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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장미의 이름 1,2 - 움베르토 에코

by librovely 2007.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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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 1993 / 열린책들

 

10년이 넘게 집에 있던 책... 읽으려고 한 2-3번 시도했었다...

100쪽 넘게 읽기도 했으나 역시 포기...

다시 굳게 맘 먹고 읽어보기 시작...
다 읽는데 무척 오래 걸렸다...지루한건 아니지만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분명 재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하 두 권을 읽는데 성공한 지금 날 당황하게 만드는 것은...

앞부분의 세세한 내용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700페이지가 넘는 것도 그렇지만 우선 이 책은 주석이 자꾸 읽는

흐름을 끊어버린다는 문제... 원어로 써 놓은 이유가 있을테지만

읽다가 자꾸 아래쪽을 보아야 하는 번거로움... 그리고 문장 자체가

상당히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읽다가 처음에는

대체 이 책 누가 이렇게 번역한건지 원망을 했다...이윤기가 번역

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 번역으로 유명한 그 이윤기 맞나?) 사실

번역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들만큼 나에게는 문장이 영

까탈스럽게 느껴졌다. 주된 사건의 흐름은 전혀 복잡하지 않다.

수도원에서 연쇄적으로 수도사가 죽어나가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 시기에 윌리엄 수도사가 아드소라는 시종드는 소년과 함께

이 수도원을 방문하게 된다. 윌리엄 수도사에게 수도원장은 이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고 수준높은 지력과 호기심의 소유자인

윌리엄 수도사는 사건에 뛰어들게 된다. 아드소는 윌리엄 수도사의

옆에서 함께 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 책은 구조가 좀 특이한데

일단  어떤 사람이 이 수도원 사건이 쓰여진 책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이 발견된 책은 아드소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따라서

책의 내용은 처음과 끝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이 철저히 아드소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래서 읽는 동안 아드소처럼 사건이 일어나는

그 현장에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아드소가 쓴 책을 누군가 발

견했다는 설정이 이 추리소설이 진짜인 것 같은 생각이 들게한다.

(사실 상당부분 읽을 때 난 이 이야기가 진짜인 줄 알았다. 움베

르토 에코가 아드소에 의해 쓰여진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서 쓴 소설로 착각했다...)

 하여튼 소설의 배경이 중세시대의 수도원이라서 모든 것들이 새롭

게 다가와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철저히 신만을 섬기기로 한 수도

사들과 그들이 모여사는 수도원... 요즘보다 매우 경직되어 있던

중세시대의 신앙... 삶을 주어진 시간표대로 예배드리고 또 수도

원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신학을 연구하고... 금욕과 절제로

삶을 살아가는 수도사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찌보면

지루하고 무의미하고 끔찍할 것도 같으나... 또 어떻게 보면 가장

의미있고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은... 신께서 인간을 창조한 이유

에 가장 알맞게 생활하는 것이니까... 중학교 때 사회책에서 금욕

과 절제의 청빈한 삶을 중시했다고 한 줄로 배우고 지나간 그 시대

의 수도원에 대해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다.

 윌리엄 수도사는 지력이 뛰어나서 소설 첫 부분에서부터 탐정과

도 같은 상황 판단을 보여준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말...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다... 장서관과 관련된 수도사들이 죽어나가

고 그들이 죽어 있는 모습이 요한계시록(소설에는 요한묵시록..)

의 종말의 예언과 맞아떨어지고... 수도사들 사이에서는 동성애

문제도 살며시 드러나고...(나는 동성애 문제가 사건의 중심일

것으로 예상했었다.) 장서관에는 출입을 못하게 하고, 아드소와

윌리엄 수도사는 이 장서관에 몇차례 몰래 들어가고 그 안은

미로와도 같고... 피니스 아프리카에...라는 밀실과...

넷의 첫번째와 일곱번째라는 암호...(다빈치 코드서 본듯한 그

암호 맞추기)...교황과 황제의 패권(?) 다툼과 교황의 재산 소유

문제에 대한 다른 입장과 이단과 아닌 것의 모호함들...

단순한 줄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주된 줄거리는 단순하나

생각해보니 다양한 중세시대와 그 시대의 종교관련 문제들이

함께 녹아들어가 있다. 그리고 모든 소설이나 영화의 흥미 돋구기

양념인 러브스토리도 아드소를 중심으로 살짝  전개되고 이단

문제로 살포시 마무리된다. (러브스토리라고 하기엔 좀 미약한

감도 없지 않으나...)  이야기의 결론은 내 예상과 전혀 빗나간

책 한권의 문제...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된 그 책...이 책이 실제

로도 소실된 책이기에 더 실감난다... 정말 이 책이 실제로 있다면

빨리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렇게 감추려

들었던 것인지... 아리스토텔레스...웃음...

 

난 웃음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데...(다들 그렇겠지만)

경직된 관념이라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간에 참 무서운 것

같다. 유연한 사고... 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에 대해서든... 이단 문제는?? 내 생각과 다르면 이단이라고

몰고갈 수 있는가? 이건 유연하게 다루면 상당히 위험한 문제긴

하다... 하지만 지나친 경직 또한 마녀사냥...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은 존재했던 것 같다. 청빈한 삶을

살기로 자신을 온전히 죽이는 수도사들 사이에서도... 권력에 대한

욕구.. 교황이라는 자가 재산 소유를 위해 애를 쓰고 수도원도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갖가지 성물이라는 것을 모으고...(대부분

이 가짜라는 의미의 윌리엄 수도사가 한 농담....)

 

이 책에는 움베르토 에코라는 천재적인 학자의 엄청난 지식이 녹아

들어있다고 한다. 단 이 갖가지 지식들은 사전 지식이 많아야만

이해가 된다고 한다. 난 사전지식이 너무 없는 모양이다...........

그 사전 지식을 떠오르게 하려고 이윤기가 그렇게 주석을 쓰면서

까지 원어를 써댔는지 모르겠다... 움베르트 에코는 엄청난 지식과

함께 추리소설의 여러 요소를 매우 잘 배합하는 능력까지 지닌

진짜 대단한 소설가라고 생각된다. 사진보고 비호감이었으나

책을 읽고 나니 존경스러울 뿐이다... 근데 그 나이에 왜 결혼을

안하고 여자친구가 있는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 책의 이름 .... 장미의 이름... 이 이름의 의미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왜 장미의 이름이냐고...

이 책에는 장미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ㅋㅋㅋ

 

<스타트 로사 프리스티나 노미네 노미나 누다 테네무스>

<지난 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이 문구로 소설이 끝이나고 여기서 딱 한번 장미라는 말이 나올뿐

전혀 장미라는 꽃과는 관련이 없다.  이 말을 하기 전에 죽음을

암시하는 말들이 쓰여있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

고 자신은 얼마 안 있으면 사막으로 들어간다는...동등과 부동이

존재하지 않는...수고도 형상도 없는 무인지경의 적막한 신성에..

 

움베르토 에코는 책 이름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안한다고 한다.  이름은 존재하는 것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존재하다가 사라진 것까지 드러낸다...라고 말하고

이 상징적 의미의 구체적 해석은 독자의 숙제라고 한다.

소설은 읽는이마다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한다고 ...

(역시 기호학자다운 말...)

 

그렇다면 나의 해석은?

 

장미의 이름...

어떤 장미가 세상에서 찬란하게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 장미는 필연

적으로 사라져버리는 존재이다.  인간도 그러하다. 현세에서 바둥

거리며 살아가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존재.......

나는 언젠가는 사라지며 남는 건 이름뿐... 이런 덧없는 존재.......

수도원 안에서 신만을 생각하며 살겠다고... 사라져 버릴 현세에

정착하지 않고 그 너머의 천국을 바라보며 살겠다고 서원한

수도사들 마져도... 종교계의 최고 지도자인 교황마져도.....

재산에 혹은 지적인 욕구 자체에...혹은 지위가 주는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이러하니 범인들은 얼마나 그 정도가 심할

것인가... 그렇게 삶의 갖가지 욕망에 뒤범벅이 되어 살아봤자

결국은 죽음과 함께 사라져 버릴 무의미한 것들...

 

뭐 대강 난 이렇게 해석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혹은 그냥 일상생활에서 이리저리 부대낄 때

저런 생각이 들곤 하지만... 왜 그 생각은 1분도 못가고 다시 눈앞

의 현실안에서 바둥대는 것일까?   성경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당장은 장미의 이름 해설집을 읽기 시작해야겠다...

 

(아... 그리고 아드소가 잠시 사랑을 불태웠던 그 여자....의 이름에

상당히 집착하는 부분이 나온다...이름이라도 알면 그 이름을 부르

면서 밤새 울것을... 뭐 이런 내용...이 여자는 얼마 안 지나 아드소

의 곁을 그리고 세상을 영영 떠나버리고...그러나 아드소는 수도사

이면서도 이 여자를 마음에 평생 품는다... 아드소는 사랑하는 단

하나의 여자인 이 여자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 맥락에서 보면 위의 해석과는 좀 다른 해석이 튀어나온다...

사실 소설 안에서 이 부분이 그다지 강조된 건 아니지만...

이름...

움베르토 에코는 사라질 것은 사라지나 그 이름이 남는다고 했다.

사라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남는 이름에 초점을 맞춘다면?

깊게 생각 안하고 단순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자면...

그것도 아주 유사한 상황에서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호감이

생기면 이름을 매우 궁금하게 여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요즘 같은면 미니홈피 찾기에 이용했겠으나....)  그 이름

자체가 의미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만약 매우 좋아하는 사람

의 이름이 이윤기라면... 그 이전에 이윤기라는 이름은 아무

의미가 없었겠으나 그 사람과 그 이름이 연결된 상태에서는

이름을 서로 공유한다는...그러니까 그 이름이 그 사람을 지칭

한다는 너무 단순한 상징을 공유한다는 느낌이 매우 특별한...

또한 그 이름 속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총집약 되어 들어가 있는

그런... 작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큰 의미로 다가오는...

....모르겠다...이건 아닌 것 같고...더 이상 생각을 못하겠다..

언어학 책이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대학 때 얼핏 배운

언어학 내용도 영 안 떠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