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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이대] 부에노 커피 + 크리스마스 이브

by librovely 2012. 12. 26.

 

 

크리스마스 이브...별 생각 없다...내가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건지 아니면 늙어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예전에 어릴 때는 뭐라도 해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했는데...이상하게도 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따위 즈음에는

항상 남자가 없었다...물론 대부분의 나날이 그러하지만 짧게 이어간 몇 몇의 그들 조차도 그 시기에는 없었다...

(그들은 지나간 사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절대 아님...난 사귄거라고~~ 일주일 넘으면 사귄거라고~~ ㅡㅡ;)

 

어쨌든 딱히 허전하고 외롭고 처량하다는 생각도 없고 단지 내 머리속에는 날씨가 아주 춥다...밤에는 눈도 내릴거다

라는 일기예보만 둥둥 떠다녔고 퇴근 후 집에서 쉬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요새 운동도 잘 안가는데 이상하게

퇴근 후 운동하러 가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밀려들었다...원래 인간이란 하지 말아야할 것에 강하게 끌리게 되는 법..

 

혹시 만나기로 한 친구도 같은 마음일까 해서 찔러 봤는데 안 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고...

그래서 어딜가야 사람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대형 극장 체인에 가서 섞이는 건 정말 싫다..해서

레미제라블을 보자고 하는데도 어떻게 보면 의도적으로? 예매를 안하고 있다가...전 날이 되어서야 자리가 별로 없어

힘들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사실 영화를 안봐도 그만이라고...크리스마스 이브에 번화가에 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그리 좋은 기억이 아닌..하여튼 그리하여 영화를 보길 원하는 동행인에게 그럼 사람이 비교적 많지 않을

이대 아트하우스에 가서 파우스트라도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역시 자리가 많이 남아있었고 예매도 필요 없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좋다는 답이...이런 영화를 보러 나가는거라면 그래도 의미는 있네...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 후 바로 만날 수 없어서 일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른 이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크리스마스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인데...왜 사람들이 저 난리들이지?

이런 날에는 정말로 빈방 없다며...(어릴 때 교회에서 빈방 없어요라는 제목의 연극을 했던 게 생각나는 군...)

그러게 여름 휴가철과 함께 엄청난 낙태를 유발하는 날이 되겠구나...이게 무슨 크리스마스야...하는 아름다운 대화를...

 

집으로 가서 뜸하게 가던 운동을 가겠노라고 챙기기 시작하니 엄마가 너 오늘이....에효 오늘 여의도나 가...

뉴스 봐라 오늘 거기서 뭐 한다더라...어딜가는거야 그런 곳에 가야지...라는 말씀...그건 솔로대첩이었다...

나도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혹했다~ 아니 이런 좋은 기회가~~ 난 정말 회사에서 일찍 나와 가볼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분위기 파악이 되어감...어린 분들 대상이군.... 듣자하니 일베충이 뭐 성희롱 어쩌고 하러 가겠다고

떠들기도 한다던데...그 이야기를 듣자 웃음이 나왔다...보통 20대 초반이 많다던데...너희들이 나에게 성희롱을

하면 결과적으로 너희들이 당한 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닐까...하는 아주 느끼한 농담? 하여튼 그런 계산이 둥둥~

 

성희롱 이야기가 나와서... 더 이상한 소리를 떠들자면...나이가 드는 게 아주 나쁜 구석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성희롱 대상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는 편리함도...물론 그런 일 당할 일이 별로 없는 인생이긴 했다...

부모님께서 예쁘지는 않지만 편하게 살기 좋은 외모를 선물로 주셔서...ㅡㅡ;;

 

하여튼 그거 어린 님들만 하는거야...거기가서 아무리 서 있어도 아무도 말도 안 걸텐데...거길 왜가...

이러면서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기자 또 화를 내심...이런 날 꼭 가야겠니...동네 창피하다...

그러게요...나는 이상하게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31일 이런 날 그렇게도 운동이 하고 싶어져요~

그런 날 운동을 하면 나의 자아를 찾은 기분...참된 내가 된 이 기분을 어찌 설명하리...어쩔 수 없다...

근데 가보니 의외로 사람이 평소보다 많다...급하게 운동하고 누구 만나러 가는걸까? 모르겠군...

나는 그런 컨셉으로 괜히 시계 쳐다보며 운동했다...물론 그 누구도 나를 신경쓰지는 않는다...존재감 제로...

난 유령이 아니지만 그 기분 다 알아요...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11시가 다 되어갔고 모모 앞의 카페는 이미 문을 닫았고 그래서 예전에 간 레인트리에 가보니

11시에 문닫는다고...나중에 다시오기로 하고 걷다보니 부에노 커피 앞...11시 30분까지 한다고 했다

원래 그러느냐고 하니 요즘 시즌에만 30분 연장했다고 했는데...그 질문이 어색할정도로 사람이 없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딱 한 커플 바퀴만 앉아 있었다...

 

아예 촌스러운 컨셉도 좋구나...

아예 한글로... 한글로 쓰니까 이상하게 믿음이 가네...

 

아메리카노 두 잔에 와플 하나 세트가 올데이 만 원...

잔당 1000원만 추가하면 어떤 음료로도 변경 가능... 날이 날인 만큼 단 음식 필요...

그래서 카라멜 마끼아토... 그리고 와플~ 단 거 어쩌고 하니까 딸기가 더 달다는 친절한 설명에...

그렇다면 초코 와플~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먼저 나온 마끼아토 위의 카라멜 시럽과 우유 거품을 먼저 걷어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뭐 괜찮긴 한데...시럽이 없다...

가격이 싸고 또 이런 날 젊은 이가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게 뭔가 안스러워 메이플 시럽 없냐는 말을 못함...

 

 이 카페의 특징은 담배 피는 이가 많아도 담배 연기가 비교적 견딜만 하다는 것...

 공기 청정기인지 환기 시키는 뭔가가 있는건지...

 낡고 애써 꾸민 느낌이 없는 게 개성...

커피 맛도 괜찮다....

동행인이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다 (난 그런 거 잘 모름...달면 맛있는 것...)

항상 이 자리에 앉는다...

예전에는 저기에 하루에가 있었는데...

이대에 올 때마다 티앙팡 애프터눈 티 세트가 생각난다...언제 먹어볼 수 있을까? 꼭 먹어보고 싶은데...

아직도 티앙팡은 있는걸까?

 

 

11시 30분까지 떠들고 나와서 걷는데...난 정말이지 이대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 줄 몰랐다...

처음봤다...이대 거리에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은...도착 했을 때도 별로 없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오자 폐허 수준..

다시 나의 능력이 발휘되는건가?  근처에 사람이 없게 만드는... 내가 여행을 온건가 했다...ㅡㅡ;

어쨌든 돌아가는 지하철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장소 선택은 탁월했구나...

크리스마스 이브에 커플 바퀴 피하려면 이대...

이대가 답이다...

 

돌아가는 길에 눈이 펑펑 내렸다...

예쁘다기 보다는 미끄러울 길이 걱정이었다... (이렇게 늙어가는거겠지...V)

그 걱정을 하며 버스 창문을 열었는데 뒤에서 어떤 이가 다시 반쯤 닫았고 화가 확 치미는데 겨우 참음...

많이 열지도 않았고 바람이 강하게 들어온 것도 아니고... 버스 안의 공기는 환기가 필요했는데...왜 닫냐고...

한 번 뒤돌아서 노려볼까 말까 창문을 다시 더 열까 말까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 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는 사라져갔고 25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