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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읽다 - 김영하

by librovely 2016. 3. 21.

 

 

읽다                                                                               김영하               2015                     문학동네

 

읽은지 좀 지난 책이다

아주 아주 심하게 재밌게 읽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명쾌하게 들려주었기에...

무조건 읽어볼만하다 아니 무조건 읽어봐야할 책이다 

김영하의 보다 읽다 말하다 시리즈를 다 읽었는데...3권 모두 환상적임...

이어서 읽은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도 아주 아주 재밌다  김연수는 김영하와 다르게 코믹하게 쓰는 특징이....

 

 

 

 

 

현대의 영화나 소설은 아직도 <오이디푸스의 왕>의 자장 안에 있다고요

왜냐하면 이 희곡에 적용된 여러 기법은 아직도 현대영화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시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비극은 가능한 한 태양이 일 회전하는 동안이나 이를 과히 초과하지 않는 시간 안에 사건의 결말을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원칙은 <로미오와 줄리엣><오셀로>등에서 그대로 지켜질 뿐 아니라 20세기

이후에 제작된 수많은 영화들에서도 그대로 구현됩니다

 

비극은 대부분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 내재된 성격적 결함으로 파멸하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희극은 우리보다 못한 이가 우스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것은 급전과 발견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어 극작의 초심자들이 사건의 결합보다 조사와 성격묘사에서 성공은 거둔다고 말하는데 이는 플롯을

성격보다 더 높이 평가하는 그의 이론과 일치합니다 그는 극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성격보다 사건의 결합

즉 플롯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플롯에서 중요한 것은 스토리를 완전히 달리 보게 만드는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통해 주인공이 획득하게 되는 새로운 인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작가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새로워 보이지만 실은 오래된 작품을 써내고 있다

 

독서는 왜 하는가

우리 내면에서 자라나는 오만과의 투쟁일겁니다

독서는 우리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은 흔들게 됩니다

독자라는 존재는 독서라는 위험한 행위를 통해 스스로 제 믿음을 흔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이는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제는 더이상 그 아가씨가 얼마나 아름답고 귀하고 지혜가 뛰어난지 일일이 말씀 안하셔도 다 알겠습니다

기사소설을 좋아하는 걸 안 것만으로도 저는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얌전한 여인으로 인정할 것이외다

이런 대목에서 돈키호테는 <빅뱅이론>의 셸던이나 레너드같은 캐릭터와 정확히 겹칩니다

그들은 특정 이여기와 그 캐릭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현실의 인간들도 그것을 기준으로 분류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작 <노르웨이의 숲>에도 이와 비슷한 유명한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 인간은 하나도 없었고 읽어보겠다는 생각을 할 만한 인간조차

없었다 그 즈음 내 주변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본 인간은 단 하나뿐이었고 내가 그와 친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서로 얼굴 정도만 아는 사이였는데 어느 날 내가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는 옆에 다가와 뭘 읽느냐고 물었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대답했다 그는 재미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세번째 읽는데 읽을수록 재미있는 부분이 늘어난다고 대답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가사와라는 사내는 자세히 알수록 참으로 묘했다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묘한 인간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고 스쳐지나가기도 했지만 그만큼 기묘한 인간은 처음이었다 그는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독서가였는데 사후 삼십 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는 기본적으로 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책만 난 신용할 수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데요? 발자크 단테 조지프콘래드 디킨스 별로 현대적인 작가는 아니네요

그러니까 읽는 거지 남들과 똑같은 것을 읽으면 남들과 같은 생각밖에 할 수 없잖아 와타나베 알겠어? 이 기숙사

에서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인간은 나하고 너뿐이라고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나 같다고 보면 돼 난 알아 마빡에

간판을 단 것처럼 난 알아 보기만 해도 게다가 우리 둘은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고

 

소설은 꿈만큼이나 생생한데 계속 이어집니다

 

같은 책을 읽었다는 것은 두 사람의 자아 안에 공유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소설이 우리에게 삶의 평범한 세부 사항 환상 일상의 습관과 사물을 보여줄수록 우리는 호기심을 갖고 경탄에

사로잡혀 읽어나가게 됩니다 이것들이 배후에 숨어 있는 어떤 의미 어떤 의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마담 보바리는 흔하디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람난 유부녀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플로베르는 왜 이런

뻔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까요

내가 볼 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바로 무에 관한 한 권의 책

외부 세계와의 접착점이 없는 한  권의 책이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플로베르가 우리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중-

 

플로베르는 중심부가 아니라 독자가 중심부에 다다르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만약 플로베르에게서 현대소설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바로 이 때문일 겁니다

그는 주제와 교훈을 강조하는 소설들은 낡은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클리셰로 가득한 소설은 안전한 세계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작가가 새로운 스타일과 참신한 표현으로 제시하면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현실과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 때로는 현실보다 더 두렵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어떤 주제나 교훈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감춰진 중심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도

아닙니다 소설을 읽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헤매기 위해서일 겁니다 소설은 세밀하게 설계된

정신의 미로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독서란 한 편의 소설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가가

만들어놓은 정신의 미로에서 기분좋게 헤매는 경험입니다 아 왠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 재미있어

인물들은 생생하고 사건들은 흥미롭고 읽는 내내 정말 흥분되더군 주인공은 지난밤 꿈에도 나왔어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은 것은 고유한 헤맴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교환이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읽으면 하나의 얇은 세계가 우리

내면에 겹쳐집니다 저는 인간의 내면이란 크레페 케이크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세계 위에 독서와 같은 정신적 경험들이 차곡차곡 겹을 이루며 쌓이면서 개개인마다 고유한 내면을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양말 한 짝만 신고 서 있을 때 키가 4피트 10인치인 그녀는 로 그냥 로였다 슬랙스 차림일 때는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의 이름은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에 안길 때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나보코프는 두번째 단락부터 바로 독자들을 도발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순간 독자는 밀란쿤데라가

소설은 도덕적 판단이 중지된 땅 이라고 정의한 바로 그 의미를 실감하게 됩니다

 

어떤 책들은 독자와 힘겨루기를 합니다 그 책들을 읽고 나면 독자의 자아는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위대한 작품들은 자아의 일부를 대가로 지불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는 소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접근하고 그것으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고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음으로써 그 어떤 분명한 유익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소설을 읽은 사람으로 변할 뿐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말

소설은 두번째 삶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너는 괴물이다 반성하라 고 직설적으로 외치지 않고 괴물의 내면을 이야기라는

당의정으로 감싸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시각으로 괴물을

직시하도록 만들어줍니다 우리는 그렇게까지 심각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에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는 아무도 단언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언제나 잘 모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