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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그럴수록 산책 - 도대체

by librovely 2022. 11. 7.

 그럴수록 산책                                   도대체                                     2021                  위즈덤하우스

 

만화와 글이 섞여있다

걷는 건 좋은 일...인간은 걸어야한다 그렇게 되어먹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산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중간중간 나온 동물 이야기가 재밌었다 꿩이 꿩!하고 운다니!! 오후 네 시면 산으로 돌아간다니!

그리고 왜가리...작년인가 왜가리를 보고 나도 맘을 빼앗겼었는데 저자도 푹 빠졌다니

 

 

 

 

저는 많이 걷습니다 이유는 대체로 별거 없습니다 날이 화창해서 걷고 날이 흐려서 걷고 기분이 좋으니까 걷고

기분이 나쁘니까 걷고

그 시작은 20대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몹시 속상한데 딱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답니다

비 오는 날이었죠 그날 저는 편의점에서 산 비옷을 입고 20킬로미터 가까이 걷고 돌아와 잠을 잤습니다

걸었다고 슬픈 일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어쩐지 후련하더라고요

 

동네 뒷산에서 꿩의 울음소리를 처음 들은 날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갑자기 제 눈앞에 나타나 꿩!하고 울었기 때문입니다

호기심이 생긴 저는 꿩에 대해 찾아보았는데 지금 와서 다른 내용들은 대부분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먹을 것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왔다가도 오후 네 시가 되면 숲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꿩들도 나름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어쩐지 귀엽기도 했고요 

 

저는 왜가리에 푹 빠졌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 다니는

왜가리를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런 생명체가 다 있을까 싶습니다

 

어느 날 저의 개 태수(ㅋㅋㅋ)와 함께 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꼬마 하나가 태수에게 달려왔습니다

꼬마의 아빠가 개는 멀리서 보는거야 라고 말하며 말리자 꼬마는 바로 울음을 터뜨렸죠

그 모습을 보면서 이제부터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순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남은 평생이 걸리겠구나

생각하며 안쓰러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삶은 제 한계를 확인하는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또 하나 확인한 게 있다면 어찌됐든 괜찮다는 것이었죠 

 

비의 원리를 배운 후부터 (구름 알갱이들이 뭉쳐서 점점 커지면 무게를 견디다 못해 비가 되어 떨어져요)

비 오기 시작하는 순간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비는 언제나 마침내 내리는 셈이죠

세상의 무언가가 가벼워지기로 결심한 순간입니다

 

눈이 많이 온 후엔 아무래도 산을 오르기가 힘듭니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게 눈길을 척척 다니는 순록이고 이어서 몇 년 전에 본 기사가 떠오릅니다

일본 도미노 피자가 홋카이도에서 순록 배달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예시로 첨부된 사진에서 순록은 등 위에 피자 박스를 지고 있었습니다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홋카이도에서 고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기획한 이벤트였겠지만 저는 그 사진을 보며 착잡해지고 

말았습니다 

순록으로 태어났는데 왜인지 피자를 배달하게 되는 어리둥절한 삶도 있는 것이군....

그 무렵 저는 어느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흔히 말하는 영혼 없는 직장생활을 하는 참이었습니다

이렇게 내 인생이 가고 있구나 

얼마 후 후속 기사가 나왔습니다 도미노 피자에서 순록 배달 시스템을 최종 보류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록을 교육해보려 했지만 길을 자꾸 벗어나고 집 앞에 멈추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피자를 길가에 버리고

가는 등 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요

순록들이 피자 배달 교육을 거부해서 자신들의 삶을 지켰다!

저는 벅찬 마음이 되어 환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