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녀 발랑기 이주윤 2012 퍼플카우
오늘 할 일 싸들고 퇴근했는데... 근데...
어머 이건 사야해 써야해
밀당치고는 너무 느슨한.. 그는 2주에 한 번씩만 문자를 보낸다 그러나 그 간격만큼은 철저하게 지켜왔는데
근데...그런데 때가 되었음에도 문자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뭘까...아 한글날...그리고 그 다음 날은 금요일
금요일은 off지...그래서 하루 늦게 금요일에 문자가 온거다...
***님 반납 예정일 : 14/10/11 (예정일 하면 보통은 출산을 떠올리겠지만 난 바로 반납...이 둥둥 떠오름)
뭐든 끝까지 미루고 보는 인내심 많은 성격 탓에 토요일까지 끝내 반납을 미뤘다가 읽지도 않으면서 15권은
꼬박 챙겨 빌려오는 탐욕의 죄값을 팔과 허리 근육으로 감당하며 도서관에 갔는데...
가면 보통 15권 중 7권은 재대출...재대출은 원래 안되기에 돌려막기 돌려 대출하기로...
그리고 나머지는 신간 구간 휴대폰 메모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대강 챙겨서 빌려온다
예전 독서 새내기때는 아주 꼼꼼하게 책 리스트를 작성해서 벅벅 지워가며 신중하게 빌렸는데
이젠 빌릴 수 있는 권수가 늘어나서 느슨해져서 그냥 막 아무거나 집어 들고 오고 집에서 읽어가며 선별...
끝까지 읽을 지 던질지...ㅋㅋ 근데 내가 뭘 쓰고 있는거지...이게 아닌데..이럴려고 로그인한거 아닌데..
그러니까 지난 주 토요일 무심코 신간 코너를 훑어보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온거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 이 책 지난 번에도 눈에 띄었던 책인데 음 그때 이 책 안 집어든 이유도 생각나네
이대로 서른이 되어도 괜찮을까? 라는 전혀 괜찮지 않은 고리타분한 부제 때문에 열외했던 것...
너무 식상하지 않나...이대로 서른이 되어도 괜찮을까...라니...아이고 민망해...
그리고 이대로 서른이 되면 안 괜찮아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까이꺼 뭔 소리를 늘어 놓았나 얼마나
뻔한 고리타분 스토리를 끄적거리셨나 한 번 확인이나 해볼까 하며 집어들었고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읽었는데...
두 번째 줄에서 느낌이 옴
생면부지의 남녀가 몸을 맞대고 있는 지하철이 음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까운 거리는 되도록 걷는데...
아...이거다....이거네~
저 부분에서 느낌이 온 건 내가 정말 아주 오래 전부터 종종 하던 생각이기에...저것(?)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잡담으로 한바탕 써 내려가 봐야겠다 하여튼 저 문장에서 책에 아주 양질의 무언가가 담겨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고 빌려왔고 밤에 귀가해서 새벽에 읽기 시작해서 새벽 4시까지 다 읽었다
읽다가 그 밤에 낄낄~ 대기도 했고 어느 부분은...이거 내가 썼나요?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냥 내 정신상태
저자는 간호사였고 오줌 때문에 혼난 어느 날 내가 오줌 때문에 혼나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진짜 가치있는 일을 하기로 하고 그만 두고 글을 썼고 그 결과가 이 책인 모양이었다....
글을 참 잘 쓴다
웃기다
웃기게 글을 쓰는 여자 몇을 알고 있다
탄산고양이 전지영님, 홍인혜....음 또 있을텐데 생각이...
(전지영과 비슷한 면이 많다 멀쩡한 직장 그만둔거나 그림 잘 그리는거나 외모도 얼추 비슷?)
근데 이런 작가들은 소소하게 읽히다가 종종 웃긴데...그런데 이주윤은 웃기다가 가끔 소소하게 읽힌다
그냥 대부분의 글이 웃겨 죽겠음...그게 웃음 코드가 맞아야만 웃길지도 모르겠는데...하여튼 난 웃겼음
이런 재미있는 아니 재미있다가보다는 웃기다는 표현이 훨씬 적확함....웃겨...웃기다...
옛날에 TV에서 이영자가 밥을 먹으면서 줄어드는 밥...남아있는 밥의 양을 보면 슬퍼진다고 했는데
오른손에 잡히는 페이지가 얇아질수록 슬픔에 젖어들 지경이었다...그래서 블로그도 바로 찾아내서
그 안의 글도 거의 다 읽었는데...근데 서로이웃이 아니면 5분의 1정도나 볼 수 있나? 하여튼 대부분의
글은 가려져 있는 것 같다...다시 네이버 블로그 살리고 서로이웃 신청할까...다른 글이 보고 싶어서
스트레스? 받는....
하여튼 즐겁게 신나게 읽고 나서 몇 쇄 찍었나 보니 1쇄....음...ㅜㅜ
그런데 이상한 게 2012년 책이고 도서관에 들어온 날짜도 2012년인데 왜 신간에 꽂혀있지?
이런 고퀄 책이 묻히지 않게 도서관 신간 코너 정리하는 어느 이름 모르는 이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책이 꼭 교훈적이거나 지식을 줘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물론 나에게는 이 책도 충분히 교훈적이고 지식을 줬다 ㅎㅎ)
저마다의 존재 이유가 있는거지...건강을 위해 두부(갑자기 두부 타령)만 먹나? 달콤한 디저트도 필요한 법...
그냥 읽는 즐거움을 위한 책
뭔가 고상~한 것을 바란다면 이 책 사서 보면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이 책 괜찮다~ 뭔가 해소됨
아니 다 필요없고 그냥 재밌...아니 웃김
끗
저자는 스타벅스에 자주 간다고 한다 종로 스타벅스...나이는 올해 서른 되었나?
이 책은 27살 때에 쓴건데 음...
아까 뭐라고 했더라? 이대로 서른이 되어도 괜찮을까? 음 안 괜찮아요,...
아니 내 진짜 대답은 안 괜찮고요...이대로 마흔이 되어도 괜찮을까요? 라고 되묻는 것임...ㅋㅋ
이대로 서른이 되어도 괜찮을까라고 묻는 나이로 돌아가고 싶네...그리고 원래 계속 안 괜찮음...
그렇게 늙어가는 것임...
아,
그리고 이 저자 아무래도 못생겼을 거 같아...라고 생각할거나...보통 남자들은 그들의 기준에
다소 거친 말을 하는 여자가 있으면 으레 덕후 외모라고 생각하는데...이 여자 내가 블로그에서
확인해봤는데 마르고 예쁜편임... 그러니까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여자 중에서는 괜찮은 여자도
있다는 뭔가 덕후 느낌이 드는 글이지만 덕후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게 그냥 블로그를 근근하게
유지해가며 덕후처럼 살아가는 나에게는 뭔가 히망적임...희망 아님...히망임...히망저기야...
백수 혹은 블로거들을 싸잡아서 못나서 저러고 있지...에 아니거든요~ 아닌 사람도 있거든
(거기에다가 연애 오래 못하거나 연애 **들에게 저런 못난 것들...하는 사람에게도...~~)
뭐 이런 이유로...ㅜㅜ
저자는 명로진 팬이던데...
명로진 책도 읽어봐야겠다
스페셜 감사~에다가 명로진 이름 하나 적었던데....
김점선은 우상이라던데 난 초반부에는 가상의 인물인 줄 알았는데...이 분도 연구대상임
이주윤 블로그 http://blog.naver.com/stopweeping
소용돌이 가운데 있을 때의 나는 오히려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그 일을 잊어버렸을 때 나는 객관적인 관객이 되어 그것을 바라본다
그제야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이것이 내가 뒤늦게 화를 내는 이유이고 아무도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모르는 이유이고 내가 너의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이며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는 거꾸로인데...그 당시 막 화가 나다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아예 싹 잊어버리는데 신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방바닥에 드러누워 오후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최화정이 신나는 목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냐 나는 이렇게 짜증이 나는데 그래 좋기도 하겠지 너는 샤이니도 보고
안녕하세요 최화정이에요 하면 돈도 주니까
나는 방바닥에 누운 채 눈물을 흘렸다
소변검사를 해야하는데 환자에게 소변을 받아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화장실에 다녀와서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 친구는 디자이너다 브로슈어에 바지라고 써야 하는데 바 대신 자로 잘못 썼다
수천 부가 인쇄된 상태라서 손해가 막대했다
늦은 저녁 친구와 한강에서 맥주를 마시며 신세 한탄을 했다
오줌 때문에 혼나다니 오타 때문에 혼나다니
일 그만 둘란다
좋다 나도 그만둔다
그래 우리 좀 더 가치있는 일을 찾아보자
나는 다음 날 수간호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고 한 달 후 퇴사했다
친구는 나의 자랑스러운 친구는 하나밖에 없는 나의 베프는
아직도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
그녀의 비겁한 변명은
그래도 나한테 제일 가치 있는 일은 이거 같아 였다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백수가 되었다
단축번호 0번이 나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이름 옆에 빨간 하트가 붙어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이주윤이라고만 저장해놨어도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간호 이주윤이었다 내 이름 밑으로 끝도 없는 전공의 향연이 펼쳐졌다
무용 김민정 미술 김소현 문창 한재경...
(나도 내 이름에 설명을 붙여 휴대폰에 저장한 인간을 한 번 봤는데...역시나 그 분도 여러 다리...
이성이 딱 한 명 저장된거라면 뭐하러 설명을...아니아니 그딴 설명을 붙여야만 헷갈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그런 남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지 말해주는 셈인거지...ㅜㅜ)
그 뒤로도 몇 명의 남자를 만났고 몇 개의 비밀번호를 더 알아냈다
처음에는 휴대폰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수준이었지만 후에는 이메일 비밀번호...
해킹이라도 배웠냐고? 그저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키보드 위의 손가락만 바라보면 그만이었다
거기에 구글링을 더하면 상대방의 전 여자친구 신발 사이즈도 알 지경이었다
나는 타자기가 작동하는 것을 그때 처음 봤다
자판을 누르면 해당하는 막대기가 앞으로 쑤욱 나가서 종이를 찍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치 권투선수가 잽을 날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세상에 이런 성실하고 정직한 기계가 있다니
나는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내 곁에 오래 머무르는 남자가 없었다
내 성격이 유별난 것은 인정하지 않으련다
그들은 마법처럼 나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일단 잘생겨야 한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구나 엄마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잘생긴 남자가 여자 속 태우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잘생기면 얼굴값 못생기면 꼴값한다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꼭 잘생기지 않아도 이런 남자라면 언제든 환영한다 (이 부분 발췌는 많이 생략하며 함)
면바지에 체크무늬 셔츠가 잘 어울리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 맞춤법을 틀리지 않는 사람
아는 게 많아도 더 알고 싶어 하는 사람 더 알게 돼도 아는 척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있을까? 있다 한들 어디 가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지성의 향기가 폴폴 풍기는 서점 무방비 상태로 널려 있는 남자들
그들은 내가 훔쳐보는지도 모르는 채 공공연하게 자신의 취향을 알리고 있다
소설책 코너로 갔다
얼굴이 괜찮으면 키가 작고 키가 크면 얼굴이 별로다 옷을 잘 입었으면 이상한 구두를 신고있고
구두까지 완벽하면 결혼반지를 끼고 있다 그만 꿈 깨고 배 나온 아저씨 만나 결혼해야 하나
우울한 인생의 결말을 생각하는 참에 꽤 괜찮은 남자가 내 곁으로 왔다
나는 맞은 편에 가서 책을 읽는 척하며 그의 얼굴을 살펴봤다
소박한 콧대에 매끈한 입술 왠지 모르게 소년같은 구석이 있다
그가 은희경 신작을 집어 들었다 맙소사 너도 은희경 팬이구나
그는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책장을 천천히 넘겼다
외국어 코너로 가서 영어 사전을 본다 전자사전을 쓰면 될 것을 영어 사전을 고집하는 그의
고지식함이 귀엽다 계산대로 향했다 여기서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 말이라도 한 번 시켜보고
싶은데..나는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이 말을 반복했다 결혼하자 나하고 결혼하자
(결혼하자...는 김점선이라는 저자의 우상인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말하고 결혼한 것을 따라서...)
그때 교복입은 남자 아이들 한 무리가 시끄럽게 몰려왔다
녀석들은 이유도 없이 서로를 미친놈 혹은 씨발놈으로 불렀다 때와 장소를 모르고 날뛰는 저
우악스러움 저 애들이 싫다
그런데 그 녀석들 중 한 아이가 그를 불렀다
미친놈아!
그가 대답했다
왜 이 씨발놈아!
청포도 같은 나의 그대여 너는 청포도가 아니라 청소년이었구나
소년같은 구석이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소년이었구나
아까워 죽겠지만 나도 너를 방생한다
소년과 농부라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소년은 멜론 밭에 가서 농부에게 멜론은 얼마냐고 묻고 농부는 40센트라고 대답한다
소년은 저는 4센트 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농부는 작은 멜론을 가리키며 저건 어떠냐
그러자 소년은 밝게 웃으며 답했다 좋아요 저걸로 할게요 그런데 멜론을 따지는 마세요
제가 일주일 후에 다시 올 테니까요
아 나의 덜 익은 멜론이 저 멀리 걸어간다
그는 노트북으로 무언가 하고 있다 문서 작성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의 넓은 등판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흰 티셔츠 위로 견갑골의 움직임이 보인다
너는 척추동물이구나 너는 포유류구나
자웅이체 암수딴몸 수컷이구나
나와 함께 유성생식의 꽃을 피워볼테냐
누나도 아플 때가 있단다 병약하게 생긴 미소녀들만 아픈 게 아니야 이것들아!
사진으로 볼 때는 간호사 이미지인데 실물은 아니네
그래픽 디자인하지 전공은 왜 바꿨어 근데 간호대 성적은 이게 뭐야 키는 크네
월요일부터 나와
그녀는 면접이 아닌 관상을 봤다
하마터면 복채를 주고 나올 뻔했다
관상을 볼거면 제대로 봐야지 아주 선무당 같은 년이다
면접은 내가 너희 병원에서 일을 해줄까 말까 고민하는 자리이다
너의 됨됨이가 얼마나 됐는지 돈은 얼마나 줄 것인지 내가 가늠하는 자리지 너희가 나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그 간호부장을 면접에서 탈락시켰다
나도 씨발 기린이 보고 싶었다
중학생들 옆에 꼭 붙어 과천행 지하철을 탔다
평일인데도 나들이 온 가족이 많았다
딸이 귀엽다는 듯 엄마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분수대 앞에서 흐드러지게 핀 꽃 앞에서
아이가 부러웠다
내 유년 시절의 사진은 내복을 입고 침을 질질 흘리는 게 전부다
코끼리 열차가 지나가고 노란 모자 꼬맹이들은 줄 맞추어 걸어간다
오리 하면 꽥꽥 병아리 하면 삐약삐약
나는 속으로 어른 엉엉 취직 씨발씨발 하며 뒤를 쫓는다
오전 11시
가을 날씨가 좋다
브런치로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후식으로는 Family mart에서 Chocolate milk를 Take out했다
20대 초반의 나는 꽃이 피면 울고 잎이 떨어지면 통곡을 했다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해주겠다고 말했다 그걸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우울한 게 좀 나아질 거예요
나는 처방전을 들고 병원 밖을 나섰다
우울하지 않으면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라는거지? 처방전을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억지스런 만남은 싫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진아는 일단 사진이나 보라며 그의 미니홈피 주소를 알려줬다
친구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그런데 이게 웬걸
그는 매진 임박한 세상에 딱 하나 남은 훈남 같았다 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시간 되냐고 물어봐
하늘이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선물했는데 집에 있는 건 말도 안 된다
이런 날은 종로에 가야 한다 그리고 미행을 해야 한다
스타벅스에서 벤티 사이즈 카라멜 프라푸치노를 마시던 영광의 시절은 지났다
6300원짜리 음료를 마시기에는 내 지갑이 너무 가볍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큰 컵에 얼음물 한 잔 달라고 한 다음 아메리카노를 손수 만들어 먹어야
할 지경이다
김점선<바보들은 이렇게 묻는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기독교 신자가 성경을 읽듯이 그녀의 책을 읽는다
홍대 스타벅스의 한 남자 바리스타는 벤티 사이즈의 뜨거운 음료를 시키면 컵 홀더를 두 개 끼워준다
나는 그런 작은 배려에도 감동한다
그리고 착각한다
너 혹시 나 좋아하니?
지나친 친절과 관심은 부담스럽다
내가 스타벅스 아닌 다른 카페에 가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커피 맛은 어떠세요? 리필 해드릴까요? 춥지 않으세요?
뭐 그렇게 묻는 것이 많은지 제발 나를 혼자 내버려 둬
내 돈 내고 내 시간을 즐기겠다는데 나를 귀찮게 구는 카페 주인들이 싫다
나는 오른손을 내민다 할아버지는 왼손으로 내 손을 쥐더니 주물럭거린다
단순히 손금을 보려고 만지는 느낌이 아니다
운전면허 학원에 다닐 때 기어를 넣는 내 손을 쓸데없이 만지던 늙은 강사 같다
천막을 나서는데 내 등에 대고 할아버지가 외친다
감기 걸리니까 찬 거 먹지 말어!
용하다 용해
약속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강남에 왔다 나는 강남이 싫다
복잡하고 바쁘고 차갑다
시청에서 광화문으로 광화문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대학로로 물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맛이 이곳에는 없다
고구마 튀김 드실래요?
나는 고개를 들어 남자애 얼굴을 본다
오늘 나에게 말을 시킨 첫 사람이다
말조차도 돈을 내고 사야 하는 삭막한 서울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나에게 말을 시킨 저 남자애가
고맙다 처음보는 남자에게 서툴지만 신선한 위로를 받으니 조금은 힘이 난다
고구마 튀김이 아니라 전화번호를 줬으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그 남자애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자리를 떠났다
법륜 스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좋은 직장 취직했다고 좋아할지 모르지만 저러다가 어느 날 직장에서 옥상에 올라가
떨어져 죽는 일이 생기는 거예요 정승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 이런 말이 있죠
남이 좋은 직장이다 대기업이다 그러는 것이 나하고는 상관없는 거예요
남이 소고기가 맛있다 해도 나하고는 상관없어요 안 먹는 사람에게 그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한 남자를 알게 됐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그가 고마웠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내 마음이 아닌 가슴을 어루만지고 싶어했다
성인 남자가 성인 여자에게 베푸는 호의에는 인간적 유대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큼한 오렌지색 니트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어깨선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이
니트 안에 받쳐 입은 흰 셔츠가 단정하다 잘 다려진 베이지색 면바지는 더없이 조화롭다
그 후로 가끔씩 그와 마주치곤 했다
나야 늘 스타벅스에 있었고 그는 오며 가며 스타벅스에 들렀으니까
하지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예전 그 녀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말하는 스타일이나 행동 풍기는 분위기까지
그리고 머지 않아 알게 됐다
그는 호스트바 마담이었다
호스트바 근처에도 안 가본 내가 2회 연속 호스트바 남자를 만나다니
나는 쾌적한 환경에서 책을 보고 고를 권리가 있다
지금 당장 출입문에 커플 출입금지 안내문을 붙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보문고 도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
교보문고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YES24에서 책을 주문할 것이다
나는 결혼이 무섭다
남편이 뒤집어 벗어놓은 양말을 맨손으로 다시 뒤집을 일
늦은 밤 카페에 가고 싶어도 바람 난 여편네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참아야 하는 일
그렇다고 독신주의자는 아니다
이 모든 무시무시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면 기꺼이 누군가의 안사람이자
며느리이자 엄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나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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