾸역꾸역 용감하게 살아가다가 죽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

 

이렇게 철저하게 나를 위한 마음 때문에 나는 엄마가 오래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던거고...ㅡㅡ;

그렇게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우면 친구를 사귀면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음... 친구간의 우정도 진심일 수 있고 그것 또한 인생을 매우 풍요롭게 만들어주지만...그게 무조건적인 엄마의

사랑을 넘어설 수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우정을 별거 아니라고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종류가 달라...

그럼 가족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끈끈한 남녀관계를 경험해 본 일이 없어서 이건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주변 혹은 책 혹은 영화에서 본 바에 의하면 그나마 엄마의 빈자리 문제를 채워줄만한 가장 유의미한 존재의

가능성은 사실 배우자 혹은 연인이겠지...그런데...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럼 내가 엄마가 되어서 자녀를

낳으면 된다? 자녀는 내가 사랑을 줄 대상이지 받을 대상이 아닌거다...이 또한 우정과 같이 종류가 달라....

 

쓰다보니 무섭네...

어쨌든 여름에 여행가서 본 엄마 얼굴의 주름은 자꾸 순간순간 나를 공포로 밀어 넣었었다...그건 주름의 문제가 아니라

주름이 의미하는 나이듦 그리고 죽음...그리고 이어서 연상되는 남겨질 나의 모습...지금 이렇게 여행다닌 장면이 엄마가

죽으면 다시 막 생각날거야...이런 생각을 했던 나까지도 생각이 나겠지...피할 수 없는 그 상황이 언젠간 오겠지...

이딴 생각들...그 때 그런 생각도 했었다...내가 엄마의 죽음을 걱정하며 뭔가 개운치 않은 마음을 느끼면서...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도 결혼을 강요하는 게... 그 이유가 뭔지 대충은 짐작이 갔던 것...

 

나는 엄마의 죽음을 걱정하고(물론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알고보면 남겨질 나를 두려워하는 것) 엄마는 홀로 남겨질 내가

끔찍한 것 같다는 생각...까놓고 더 써보자면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는 엄마는 내가 이런 남자 어때 어쩌고 하면 직업은

뭐냐...이런 걸 조금이라도 물으시더니 이제는 정말 다 필요없고 착한 사람이면 된다...직업이고 학벌이고 소득이고 그런

거 상관없고 사람 성격이 멀쩡하면 된다...나보다 더 나쁜 학교를 나왔건 돈을 더 못 벌건 아무 상관 없다는 것...

(나보다 공부 못하고 나보다 돈도 못벌고?  이런 사람 고르는 게 더 힘들지도...희소성...ㅋㅋ

사실 이것 저것 다 보고 결혼하려고 한다 쳐도 그게 되기나 하겠냐는 생각에 그러셨을 수도? ㅎㅎ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냐)

 

그 말을 듣고 그럼 왜 결혼을 하라고 하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단지 그게 두려우셨던 게 아닐까? 혼자 남겨지는 것

근데 요새 내가 개발한 결혼 어쩌고 잔소리 대응법에 보이신 반응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새로 개발한 말대꾸란....그렇게 막 결혼 아무렇게나 했다가 아니다 싶으면 난 이혼할건데 괜찮겠어?

(내 친구가 엄마의 결혼 잔소리에 그럼 아무렇게나 결혼하고 빨간줄 만들어 드릴게요 했더니 조용~해졌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따라한 것임...그 친구는 그 네가지 없는 말대꾸를 하고 평화를 얻었다고 했고 그 후에 정말로 맘이 끌린

남자와 열혈 연애하다가 결혼해서 애 낳고 지금 둘째 임신중인 성공적인 라이프를 즐기고 계심 ㅡㅡ;)

하여튼 그렇게 했더니 제발 그러라고~ 결혼 못한 것 보다 하고 이혼한 게 훨씬 낫다고....음....

 

결혼 이야기...하나 더 하자면...ㅋㅋ 내 방에는 작년에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본 멜랑꼴리아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러니까 그 주인공이던 커스틴 던스트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들고는 우중충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진...

근데 엄마는 방에 뭔가 너절너절 붙여놓으면 이 지저분한 것들 좀 떼라고 하시는데 이 포스터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어떤 때에는 오히려 뭔가 흐뭇하게 보고는 나가기도 하고 뭐 그런...ㅋㅎㅎ 이 영화 완전 우울한

내용인데...하나 더 하자...오늘은 케이블 음악 방송 틀어놓고 잉여잉여하고 있는데 음악이 끝나고 우리결혼했어요가

나오고 있었고 난 그걸 인식못하고 딴짓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들어오더니 웨딩드레스 입어보고 노닥거리는 장면을

보더니 이것봐라 저렇게 좋아 하잖아 쟤들...하며 흐뭇...아마도 내가 그 프로그램을 즐겁게 보고 앉아있었다고 생각

하신 모양이었다...그래서 단번에 저거 가짜야 결혼은 무슨... 하며 TV 꺼버림...ㅡㅡ;

이야기가 빗나가는구나... 다시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야기 연결...

 

롤랑 바르트가 거의 63살? 하여튼 노년에 접어들었을 때 마망이라고 부르는 그의 어머니는 죽고 롤랑바르트는

깊은 슬픔에 빠져든다...병에 걸려 힘들어 하다가 죽은 것 같은데 아플 때는 그저 돌보기에 바빠 슬플 겨를이

없었던 것 같고 결국 세상을 떠나자 남겨진 롤랑 바르트는 그 상실감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는 듯 보인다

경험해 보지 않았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의 죽음을...그러나 대충 알 것 같고

딱 그 상황이다...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읽었을 때의 그 기분....

내가 모르는 경험 못한 상황이지만 그의 글이 말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는 생각 혹은 착각

어쨌든 읽으면서 감탄이 나왔다...어떻게 그 상황을 저렇게도 정확하게 뽑아내서 표현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슬프다 보고싶다 마음이 허전하다 정도로나 반응을 보일 수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신기하기만...

 

다들 알고 있는 그 이야기를 해보자면... 어디더라...에스키모인들? 하여튼 눈에 둘러싸여 사는 곳에는 흰색도

여러가지로 표현한다고 들었는데...그러니까 분홍색 아니 폼나게 핑크만 하나 알던 때와 핫핑크 베이비핑크를

알게 된 때 내 눈은 다양한 분홍색을 인식하게 되는거고...롤랑 바르트의 글은 그렇게 막연하게 느끼지만 그게

뭔지 몰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던 그런 감정들을 언어로 끄집어 내줘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게 뭔소리냐...하여튼 사랑의 단상을 읽으면 우리는 사랑의 감정들을 더 낱낱이 알 수 있고 애도 일기를 읽으면

중요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느끼게 되는 그런 그리움 상실감을 더 세밀하게 느껴볼 수 있게 된다는 것

 

글이 많지는 않지만 속도가 빠르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읽고 음미하고...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애도 일기를 거의 2년 정도 썼나? 그렇게 해결되지 않는 애도의 감정을 감당했다기

보다는 그냥 밀려든 감정을 두고볼 수밖에 없었고 그 고통을 글로 쓰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에게 아직은 벗어나기 힘든가보다는 식의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자 애도의 감정에 진행이란 없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애도 일기를 멈출 수 있을 시기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게 무척 힘겨웠을

것이고... 엄마가 죽은 후 2년 정도 지났을 때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는데...그런데 그는 그게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한사코 치료를 거부했고 그렇게 죽음에 이르렀다....다소 충격적이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는 스스로의 죽음으로 끝이 난거다...반 정도는 자살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이르게 한 엄마의 죽음

연인을 그리워하다 못해 자살하거나 뭐 그런건 어찌 보면 흔한(?) 일이지만... 본인도 노년에 접어든 그 시기에

엄마의 죽음을 감당치 못해 죽음에 이르렀다는 게 슬프면서도 묘한 감동을 준다... 롤랑 바르트는 아마 자녀가 없었겠지

그리고 그의 엄마는 롤랑 바르트가 한 살 때 남편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결국 둘이서 그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것이고...롤랑 바르트는 동성과 연애를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그런데도 엄마랑 계속 함께 거주했던 것일까?

원래 외국에서는 따로 사는 게 보통 아닌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어떤 삶이 그들 사이에 있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에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던 롤랑 바르트를 엄마의 죽음은 무너지게 만들었던거구나...

 

다시 내 이야기를 하자면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엄마가 며칠 안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고3때였는데...

사실 그럴만큼 심각한 건 아니었는데 그 순간 나는 아 이러다가 죽는거구나...했고 그 순간 머리 속이 명료해

지면서 엄마가 죽으면 이건 이렇게 하고 또 그건 그렇게 하고 어쩌고 하며 이것 저것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놀랐었다...어떻게 엄마의 죽음을 생각하자마자 그 이후의 내 처신에 대해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그리고 그 후로 종종 엄마에게 농담 비슷하게 이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서운해

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내가 이 이야기를 종종 했던 이유는 물론 들으면 당장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이야기지만 언젠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엄마의 죽음 앞에 무너지고 슬픔에 처박힐 나를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죽음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근데 더 골똘하게 생각해보니

아마 엄마가 죽었을 때 어쩌면 저렇게 이성적으로 일단 이것 저것 판단해서 정리를 했을 수도 있다...아마 그랬을

것이다...그리고 나서 그 후가 문제지...그 후로 얼마간은 제정신이 아닐 것이고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다시 삺의

패턴에 젖어들어가겠지 그렇지만 문득문득 갖가지 기억들과 그리움이 정신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곤 하겠지

 

이렇게 쓰니 내가 꽤나 효심 지극한 사람같아 보이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4년 전 정도던가? 운동하러 가다가 쓰레기 봉투 더미 옆에 누워있는 죽은 고양이를 한 마리 봤었다

고작(?) 길에서 살던 고양이지만 그 생명의 다함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상당한 기간동안 그 죽어있는 늘어진

몸이 너무 슬프게 생각이 났고 그 후로 키우는 강아지와 하는 인사가 바뀌었다...

송이야 오래살아~ 30년 아니 50년 살자~개도 영혼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 영혼있지? ㅎㅎ 천국에서 만나려고...

(안된다고? 아...내가 거길 갈 수 있겠냐고...음...도그쓰레기같은 인간도 믿으면 갈 수 있다고 배웠어요...나도 갈 수 있음)

난 단지 죽음을 항상 머리 속에 넣고 다니는 인간이라는 것 그게 좀 유별난...언제부턴지 기억도 안 나는데...

이제 나는 **살이니까 인생의 몇 분의 몇을 살았다...지금 살아온 것처럼 몇 번 더 살면 죽음에 이른다

이딴 식으로 죽음 카운트 다운을 한지도 오래다...

 

오늘따라 너저분한 이야기만 쏟아진다...

결론은 이거다

이 책 좋다!

롤랑 바르트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 책 좋네...롤랑 바르트의 책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했었다

누구나 엄마의 죽음에 이처럼 애도의 감정을 품지는 않을거라고...

그러나 누구나 자녀의 죽음에는 이처럼 애도의 감정을 품을거라고...

그래서 부모가 먼저 죽게 만들어졌나보다 라는 바보같은 생각...

 

 

 

 

 

 

 

 

내 주변의 사람들은 아마도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다

나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하지만 한 사람이 직접 당한 슬픔의 타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한 일이다 그녀의 목소리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목소리

기억을 불러들이는 그녀만의 씨앗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를 나는 더는 듣지 못한다

마치 청각 어딘가가 마비된 것처럼

 

애도의 한도에 대하여

라루스 백과사전 메멘토 :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18개월이 넘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 나의 죽음은 더 이상 그 누구도 죽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사실이다

 

아주 자주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것

딱딱하게 굳어버린 슬픔

경화증에 걸린 것처럼

 

솜처럼 안개가 짙은 일요일 아침

혼자다

한 주 한 주가 이런 식으로 돌아가게 되리라는 걸 느낀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그녀 없이 흘러가게 될 긴 날들의 행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라고

하지만 용기를 가져야 했던 시간은 다른 때였다

그녀가 아프던 때 간호하면서 그녀의 고통과 슬픔을 보아야 했던 때

내 눈물을 감추어야 했던 때

매 순간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얼굴을 꾸며야 했던 때

그때 나는 용기가 있었다

지금 용기는 내게 다른 걸 의미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

그런데 그러자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슬픔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 그러자 뒤따르는 일말의 죄의식

하지만 나는 평생 그렇지 않았던가? 항상 너무 지나치리만큼 예민하게 느끼지 않았던가?

 

외로움=대화를 나눌 사람이 집에 없다는 것

몇 시쯤에 돌아오겠노라고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나는 이제 가는 곳마다 카페에서나 거리에서나 만나는 사람들 하나하나를

결국에는 죽을 수밖에 없음이라는 시선으로

그러니까 그들 모두를 죽어야 하는 존재들로 바라본다

그런데 그 사실만큼이나 분명하게 나는 또한 알고 있다

그들이 그 사실을 결코 알고 있지 못하다는 걸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나를 갈가리 찢어지게 만들지만 동시에 다시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

그건 돌이킬 수 없다 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 괴로움을 막을 수 있는 그 어떤 히스테리적인 방어기제의 가능성도 내게는 없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 그 자체가 어찌 해볼 수 없도록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병이 나서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던 날들을 생각한다

오전 내내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날들

 

카페 플로르에서 본 풍경

건너편 서점 라 윈의 창턱에 한 여자가 앉아 있다

유리잔을 손에 든 여자는 지루해 보인다

그녀의 등 뒤에는 남자들이 서 있고 일층 공간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오월의 칵테일 파티

해마다 때가 되면 열리는 상투적인 사교 모임들은 쓸쓸하고 울적하다

찌르고 들어오는 아픔

나는 또 생각한다

마망은 이제 없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삶은 계속된다

 

애도의 진실은 단순하다

지금 마망이 죽고 없는 지금 나 또한 죽음으로 떠밀려간다

 

내 경우 애도의 슬픔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그런 것이다

그 어떤 진행 과정도 거기에는 없다

때문에 너무 이른 애도의 슬픔 같은 것도 없다

 

어머니를 잃고 나서 프루스트가 앙드레 보니에에게 보낸 편지

프루스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무거운 마음 안에서만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평생 병으로 그녀에게 걱정거리가 되었던 죄의식 안에서만)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이런 상념이 없다면 기억을 하면서 계속 살아가면서 어머니와 내가 살았던 완벽한 동거의

시간 속에서 아마도 나는 그 어떤 미지의 달콤함을 맛볼 수도 있을 텐데요

 

얼마 전에 어머니를 잃어버린 조르주 드 로리스에게 보내는 프루스트의 편지

어머니가 당신 곁에 있었을 때 당신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게 될 오늘과 같은 시간들만

생각했겠죠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녀가 여전히 곁에 있었던 지난날들만을 생각하고 있겠죠

그렇게 과거 속으로 내던져져 있는 일은 참으로 잔인하지만 그 일에 서서히 습관이 되면

당신은 차츰 감지하게 될 겁니다 당신 어머니가 아주 부드럽게 새로운 삶으로 깨어나 당신

에게로 되돌아와서 그분이 머물렀던 그 자리에 당신의 곁에 그 어떤 빈곳도 남기지 않고

다시 존재하게 될 거라는 걸 말이죠

당신도 이제 알게될 겁니다

결코 위안 같은 건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날이 갈수록 더 많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이 다름 아닌 위안이라는 걸

 

그녀의 죽음 이후 그 무언가를 새롭게 꾸미고 만들어가는 일이 싫다

그런데 글쓰기는 예외다

그건 왜일까

문학

그것은 내게 단 하나뿐인 고결함의 영역이다(마망이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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