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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타인의 고통 - 수전 손택

by librovely 2007.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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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2004'     도서출판 이후

 

 

 

 

이 책은 이전에 두 번이나 대출받았다가 그대로 반납했던 책이다.

왜? 왜 유독 손이 가지 않았던 것일까? 타인의 고통에 대해 아예

생각하기도 싫었던 것일까? 그럴리가...타인의 고통에 대해 안다고

심히 고통받을만큼 착하지 못하다... 그냥 책이 뭔가 좀 어렵게

느껴진걸까... 아니면 재미없게 보인걸지도...

 

 

하여튼 그러다가 또 여기저기서 이 책의 이름을 보게 되었고...

네이버 오늘의 책에도 올랐던 책이고... 또 책이 깔끔하게 새로

나와서 대출을 받았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무슨 준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미리 하고 펼쳤는데... 이 전에 읽은 책이

소유냐 존재냐 라서 그런지...그 책에 비하면 문장 자체는 상당히

쉽게 느껴졌다...

 

 

근데 이상한건... 문장 자체가 아니라...그 내용..

문장은 쉽다.. 한 문장 한 문장 쉬운 문장들이다...

근데 그게 이어져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으로 뭉쳐지지가

않는 느낌이 좀 들었다... 특히 앞부분의 글...내가 난독증인가?

이 유명한 작가가 글을 이상하게 쓸리 없잖아... 이해력 부족이 문제

겠지? 그러다가도 좀 글이 이상해...이러다가 결국 번역이 이상해..

이렇게 누군지 모르는 번역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며...읽었다...

 

 

중간부분이 넘어가면 대체적으로 수전 손택이 하고자 하는 말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나만 그럴지도...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잘

내용이 들어올지도...

 

 

사진...

전쟁 사진이나 대량학살 사진들

기아로 인해 죽음 직전의 사람들 사진

사형집행 사진

끔찍한 사고 사진

 

 

우리는 저런 사진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보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아무 생각없이 당연하게 그런 사진들을 각종 매체에서 접한다...

그게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수전 손택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 유명한 로버트 카파와 같이...

전쟁터에서 쓰러져 가는 사람을 찍은 사진에 대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사라져야 할 전쟁의 끔찍함을 목숨걸고 찍은

사진작가에게 박수를 쳐줘야 하는가? 아니면 죽은 자들의 죽음을

적들이 그러하듯이 조용히 기다렸다가 순간을 포착해내는 작가들의

상업적이며 잔인한 행위를 비난해야 하는가?

 

 

정확한 기억은 아닌듯 하지만... 예전에 봤던 사진이 떠오른다.

반아사상태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어린이와 그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 사진... 이 사진을 찍은 후 정말 그 아이는 죽었고

이 사진은 유명한 상을 받는다...아닌가? 그 아이 안 죽었나??

하여튼 그랬는데... 사진작가는 그 죽어가는 아이를 한시라도 바삐

구하지 않고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도덕적 책임을 추궁받게 되고

결국 자살한다....맞나?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였다고도 볼 수 있으나 죽음을 기다리고 앉아

있었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일단 이런 문제가 첫번째...

 

 

그리고 또 수전 손택이 던지는 질문은...

과연 그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 사진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그런 사진을 본다면 전쟁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발벗고 나서는가의 문제... 저자는 오히려 전쟁의 사진들이 단절을

가져온다고 이야기 한다... 그 곳은 전쟁터... 이 곳은 안전하게

전쟁을 바라보는 장소... 그 곳은 먼나라 일이기에 내가 손을 쓴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그런 생각을 더 조장하지 않느냐는...

 

 

그리고...

이러한 사진의 남발로 인해...오히려 자극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문제...전쟁이 났다고? 하루이틀이니...

그렇다.. 우리는 TV 뉴스 속의 사망소식에도 좀처럼 마음에 동요가

없다...나만 그런가? 그냥 남일일뿐...항상 있는 일인걸...

앤디워홀이 찍었던 그 교통사고 사진들은 이 책에도 언급되어

있긴한데 정말 딱 떠오르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대량생산과

그로 인해 무감각해지는 현상...

 

 

수전 손택은 또 사진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한다... 사진이라는 것도 모든

것을 담는 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일정 부분을 선택하여 담는다는

것...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그렇다...

가장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사진 마저도 사실은 취사선택의 과정이

있기에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예전에는 아예 가짜로 꾸며놓고

그것을 찍기도 했다니 그 때야 말할 것도 없고...

 

 

사진으로 찍힌 것이 역사가 되고 사실이 된다는 수전 손택의 말...

이건 비단 사진만 그런게 아니라... 요즘 대중매체가 다 그렇고...

그 안의 언론이 다 그런게 아닐까? 대중들은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만 보는 셈이니까...

 

 

저자는 또 비참한 모습으로 찍히게 된 피사체의 인권에 대한 문제도

제기한다...그들은 그들의 죽어가는 모습을 찍어도 된다고 허용한

일이 없다..불가능하지...만약 알았다고 해도 과연 허락했을까?

저자는 그들도 가족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그 사진들...

가족에게는 정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거다...자신의 가족이

죽어가는 사진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전시하고 사진집으로

펴내고.... 저자는 이런 비참한 사진이 찍히는 대상이 대부분

아프리카 사람, 아시아인들이라고...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감주는

사진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그들은 그래도 된다는 식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다는 지적...

 

 

저자는 이렇게 사진을 찍어서 공개하는 작가나 매체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그 사진들을 보는 자들도 비판의 대상에

올린다... 그들은 왜 보는가?  그들은 그 사진들을 볼 정당한 권리가

있는가?  그들이 그 사진을 보았다면 어떤 행동을 취하기라도

하는가?

 

 

사람들이 전쟁이나 기타 끔찍한 사진을 보는 것은 일종의 인간의

타고난 욕구 중 하나라고 저자는 말한다. 성적인 것을 보고 싶어

하듯이 끔찍한 사진도 보고싶어하는 게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

이라는 것...그렇다면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좋다는 것이냐...

당연히 그건 아니다...욕망대로만 살면 안되는 게 인간이니까...

 

 

생각해보니 음란한 사진들 그것도 개인적인 사진을 허락없이

본 경우 상당히 비난을 받고 법적으로도 징계를 받게 되는데...

사지가 절단된 끔찍한 사진은 전혀 그런 제약없이....

보는 이들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사진들을 본다...아니

즐긴다? 가 맞는 표현일까?

 

 

저자는 끔찍한 모습을 볼 권리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의사 정도에게만 있다고 말한다...다른 사람은 대체

무슨 권리로 남의 고통을 지켜보느냐는 말...그렇구나....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일...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렸던 일이

생각난다... 일단 촛불집회...그것도 솔직히 나는 이해가 잘 안갔

지만...그보다도 더 끔찍했던건 그 아이들의 너무 참혹한 사진...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과연 그랬을까?

하여튼 그 모자이크도 안 된 사진을 보고 정말 놀랐다....

 

 

진중권이 그 때 그 아이들의 사진을 걸고 수업을 하거나 집회를

한 사람들을 비판했는데...이런 맥락이겠지...

그 사진이 그 아이들의 부모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아니었을지...

사실 이 책을 좀 읽다가 우연히 TV 책을 말하다에서 예전에 진중권

이 이 책을 추천했던 내용을 보게 되었다... 진중권이 딱 좋아할

스타일의 작가다...수전 손택은... 둘은 비슷한 점이 있다.

대중 혹은 나라가 싫어할 말도 곧잘 떠들어 댄다는 점? ㅎㅎ

 

 

가끔 버스를 타고 도로를 다니다보면 교통사고 현장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절대 그 사고 장소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보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 장면을 보려고 창문에

눈길을 노골적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바라봤다...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이 책을 읽으니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내가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라는 소리냐...그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상당히 구경하고 싶었다...

정말로...끔찍할 것을 알면서도 나도 보고싶긴 했으나 그걸 보는

나의 모습을 남들 앞에 보이기 싫었다가정확할 듯...

나만 있었다면 그럼 봤을까? 그것도 아닐거 같긴 한데..

하여튼 확실한 건 나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리고 그게 죄책감으로 이어지리라는 것...

 

 

읽을 때는 별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내용이 다시 되새겨보니

많은 생각이 들게 하고 또 꼭 해봐야 할 생각들인 것 같다는 느낌...

여기 저기서 필독서라고 말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저는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고 전쟁이 진부한 일상이던 곳에서

거주하며 이런 경험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이런 경험을 단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전쟁을 실제로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받았죠

 

 

버지니아 울프

참사나 대량학살을 가져온 전쟁을 없애려 애쓰지 않는 것이야말로

도덕적 괴물의 반응이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라 교육받은 계급의 일원이라고

우리가 겪은 실패는 상상력의 실패, 공감의 실패라고.

우리는 이런 현실을 마음 깊숙이 담아두는 데 실패해 왔다고.

 

 

각종 전투와 대량학살은 가정에서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

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사진산업은 충격이 소비를 자극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게 된 문화의 일부가 됐다.

 

 

앙드레 브르통

아름다운 것은 발작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아름다움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될 것이다.

이런 미학적 상황은 초현실적이다

 

 

사진은 애초부터 객관적이라는 공인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사진은 언제나 특정한 시점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움찔거린다는 것 자체도 일종의 쾌락이다.

 

 

실제의 공포를 근접 촬영한 이미지를 쳐다볼 때에는 충격과 더불어

수치감이 존재한다. 아마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할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를 쳐다볼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사람은 그런 고통을

격감시키려 뭔가를 할 수 있었던 사람이나 그런 고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었던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했든 안했든  나머지 우리는 관음증 환자이다

 

 

실질적으로 잘 알려진 사진들이 연출되지 않은 채 찍히게 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부터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한 세대의

의식에 아로새겨지게 된 이미지들이 지닌 도덕적 진정선의 핵심이다.

 

 

윙거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우 꼼꼼히 보존하려는 행위와

자신이 지닌 무기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몇 초 몇 미터 단위까지

추적해 그드을 섬멸하려는 행위는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에서 수행된다.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은

흔히 아사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 자매

가 있을 것이다.

 

 

어떤 고통을 전 세계적인 것으로 다룸으로써 실제보다 과장되게

만들 경우 사람들은 자신들이 훨씬 더 많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

 

 

지금 당장은 넌더리를 치며 움츠러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그런 사진들에 계속 불편함을 느낄까?

충격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오늘날 모든 이들이 알아보는 사진은 특정 사회가 한번쯤 생각해

보자고 선택해 놓은 것. 그도 아니면 그러리라고 표명된 것을

구성하는 일부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을 기억한다는 데에 있다.

이렇듯 사진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이

퇴색된다.

 

 

범죄 현장과 같은 사진들을 본다는 것의 의미

이런 사진들을 본 뒤 사람들이 취하는 반응이 꼭 이성적이고

양심적인 것만은 아니다.

고문을 받거나 사지가 절단된 육체를 묘사해 놓은 이미지들은

대부분 음란하기 그지없는 흥미를 자아낸다.

 

 

에드먼드 버크

내 확신에 따르면 사람들은 현실의 불행과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

얼마간 그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을 느낀다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조르쥬 바타이유_성애적인 것을 다룬 위대한 이론가

백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을 당하던 사진을 매일 아무때나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책상 속에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걸

알았다고 해도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전혀 없다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금방 지루해하고 냉소적이 되며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대중매체가 주목하는 것에 대중들도 주목한다

사진에 찍혀야만 현실적인 것이 되는 식이다

 

 

사방팔방이 이미지로 뒤덮인 세계에서 우리는 완전히 무감각해져

버리는 셈이다. 결국 우리의 양심을 콕콕 찔러대는 이미지는 뭔가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서 서서히 앗아갈 뿐이라는 것이다.

 

 

위험에서 멀리 떨어져 의자에 앉은 채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어떤 곳을 지옥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그 지옥에서 어떻게

빼내올 수 있는지, 그 지옥의 불길을 어떻게 사그라지게 만들 수

있는지까지 대답하게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어떤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줘서 사람들을 능동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도록 움직일 수 있을까?

서사체의 이야기는 이미지보다 훨씬 더 효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사람들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간의 길이에 관한 문제다.

 

 

그 어떤 사진이나 사진첩도 전쟁의 슬픔을 표현한 영화들 만큼

자신이 보여주고자 한 바를 자연스럽게 끝까지 밀고 나아갈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