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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D에게 보낸 편지 - 앙드레 고르

by librovely 2008.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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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앙드레 고르         2007'           학고재

 

 

FEATURE라는 내가 유일하게 가입한 까페에서 이 책을 보았다.

http://cafe.naver.com/feature/528

 

 

사실 그다지 끌리는 책은 아니었다.

실제로 있었던 사랑 이야기라....

원래 러브스토리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게다가 실화라니 더 지리지리할 것 같았다....

그리고 또 게다가 주인공이 학자라니...오~ 고리타분하겠어~

 

 

 

그래서 읽어볼까 하다가 휙 잊은 책인데....

도서관에 가서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과 우연히 마주침...

아주 얇다...10권 채워서 빌리고 싶은데 무거운 가방이 좀 짜증스러운

이 날... 이 책이 눈에 쏙 들어왔다. 표지도 생각보다 이쁘네....

그리고 표지 속에서 그윽한 미소를 짓고 있는 둘이 별로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았다.

 

 

 

책 날개를 열어보니 앙드레 고르라는 이 책의 저자이자 로맨스의 당사자에

대한 설명이 길게 쓰여져 있었는데...사르트르와도 교류가 있었던 학자....

노학자의 러브 스토리라....

책의 두께도 얇은 걸 보니 뭐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쓴 사랑의 고루한

글귀들의 나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로 별 기대가 안 되었다.

 

 

 

그러나 책 날개의 저자 설명 중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뭔가 비범함이

느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섬뜩함이라고 해야할까?

부인이 병에 걸리자 일을 그만두고 20년 동안 간병하였다는 것도

그렇지만... 동반자살을 해버린다는 것이...그 동반자살이라는 것이....

사실 20대 혈기 왕성한 시기에 벌인 일이라면 피가 끓었구나.....

순간적인 광기? 정도로 생각하고 넘길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노부부의 사랑과 동반 자살이라....

젊은이들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는 이 느낌....

50여년을 함께 살고도 죽음이 갈라놓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함께

죽음을 택하였다는 것이....정말 멍~하게 만든다....

 

 

 

무엇일까?

무엇이 그렇게 만든 것일까?

사랑이란....진짜 사랑이란건 이런 것일까?

이게 과연 사랑일까? 아니면 집착일까?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그 사랑이란 이런건 아닌 거 같은데...

함께 죽음을 택한다는 것이 건강한 관계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상상이 안간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런 감정이 가능한 것일까?

물론 저자를 보면 가능한 것일테지만....

저자와 그의 부인이 별종?이 아닐까?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별종이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그냥 마냥 부럽기만 했다.

 

 

 

책표지 뒷면에 김훈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다.

아, 나는 언제 이런 사랑 해보나.... - 김훈

결혼하여 자녀도 있는 나이 든? 소설가 김훈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상당히 재밌게 느껴졌는데....

책을 다 읽자 아니 책을 읽는 내내 연애세포 다 죽은....아니

어쩌면 그런 것이 존재 하지도 않는 것만 같은 나의 머리 속에서도

김훈이 내뱉은 그 탄식?이 자주 반복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용은 뭐 아주 심히 드라마틱하거나 불꽃튀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앙드레 고르라는 노학자가 이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여 그와 그녀의 첫만남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담백하지만

애틋하게 조목조목 정리되어 있다. 그 글 안에서 앙드레 고르의

부인을 향한 마음이 은은하게 드러난다. 아니 상징이나 수식어가

아닌 사실 그대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 더 맞겠구나. 사실 그대로 쓰여져

있는데 왜 은은하게 표현된 것처럼 느껴질까?

 

 

 

둘은 어떤 술집?에서 처음 만난다.

그녀의 미모에 넋이 나간 앙드레 고르...그러나 시도를 하지 못한다.

그 후 1달여의 시간이 지난 다음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고 앙드레 고르는

그녀에게 춤을 추러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그녀는 와이낫~으로 답을...

이 와이낫~이 그에게는 아주 인상적이었던 말인 모양....

그렇겠지...그 말이 그들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 된 셈이니까...

 

 

 

사실 첫 만남이 나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앙드레 고르는 그녀의 외모에 끌렸을 뿐인거 아닌가?

뭘 아는가? 단지 그냥 보고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린거잖아....

별 관심 없다가 그녀의 대화 내용을 지나가다 듣고는 마음이 동하는

설정이라면 더 멋졌을 것 같다....외모보다는 말이나 글...혹은 행동...

즉 생각이 그 사람을 그 사람이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나도 실천 못 할 것을 또 저자에게 요구하는구나... 남녀 사이...특히

시각적 끌림의 본성을 지닌 남자에게 여자 외모의 중요성이야 뭐....

 

 

 

어쨌든 외모로 끌린 그녀였지만 둘은 함께하면서 더 잘 맞는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그는 그녀로 인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고 깊어

졌다는 식의 뉘앙스를 흘린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책도 많이

읽고 사교성도 좋으며 동식물 즉 자연에도 관심이 많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란다...그렇겠지...안 그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을까?ㅎㅎ

 

 

 

그녀는...그리고 그는....

둘 다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냈다.

그녀의 엄마는 재혼을 하고 의붓아버지 손에 그녀를 맡기고는 또

다른 곳으로 가 버린다. 한 마디로 버림받은 셈...그녀는 홀홀단신

영국에서 프랑스로 떠나온다.

그는 나치즘을 피해 여기저기 떠돌다가 위험하니 고국으로 오지

말라는 소식을 듣고는 외로운 타국 프랑스에 머문다.

바로 이 곳에서 그 둘은 만나게 된다.

 

 

 

둘 다 공허한 마음....

가족과 나라를 잃은 마음은 정말 공허한 모양이다.

카프카가 잠시 떠올랐다...그도 이런 류의 공허함을 심히 느꼈다지?

하여튼 이런 상황에서 느끼게 된 연애감정은 이 둘을 아주 강하게

결속시킨다. 하나가 된 느낌....하나일 수밖에 없는 그런 것?

저자도 둘의 공허한 상황을 언급하는데...이런 상황으로 인해

어찌보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둘이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고....

내가 보기에는 사랑을 넘어선 '집착'까지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이 둘의 동반자살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독교라서 그런건가?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하여튼 사랑하는 것과 혼자 있지 못함의 문제....

이 둘을 보고 에리히 프롬은 뭐라고 말할까?

너희들은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고 혀를 차지 않았을까? ㅎㅎ

 

 

 

어쨌든....

이 둘은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며 살았고 죽었다.

그러나 비비꼬인 나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둘이 만나지 않았다면 이 둘은 또 제 각각의 운명적인

사람을 만나 이와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을지....

안그랬을까?

 

 

 

둘은 자녀도 낳지 않는다...

50여년의 결혼생활동안 둘의 자녀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

저자는 말한다. 자녀가 있다면 자신이 질투를 느꼈을 거라고..

으흐음...모르겠다..자녀가 없는 나는 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구나...

 

 

 

그래도 읽으면서 좀 아쉽기도 했다.

둘이 아이를 낳았다면 아주 똑똑했을텐데...게다가 로맨튁하고~

자녀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요즘 백지연의 끝장토론을 열심히 봤다.

백지연도 뭔가 관심이 가고 또 진중권이 2편 연속 출연을....

사실 토론 진행이나 출연자들의 토론 내용은 별로 기대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그냥 재밌게 봤는데...몇몇 네티즌도 장난삼아 써 놓은 것을

보긴 했지만 내가 진중권을 좋아해서 그러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백지연이 진중권을 바라볼 때 뭔가 그윽함? 하여튼 예사롭지 않은

감정의 선이 느껴짐은 왜일까?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렇게 보인 것은 일종의 내 감정의 투사로 인함일테고....

 

 

 

하여튼 그런 백지연을 놓고 진갤에서 그랬나? 누군가가 진중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진중권의 DNA를 갖고 싶어한다고 했나? ㅍㅎㅎ

사실 나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둘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외모나 머리나 퍼펙트한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기에....할 일은 더럽게 없고 생각하는 것은 바닥인 나는 생년월일까지

찾아보고는 진중권이 백지연보다 한 살 연상임을 알았고 정말 둘이서

젊었을 시기에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나는 진중권빠로서의 임무에 점점 충실하게 임하고 있다.

드디어 팬픽을 쓰고 앉아있는 것이다. ㅍㅎㅎㅎㅎ

30대가 쓰는 팬픽에는 40대의 남녀가 등장하는 것이다...ㅋㅋ

쓰기 시작했으니 내친김에 더 써보자...

 

 

백지연은 현재 이혼 후 재혼을 한 상태이다.

그녀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다.

그 DNA를 원한다는 말도 그 전남편과의 해프닝에서 비롯된

말이고... 전남편과 백지연은 영국 유학길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게 되었다.

 

 

진중권은 이혼은 안했다. 여전히 결혼한 상태~

부인은 일본여자로 독일 유학길에서 가깝게 지내다가 아이가

생겨서 혼인신고를 한 사이...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고...

내가 알기로는 현재 독일에서 일본인 부인이 키우고 있다는...

 

 

 

뭔가 상당히 비슷하지 않나?

역시 남의 나라에 머문다는 상황은 사람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만드는 모양이다...아니...비현실적으로 만든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오히려 인간 본연의 감정에 더 솔직해지게 만든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허니문을 가는 것일까?

 

 

 

갑자기 뭔가 지저분한 내 머리 속이 드러난 것 같아서 좀 민망하긴

하지만... 하여튼 요지는 이 책의 로맨스 또한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시작되었다는 뭐 그런 말....로 은근슬쩍 넘어가자...

그런데 그게 어쨌냐고? 그러게....

음...홀로 외로울 때 그리고 익숙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로맨스가 쉽게

시작될 수 있다는 뭐 그런 말....그렇담 빨리 짐을 싸야 하는 것인가?

그보다도 영어 공부를?? 그리고 여행자금...역시 돈으로 회귀되는가?

 

 

 

그와 그녀는 처음에는 말도 잘 안 통한다.

물론 학자이기에 어느정도 영어를 했지만 모국어에 비해서는 부족하였을

것이다. 참...여러가지가 힘든 상황에서 시작된 로맨스...하지만 이런 조건이

어쩌면 이 둘을 더 심하게 결속시킨 것이 아닐지...

 

 

 

앙드레 고르라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영향을

끼친 학자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을 알고 읽었다면 내용이 훨씬 더

재밌고 의미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그리고 앙드레 고르, 그리고 그의 부인과도 친분이 있었던 사르트르와

그의 연인 보부아르...이 둘의 관계도 상당히 궁금해졌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리고 카프카가 사랑에 빠졌다는 그 여인네도 궁금....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앙드레 고르와 도린의 러브 스토리이지만...

그들의 삶이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고민으로 점철된 삶 이었기에

읽으면서 그들의 가치관을 어느정도 접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물론 깊이있는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방향성 정도는 알 수 있다고

해야하나?

 

 

 

앙드레 고르와 도린이 그렇게 서로 끊임없는 애정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찌보면 단순히 이성간의 끌림 뿐만 아니라....

세상 혹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치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둘은 에리히 프롬(내가 그나마 아는 사상가는 이 사람뿐...

아는 것이라고 하기도 뭣하고...그냥 저서를 좀 읽은 사람일 뿐..?)

의 생각과 상당히 일치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렇느냐면...

 

 

 

물질....지나치게 물질적인 것에 빠져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를 기계 돌리듯이 재촉하며 삶을 살아가고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물질적인 욕구를 따라

맹목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물질 소유에 집착하며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연민...

 

 

 

나도 사실...

요즘 문득...

돈을 좀 덜 쓰고 여유롭게 사는 방향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몇 년 전만 해도 나의 벌이에 영 만족을 못하고 퇴근 후

혹은 주말이라도 돈을 더 벌어서 빨리 돈을 많이 모아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정말로...

근데 요즘은...그렇게 하라고 해도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책 읽을 시간...강아지랑 놀 시간...TV보며 바보같이 웃을 그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더 벌기 위해 일 할 생각은 없다.

물론 아예 일을 손에서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앙드레 고르는 그런 생각을 한다.

노동 시간을 좀 줄이자는.... 그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현대 사람들은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고 따라서 지나치게 생산을 하며

또 지나치게 소비를 한다...아니 어찌보면 소비를 강요받는다고 해야하나...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앙드레 고르와 도린은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였지만....

돈이 많이 들어오는 시기에도 그에 맞게 소비를 늘리지 않고...

쓰던 대로 검소하게 쓰며 없는 형편에도 기부를 하는 등 여유롭게

자신들만의 소비 형태를 만들어 고수하였다고 한다.

말만 하는게 아니라 이 둘은 직접 그들의 삶을 통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결국은 도린의 병으로 인해 정말 그야말로 생태적인 삶을

살게 되기까지 하였다...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리고 도린이 얻게 된 병도....

자연적으로 얻은 병이 아니라 디스크 수술을 위해 마취할 때 사용한 약물이

그 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몸에 들어가면 사라지지 않고

독소를 지닌 상태로 존재하여 몸을 망치게 된다는 것....

결국 그들이 우려한 그 과학의 무분별한 발달로 인하여 오히려 인간에게

해가 발생하는 그 일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벌어진 셈이다.

 

 

 

그 병으로 인해 둘은 20여년을 고생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고...

그들의 가치관...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그들은 스스로의 몸에 주사바늘을

꽂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자유롭게 끝낸다....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던데... 예외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그들의 마지막은 절대 바람직하다고 보기 싫지만...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안타깝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런 깊은 타인과의 관계맺기에 성공?한

그들의 삶이 부럽기도 하다....

 

 

 

 

80여페이지의 매우 짧은 글이지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이 책 좋은 책인 모양이다...

 

 

 

 

 

우리의 이야기는 경이롭게. 거의 전광석화처럼 시작되었지요.

당신은 빼어나게 아름다웠고 마땅한 말이 없으니 영어를 그대로

쓰자면 위트가 있었으며 꿈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한 달 뒤 길에서 당신과 자시 마주쳤을 때 무용수 같은 당신의

발걸음에나는 또 반해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퇴근하는

당신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게 되었지요. 

설마 동의할까 싶으면서도 나는 춤추러 가자고제안했지요.

당신은 대답하였습니다.  "와이낫" 좋다고 담백하게.

1947년 10월 23일이었습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눈에 안 보이는 어떤 인연이 우리 사이에 생겨난 것인지를.

당신은 과거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했지요.

도대체 어떤 근본적인 경험이 우리 사이를 그리 단숨에 가깝게

만들어준 것인지는 그 뒤로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쾌락은 자신을 내어주면서 또 상대가 자신을 내어주게 만드는

것이더군요.

 

 

 

당신을 알기 전에 나는 여자와 두 시간만 같이 있어도 지루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마다 당신이 나를 다른 세상에 이르게 해준다는

사실에 난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로도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로 묶여 있었다고

느낀 그 보이지 않는 인연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 방, 제 책들, 제 친구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요.

 

 

 

사랑이란 두 주체가 서로 매혹되는 일

즉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면

사회화 할 수 없는 면

사회가 강요하는 자기들의 역할과 이미지와 문화적 소속에 거역하는

면에 끌려 서로에게 빠져드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내가 몸과 마음 모두를 사랑할 수 있고 함께 있으면 깊은 공명을

느끼는 최초의 여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당신은 나의 진정한 첫사랑

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사랑을 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지

왜 다른 사람은 안 되는지 그것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글 쓰는 활동은 물질적 현실의 무게와 타인 앞에 나서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줍니다.

 

 

 

카프카가 일기에 쓴 다음과 같은 말이 당시의 내 마음 상태를 요약

해주는군요.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는 가치관이 똑같았습니다.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이 무엇인지

삶에서 의미를 앗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의 개념이 같았던 것이지요.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늘 호사스러운 생활방식과 낭비를 싫어했습니다.

당신은 유행을 거부하고 당신 나름의 기분에 따라 유행을 판단했지요.

필요없는 것을 공연히 필요하게 만드는 광고와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썼고요.

 

 

 

당신이 일곱 살 때부터 진정한 사랑은 돈을 무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결론내린 것이 생각납니다.

당신은 돈을 무시했어요.

우리는 종종 돈을 기부하곤 했습니다.

 

 

 

기계는 인간을 해방하기는 커녕 인간이 자율적으로 행동할

공간을 제한하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적과 추구 방식을

결정해버린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 거대한 기계의 종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기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비본질적인

것은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보았습니다.

내게 본질적인 단 하나의 일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

당신이 본질이니 그 본질이 없으면 나머지는 당신이 있기에

중요해 보였던 것들마저도 모두 의미와 중요성을 잃어버립니다.

 

 

 

당신은 이제 막 여든두 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고르가 [유토피아로 가는 길]에서 제시한 노동시간의 단축론

 

고르는 공적활동은 활발히 벌였지만 사적 생활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고르는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사랑 없이는 왕성한 철학적

정치적 작업이 불가능 했음을 고백했다.

 

결혼을 잘 하지 않거나 쉽게 이혼하는 서양 풍토에 견주어 이들은

매우 예외적이었다. 게다가 죽음 앞에서 떨거나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풍경에 비추어 이들은 매우 자율적이었다.

 

고르는 독일신문 <타게스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질문하고 놀라고 의심하고 분노하는 것은 삶의 원동력이자

마음의 문을 여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깊이 사랑했으되 아이는 갖지 않기로 했다.

 

 

 

옮긴이의 말 (임희근)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한 사람의 84년간의 결곡한 삶의 궤적이

이 한 권의 편지에 고스란히 담겼다.

 

글쓴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 구태여 췌언이 필요없다.

이 편지를 읽으면 누구든 알게 될 것이다.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스트 선언]

도대체 왜 끊임없이 더 많이 생산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문제는 소비의 증가 추세를 그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덜 소비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태학적 리얼리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