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사랑의 단상 - 롤랑 바르트

by librovely 2009. 12. 18.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동문선



단상 : 생각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
그렇다면 이 책은 사랑에 대하여 생각하는 대로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모아놓은 것이겠구나
맞다...그런 책이다



롤랑 바르트가 요즘 내 머리속에 들어온 이유를 말하자면 또 어쩔 수 없이 진중권을 언급해야겠지만...
이 책은 꼭 그래서 읽게 된 건 아니다...2년 전이던가 도서관에서 대출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며 책을 잡았던 기억이...
어떻게 그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책이 꽂혀있던 자리까지 정확히 기억이 났고
그래서 그 자리에 가서 다시 뽑아 훑어보니 이번에는 읽을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예전에 어디에선가 책제목을
듣고는 빌리러 갔던 것이고 아마 펼쳐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짤막짤막 나뉜 글들이 그다지 매력적
이지는 않았던듯...



하여튼 읽게 되었는데...
아....재미있다.....예리하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것....남녀가 끌리는 건 참 신기하다....황당할 지경....
말도 안되는 감정들...사랑에 빠진 인간들이 휩싸이게 되는 요상한 감정의 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모양이다
인간이라는 종이 짝짓기?를 안해서 멸종될 일은 절대 생기지 않도록 신이 아주 잘 만들어 놓으셨다.....ㅡㅡ;;



책을 읽고나서....나의 사랑의 단상을 하나 적어보자면...
이성이 마음에 들어오면 이성은 잠시 외출한다...(이러면 동성애자 무시 발언이 되나...)
그래서 사랑 어쩌고 하는 책을 내가 좋아하나보다...재밌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정신나간 이야기들이니 말이다....



롤랑 바르트가 이 책의 내용을 대학 강의 때 다루었다고 하던데...아니 이 말은 선후가 바뀐 것이고...
대학 강의 시간에 다룬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고 해야 될 듯...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아는 작가의 글들을 인용해가며
설명...여러 작가들의 글이 인용되지만 대부분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책은 작년에 읽었었는데....
독후감을 못 쓴 이유는 20쪽인가? 하여튼 좀 남기고 읽기를 그만 두었기 때문에...왜 그랬지?



하여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으면서 사실 너무 뻔하고 전형적인지라 약간 실망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만나니 문장 하나 하나가 참 '예술'이라는 식상해서 미치겠을 표현이 떠올랐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입는 그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주기에 더 수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특수한 상황은 제거하고 모든 사랑의 과정에서 거치게 될 것들을 정제해서 다뤄주었기에?? 아니 이건 좀 과장....
사실 지금은 그 책의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다시 읽어봐야겠다....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와 좀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문체나 형식은 완전히 다르지만...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고찰?하는 것이 뭔가 비슷....
책에 워낙 주옥같은 문장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고백할 때 써먹으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너를 좋아해...우리 사귀자...이런 식상한 표현 말고...나라면 이 책에서 몇 개 발췌해서 고백하겠다....



사랑에 관한 철학?책 중...어떤 책이 가장 좋았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다양한 사랑의 관계에 대해 다소 이성적으로 다룬다면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은 이성간 사랑의 감정 자체에 대해 다룬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왠지 마음이 허하다....
나에게 '사랑'이라는 건 겪으면서 느끼는 대상이 아니라 책을 통해 배우는 대상일 뿐이라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얘기하는 사람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냥 내게로 떨어진다
그러면 나는 분해되는 게 아니라 용해되어진다
넘어지고 가라앉고 녹여진다



추락은 최면의 한순간이다
어떤 암시가 나를 죽이지 않고 기절하게끔 명령한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다



항상 현존하는 나는 끊임없이 부재하는 너 앞에서만 성립된다



나는 부재하는 이에게 그의 부재에 관한 담론을 끝없이 늘어놓는다
이것은 요컨대 놀라운 상황이다
그 사람은 지시물로는 부재하지만 대화 상대로는 현존한다
이 이상한 뒤틀림으로부터 일종의 감당하기 어려운 현재가 생겨난다
나는 지시의 시간과 담화의 시간 사이에 처박혀 꼼짝 못한다
당신은 떠났고 또 당신은 여기에 있다



그 사람의 부재는 내 머리를 물속에 붙들고 있다
점차 나는 숨이 막혀가고 공기는 희박해진다
이 숨막힘에 의해 나는 내 진실을 재구성하고 사랑의 다루기 힘든 것을 준비한다



근사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 대한 자신의 욕망의 특이함을 이름짓지 못하여
조금은 바보같은 이 "근사해!"라는 말에 귀착한다



어떤 괴상한 논리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 인지한다
동시에 이 전체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여분의 것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의 전부가 미학적 영상을 산출한다
그는 그 사람이 완벽하다는 사실에 찬미하며 또 그렇게 완벽한 사람을 선택한 자신을 찬미한다



일생을 통해 나는 수백만의 육체와 만나며 그 중에서 수백 개의 육체를 욕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수백 개의 육체 중에서 나는 단지 하나만을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욕망의 특이함을 보여준다
그 선택은 그렇게도 엄격하기에 유일한 것만을 취하며 바로 이 점이 분석적 전이와 사랑의 전이의 다른 점
전자가 보편적이라면 후자는 특이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 중 내 욕망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필요했던가!



아토포스 : 예측할 수 없는, 끊임없는 독창성으로 인해 분류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매혹하는 그 사람은 아포토스이다
나는 그를 분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내 욕망의 특이함에 기적적으로 부응하러 온 유일한 독특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감추기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에게 그의 사랑을 고백해야 할지 어떤지를 자문하는 게 아니라
정념의 혼란을 어느 정도로 감추어야 할 지를 자문한다
그의 욕망, 절망, 간단히 말해 그의 지나침을



나는 이중의 담론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수 없다
내 정념의 서정적 진술에 자신을 내맡기는 게 정당화하는 일이 아닐까
지나침 광기 그것이 내 진실이며 힘이 아닐까 그리고 이 진실 이 힘이 결국에 가서는 그를 감동시키는 게 아닐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정념의 기호들이 그를 질식시킬지도 몰라라고 나는 중얼거린다
바로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감춰야만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성인이나 괴물이 되도록 선고받았다
하지만 성인은 될 수 없고 괴물이 되기는 원치 않는다
그리하여 나는 얼버무린다
나는 내 정념을 조금만 보여준다




내가 내 언어로 감추는 것을 몸은 말해 버린다
메시지는 조종할 수 있지만 목소리는 그럴 수 없다
내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든간에 그 사람은 내 목소리에서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내 처신의 고뇌는 하찮은 것이다
그것은 더욱 더 하찮아 끝이 없다
만약 그 사람이 무심코 이런저런 시간에 그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곳의 전화번호를 주었다면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된다
결과론적인 것은 사실의 범주가 아닌 해석해야만 하는 기호로 받아들여진다
그 사람이 내게 전화번호를 주었다면 그건 무엇의 기호였을까?
지금 곧 전화해보라는 것일까 아니면 필요에 의해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라는 것이었을까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이미지들의 소란스런 교차가 폭발한다
모든 것은 의미한다라는 명제가 나를 사로잡아 계산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할 뿐 즐기지 못한다
때때로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 때문에 심사숙고 하다보면 기진맥진해진다



언어는 살갗이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언어로 문지른다
마치 손가락 대신에 말이란 걸 갖고 있다는 듯이
내 언어는 욕망으로 전율한다
모든 담론 행위가 나는 너를 욕망한다란 유일한 시니피에를 은밀히 간접적으로 가리키면서



선물은 접촉이며 관능적인 것이다
당신은 내가 만졌던 것을 만질 것이며 이렇게 하여 제삼의 피부가 우리를 결합시킨다



사랑의 삶의 사건이란 너무도 하찮은 것이라서 노력을 하지 않고는 글쓰기로 옮겨질 수 없다
'씌어지면서' 자신의 진부함을 드러내는 것을 쓰다보면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나는 Y와 함께 있는 X를 만났다
오늘 X는 전화하지 않았다
X는 기분이 좋지 않다 등등
누가 이것을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인가?
하찮은 사건은 거대한 울림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내 울림의 일기
누가 그걸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사람만이 내 소설을 쓸 수 있으리



충족되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자살하지도 않는 내게 있어 사랑의 방황은 숙명적이다



축제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의 모든 만남을 축제로 경험한다
축제란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와 약속된 현존으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것은 어떤 엄청난 즐거움의 총체요 향연이다
생의 가장 순수한 기쁨



광인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미쳤거나 미쳐 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힌다



나는 모든 사랑의 망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내가 차지할 지도 모르는 그 자리를 식별해 본다
그 때 내가 인지하는 것은 유추가 아닌 상동이다
이를테면 Y가 Z에게 그 무엇이라면
나 또한 X에 대해 마찬가지며
따라서 비록 Y가 나와는 무관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사람들이 Y에 대해 말하는 것은 모두 내 가슴 깊숙이 와닿는다



나는 로테가 내게 속해있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라고 베르테르의 이성은 말하고
하지만 그래도 알베르트는 내게서 그녀를 훔쳐간거야 라고 눈앞의 이미지는 말한다
내가 제외된 이미지들은 모두 잔인하다



나는 이런 모순에 사로잡힌다
나는 그 사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그에게 그 사실을 의기양양하게 시위한다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도 찾아낼 수도 다룰 수도 없다는 명백한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는 어디서 온 사람일까? 그는 누구일까? 나는 기진맥진해진다 나는 그것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대상 때문에 자신을 소모하고 동분서주하는 것은 순전히 종교적인 행위이다
그 사람을 하나의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만든다는 것은-거기에 내 일생이 걸려 있는-
곧 그를 신으로 축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사랑하면 할수록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미지의 누군가를 그리고 영원히 그렇게 남아 있을 누군가를 열광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신비주의자적인 움직임 : 나는 알 수 없는 것의 앎에 도달한다



사랑을 받게 될 몸은 그것에 가까이 접근시키고 확대하여 주체로 하여금 코를 갖다대게 하는 일종의 줌 효과를
내는 카메라 렌즈에 의해 미리 포착되고 조정된다
그것은 어떤 능숙한 손길이 내 앞에서 어른거리게 하다 나를 최면시키고 사로잡는 그런 반짝이는 물건이 아닐까?



난 널 사랑해
이 말은 항상 진실이다
발화 이외에 어떤 다른 지시물도 갖지 않는 수행어
문장이 아니다 일문일어의 문장
수없이 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난 널 사랑해는 사전 밖에 있다
그것은 그 정의가 명칭을 초과할 수 없는 그런 말이다


난 널 사랑해
저도 그래요 는 완전한 대답이 아니다



당신을 잠시 본 순간부터 나는 더 이상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내 혀는 부서지고 내 살갗 밑으로는 어떤 미세한 불길이 스며들어 내 눈은 보지도 못하고 내 귀는 윙윙거리며
온통 땀으로 적셔진 내 몸은 갑작스런 전율에 사로잡혔어요 나는 풀잎보다 더 파랗게 되어 곧 죽을 것만 같았어요



내가 아가톤을 포옹했을 때 내 영혼이 입술 위로 다가왔다네
마치 그 불쌍한 영혼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것처럼
이처럼 사랑의 우수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끝없이 사라진다
마치 욕망이 이런 출혈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 사랑의 피로가 있다
그것은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내 모든 자아가 대신 자리를 차지한 사랑의 대상에게로 끌려가며 이전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은 착란을 일으킨다
그의 착란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랑의 삶을 통한 사건들의 짜임이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하찮은 것이어서
이 하찮음이 가장 진지한 것과 연결되면 그야말로 파렴치한 것이 된다
오지 않는 전화로 때문에 진지하게 자살 생각을 한다면
마치 사드의 작품에서 교황이 칠면조를 수간할 때와 같은 그런 엄청난 외설이 생겨나는 것이다



내 고통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 나는 눈물을 흘린다
말 그것은 무엇인가 한 방울의 눈물도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얘기하리라



사랑하는 사람은 왜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가를 집요하게 자문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하는 이가 자기를 사랑하면서도 다만 말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믿음 속에 살아간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가 당신은 날 사랑해요가 된다



만남의 순간마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한다
당신 이거 좋아하세요? 어쩜 저도 그런데요! 저건 좋아하지 않나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등등
만남은 사랑하는 사람 위에 초자연적인 우연이라는 도취감을 투사한다



자살
사랑의 영역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자살의 충동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그 사람을 그의 자질이 아닌 그의 실존에 의해 사랑한다
나는 그의 사람됨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임을 사랑한다



그사람은 내 재산이자 내 지식이다
나만이 그를 알고 있으며 나만이 그를 진실속에 존재케 한다
내가 아닌 그 누구도 그를 알지 못한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만 나는 내 자신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