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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by librovely 2008.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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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버트런드 러셀                2003               사회평론



버트런드 러셀
에리히 프롬에 이어 정신을 쏙 빼놓는 사상가 발견...



몇 달 전 범우사상신서 목록을 뒤적거렸었다   뭐 읽을만한게 있나 하면서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에서 구입하기도 한 <나는 믿는다>
이 책은 여러 지식인의 공저인데 맨 처음에 등장한 사람이 버트런드 러셀  이 책에는 버트란드 러셀로 나온다
어떻게 읽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여튼 그가 쓴 부분만 읽어보았는데 내용이 아주 좋았다...몇 달 전에 읽어서 내용이 솔직히 기억이 안난다
하여튼 그렇게 머리 속에 들어온 버트런드 러셀~  이렇게 각인이 되어서 그런건지 예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
오지 않던 그의 책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그의 책 몇 권을 담다가도 무신론자인
것이 뭔가 두려워 다시 싹 삭제해버리기고 하고 그랬다... 위대한 사상가 중 무신론자가 꽤 많은 것 같은데
일단은 피하고 싶다...난 그들의 논리정연한 글과 견줄만한 신앙이 없기에...즉 무조건 믿는 것도 문제지만
무조건 무신론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마땅하지 않다고 여겨지기에 일단은 피하고 보자....



이 책은 제목이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다
신과 뭐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뭔가 내용도 어려울 것 같지 않다
느림 하면 떠오르는 피에르 쌍소의 그 책과 유사한 그런 내용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이건 나중 생각이고 이 책을 염두에 두게된 건 서점에서 직접 보았을 때였고 그 때는 소제목들을 보고
흥미를 느꼈던 거구나... 인간의 아니 나의 기억이란 역시 항상 그러하듯이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버트런드 러셀은 책의 앞날개 소개에 의하면 노벨상을 받은 문필가이며 사상가이고 실천적인 인물로 대단히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 한다   1970년에 사망한 근 100년은 살다가 간 세계적인 지식인인 모양이다
저서만 40여권이고 초인적인 양의 글을 써대신 분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제목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다비드 르 브르통이<걷기예찬>에서 걷기에 대한 찬양으로 책을 채웠던 것 같은 그런 내용이 쓰여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느끼기에 이 책의 제목은 뭔가 낚인듯한 느낌을...ㅡㅡ;;  책의 뒷면에 쓰여진 글도 마찬가지다.
책의 표지에서 느껴지는 바와 내용이 너무 맞지 아니한다...소제목에서 책 제목을 따오는 방식을 택한다면...
<게으름에 대한 찬양> 보다는 <사회주의를 위한 변명> 혹은  <무용한 지식과 유용한 지식> 아니면...
<내가 공산주의와 파시즘을 반대하는 이유> 등이 훨씬 책의 내용을 잘 드러내줄 것 같다...



책의 뒷날개에 쓰여진 문장들은 정말 정확한 말이다. 전혀 과장이 아니다...
풍부하고 자극적인 사상으로 가득찬 책
많은 논쟁의 여지가 곳곳에 숨어 있다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이며 명쾌하다
한 페이지도 논쟁이나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고는 넘길 수 없다



에리히 프롬
내가 그나마 저서를 읽은 사상가는 에리히 프롬 뿐이니 그와 비교해 보자면...
에리히 프롬의 책은 그가 갖고 있는 생각의 바탕을 아주 자세하게 때로는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사상을 풀어나가
는데 반해 버트런드 러셀은 단도직입적으로 빠르게 핵심만 콕콕 짚어가며 생각을 펼쳐나간다 그렇다고 근거도
없이 주장만 한다는건 당연히 아니고 뭐랄까 상당히 압축적이라고 할까?  성격급한 나에게는 버트런드 러셀의
글이 더 시원시원 좋았다...때로는 너무 전개가 빨라 읽다가 멈춰 생각하고 다시 읽기도 했다....에리히 프롬의
책은 너무 질질 끄는 느낌이 간혹 들어서 읽다가 때로는 한 숨을 쉬기도 했는데...둘을 좀 섞었으면 좋겠다..ㅡㅡ;



에리히 프롬과 버트런드 러셀의 사상은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네...ㅡㅡ;)
일단 비슷한 건 둘 다 상당히 양심적인 지식인이라는 것... 가진자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 자체를 위한 사상...
지식인에 양심적이다 아니다를 붙인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지만 이런 시대가 된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양심적인 지식인이 신기한 세상이 된 것도 같다...(나는야 비양심적인 무식인이지만 어쨌든..)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말은 인간의 노동시간을 줄이자는 의미다
노동시간을 하루 4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는 아름다운 말씀을 하신다
그리고 남는 많은 여가 시간을 사색이나 즐거운 활동으로 보내자는 말이다
에리히 프롬도 돈의 노예가 된 인간을 얼마나 안타까워 했던가...둘 다 인간은 자유로이 여가를 보내야만 한다는
말을 하고 계신 것이다   물론 이게 가능하려면 사회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것도 동일하다.... 단 구체적인 방법은
좀 다르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이 좀 다른데...
에리히 프롬은 마르크스 사상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여기며 받아들이자라고 한 반면 버트런드 러셀은 전반적으로
옳은 사상이긴 하나 마르크스의 사상은 좀 손을 봐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의 사상은 육체 노동을 너무 강조하여
정신 노동자들의 중요성을 다소 간과한 면이 있고 이로 인해 정신 노동자들의 동조를 얻는 것에서 스스로 멀어지
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보다 버트런드 러셀은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을
펼치는 것 같다.



둘 다 파시즘에 대해 많이 다루는 것도 비슷하다  그럴수밖에 없긴 하다 그들의 시대에 그만큼 이상하고도
문제가 심각한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멸망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앞으로의 전쟁에 대해 우려를 보이는
점도 비슷하다  에리히 프롬은 개인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들었으며 그것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연결지어
다루고 있는데 반해 이 책에서 버트런트 러셀은 개인 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물론 다른 책에서는
개인에 대해 다루었을 수도 있지만 하여튼...



버트런드 러셀은 무정부주의자라고 한다. 진중권도 어디선가 자신은 아나키즘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에리히 프롬도 그랬던 것 같은데... 버트런드 러셀은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그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사회주의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계 사회주의... 국가간 구분을 넘어선 사회주의
물론 그도 한시에 국가가 사라지기는 힘들다고 말하지만 각종 국제기구를 통해 어느정도 실현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국제기구가 또 하나의 거대한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기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의 우려가 이미 현실인지 어쩐지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책에 쓰여진 대부분의 글들이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건축에 대한 제안도 참 독특하다.
육아와 가사 노동에 일상을 쏟아붓고 살면서 경제 능력이 없어서 남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이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상당히 인간적이다.   그는 정확히 말한다. 가사일로 인간이 자아실현감을 느낄 수
없다고... 그는 건축 방식의 개선을 통해 여성의 여건 개선을 꾀하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공동 육아 시설을
만들어 아이가 젖을 뗄 무렵부터는 공동 육아를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생활을 위한 침실들의
공간은 가족마다 따로 사용하도록 하되 인간적인 여가를 보낼 수 있는 넓은 공동 주거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비인간적으로 좁은 공간에만 살면 안된다는 것이다.  개인마다 넓고 쾌적한 공간 소유는 불가능할테니
그걸 공동 주거공간 개념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난다.
알베르 카뮈가 <단두대에 대한 성찰>에서 자주 했던 그 말...
상상력이 부족하다....
이 책의 여성에 대해 다룬 부분의 글을 읽으면서 버트런드 러셀은 참 민감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뭔가 새로운 것을 떠올린다는 그런 상상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입장...그러니까 전혀 경험해본 일이 없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제대로 감정이입이 가능
하신 것이 신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살던 시기는 여자가 지금보다도 훨씬 못한 존재로 살아가던 시기
인데 여자의 삶에 대해 종종 언급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니 민감하다는 생각...민감함....이게 필요한 것 같다.
사회적 약자가 존재함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민감함과 그들의 입장에 대해 깊이 숙고할 수 있을 상상력...



동물 애호가들의 모피 반대 운동을 보고 아프리카에서는 사람이 굶어죽는다는 소리를 하며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동물 애호가들은 단지 민감함과 상상력이 풍부할 뿐인거다...그리고 그들이 동물에 대해서도 그런데
인간에 대해서는 안 그러하겠느냐....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왜 사람을 힘들게 만드는가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과 생산량이 조절된다는 그 아름다운 말은 알고보면 무시무시하다
현대는 세계화 시대... 보이지 않는 손은 세계 차원에서 움직이는데 세계 차원에서 물건 생산량 조절이란
불가능하고 과도한 경쟁에 빠져들게 되며 낙오한 기업은 생산량이 적은 다른 물건을 생산하면 된다는 건
헛소리이고 그 회사는 망하고 직원은 실직하고.... 쓸데없는 소모적 결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철강산업으로 예를 든 그 내용은....철강 산업의 규모에 비해 소비될만한 일이 부족하자 이를 소비하기
위해 철강산업은 전쟁을 꿈꾸게 되고 국가의 지배세력과 결탁하여 분위기를 조성한 후 전쟁을 일으킨다...
음...석유도 그렇고 뭐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거구나...자세한 건 몰라도 하여튼...



니체의 초인 어쩌고에 대해 비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니체에 대해 전혀 몰라서 뭐라 판단할 수 없었지만 니체의 초인사상이 파시즘과 연관이 있다니...




정말 멋진 책이다.
1930년대에 쓰여진 옛날 책이지만 그 시대 보다 오히려 요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책이다.
확.실.히. 읽어볼만한 책이며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왜 읽어봐야 하는가?
사회를 좀 더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조금이라도 더 생길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빌려보기 보다는 사서 보는 편이 좋을 책이다.
밑줄 그을 내용이 너무 많고 수시로 뽑아서 읽어볼만한 내용들이니까...



a n d . . .
진중권도 여기저기에 쓰셨던 그 많은 글들을 이 책처럼 엮어서 자주 출판하셨으면 한다...
<폭력과 상스러움>처럼...
사서 볼꺼냐고?
네...사서 봐서 4등급 독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중권의 독자 등급표 : http://librovely.tistory.com/entry/내-책의-특성에-관한-고찰)










게 으 름 에 대 한 찬 양


현대의 기술은 여가를 소수 특권 계층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공동체 전체가 고르게 향유할 수 있는 권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더 여가가 사라졌다....는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



의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위해 살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물론 권력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인류 전체의 이익은 동일하다고 어거지로 믿음으로써 스스로에게도
이 사실을 은폐한다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현대의 기술은 만인을 위한 생활 필수품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양을 엄청나게 줄였다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도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은 장시간 일을 해야만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일자리가 없어 굶어죽게 되었다



노동의 존엄성에 대해 교육 선전하는 일
근면하라 절주하라 먼 장래의 이익을 위해 장시간 일하려는 의욕을 가져라
심지어 당국에 순종하라는 것까지
종교는 가난한 자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가르친다
이는 남자들이 여자들을 성적 노예 상태에 놓아두며 특별한 고귀함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애쓴 것고 같다



돈을 버는 것은 선이고 돈을 쓰는 것은 악이다란 얘기
차라리 열쇠는 선이고 열쇠구멍은 악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물품 생산에서 나온 가치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그 물품을 소비하는 행위에 의해 획득된 이익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생산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소비에 대해서는 너무 적게 생각한다
그 결과 우리는 즐거움의 향유나 소박한 행복에는 별 중요성을 두지 않으며 생산을 그것이 소비자에게 주는
기쁨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과학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호기심을 맘껏 탐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수준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든 배곯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젊은 작가들은 기념비적인 대작을 내는 데 필요한 경제력을 확보할 요량으로
감각적인 작품을 써서 주의를 끌어보려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직업상 경제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은 학문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고 교사들은 젊을 때 배운 틀에 박힌 방법으로 가르치느라 분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의 행복과 환희가 충만할 것이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증 대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 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가 시간에 비쳐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류의 오락거리들만 찾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1퍼센트는 직업상의 일에 써 버리지 않은 시간을 뭔가 유용한 것을 추구하는 데 바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일들은 그들의 생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성이 방해받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나이 많고 박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에 맞출 필요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하루 4시간 이상 일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세상에서는...
행복한 생활의 기회를 가지게 된 평범한 남녀들은 보다 친절해지고 서로 덜 괴롭힐 것이며 타인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모든 도덕적 자질 가운데서도 선한 본성은 세상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질이며
이는 힘들게 분투하며 살아가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편안함과 안전에서 나오는 것이다
(비정규직   구조조정    과도한 경쟁으로 나가는 우리나라는 대체....  누구를 위한 건지는 뻔하지만...)



현대의 생산 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게는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두 명에게 4시간 일 시키고 2만원을 주느니 한 명 8시간 일시키고 1만원을 주고 싶은 가진자들의 영악함이
문제인 것 같다...어리석다기보다는 지나치게 영악하다....)







무 용 한 지 식 과 유 용 한 지 식


이제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폭넓고 인간적인 인생관을 세우는 수단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전문적
기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어떤 과업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에만 지나치게 빠져 버린 결과 일종의 긴장성 광신주의에 빠져버린다
아이들에게만 놀이가 필요한 게 아니다  어른에게도 현재의 즐거움 이외엔 아무 목적도 없는 행위에 빠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용한 지식의 가장 중요한 이점은 아마도 숙고하는 습관을 조성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필요한 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한 특정한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시각에서 본 인생의 목적에 관한 지식이다
개인적 불행이든 공적인 불행이든 의지와 지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극복될 수 있다








건 축 에 대 한 몇 가 지 생 각


아내들은 각자의 좁은 집과 좁은 부엌 고된 가사노동 학교 갔다 온 아이들 돌보기 등을 견뎌내야 할 뿐 아니라
심지어 그런 일을 좋아해야만 한다  일는 고되고 생활은 단조롭고 여자는 집에 갇힌 죄수꼴이다
여전히 남편의 벌이에 의존해야 하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임금을 받지 못한다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할 영역을 갖고 싶은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희망이겠지만 그녀에게는
집안일 외엔 다른 출구가 없다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식사까지 제공하는 숙소나 공동 부엌  다시 말해 끼니 준비 걱정을 더는 것과
사무실에 나가 있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보육원이다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별도의 직업이 없는 아내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까지 해야 한다면
대단히 과로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가사일은 사실 많은 부분이 불필요한 일들이며 그 나머지 일도 대부분 각 전문가들에게 분담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건축상의 개혁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아이가 젖을 떼는 대로 육아를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여성들에게 하루종일 맡기게 된다
여성들도 남자들처럼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게 될 것이고 남편들처럼 일하는 시간과 여가시간을 따로
갖게 될 것이다 (여성은 가사일로 하루 종일 여가시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 해방 운동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있지만 파시스트적 반동이 없는 한 꾸준히 발전해 나갈 것이다
조만간 여성은 공동 취사와 보육원을 선택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현 대 판 마 이 더 스


1차 대전에 참가했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자국 화폐 가치를 인하했고 그 과정에서 일부 부채의 지불을 거절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국내 부채의 지불을 거절했고 프랑스는 프랑의 가치를 종전보다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뜨림으로써 5분의 4를 지불 거절했다  러시아인들은 부채를 갚지 않겠다고 솔직하게
밝혔지만 서구나라들로부터 극렬한 비난을 감수해야했다  지불거절에도 고상한 에티켓이 요구되나 보다


안정된 통화를 보장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뿐이다  군사력을 유일하게 소유한 세계 정부 -굳이 실제 형태를
갖추지 않더라도-를 갖는 것이다  그 정부는 통화 안정에 관심을 가지고 재화의 평균이란 측면에서 변하지 않는
일정한 구매력을 지닌 통화를 선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금이 지닐 수 없는 진정한 안정성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계속 가난하게 살도록 남겨 두고픈 마음보다 자신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정말로 더 크다면 세상은 금방 파라다이스가 될 것이다


소수가 다수를 능가하는 힘을 획득하는 경우 그들은 어김없이 다수를 지배하는 일정한 미신의 도움을 받아왔다
우리시대의 금융업자들은 금을 숭배하는 미신의 도움을 받고 있다
금 준비금이니 어음 발행이니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리플레이션 기타 온갖 전문 용어를 나열하면 보통 시민은
놀라서 말문이 막혀버린다  그런 문제들에 대해 청산 유수로 말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임에 틀림
없다고 느끼면서 그들의 말에 감히 의문조차 품지 못한다


일반 대중의 이런 어리석은 면은 금융업자가 민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활동하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물론 그에겐 여론을 다루지 않고 활동하는 데 필요한 이점들이 그밖에도 많다
그는 엄청나게 부자이기에 대학에 재산을 기부하여 대학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금권정치의 우두머리에
있기에 지도자가 된다 그는 전 국가들을 골라 잡아 흥망을 분배할 수 있다


금권정치로 기울지 않은 입장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몇몇 기관들이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극소수이고
일반적으로 현존 경제 현상을 미화시키는 방식으로 가르친다
미신과 신비화는 재력을 가진 자들에게 봉사한다


이러한 사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세계 민주주의 세력들이 금융의 중요성을 깨닫고 모두에게 폭넓게
이해될 수 있도록 금융 원리들을 간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 리 시 대 청 년 들 의 냉 소 주 의


어느정도 만연된 회의주의는 지적 원인보다는 사회적인 원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 주요 원인은 언제나 힘이 없는 것에 대한 위안이다
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사상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과 초등 교육으로 인해 어리석음이 문명의 발흥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견고해졌다



 





현 대 사 회 의 획 일 성


사고나 여론이 획일화 되는 것은 물질적인 생활 기구가 획일화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다
오늘날의 여론은 주로 학교나 교회 언론 영화 라디오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무 엇 을 어 떻 게 가 르 쳐 야 하 는 가


만일 당신이 많은 사람들이 말이나 개에 대해 가지는 애정처럼 조건 없는 애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한다면
아이들은 당신의 제안에 쉽게 반응할 것이고 금지 사항들도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물론 투덜거리겠지만 분노는 품지 않을 것이다


바람직한 관심이란 아무 목적 없이 아이들과 같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자질을 가진 교사라면 아이들의 자유에 간섭할 필요도 별로 없겠지만 혹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해도
아이들에게 심리적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업무가 과중한 교사들로서는 아이들에 대한 본능적인 애정을 간직하고 있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 어떤 이론으로 무장한 교사라도 시달리다보면 피곤해지고 결국엔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호의가 존재하는 곳에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두고 미리 규율을 내세우는 일은
불필요할 것이다 호의라는 충동이 자연스럽게 올바른 결정으로 이끌어 갈 것이고 당신이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이가 느낀다면 어떤 결정이든 대체로 올바를 것이기 때문이다
규율이란 제 아무리 현명한 것이라 해도 애정과 접촉을 대신할 수 없는 법이다









이 성 의 몰 락 니 체 와 히 틀 러


대중을 가리켜 실수로 망쳐버린 작품들이라고 한 니체는 그들을 설득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맑스 역시 자본가들의 지지를 얻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보편적인 가설들이 존재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직관에 의존하게 된다
이질적인 집단의 직관들은 당연히 서로 다를 것이므로 직관에의 의존은 결국 충돌과 힘의 정치로 이어진다


우리 시대의 비합리주의자들의 목표는 구원이 아니라 권력이다
지배욕 때문에 필연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저술가
피히테   카알라일   마치니    니체


파시즘이 자라는 토양을 제공해 온 비합리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정치가들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니체에 의해
극명하게 표현되었다 그는 실용주의뿐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도 의식적으로 반대한다
"인류는 목적이라기보단 수단이다   인류는 실험재료에 불과하다" 고 니체는 말한다
목표는 저 위대한 에너지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 에너지는 실수로 태어난 수백만의 인간들을 섬멸함으로써 미래의 인간상을 제시할 수 있다


이성은 공평성을 요구하는 데 반해 초인 숭배엔 언제나 나는 초인이다 라는 주장이 소전제로 깔려있다
파시즘이 자라 나온 사상의 원조에는 몇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은 감정이나 인식보단 의지에서 선을 구한다
행복보단 권력을 더 높이 평가한다
논쟁보단 힘을
평화보단 전쟁을
민주주의보단 귀족주의를
과학적 공정성보단 선전을 선호한다


그들 가운데 후기론자들은 통속적 다원이즘에 물들면서 생존 투쟁을 좀 더 고등한 종으로 진화되는 근원으로
생각한다


누가 선민인가를 구분하는 데는 당연히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피히테의 경우에는 그의 국가가 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자들에게는 그의 계급이 될 것이며
나폴레옹의 경우에는 그의 가족이 될 것이다
숭고함이란 것은 아무런 객관적인 기준도 없다


나머지 사람들은 영광과 영웅주의와 자기희생에 현혹되어 자신들의 중대한 이익은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감정에 휩싸여 자신의 목적도 아닌 것에 스스로 이용당하고자 한다
바로 이것이 나치 왕국의 정신병리학이다


교외에서 잠자고 대도시에서 일하는 거대한 인구를 상상해보라
아무 연대감도 느끼지 못하고 수많은 주택가를 지나 런던으로 출근한다
지역 일에는 전혀 참여하지 못한다  고용주의 지시에 따라 하루종일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주말마다 뒷마당의 정원을 가꾸는 일이다
스스로 빈곤층이라 느끼면서도 신사연하는 속물근성 때문에 사회주의나 노동조합이란 수단을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 파시스트 운동이 해방운동으로 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의 세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두 가지는 사회주의와 평화이지만 우리 시대 가장 힘있는 사람들의
이익에 정면 대치되는 것도 바로 이 두 가지이다
이 두 가지 쪽으로 접근하는 조치들을 다수의 이익과 상치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것이다








내 가 공 산 주 의 와 파 시 즘 을 반 대 하 는 이 유


공산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소위 프로레타리아 독재란 것은 사실
계급이 언제나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이상주의에 불과하며 이상주의는
맑스 자신의 정치 철학과도 상반된다


공산주의는 자유 특히 지적 자유를 파시즘을 제외한 다른 어떤 체제보다 심하게 제한한다
모든 중대한 혁신은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어쩌다 우연히 살아남는 데서 가능했다
케플러는 점성술로 살았고 다윈은 물려받은 재산으로 살았으며 맑스는 엥겔스가 보내주는 돈으로 살았다
공산주의하에서는 이러한 기회들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사회 전체의 밑그림을 구상하고 있는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는 트정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개인들을
비틀어 버린다  제대로 비틀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죽여버리거나 강제 수용소로 보내 버린다


그 결과 수동자는 조종자가 바라는대로 미리 생각해 둔 틀 속에서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병적으로 뒤틀려 버림으로써 괴상하고 섬뜩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류가 이러한 기형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성장 자기 마음대로 해보기
훈련되지 않은 자연스런 삶이 필수적이다


공산주의와 파시스트의 독재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한데 그것들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민주주의를
폐물취급하는 것에 대해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그렇게 믿는다면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 회 주 의 를 위 한 변 명


대중의 통제가 없다면 정권이 자신의 부의 축적을 제쳐놓고 경제 계획을 수행하리라고 기대할만한 근거가 없으며
결국 그것은 모양만 새롭게 바꾼 착취에 불과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반드시 사회주의 체제의 한 요소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현대의 생산은 복잡한 성격을 띤다   예측이 어렵다
예측이 빗나간 경우 나는 이윤을 얻지 못하게 되며 기계들을 놀리게 되고 직공들은 일자리를 잃고 취업 보조금에
의존하여 살게된 사람들은 돈을 예전만큼 쓰지 못할 것이고 상품을 만드는 다른 회사에게도 실업 현상이 나타나
고 결국 예측의 실패가 파장을 점점 확대시키게 된다


오늘날의 이윤 동기가 실패하게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바로 희소 가치 창출의 실패이다
이를 극복하려다 보니 나온 결과가 경제 제국주의다
이윤 획득의 유일한 가능성이 대형 시장의 배타적 장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기계의 생산력 덕에 인류는 과거보다 훨씬 적게 일하고도 상당 수준의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만큼의 물질적 편의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장시간 노동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실직한 사람들은 굶어죽거나 국민의 비용으로 정부당국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현재의 세계에선 다수의 사람들이 궁핍할 뿐 아니라 궁핍하지 않은 사람들도 대부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모든 계층에서 경제적 두려움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밤에는 꿈까지 지배한다
따라서 일할 땐 초조하고 여가를 즐길 땐 개운치가 않다
이렇게 늘 공포에 시달리는 상태야말로 문명세계의 넓은 지역을 휩쓸고 있는 광기 서린 분위기를 유발하는
주요인이라고 생각된다


부에 대한 욕마은 대부분 안전에 대한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제 안정성이란 획득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경제적 안전은 문명 사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데 있어 전쟁 방지책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의 고등교육은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잘사는 집 아이들에게 국한되어 있다
게다가 영국의 경우 점점 더 속물화되어가고 있다  사립 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 생활의 매순간마다 계급의식을
흡수하게 된다  또한 주로 국가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현상을 옹호하지 않을 수 없고 젊은이들의 비판능력을 둔화
시키고 위험한 사상으로부터 격리시키려 최대한 애쓰게 된다


철강 수요는 주로 전쟁 준비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볼 때 철강산업은 국가주의와 군비확대로
부터 이익을 얻는다


현대 자본주의를 전쟁의 원인으로 보는 이유
그것이 원인의 전부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들을 근본적으로 자극하는 기능을 한다
이런 문제의 최종 해결 방안은 오직 국제 사회주의에서만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관계 정부들을 대표하는 공공 사업 기관에서 이들 사업을 운영하게 하는 것이다








서 구 의 문 명 을 어 떻 게 볼 것 인 가


자신이 속한 문명을 올바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확실한 수단이 있다
바로 여행  역사 그리고 인류학이다


우리 시대의 유일한 종교는 애국심이다
개인에 대한 사회의 압력이 야만적인 공동체에서처럼 커지면 국가가 개인의 업적보다 집단적인 업적을 자랑으로
내세우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금 욕 주 의 에 대 하 여


공포를 일으키는 대상을 단호하게 주시하는 것이 유일한 처치법이다
그래 좋아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지?








혜 성 의 비 밀


우리의 일상 세계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인공적이다
이로 인해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많다
안전한 자신의 영토 안에서 인간은 점점 더 사소해지고 교만해지고 약간씩 미쳐간다








발 문   -  캐나다 Saskatchewan 대학 교수  하워드 우드하우스


러셀은 소위 무용한 지식이 우리가 그것을 몰랐더라면 놓쳐 버렸을 환희의 감각으로 우리의 경험을 고양시키고
풍부하게 만듦으로써 과일의 맛을 더 달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살구의 예를 든다
무용한 지식은 살구의 역사처럼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까지 개인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지식의 추구를 가능케 해주는 것이 바로 사색하는 습관인데 여기에는 게으름이 요구된다
사람은 게으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장난도 치고 싶어지고 스스로가 선택한 건설적이고
만족스러운 활동들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문명의 발달로 노동을 현명하게 재구성한다면 이제 일반 대중도 게으름을 누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게으름이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게으름은 바람직할뿐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될 것이다


교육이야말로 이 책의 중심적인 관심사이다 지식과 배움과 지혜가 그 자체로서 평가받을 수 있으려면
또한 게으름과 놀이와 여가가 일을 대신하는 가치 있는 활동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교육 개혁이
요구된다   우선 그는 교사의 일을 현재보다 훨씬 줄여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아무리 아이들을 좋아하는
교사라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의 성격상 그런 성품은 곧 질식되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교사에겐 하루 두 시간의 가르침이면 충분하며 그 위에 교사들도 아이들의 요구에서 잠시 떠나 사회적 접촉을
가지고 다른 종류의 일도 해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사들은 건강한 교육적 관계에 필요한 애정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느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