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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 서경식

by librovely 2020. 8. 27.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서경식                             2018                        반비

 

책을 아예 안 읽은 건 아닌데 노트북 못 켜는 병에 걸려서 글을 못 쓰고 있었다.... 이제 정말 열심히 써야지....

라고 매일 다짐만 함...아침에는 오늘부터...밤에는 내일부터...이런 식으로 ㅋㅋㅋ

 

이 책은 3주 전인가 읽었던 책 그 당시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어떤 사실 자체가 괴로움을 유발했다기 보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 결국 이젠 받아들임

나 자신에 대한 건 아니었지만 하여튼 인정하고 싶지 않고 못본척하고 싶었던 걸 결국 인정해야하는 게

쉽지 않았음   남을 속이는 것과 비교도 안 되게 힘든 건 스스로를 속이는 것 여태 속이다가 이젠 망 ㅋㅋ

 

하여튼 구질구질 더러운 기분이 한 1-2일 정도  유지되었을 때 집어들었던 책인데 생각과 다르게 내용이

많이 위안이 되었다 카르바조의 힘들고 비참한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 왜 위안을 받은걸까 

아마 마냥 밝은 내용의 책이었다면 좀 읽다가 이내 집중을 못하고 놓아버렸을텐데 

저자도 자신의 속에 매우 어두운 것이 있고 그걸 소설로라도 끄집어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도 뭔가 위안이 됨 나도 그러하니까 밖으로 보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난 상당히 어두운 사람이다

그럼 밝은 사람들이 부럽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 사람들은 뭔가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ㅋㅋ

사실 다들 알고보면 깊은 곳엔 매우 어두운 것이 있을거다 그걸 인정하느냐 아니면 모른척하느냐 차이가

아닐까 

 

저자는 재일교포 형 2명이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하여튼 억울하게 옥살이 중이었고 그 상황에서 부모님은

3년 차를 두고 같은 병으로 돌아가셨고 저자는 아마도 마음 잡기가 어려워 유럽 여행을 떠나서 어두운

것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보러 다닌다 이탈리아도 그 중 하나였을거고 그 뒤로 이탈리아에 안 가다가

다시 갔고 그 때의 기억으로 쓴 글인 모양이다 이탈리아에 다시 가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는 아마도 

부모님 생각 특히 어머니 생각이 심하게 나리라 생각되어서...혹은 돌아가신 후 했던 여행 기간의 힘듦이

다시 떠올리기 싫어서? 하여튼 이젠 여행 동행도 생겼고 좋은 직장도 있고 좋아하는 일인 글을 쓰는 작가

가 되기도 했고 그런 밖으로 보기에는 사뭇 안정된 행복한 상황에서 다시 이탈리아를 찾게 된...

 

이런 상황이 저자는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 이전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예상이 되는 대목... 다시 작품을 보면서 부모님의 나이를 넘어선 자신이 다시 이탈리아를 찾은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형이 모두 옥살이를 하는 중에 부모님의 죽음을 만난 것에 대한 깊은 슬픔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그냥 돌아가셔도 쉽지 않은 일인데 부모님에게 한이 될 상황인 상태로

돌아가셨으니 그 안타까움이 얼마나 심할까 그런 힘듦은 해결이 안 되는 것..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힘듦이겠지 

 

읽어봤던 여행기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색의 책이었다

내용에 등장한 미술 작품이나 예술가 이야기도 인상적이고....

모딜리아니와 잔 이야기도 나오는데 며칠 전 ebs에서 모딜리아니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지나가며 잠깐

봤었는데 그때 본 내용에 의하면 모딜리아니가 죽은 후 잔의 불안정함을 알고 오빠가 옆에 붙어서 

지켰는데 잠시 잠든 사이 6층에서 임신한 상태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한다 그걸 놓고 불멸의 사랑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맞는걸까 그 사람 없이 삶의 의미를 아예 잃어버리는 게 정상적인 관계인걸까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 본 내용 중 새로운 건 모딜리아니가 술을 엄청 마셨다는 것 음 별로다 별로야 그건

 

이탈리아에는 한 번 가봤는데... 저자도 괴롭힌 그들(집시?)이 너무 힘들게 해서 다시 갈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았는데 만약 다시 가게 된다면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저자는 어머니의 죽음 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고 그 후로 좀처럼 그 곳에 다시 가지 않게 되었는데

나도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엄마랑 함께 여행갔던 그 곳은 아마도 엄마가 곁에 없게 되면 못가게 될 것

같다는 생각... 생각나서 거길 어떻게 가....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표현된 책의 최고는 롤랑바르트의 애도일기일 것이다

그 다음은 이 책

이 책에 그런 내용이 많이 나온 건 아니지만 몇 구절로 충분히 드러났다

 

좋은 책이다

 

 

 

 

 

 

 

 

언제나 혼자서 여행을 떠났지만 15년 정도 전부터는 F라는 동행도 생겼다

나 개인에 관해서만 말하자면 1990년대 이후로는 점점 불만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평안을 찾지 못한다 내가 이런 안정을 얻은 것은 단순한 우연과 

행운의 덕이라는 의식 과거 언젠가의 시점에서 가혹하고 무참한 운명 속으로 떠밀렸더라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 

레비식으로 말하자면 좀 더 어울리는 다른 누군가를 대신해 내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사라지지 않는다

 

피곤하네...

저런 사람들을 말끔히 정리해버린 것이 나치였어 독일 국민 대다수도 나치가 거리를 청소해줬다라며

그런 난폭한 해결책을 환영했고 그 결과가 바로 홀로코스트로 이어졌지

그러네 성가시긴 하지만 저런 사람들의 존재가 용인된다는 것만 봐도 이탈리아는 느슨하고 살기에

팍팍하지 않은 사회일지도 몰라 

그렇지 신경 쓰이고 피곤한 것은 피할 수 없는 대가라고나 할까

그날 나와 F 사이에 오간 대화다

로마 체류 중에 계속 이러한 종류의 피곤함이 따라다녔다

보그게세 공원 근처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에 와서 영수증을 확인했더니

주문도 하지 않고 먹은 적도 없는 샴페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아직 페스트의 유행이 끝나지 않아 밀라노에서만

1만 7000여 명이 교외에서도 70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1576년에 밀라노를 떠나

이주했지만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같은 날 할아버지와 숙부도 페스트로 죽었다

카라바조가 아직 여섯 살이던 무렵이었다

데즈먼드 수어드는 카라바조의 인생에서 죽음은 너무나도 빨리 현실로 다가왔다

카라바조라는 인물은 페스트로 인해 형성된 셈이다 라고 했다

1584년에는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그때부터 카라바조는 밀라노의 화가 시모네

페테르차노 밑으로 들어가 4년간 도제수업을 받았지만 1592년 중반에 아마도

폭력 사건에 휘말려 관리에게 상해를 입힌 후 로마로 달아났다 겨우 입고 있던

옷만 걸친 채 갈 곳도 먹을 것도 없는 무일푼 상태였다고 한다(로마로 감)

 

데즈먼드 수어드는 당시 로마에 대해 이렇게 썼다

축제 기간 중 로마는 활기로 가득했다

가련한 노인과 유대인의 경주도 열렸다 그들은 벌거벗은 채 달려야 했고 온갖 오물을

덮어쓰고 조롱을 당했다 사순절의 성 목요일 밤에는 수천 명이나 되는 신자들이 

횃불을 들고 성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줄지어 걸었다 무리 중에는 피가 날 때까지

자신의 등에 채찍질을 하는 500명의 수도사도 있었다

가장 빈번하게 펼쳐진 오락은 공개 처형이었다 부모들은 그 광경을 보여주러 

아이들을 데리고 나섰다 때로는 이단자가 남색에 빠진 자와 마찬가지로 화형을

당하기도 했다 카라바조는 산탄젤로 다리와 도시의 성문 위에서 참수당해 썩어가는

머리를 수도 없이 보았음이 틀림없다

 

기근이 없었을 때조차 길 위에는 수많은 걸인과 고아들이 굶주린 배를 안고 앉아 뒹굴었다

수많은 매춘부들이 퍼트린 성병도 유행했으며 도로에는 사람들의 배설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데즈먼드 수어드

게다가 로마는 16세기의 기준에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한 도시였다

만약 카라바조가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인간이었다면 그렇게 된 데는 이 도시의 

폭력성과 야만스러움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지도 모른다

 

수어드의 서술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몽테뉴의 저서 <몽테뉴의 여행 일기>를

바탕으로 삼았음에 틀림없다

 

1980년과 1983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유럽 여행에

나섰지만 지금 나는 그때의 부모님 나이를 넘고 말았다 

60세가 지나 다시 이 그림 앞에 서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나 자신이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에 갇혀 있고 출구는 어디에도 없다고 느꼈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나 오랜 역사를 거치고 이토록 수많은 잔혹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관한다

 

1943년 10월 16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유대인 일제 체포가

시작됐다 이때 구속된 사람의 수는 1022명 그중에는 비유대인 여성 한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돌보던 몸이 자유롭지 못한 유대인 고아와 운명을 함께했던 것이다

이틀 후 포로들은 가축 운반용 수레 열여덟 대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압송됐다

물도 음식도 허용되지 않았던 가혹한 이송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고 시체는 

이송 도중 정차장에 차례차례 버려졌다 1022명 가운데 전쟁이 끝난 후 살아서 돌아온 자는

열다섯 명이었다고 한다 고대도 중세도 아닌 그리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옛 유대인의 거리에서 달콤한 과자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내 머릿속은 처참한 이미지로

가득 찼다 카라바조가 그렸던 세계와 겹쳐진다

 

미술학교에서 알게 된 잔 에뷔테른과 동거를 시작한 것은 1917년부터였다 이듬해 요양을 위해

니스로 떠났고 11월 29일에 장녀 잔이 태어난다 딸은 나중에 미술사 연구자가 되어 아버지의

평전을 집필한다 모딜리아니는 1919년 7월에 잔 에뷔테른과 정식으로 결혼하겠다는 서약을

했지만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채 1920년 1월 24일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리운 이탈리아! 였다

잔 에뷔테른 역시 모딜리아니가 죽고 난 이틀 후 자택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임신 9개월을 몸이어다고 한다

 

시인 프란시스 카를로 - 모딜리아니에 대해 쓴 글

빈곤과 고생 부정으로 인한 진부함에서 도피하고 초월하려는 바람 죄에 대한 갈망

주도면밀한 무리들에게 비웃음의 씨앗이 되는 것조차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

그리고 이런 태도로 일관한 평생 그런 것이 바로 예술가의 삶 

건곤일척의 생애다

 

잔의 가족이 유대인과의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죽은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함께 잠들 수 있었다.

잔의 비석에는 모든 것을 바친 헌신적인 반려 라는 말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샤임 수틴 <미친 여자>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수틴은 과묵하고 고독하며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굳어져 사교적인 면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남자였다 

 

여행을 시작할 무렵부터 집요하게 뇌리에서 떠나지 않던 어두운 생각이 다시 솟아 올랐다

가능하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긴 소설로 풀어내고 싶다 목숨이 다하기 전에 그 검은 것들을

토해내고 싶다 

 

어머니는 1980년에 돌아가셨다 60세의 나이였다 

한국의 감옥에 갇힌 아들 둘을 두고 석방의 희망도 갖지 못한 채 비참한 병으로 죽어갔다

출혈이 심해 점점 체온이 떨어져가던 어머니의 귀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 아침까지 참아야 돼 아침이 되면 편해질거야

그러자 이미 의식이 없는 듯했던 어머니는 희미하게 눈을 뜨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까지? 아직 멀었잖아 

겉치레로 아무렇게나 말하지 마 그런 의미였을까 몇 시간 후 차가워진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3년 후 아버지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유럽 각지를

돌며 잔혹한 도상과 그림들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어느덧 길게도 한순간처럼 짧게도

생각되던 그런 세월이 흘러버린 후 형들은 석방되었고 나는 글쟁이가 되어 책을 내고

대학에 자리를 얻어 그럭저럭 무난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상황에

대해 진실은 이렇지 않아 이럴 리는 없어 라는 감각이 떠나지 않는다 

부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나이도 훌쩍 넘겨버린 지금 과연 나 자신의 인생을 이대로

괜찮은걸까 이 생각은 언제까지나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꿈일지언정 오랜만에 어머니와 만났다 그 꿈은 어머니가 저 세상에서 내려와 나에게

경고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네가 쓰고자 하는 소설에는 아직 번지르르한 

겉치레나 자기 보신적인 속임수가 있다고 진실은 더욱 더욱 어두운 것이라고

 

조르조 모란디

모란디의 작품은 매우 구체적인 사물을 끊임없이 그려냄으로써 성립하는 비대상 회화

요컨대 구상에 철저한 추상

 

 

밀라노

노베첸토 미술관(두오모 광장에 있는)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 <제4계급>

교회 / 귀족/ 부르주아 / 노동자

노동자의 각성을 그린 작품

아내의 죽음 이후 40세에 목을 매 자살

 

프리모 레비

그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그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 사람들에게 자행한 일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향해 똑같이

벌이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어요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소설 <가족어 사전>

내 인생을 통틀어 재미있었던 소설을 열 권 들어보라고 한다면 반드시 포함될 작품이다

 

파리 루브르 미술관  미켈란젤로 <반항하는 노예>

마음에는 뭐라고 이름 지을 수 없는 광풍이 휘몰아쳐서 도저히 진정할 줄을 모른다

어느새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되었다 이제 노년에 가까워지는 자의 눈길로 미켈란젤로를

마주했을 때 무언가 다른 것이 보일까 이번 여행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여행 초반부터 로마에서 시스티나 성당을 방문하고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서

<피에타>를 대면한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