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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더러운 책상 - 박범신

by librovely 2013. 10. 20.

 

 

더러운 책상                                                                                       박범신             2003           문학동네

 

은교를 읽고나서 박범신의 다른 책을 좀 읽어봐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기웃거리다가 그래도 좀 쉬울거라고 생각되는 성장소설 분위기인 이 책을 골랐다

내용은 독특했다 아마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것 같고 그래서 더 충격적...

평범하지 않은 성장기를 거쳤고 그렇게 된 이유는 전적으로 작가가 평범하지 않았기에...

힐링캠프에서 엿본 박범신보다 훨씬 센 박범신이 이 책 안에 존재하고 계셨음...재밌으면서도 충격적이고 이해가

가다가도 안가고...뭐 남의 인생 그러니까 박범신의 청소년기를 엿본건데 그런 사람이었기에 이런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어쨌든 듣도 보도 못한 인생을 간접경험해본 아주 의미있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역시 박범신은 작가구나...글 정말 잘 쓰는 작가...이면서 자기 미화 따위에 빠지지 않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볼 수 있는...그런 진짜 작가~  어릴 때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개성이 터졌구나...뭔가 마성(?)의 인간임...ㅎㅎ

 

자살 시도를 여러 차례 했다고 들었는데...

첫 자살 시도는 왜 했더라...아마도 너무 어린 시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책들을 읽었고 그런 내용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소화해서 더 잘 살아가기에는 버거웠던 것 같고 그냥 쓰레기같은 무의미한 이 인생 뭐하러 사는가 꾸역꾸역

생각에 빠져 자살시도를 했던 것 같다...그런 그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나야 징그럽게 생에 집착하고 사는

인간이지만 그렇지만 종종 뭐하러 살아...라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그럴 때 그 생각에 푸욱 젖어든다면 그리고 결단력이

있다면 뭐 자살시도도 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하지만 난 그런 허무감보다 꿀잠자고 맛있는 거 먹고 웃긴 거 보고

그러면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재미가 더 센건가...아니면 내가 쓰레기니까 쓰레기 같은 삶이 그다지 버겁지 않아요~

모드 인걸지도... 하여튼 처음 자살시도는 그런 이유였고 두 번째는 좋아했던 여자...운명처럼 피아노 연습실에서 만났고

그렇게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나의 천사가 알고보니 의도적으로 피아노 연습실에서 남자를 꾀곤 하는 여자였고 다른

남자와 캠퍼스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며 인생 즐기고 계신 여자라는 걸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고 그래서 대학 때려 치고

부산에 내려가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일을 도와주며 어떤 여관같은 곳에 있다가 주인 아줌마가 그를 유혹하고 방값

때문인지 뭔지 하여튼 아줌마를 돕다가 그걸 지켜보는 아줌마의 남편을 알게되고는 도망나오고 그 후 그 남편이

아줌마를 잔인하게 죽였다는 소식을 들은 후 다시 자살을 시도한 것 같다...그런데 애매한 건 처음 자살은 실제로

자살을 했고 미수에 그친건데 두 번째는 철도에 누워 몸이 다 흩어진거처럼 썼으나 그건 그냥 비유처럼 쓰여있는...

그러니까 진짜 죽을 행동을 한 건 아닌데 그 이후로 자신의 영혼은 그렇게 산산이 조각나버렸고 그 후로는 그냥

일반인 코스프레를 시작했다는 의미인건지도...어쨌든 힐링캠프에서 보니 그는 그 후로도 3-4번이나 자살시도를

했었던데...이 책을 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특히 그의 10대 후반의 그에게

상당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지금의 자기 존재는 그 시절 자신을 배신한 것이라는 소리도 한다...

 

미쳐버린 세계에 미친 상태로 나가기 위해 더러운 책상에 앉아있다고 비난했던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이 세상에

잘도 적응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속 편하게 살고 있는 스스로가 십대 시절 자신이 보기에는 역겨운 상태라는 생각

인 것 같다...  2003년에 쓴 책이라서 그런지 월드컵 응원할 때 박범신도 붉은 악마의 일원으로 응원하고 뛰고 그랬던

모양이다...그러면서 그런 스스로가 역겹기도 했던 것 같다...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그 때 역시 나는 나답게

집으로 귀가해서 내 방에서 혼자 텔레비젼으로 축구 경기를 봤는데 사람들이 빨간 옷 맞춰 입고 응원하고 울고 불고

난리치고 다니는 것이 웃기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지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나라를 사랑했고 언제부터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고 쇼를 하고있구나....게다가 쓰레기까지 싹 치우는 모범국민성을 보여준다는 뉴스에는 더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바보같아...자기 행동에 자기들이 취했구만...언제부터 그렇게 쓰레기를 잘 치우셨던가요...

어쨌든 그런 비비꼬인 생각을 했었는데...그건 그렇다 쳐도 어쨌거나 실존의 고민으로 인해 자살시도를 해대던

박범신이 그 빨간 물결에 휩싸여 뛰고 얼싸안고 했다는 건 좀 이상하긴 하다...그도 아마 그렇게 느꼈을 터이고

그 극단적인 그러니까 참으로도 세상에 쏙~ 들어가 함께 웃고 떠든 그 행동을 끄집어내서 소설에 써 놓은 것 같다

전적으로 잘 보여준 일이지...붉은 악마라....

 

하여튼 받아들이기 힘든...시기에 이런 저런 센 책들을 읽고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잘 안되자 이제는 자신을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시작한 것 같고 담임선생님이 모범생4명을 자살 방지책

으로 그에게 붙여준 모양인데 박범신은 오히려 그들을 타락?의 길로 인도하기 시작한다...여자애들과 어울리게 하고

애도 배게 하고 창녀촌에도 끌어들여 창녀와 사랑에 빠지게도 만들고 성병에 걸리게도 만든다...물론 성적도 곤두박질...

 

은교에도 나온 매매춘이 여기에 나오네...

박범신은 매매춘으로 처음 시작을 하는데...창녀를 똥치라고 비하하는 말에 발끈하여 코피 터지게 상대를 때리기도 한다

아마도 자기 스스로 떳떳하게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걸 누가 비하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사는 게 더럽다 죽어야겠다는 인간이 내 생각에 되게 지저분한 짓인 매매춘에는 너그럽고 창녀들과 어울려 놀고 먹고

하는 것이 영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지? 그녀들은 스스로가 쓰레기라는 것을 알고 인간이 그 따위라는 것 인생이

그런 것이라는 걸 알고 막 살기에 자살하고픈 자신과 뭔가 통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대체 무슨 심리지?

제 스스로 고매한 척 하지만 알고보면 쓰레기인 것들보다는 니들이 나아...그런 뉘앙스일까?

하여튼 난 거슬렸다...호기심에 한 번 가봤다고 해도 그게 뭐하는 짓이야 하는 생각이 들텐데...아예 어울려 놀고...

딴 게 거슬리는 게 아니다...단지 마음 없이 돈으로 그러는 것이 영 구역질 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아파서 자기 장기를 기증하는 건 너무나 숭고한 일...그러나 돈 때문에 자기 장기 떼서 파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하여튼 사는 게 역겹다는 인간이 즐겁게 매매춘하며 어울리는 건 영 이해가 안감...

이유가 뭐가 되었든 비겁한 변명~입니다....라고 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청소년이 어떻게 그러고 다녀...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고 판 게 문제라는 것...

 

매매춘 이야기만 나오면 대학 때가 생각난다  언젠가 한 번 여기에 썼던 것도 같은데...

대학 때 선택 과목에 성에 관한 교양 분야가 있었고 나야 당연히 그 선택과목을 고름....참으로 바람직한 교양과목일세

가보니 역시나 남자 비율이 다른 과목에 비해 높았으나 알게 뭐야...살짝 부끄러움이 돋았지만 난 이런 사람입니다...

하여튼 그 때 어떤 정말 외모가 여자에게 어필하기 힘든 분이 창녀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들을 두둔하는 말을 해댔다

그 분은 무슨 이유인지 창녀에 대한 이야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고 누군가가 그런 곳에 가면 성병도 옮을 수 있고

어쩌고 하니 흥분해서 무섭게 쏘아대길...그녀들은 보건증? 뭐 하여튼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기 때문에 평범한 여자들

보다 더 깨끗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고 우린 다 멍~~하게 그를 바라봄...내가 창녀보다 더 성병 걸릴 위험이 높은

그..그.. 그런 거였어?  앞 서 외모 어쩌고 이야기한 건 그가 아마도 매매춘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고... 어쨌든 매매춘을 한 남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행동이 용납되기 힘든 행동

이기에 더 과하게 그게 나쁘고 더러운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음...난 내가 남자고 여자를 사귀지 못하는

찌질이였다고 해도 그런 짓을 했을 리 없다고 생각...그건 인간이 하면 안될 짓이야....아닌가...?

 

이러면서 꼬인 생각이 또 시작된다....

매매춘이 사실 창녀촌에서만 이뤄지나?

먹고사니즘 때문에 사랑이 아예 없지만 결혼을 해서 애 낳고 사는 건 그야말로 매매춘이 아닐까? 아님 말고....

넌 그것도 못했잖아 실패했잖아... 하면 나는 또 할 말이 없음...

이런 생각이 들게 한 건 역시나 그놈의 스탕달...2번 정도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는 건 매음행위라고 스탕달 형님이

말했지...스탕달이 말한 매음 행위도 20대에나 가능하지 늙은 여자는 못하는거더라고요...ㅡㅡ;

 

하여튼 그 모범생들 타락시키는 재미로 살던 박범신...그 모범생과 옆 학교 여학생과의 워즈워스 어쩌고 하면서

시작한 모임 이야기는 재미있게 느껴졌다...그 시기에나 가능했을 뭔가 낭만적인 이야기...물론 그 끝은 성적하락

그리고 임신...자살...이런걸로 비참하게 끝이 났지만...뭔가 요즘 시대와는 다른 아날로그 낭만 모드가....

그 모임에서 전교1등 친구가 반해있던 여자가 생뚱맞게 박범신을 좋아했다는 게 재미있었다...그랬겠지...

글만 봐도 박범신이 얼마나 묘한 캐릭터였을지가 느껴짐...

 

뿔테안경을 쓴 도서 대여점 주인도 아주 호기심 돋는다...무슨 과거가 있었던걸까...

하여튼 성적의 과한 하락으로 선생님에게 심한 매질을 당하며 그 모범생 친구들과의 관계는 끝이나고

그 중 한 명은 집안의 가난과 대학 등록금 문제 또 가정폭력 따위로 고민을 했던건지 철길에 몸을 눕혀

자살을 하고 만다...되게 가슴 아팠다...동생의 자살에 자신의 말이 그를 자살로 밀어 넣은거라며 한탄하는

누나의 뇌까림이 절절했다...

 

다 제 갈길을 가고 박범신은 집으로 돌아오나 집에는 보기 싫은 부모가 있고 이젠 부모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나보다...어쨌거나 집을 떠나고 싶었고 등록금 싼 교육대학에 그래서 들어가게 된 것...

동전을 굴려서 서울과 전주 어딜 갈까 골랐는데 동전이 전주를 가리켜 그는 전주행 기차에 가볍게 몸을 실는다

그리고 교육대학에 가서 그는 불루라는 여인을 만난다...피아노 연습실에 책을 놓고간 그녀가 다시 들어오고

그는 한 눈에 반해 운명처럼 끌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상습범...다른 누군가도 그런 식으로 꼬시고

결국 다른 남자와 놀고 계신 걸 보고는 학교고 뭐고 다 때려치고 부산으로 내려가고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어떤 여관에 머물고 소일거리를 돕고 방에 머물 수 있게 되는데 나중에 여관 여주인이 방으로 오라고 하고 그는

거기에서 방세때문인지 뭔지 내키지 않는 짓을 하는데 그걸 여관 남자주인이 몰래 보고 있는 걸 눈치채고 도망나옴

나중에 그 남자 주인이 부인을 토막내 죽인 것을 알게된다....어디까지가 사실이지...다 사실인가...

 

 

갈 곳 없는 박범신은 누나네 집 가난한 누나네 집에서 화장실 이용도 다같이 하는 등 가난의 극한을 맛보고...

버스에 타는 사람 수를 세는 계수원?을 하는데 거기에서 버스 차장들이 돈을 몰래 숨기는 지 감시하는 일을

하는건데 자신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마구 맞고 쫒겨나고 성폭행도 당하는 것을 보고는 그것도 그만둔다...

그리고 지나가다가 빨갱이로 몰려 잠시 고문도 당하고... 그렇게 스무 살은 간다

 

 

박범신은 뭐가 달라진 것일까?

그가 그리워하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하는 십대 시절의 그와 지금의 박범신...

십대 시절 박범신은 기차에서 책을 읽다가 갑자기 다가온 공고생에게 얻어맞는다...심하게...

그일이 있은 후 박범신은 그가 내린 역으로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역무원에게 그 공고생 명찰 이름을 대고

친구네 집이 어디냐고 묻고 결국 그를 찾아가고 그가 나오자 가차없이 자전거를 그에게 내리 꽂아 피를 철철 흘리게

만든다...그리고 한 번 더... 그리고 묻는다 네가 이어령을 알아?

그러니까 10대 시절의 박범신에게는 거짓이 없었던 것 같다...자신이 생각한대로 그대로 가는거다...솔직하게...

사는 게 아니다 싶으니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드니까...사는 게 허무하고 역겹다고 생각하니까 자살을 시도한거고...

그 딴 거 배워서 뭐해...생각이 들어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가장 정확한 답이 들어있다고 여긴 책만 주구장창 본거다

그리고 그 책 들에서 얻은 결론...죽자...를 실천하려고 한거고...그게 실패하자 어차피 무의미한 생...그냥 굴리며 살자

그리고 단 한 번 삶의 의지를 샘솟게 했던 여자...불루...(그녀는 지금 학교에서 초딩들을 가르치고 있으려나...)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자신이 정말 좋아했던 불루가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와 히히덕 거린 것....

원치도 않던 다른 애들은 박범신을 좋아하더니...정작 불루....는 그렇게...눈을 감는거야...만 남기고 배신을 함...

눈을 감는거야...는 다른 방향으로 박범신을 유혹하기 시작한다...죽음의 유혹...눈을 감자...죽자....다시 찾아온 죽음

그리고 부산과 서울을 떠돌며 막 살아간 박범신에게 인간이 볼 수 있는 바닥의 인생들이 보이기 시작한거고....

그것도 쉽지 않다...

 

그렇게 소설은 20살에서 끝이나는데....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다시 대학에 가고 교사를 몇 년하다가 다시 원광대 국문과에 가고 글을 쓰고 신춘문예에 뽑힌건가...

그러면서 죽음의 의지를 창작열로 불태우기 시작한거고 그렇게 세상에서 인정받자 더러운 세상이 아닌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다가온걸까? 그래서 그 안에 푹신하게 들어가서 살면서 행복했는데 그런데 자꾸 어릴 때의

박범신 그가 그립고 그에게 미안하고 그래서 이런 소설을 쓰게 된걸까? 십대의 박범신과 화해하고 싶다는 생각?

아니면 고해성사?

 

어떤 의미로 쓴건지는 인터뷰 따위나 똑똑이들의 리뷰를 찾아 읽으면 될 일이다

재미있게 읽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우리나라 작가의 책을 읽어봐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문학전집만 들여다 볼 일은 아니구나...

의미고 뭐고 일단 이 책은 매우 재미있다...ㅡㅡ;

(박범신은 뭔가 내 취향...어두침침한 책들을 좋아한 것 같다...이 소설에 나오는 것들만 봐도....

헤르만헤세 데미안,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사르트르 구토, 쇼펜하우어...)

 

 

 

 

 

 

 

 

 

 

 

 

 

통학기차를 타려면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광기의 파장이 세계로부터 그의 내부로 여전히 수신되고 있지만 그는 일어나 밥을 먹어야 한다

 

그는 가뭇없이 시간의 유속에 자신의 영혼을 실어보낸다

시간의 끝에서 만나야 할 것을 그는 느끼고 만진다

그 순간의 그는 열여섯이라는 사실성의 눈금으로부터 비어져나와 있다

 

내 안의 실존적 광기를 누구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끽소리도 내지 마라들 계집애면 엎어놔버릴것인즉

나가서 솥뚜껑 소리 꽝꽝

옆집 정순이네한테 들릴 만큼 꽝꽝 내면서 밥하고 미역국 끓여라잉

 

어린 그가 살의를 품고 살의를 키워가며 검은 모자 챙 깊이 눌러내린 채 수의 빛깔 같은 금강둑을

걷고 있는 게 내 눈에 보인다

만약 그가 나를 알아본다면 그는 역할 바꾸어 말하기 따위의 시시껄렁한 과정을 단호히 절제해 버리고

대뜬 내게 이렇게 단검을 박으려 할 것이다

당신은 나를 배신했어요

나는 그의 모멸과 비난을 참아야 한다

 

열일곱 살이 될 때 비로소 그는 <데미안>을 통해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라는 문장과 만난다 알은 세계다 라고 헤르만 헤세는 덧붙인다

세계는 그럼 죽음인가 삶인가

 

그는 오직 일 주일에 한 번 이리의 책대여소로 외출해 열 권씩 빌려온다

동아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과 을유문화사의 세계문학전집을 들쭉날쭉 빌려오고

가끔 벌레먹은 장미 따위를 섞거나 철학 입문서 등도 포함한다

죽음을 제외하고선 아무것도 진정 우리 것이라 할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어느 줄엔 밑줄을 긋고

죽음에 의하여 우리들은 무엇하나 잃어버리지 않는다 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을 노트에 옮겨 적는다

 

자전거 체인이 참지 못하고 이내 한번 더 공고생의 정수리를 모질게 쪼개놓는다

네가 이어령을 알아?

 

그 동안 일관된 신념으로 사모은 수면제 육십 알을 열일곱 살의 그는 이리역 광장에서 씹어 먹는다

물도 없이 수면제를 씹어 먹는다

 

달려드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그는 담임선생님 가슴에 이마 내려놓고서 오래오래 운다

집이 싫어요

어머니도 싫어요

그가 울면서 했던 말이 내 귀에 남아 있다

 

이젠 일어나 가야겠노라

그는 머리를 분연히 들고 예이츠를 흉내내어 소리친다

그러나 예이츠가 가고자 했던 아늑한 이니스프리 섬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목숨의 굴욕을 견디려면 더 많은 거짓말이 필요할 것이라고 그는 그 순간 확신한다

 

천만의 개소리야 선생님들의 말 교과서에 씌어 있는 거 다 죽은 단백질 같은 것에 불과해

세계의 광기에 편입되기 위해 말로 사기치면서 그래야 출세하지 그래야 돈벌지

광기의 전선에 편입돼야 살아남는 세상이 오고 있거든 너희들은 그렇게 살 거야 그러니 가서 공부해라

난 혼자 남겨지는 게 좋아 너희들은 가서 무리에 섞여 가서 더러운 책상을 갈고 닦아

미친 세상으로 미쳐서 나갈 준비를 하는거야

 

창녀들을 가리키는 일반화된 속어인 똥치...

이제 막 동정을 바친 그 제단의 아래로 내려서서 1964년 죽창같은 햇빛 앞이마로 받아내고 있다가 듣는 똥치

단 한 번의 가격으로 벌렁 넉장거리한 C의 콧구멍에서 피가 좌르륵 쏟아진다

그런 말 ........쓰지마 미칠거야 내가

 

순결이라는 것이 머지않아 시궁창에 팽개쳐 버려질 것이라는 짜릿한 예감에 전율한다

유린하고 싶다

그는 잔인하게 미소짓는다

목표는 이제 명백하다

실존의 위태로운 틈에 서 보지 않고 어떻게 감히 유장한 인생으로 흘러나갈 것인가

흘러나가기 위해선 지켜가야 한다고 믿었던 것부터 시궁창에 버리는 게 상책이다

 

자살미수라는 위험한 전력 때문인지 공부하지 않고 책 읽는 걸 들켜도 선생님들의 꾸지람은 체면치레 수준에 불과하다

책은 그가 믿는 유일한 길이고 수많은 길이다

 

그에게 있어 살아있다는 것은 여전히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그랬듯이 부끄러운 죄이며

그 죄의 사슬을 단호한 결단으로 끊어내는 것만이 광기의 세계로부터 자신의 자유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쇼펜하우어가 더러운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는 더러운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본질적으로 그에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에게 새로 생겨난 버릇은 다만 여러 개의 가면이 필요하다는 것

가면 속에 자의식의 병든 정체를 교묘히 숨겨야 한다는 것 그 누에고치 같은 방패의 사술들

책은 위험한거야

뿔테안경은 쓸쓸하게 웃는다

 

도대체 무엇이 되고 싶다....는 그 무엇이란 무엇인가

카뮈의 <이방인>에서 그는 묘지위의 제라늄 어머니 관 위에 떨어지던 붉은 흙 그 사이로 섞이던 흰 나무뿌리

를 읽고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그는 존재는 우연이요 필연이 아니다 아름다운 마로니에 뿌리가 사실은 괴물같고 부드러우며

무질서한 덩어리 무섭고 음탕한 나형의 덩어리이다 를 또한 읽는다

그는 책으로부터 위험함을 나날이 부여받지만 동시에 책이 그 자신과 친구들 또는 여학생1 여학생2 여학생3 여학생4가

우연한 소산에 불과한 괴물 같고 부드러우며 무질서한 덩어리 무섭고 음탕한 나형의 덩어리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것에

감사한다

 

H는 나도다 유신이 너만 보고 있어

G의 비명에 구체적인 정보가 뜨겁게 담긴다

 

1964. 11. 19. 오늘 기쁜 일은.

멋쟁이 C가 우유통 창녀와 잤다가 드디어 임질에 걸려 고름이 새기 시작한 일

K의 어머니가 K의 아버지에게 연탄집게로 맞은 일

서정시인 M이 여학생3의 손을 처음 잡은 일 곧 여학생3이 애를 배도록 유도해야지

                 오늘 슬픈 일은.

담임 선생이 내 학습태도에 대해 가짜로 칭찬해준 일

G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도 학교에 나온 일

너구리 주둥이 H가 나에게 은밀하게 편지를 보내온 일

난 왜 매독보차 안 걸릴까 국제매독

 

벌어진 관뚜껑 위로 마침내 흙이 쏟아져내릴 덮일 때 K의 주검에 대한 강렬한 분노 때문에 그는 손발을 부들부들 떤다

자기 살해의 축복받아야 할 찬스를 바로 멍청하고 영혼조차 텅 빈 십새끼 K가 날카롭게 가로채 갔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문제는 돈이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등록금이 싼 대학이 있어

셋째매형은 세계의 구조를 꿰뚫어보고 있다

 

살해할 수 없으면 떠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는 이윽고 결연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열아홉 살의 그는 쉰일곱 살까지 살아 있는 나 같은 작가를 결단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천수를 누린 쇼펜하우어를 이해할 수 없었듯이

도대체

도대체...라고 그는 부르짖는다

도대체 작가가 어떻게 그처럼 오래 살 수 있는가

 

그의 매형은 등록금이 싸고 이 년 만에 구조적 세계의 톱니바퀴에 편입될 것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대학에 입학을 권유했으나 그는 부모 살해범의 위험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곳을 입학했을 뿐이다

세계로의 편입은 그에겐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한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시청 앞 광장의 붉은 물결에 섞여 있는 사람들처럼 평범하고도 보편적인 인생을 살았을 그를

상상하는 건 슬픈 일이다

 

살아 있어 짐져야 하는 배신에 관해선 학습이 잘 돼 있다

 

불루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발견해낸 최초의 경험이다

불멸은 꿈이 아니라고 그는 적어도 그 순간 생각한다

사랑을 처음으로 찾았기 때문이다

 

책을 빌릴 때마다 이리시 도서대여소의 뿔테안경이 떠오른다

대여소가 원인 모를 화재로 불타고 뿔테안경이 화상을 입은 채 이리시에서 종적을 감추었다는 소문을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겁다 생텍쥐페리와 카뮈와 헤르만 헤세와 사상계와 이광수 염상섭 채만식을 알려준 뿔테안경은 지금

어디에 흐르고 있을까

 

자아란 겨우 두 가지로 분리되는가

겨우 네 가지 여덟 가지 예순네 가지로 분리되는가

내 안엔 수많은 나의 각각 다른 영혼이 깃들여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것은 편입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시시때때 골라 쓰는 가면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가면들은 가지런히 정리된 책꽂이나 칸칸으로 나누어진 서랍 속에 들어 있지만 내가 나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책꽂이나 서랍처럼 나뉘지 않고 훨씬 더 다양하다

분신이란 말은 그러므로 틀린 말이다

분리된 자아도 마찬가지

그가 열아홉에 느꼈던 삶에 대한 공포심은 수많은 영혼이 깃들여진 내 책상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삶의 효용성에 대한 정보를 나만큼 갖고 있지 않았기 떄문에 수많은 영혼이 깃들여진 내 책상은

그것 자체가 수많은 영혼이다

무당이 되지 않고선 볼 수 없는 바다 밑의 내 책상에

그 어떤 굴껍질 같은 것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그는 보지만 나는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별빛이 쏟아지던 호남선 철로

침묵과 자갈 사이로 실뱀처럼 흘러들던 그의 젊은 피를 생각하면 쉰일곱 이라니

너무나 오래 살았다고 느낀다 나의 배신을 그러므로 그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의 끔찍한 죄업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작가의 말

나는 작가보다 예인이라 불릴 때가 훨씬 좋다

이 소설은 예인이라 불리고 싶은 내게 아주 특별하다

내가 평생 가장 사랑했고 평생 가장 증오했던 그의 젊은 목숨에 대한 가감없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었지만 죽지 않는다

불과 열여섯 살의 그가 너무도 또렷이 보았던 것처럼 세계는 지금 광기에 휩싸여 있다

부디 그의 비명 소리에 귀 기울여주길

당신의 내부에 숨어 있는 늙지 않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귀 기울여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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