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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홍인혜

by librovely 2013. 6. 19.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홍인혜                                      2011            달

 

 

정말 재밌는 책

난 정말이지 여자가 쓴 유머러스한 글이 너무 좋다....제일 싫어하는 종류는 잘난척 내지는 지나치게 감상에 빠져든 글

제일 좋아하는 글은 뭔가 자신을 객관적으로 리얼하게 그려내면서도 유머러스한 그런 글... 수필? 에세이? 글의 취향이

그렇다는 것...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너무나 내 취향....초반부에는 몰랐어요...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나는 혼자

미친듯이 낄낄대고 있었던 것이고...

내가 머리를 어떻게 감는 줄 알아? 이렇게 쭈그리고야!

내가 밤에 어떻게 자는 줄 알아? 이렇게 웅크리고야!

 

아 웃겨...아 욱껴....

 

저자의 재미난 글도 내 취향이었지만 저자가 알면 격노할지 몰라도 성격도 나랑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았다

이를테면... 혼자 여행을 가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 추억을 쌓아가며 그렇게 여행을 하기도 하겠지만

저자는  처음보는 누군가와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는데...아마 내가 그런 여행

그러니까 혼자 떠나는 여행을 한다면 분명 나 또한 그렇게 여행을 할 게 분명하기에...뭐랄까 독서는 간접경험! 이라는

그 말이 딱 적용되는 그런 책이었다....나에게는... 물론 내 경우 런던에 가도 날 찾아올 그런 친구는 없을테너 어쩌면

난 더욱 심하게 처절하게 혼자가 되어 지내겠구나....

 

사실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건 좀 해보고 싶긴 하지만 두렵고 또 혼자 지내는 것을 버틸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다들 무척 내가 독립적으로 보인다고는 하지만...난 그렇지는 않은 인간...독립적인 인간이 되는 건

내 로망 중 하나다...로망이라 함은...이뤄내기 힘들다는 소리...희망사항일 뿐....

어쨌든 그런 상태였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저자님이 말씀하시길...혼자서도 지내지더라....그렇군...

그리하여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물론 이 상태로 쭉 나아간다면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나는 처절하게 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껄껄껄.... 비행기 값 굳었네 V

 

혼자 여행을 떠난다면 좋은 점이 하나  생각난다...

난 항상 음식의 노예로 살아오고 있지만 가끔 그렇지 아니할 때도 있다...딱 3가지 경우인데....

첫째는 남자

소개팅을 했는데 맘에 드는 남자가 나타났다고 착각한 경우 혹은 혼자 누군가가 좋아 죽는 경우(나도 가끔 그런 일이

있기도 하였다...그게 일방통행이거나 좀 미화 내지는 착각을 섞자면 타이밍 오류였던거고...) 식욕이 사라진다....

심지어 커피를 단칼로 끊어도 전혀 금단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과학을 뛰어넘는 호르몬의 신비!

둘째는 극심한 스트레스....

이 경우는 역시 극심해야 하므로 극히 드문 일인데...언제 그랬지? 있긴 있었다....아마...

있었긴 했는데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이었을테니 내 뇌는 망각시켰거나 저 무의식의 깊은 구덩이에 처박아 둔 모양이다

기억이 안나네...

그리고 셋째...는 바로 여행

여행을 가면 음식에서 자유를 얻는다....물론 먹으면 맛있지만....식탐 따위는 가져본 일이 없는 사람마냥....

배가 고파도 배가 고프네...하며 온갖 것들에 정신이 팔려 괴로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여행을 가면 다이어트를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특히 혼자 간다면....

 

 

창의성을 요하는 직업을 가졌던 저자라서 그런지 내용이 뭔가 신선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웃기다

좋은 책이다

정말 좋아

빌려봐서 미안한 책

저자의 다른 책도 있을까? 

또 빌려봐야지...ㅡㅡ;

 

 

루나파크라는 이름의 블로그도 있나보다...아껴 봐야겠구나...

 

 

 

 

 

 

그래 나가자 어디로든 떠나자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프로필의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저마다 마음속에 먼 나라 하나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직장생활을 몇 년 가량 했고 슬슬 직급의 무게가 느껴지는 연차에 조금씩 결혼의 압박을 느끼는 미혼들을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삼포는 영국이었다

누군가 이유를 물어오면 내가 좋아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라디오 헤드 내가 좋아하는 모험가

베어 그릴스이기 때문이라고 답하곤 했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몰랐다 왜 영국에 매력을 느끼는지 왜 영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마음이 헝클어졌을 때 남의 영국 여행기를 읽으며 가보고 싶은 곳을 추렸고 정말이지 도망가고 싶을 때는

내가 영국에 간다면 가져갈 물건 리스트를 짰다 애착을 갖고 해나가던 일이 무산되어 마음이 산란하면 여행용품

사이트에서 가방을 골랐다

사실 이 과정 자체가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수단이었고 팍팍한 회사 생활을 버텨나가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결국 절묘하게도 지금이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됐고 차장 진급을 눈앞에 두게 됐으며 실제로 같은 꿈을 품어온 동무들이

모든 것을 떨치고 뉴욕으로 바르셀로나로 날아갔던 것이다 해서 나도 마음속 방아쇠가 당겨졌다

삼십 대라는 나이를 맞이하기 전에 직급의 무게에 눌리기 전에 결혼의 압박이 목을 죄기 전에 지금이 날아오를

때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고 긴 여행을 다짐했다

 

나는 리스트광 정보광 준비광으로서 즉흥성을 배제한 안전여행을 지극히 선호하는 사람이니까

걱정을 도매로 떼서 하는 겁재벌이니까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에서 문제 상황을 마주하고 곤경에 처하는 걸

상상하기만 해도 두렵기 짝이 없다

 

시체 안치소처럼 춥고 을씨년스러운 욕실에서 부들부들 떨며 물을 틀어보니 맙소사 샤워기가 요실금에 걸려

있었다 수압이 너무 낮아 쫄쫄쫄 미미 인형 머리나 겨우 감길 만한 물줄기가 나왔던 거다 그나마 샤워기도

50cm이상 치켜들면 물이 멈췄다

 

나는 홈스테이를 알선해 준 에이전시를 찾아가 고국에서 모국어로도 생전 안 하던 컴플레인을 더듬거리는

영어로 강하게 토해냈다 머릿속에 공들여 인풋해둔 문장을 쏟아내며 거기에다 격한 몸동작을 더해줬다

내가 머리를 어떻게 감는 줄 알아? 이렇게 쭈그리고야!

내가 밤에 어떻게 자는 줄 알아? 이렇게 웅크리고야!

그런데 의외로 결과가 훌륭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 후에는 남의 일 보통 배 째라는 식으로 무시하는 회사 전화를 나는 타고난 소심함과

비관적 망상에의 재능 탓에 집요하게 받았다 심지어 위 내시경 직전 팔에 마취약이 들어갈 바늘을 꽂고

위산 억제제를 마신 상태에서도 회사 번호로 오기에 망설이다 받았던 적도 있다

이런 전화를 받았지만 진짜 급하고 중요한 일은 거의 없었다 내시경 직전 받은 전화는

아무개 차장님 전화를 안 받으시는데 같이 계세요? 라는 물음이었다

 

런던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sorry다

누군가 내 옆에 착석하다가 털썩하고 작은 소음을 냈는데 역시나 1초 만에 사과의 말이 튀어 나왔다

처음엔 런던 사람들 예의 바르네 세련되네 했는데 지내다보니 다소 쓸쓸해졌다

이 개인주의자들의 도시에서는 남의 공간에 침범하는 것 남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 원하지 않는 교류를

청하는 것이 철저하게 죄악시되는 거다

런던의 사과 머신들은 단호하게 차단한다

이들의 sorry에는 나도 너를 터치하지 않을 테니 너도 나에게 다가오지 말아줄래?가 함의되어 있다

 

컴퓨터가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주말인 내일 어느 지하철 노선이 쉬고 라스트 딜 사이트에 반값으로 나온 뮤지컬 티켓

어떤 미술관이 어느 요일에 공짜인지 검트리에 올라온 방을 렌트...

 

런던에서 돌아다니며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던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버스에는 늘 어린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어머니가 서넛 있었고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노인이 많았고

거리에는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자주 보였고 어느 커뮤니티에나 동성애자가 있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난 내 장점이 엄청나게 깎여나가는 기분을 맛보았다

개인의 매력 문제인거다

한국어를 쓰는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요설가에 농담하기를 좋아하는 재담꾼이었다

사소한 농을 던지고 사람들이 웃는 것 그것이 내게 그렇게 큰 부분인지 몰랐다

잉글리쉬 라이프가 길어질수록 난 언어적 기근에 시달렸다 한정된 어휘로 나를 표현하다보니 내가 정말이지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나의 재치 말재간 어휘력이 소거되자 나의 매력도 8할쯤 사라진 기분이었다

 

펍에는 늘 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 텅 빈방에 홀로 있을 때 느끼는 외로움이 다소나마 가신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관계도 아니기에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된다

 

장기 여행의 좋은 점은 어딘가로 향할 때 시간에 대한 초조함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내셔널 갤러리

최고로 꼽은 곳은 34번 전시실이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

<저녁 별> <비 증기 그리고 속도 위대한 서부철도>

존 컨스터블 <건초 마차>

 

리버티의 호인

사진 찍어도 되니?

원래 사진 찍으면 안되는데 내가 안 볼 때 찍는 건 괜찮아 그리고 난 한동안 저~쪽을 보고 있을 예정이지

삶을 영롱하게 하는 건 역시 유머와 친절

 

가장 좋아하는 장소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단독여행자에게 혼자라는 외로움이란 배고픔 목마름 피곤함과 같이 어느 순간부터 그저 늘 함께하는 생활 감정이

된다 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외롭고 책을 읽다가도 이따금 고독하고 공연을 보다가도 때때로 쓸쓸한 것이다

하지만 늘 마음 한편에 고여 있는 이 고독감에 점차 익숙해지다보면 나름의 평화가 구축된다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처럼 외톨이로서의 세계가 확립되는 것이다

식사도 음주도 산책도 홀로 하는 고즈넉한 생활 외로움마저 이 평화의 일부가 되어 혼자라는 상태에 만족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실제로 혼자라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 절약 효과가 있다

여러 화재를 오가며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적절한 반응을 하려 노력해야 한다 너무 시큰둥하지도 너무 호들갑

스럽지도 않게 장점이 많고 즐거움도 주지만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건 확실하다

세상에는 혼자 있건 떼로 있건 자기 페이스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다

하지만 혼자라는 것은 나만의 완전한 세계를 일그러뜨릴 타인이 아무도 없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여행지에서의 혼자는 정말이지 완벽한 혼자인 것이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모두들 나의 부재가 익숙해져 한국에서 오는 연락도 점점 드문드문해지고 나는 말 그대로

기절했다 사흘 후 깨어나도 아무도 몰라줄 사람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한정된 에너지를 오직 나에게 쏟아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고 신경 쓸 타인이 하나도 없는 생활의 연속 여행지에서도 다양한 인연을 만나고 새로운 교류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런 재능이 없다 난 그저 극한까지 혼자가 되고자 이 먼 나라로 찾아왔다

 

나만의 베스트는 빌리 엘리엇

당신이 뮤지컬 광이라면 런던은 최고의 도시가 될테고 설령 나처럼 문외한일지라도 런던에 가면 무지컬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니 런던에서는 뮤지컬을 봐야 한다 이는 정언명령이다

 

맑은 날 시내 한복판의 공원은 점심마다 혼자 나온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런던 직장인들은 밥시간에도 따로 먹는다던데 그렇게 어디를 가나 했더니 샌드위치를 사 들고 공원으로 오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았다 다들 퍼져 앉아 샌드위치를 먹다가 수트를 입은 채 누워 잠을 잔다

맑은 날 가기 좋은 장소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정원

흐린 날 가기 좋은 장소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미술관 위층 카페에서 템스강이 꽉 차게 보인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는 날 가기 좋은 곳은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다 최상층 카페는 비싸고 저렴한 지하 카페

천장에는 거대한 유리창이 있어서 비가 내리면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돈과 나의 관계를 다시 보게 됐다 내가 느낀 건 두 가지였다

소비에 대한 자책감을 버리자 의외로 즐거움이 찾아오더라

이는 과소비나 낭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말하자면 그럴듯한 와인을 한 병 추가하는 것

이따금 팬시한 장소에서 코스 요리를 먹으며 기분을 내는 것

그런 번외의 소비를 말하는 것이다

전망이 기가 막힌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 최상층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는 게 삶을 영위하기 위해 꼭 해야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럴때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필요해서가 아니라 원해서 한 소비지만 가격 대비 효능이 상당했던 것

둘째로 느낀 건 한편으로는 그런 검소한 나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금전자원으로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거다

다른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는 거다

 

한국 사회에서 나라는 별을 감싸주던 대기권인 학력 직업 커리어 인맥 등이 모두 소거된 채

아무도 내가 무엇을 공부했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우리 회사의 규모가 얼만큼이었는지 관심이

없었고 대단하게 생각해 주지도 않았다 나는 숨 막히는 진공 속에 그저 나라는 인간 그 자체로 존재했다

그렇게 텅 빈 들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며 내가 외로움을 어떻게 다스리는 지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맺는지

사람들은 나를 어떤 인간으로 보는지 채근하는 사람 없이 내 삶의 행태가 어떻게 변모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작별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을 깨달았다

 

가장 큰 깨달음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혼자서도 살아지더라는 것

그동안 숱하게 관계 속에서 번민하며 살았다 좁디 좁은 학교에서 소외되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하며 살다가

대학에 가면 나아질까 희망을 품었거들 결국 어느 사회에 있던 인간관계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한결 같았다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그동안 그토록 소외를 겁내왔지만 이렇게 철저히 관계에서 유리되어서도 살아지더라는 것

죽을 만큼 외로워도 결국 쥭지 않는다는 것

 

언제고 이 도시에 산책하듯 다시 발 딛을 날이 다시 올 거고 삶에서 여행은 그런 사소한 사건이어야만 한다

나는 그런 여행자적 삶을 살테니까 그래서 그저 감사하기로 했다

언제고 준비 없이 스며들 수 있는 도시가 내 삶에 하나 추가되었다는 사실에

그곳이 이 아름다운 런던이라는 사실에

 

 

나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