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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적의 화장법 - 아멜리 노통브

by librovely 2008.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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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2001'       문학세계사

 

 

아멜리 노통브...

두려움과 떨림, 배고픔의 자서전... 이 두 소설을 통해 이미 이 작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는데...적의 화장법을 읽고는 완전히 맘에 들어버렸다.

앞서 읽은 두 작품도 매우 훌륭했지만 적의 화장법이 가장 강했다...

최고...!

 

 

이 책에 대해 알고 있던 점은 어디선가 얼핏 본 강간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

강간...음...제목도 적의 화장법...그래서 난 강간범이 뭔가 집요하게 자신을

위장하고 피해자를 따라다니는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괴상망칙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었다...근데 그런 내용 절대 아니다....

물론 강간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강간이건 살인이건 도둑질이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160여페이지의 매우 짧은 소설인데...

그래서 한 2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는데....

들인 시간 대비 얻어내는 것은 아주 아주 많다.....

다만...얻어내는 그것이 상당히 불편한 것이다....ㅡㅡ;;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난 억압된 것...억눌러 놓은 것이 많은

인간이라서 그런건지 하여튼 다소 과장하자면 무섭고 괴롭고 심각해졌다..

 

 

아멜리 노통브의 글솜씨는 대단하다...

이 여자는 분명 천재다....

적의 화장법이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데...

프랑스는 다른면도 그렇겠지만 문화적인 면도 분명 선진국인데...

그런 시민들에게 인정받은 책이니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펼쳐들었는데...역시나....

 

 

그러면서 드는 생각...

과연 우리나라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면 베스트셀러 1위를 할 수 있을까?

음...그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베스트셀러의 1위를 달리는 책들은 음....

물론 그 나름대로 다 의미있는 책이겠지만 정작 상위권에 들어야 마땅한

책들은 잘 안올라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에게나 이 책은 많이 읽혀져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편협한 소리일지는

모르지만...하여튼 진정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그런 책들은 많이 팔리지는

않는 것 같다... 으으음....일례로 한상복의 배려는 1년도 넘게 꾸준히

잘 팔리는 책인듯한데.... 내용이 그럴만큼은 아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대화체로 쓰여진 책이다.

두 명의 남자가 공항 대기실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이야기...

거듭되는 반전에 의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반전은 반전인데 상당히 섬뜩하다....

디 아더스라는 니콜키드만이 나오는 영화의 반전이 떠오르기도 하고..ㅎㅎ

 

 

황금같은 금요일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잠들었고

(과도한 스트레스는 시도때도 없이 잠들게 만든다....먹고 살기 힘들구나..)

그 사이 꿈을 꾸었는데...누군가가 등장했다...그리고는 깨어서 잠시 왜

이런 꿈을 꾼 것일까? 그 사람은 왜 꿈에 나타났을까? 그 내용은 뭘 의미

하는가...이런 생각을 했다...사실 내 요즘 심리상태랑 좀 맞아떨어지는 꿈...

 

 

그리고는 몽롱한 상태로 잠들었던 시간을 아까워하며 손을 뻗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되어 버렸다...

아주 아주 재밌고 간간히 나오는 철학자의 명언들도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무엇보다도 요상맞은 대화 속에 녹여낸 주제가 아주 강했다...

영화로 만들면 볼 만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다지 밝지 못하다....

아니 씁쓸하다못해 나에게는 끔찍했다....그리고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다소 아니 많은 불안감이 들게 했다... 건드리기 싫은 부분을 들쑤셔낸

그런 느낌...잘 덮어둔 치부를 쑤셔대는 그런 기분...?

책을 읽다가 간혹 핸드폰 문자수신 진동에도 나는 깜짝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이 책의 내용은 두려움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었다....

 

 

 

 

 

-여기부터는 책을 안 읽었으면 안 보는 편이 좋음..아니 읽어서는 안 됨-

(이 책은 절대 미리 내용을 알고 읽으면 안된다...절대로!)

 

적....

나의 텍스토르 텍셀은 어떤 특징을 가진 인간일까??

음...한없이 우울해지는 기분이다...

대강 알 것 같지만 여기에 쓸 수는 없다...쓰고 싶지 않다...

그의 존재는 나도 명확히 알지만...이 소설을 읽고 알게 되었나?

아니...이미 알고 있었다..누구나 다 자신의 텍스토르 텍셀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다만 보고 싶지 않기에 굳이 외면하고 없는 것처럼

감추고 덮어두고 두꺼운 화장을 해 놓고 있었던 것이 아닐지...

 

 

가식이 싫다고 종종 떠들어대는 나이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도 가식적이다...그걸 알기에....

이 책은 불편하며 동시에 의미가 있었다...

 

 

근데 대체 어떻게 이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난 잠시나마 만난 나의 텍스토르 텍셀을 다시 외면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다시 저리 보이지 않는 구석으로 당장 가버려! .......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도 중요한 것 같다... 잘못하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으니까...

하여튼 여러모로 무서운 책이다...

심리공포소설...? ㅎㅎ

 

 

카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변신....그리고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

앞의 두 책과 노통브의 책은 그 대상이 좀 나뉘긴 하지만...

모두 보고싶지 않지만 봐야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보여준 매우 의미심장한 책이다...

 

 

꼭 읽어봐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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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양이밥을 좋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안의 어떤 적이 그걸 강제로 먹게끔 한 거였으니까요!

신의 존재보다는 그 힘에 대한 나의 믿음을 여지없이 앗아가버린 거랍니다.

 

 

자, 이제 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아셨겠지요

아무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답니다.

 

 

죄의식이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 갈 길을 찾아가게 되어 있어요

선험적으로 운명지어진 것이죠. 역시 네덜란드인의 발명품인 장세니즘

이라고나 할까요.(장세니즘-구원은 선행이 아니라 신의 은총..예정설..운명론)

 

 

강간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말이오.(이 부분을 읽고 처음에는 얼마 전 본 '그녀에게'를 떠올렸지만

나중에는 이 내용이 자기합리화로 보였다...)

 

 

피해자의 생각이 어떤지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요?

막스 슈티르너의 유일자와 그의 소유라는 책에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민주주의건 독재건 집단적 인간이란 유일자(에고)로서의 자기를 소유

하기 원하는 인간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는 내용...니체의 초인사상에

영향을 주기도 한 내용임)

 

 

이보시오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죽을 거 아니겠소?

결국 파스칼의 내기처럼 뻔한 얘기예요

(파스칼의 팡세에서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내기를 해서 이기면

모든 것을 얻지만 진다 해도 잃을 것이 없으니 신을 믿으라는

말...신앙관의 본질은 아니고 아무리 논증을 해도 신을 안 믿는

경우 이렇게 해서라도 믿으라는 파스칼의 생각임...

이 내용을 듣고는 잃을 것이 없지는 않다...신앙생활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성경을 읽고 계시던 엄마의 말씀이 있으셨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한 방비책을 갖추고 있지만 말이야.

즉, 아무 생각도 안하는 거지. 뭐하러 생각을 하겠느냐구!

그들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만큼 그건 아주

편리한 방법 아니겠어?  3백년 전의 어느 대단한 철학자가 자아란

가증스런 거라고 말할 수 있고, 지난 세기의 위대한 시인 하나가

나는 곧 타자라고 말해도 되는 건 다 그래서야.

(철학자-파스칼, 시인-랭보)

 

 

내가 자네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위해선 무엇이든

꾸며댈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게 바로 자네일세

 

 

왜 하필 공항이죠?

비행기 시간이 연기되었기 때문이지.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을테니까. 자네에게 진짜 여유가 생기는 시간 말이야.

자네같은 부류는 예기치 못한 공백속에서만 말랑말랑해지거든.

거기다 오늘 아침 자네 무의식을 스친 날짜...

 

 

 

 

 

-아멜리 노통브의 인터뷰 내용 중-

 

그녀는 말을 가지고 누르고 들어올리고 뒤집으며 때로는 끼워넣는다.

 

노통식의 모든 테마가 다시금 등장하는 셈이다.

음식에 대한 욕망과 거부감, 일부 철학자에 대한 취향과 인용

억제할 수 없는 자기파괴 욕구, 음울한 분열증, 죄의식, 우연한 만남

타인과의 갈등관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뇌가 굳어져 만들어진 금속덩어리를 발견할 때까지

그 어둔 심연을 내려가야만 한다.

 

 

어느날  저녁 길을 걷다가 갑자기 이유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머리 속에서 "자유! 자유! 자유!"하고 소리를 질렀다.

마치 나 자신이 붕괴되는 느낌이었고 곧장 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의 무기는 곧 나의 문체가 되는 셈이다.

그저 삶을 포기하느니 나는 이런 창조적인 대결에 나의 삶을 걸길

원하는 것이다. 아니면 잠 못 이루는 밤 동안에 자살의 욕구에

시달렸을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이 쓰는가?

내가 쓴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내 눈을 번쩍 뜨게 해주는 멋진 독자들이 많이 있다.

난 그들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존재를 천착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