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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사물들 - 조르주 페렉

by librovely 2013. 5. 5.

 

사물들                                                                         조르주 페렉     1965              펭귄클래식

 

읽은 지 한 달도 더 된 책이다

바쁘고 뭔가 불공평하고 또 그런 것에 대해 속 터놓을 사람도 없는 곳에 처박혀 답답한 생활을 이어가던 때에

(물론 지금도 뭔가 많이 바뀐 건 아니지만) 퇴근 후 이 책을 읽으면 책에 몰입하는 동안 시궁창같은 처지가 생각

나지 않아서 그래서 더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뭔가 깨달음을 얻어보겠어 혹은 재미를 느껴봐야지...의 목적이

아니라 그냥 단지 읽는 동안 짜증나는 것들이 머리 속에서 맴도는 것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음에 의미를

두고 읽어대서 그런지 다 읽고 나서도 무언가가 어렴풋했다...

 

제목이 사물들

이 책을 뽑아 대출받은 이유는 별 거 없다 단지 얇아서... 난 소설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는 것

같고 뭔가 긴 책은 부담스러웠다...어찌된 머리인지 긴 책을 읽다보면 앞의 스토리가 생각이 잘 나지 않는...

하여튼 얇다는 것...그리고 요즘 소설 그러니까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책도 고전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이런 책에 손이 가는 이유는...내가 불안하기 때문인 것 같다...불안함 유발에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어쨌든

고전을 읽으면 좀 길이 보일까 해서...주인공들의 다양한 인생을 구경하다보면 나답게 혹은 제대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하는...물론 답이 있다 해도 난 그렇게 못 할 것이지만..더 늦기 전에...

뭔가 인생관? 하여튼 뭔가가 좀 그려져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물론 밖에서는 최대한 난 전혀 불안하지 않고 별 일 없이 산다 모드로 지내지만 어쨌든 속은 뒤엉켜 있고 그게

나이가 들수록 풀리는 게 아니라 더 너저분해지고 있고...아마도 남은 삶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도 한 몫을

할 것이다... 40여년을 아무 생각 없이 살았으니 이젠 좀 중심을 잡고 싶다? 는 건 사실 다 헛소리...

그냥 뽑아서 대출 받은거다....

 

사물들

물건

물신

물질 만능 주의

내가 가진 것이 나를 말해준다...

가진 것 뿐만 아니라 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나를 말해준다...?

 

 

1960년대에 쓰여진 책이지만 꼭 요즘 시대의 소설 같다...그러니까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말...외려 소설에서

다루는 그것이 더 강화되었지...그 쪽으로 가고 있는 거구나...그래서 지금은 아마도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보다

더 심해진 것 같고...

 

읽은 지 오래 되어 기억이 잘 안나지만...젊은 커플은 그야말로 트렌디한 라이프를 꿈꾼다...

문화적이고 소비적이고 교양있고 여유로운...

첫 부분에 나열된 글은...읽으면서 행복했다...내가 꿈꾸는 삶도 그런거였나? 나만 그런 건 아닐걸..대부분이 그럴걸

간단하면서도 예쁜 아침 식사로 하루를 열고 신문을 보며 담배를 피고 점심 때는 외식...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퇴근 후에는 지인을 만나 대화하거나 산책을 하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모든 부분에 부족함이 없이 조화로운 삶...

흔히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윤택하고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으며 교양있는 그런 삶...

 

그런 게 가능하려면 부유해야 했다..어느 정도의 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거기부터 젊은 커플을 삐그덕대기 시작

그들의 이상과 현실은 전혀 맞지 않았고 돈에 의해 궁색해지기 일수였고 나중에는 싸움의 원인도 물질이었고...

변변한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고...그 와중에 전쟁이 났었나? 그 후 그들은 그냥 반복되는 일상에 찌들어갔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여행을 떠나며 끝이 났었나? 그 여행도 그리 흡족하지는 않으리라는 암시로 끝이 났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돈... 돈이 꼭 그렇게 삶을 좌우하는 건 아니지 않냐...책에 나온 그 트렌디한 라이프 스타일(이런 건 영어로 해야 제맛)

에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느냐.... 물론 산책 따위나 간단한 아침 식사에 큰 돈이 필요한 건 아니겠지...

하지만 돈 문제에 얽매인 경우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드니...싸움의 원인도 돈이었고...물론 돈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능력자 커플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나 대개의 평범한 인간들은 그런 능력이 없는거고 거기에서

비극이 시작되는 거겠지... 그들의 문화 생활에도 어김없이 돈이 필요하고 다양한 지인들도 일단 돈과 직업과 학력등이

있어야 유지되는 게 아니겠는가...아니라고? 자기 주변을 둘러보자...다 나와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기에 지인으로 존재

하는 것이지...

 

내가 만약 가진 것을 잃는다면 그래도 내 곁에 있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건 좀 나에게는 괜찮은 질문이군...

가진 게 별게 없으니 잃을 사람도 없는거구나...연예인들이...우울증에 잘 걸리고 힘들어하는 것이 매스컴에

종종 나오는데...그들은 이런 점에서 더 취약한거지...일단 사람들의 관심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거고...

그들은 유명세라는 것이 커서 그 점에 매력을 느껴 곁에 맴도는 지인도 꽤나 있을거고...그래서 나중에 상실감을

느낄 일도 많을거고...아닌가...아님 말고...

 

하여튼 이 책은 현대인들이 꿈꾸는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상 소유하기에는 쉽지 않은 삶의 방식을 나열해주고

그걸 소유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 젊은 커플을 보여주어 내 현실 꼬라지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책이다...제 아무리 내가 발버둥을 쳐도 난 이 직업 정도에서 맴돌 것이고 돈에서 자유를 얻지는 못할 것이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도 없을 것이고(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게 아니라 일단은 가격부터 확인할테고 아무런 계산 없이 누군가를 대하지 않고 소유 면에

서 비교해가며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고 그럴테지...교통도 좋지 않은 넓지도 않은  집에서 궁핍함을 느끼며 살아갈

것이고...

 

사실 저건 익히 알고 있던거다...난 잘 알고 있다...남자들이 욕하는 그...여자들이 혼테크로 신분 상승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력 상승을 노리는 경우도 있던데 난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결혼도 다 끼리끼리지...(어디 못배우고

못 버는 남자 없나요??) 그리고 가난한 가정환경에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또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건 쉽징 않다는

사실...경제적 되물림...하여튼 저런 현실을 보여주고...저런 현실이 비극처럼 존재하게 만든 현대의 이상한 사고

방식에 대해서도 꼬집어 준다...아프군...누구나 부자가 될 것만 같다는 기대감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행복의

길처럼 느껴지게 만들고 많이 소유하는 게 그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 같고...사물들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판가름나는 것처럼 느끼며 사는 사람들의 문제...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새로 나온 책이나 영화에 대해 혹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고...그저 돈과 소유에 대한 것에만 열을 올릴 뿐이라고...사실 책이나 영화에 대해 뭔가

인간적인 예술적인 것에 대해 관심갖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큰 돈이 없어도 가능한 것이다...다만 그럴 생각이 없는 게

문제인 거겠지... 이런 글을 써대는 나도...가난한 내 중심에도 소유 혹은 물질이 자리잡고 있으니...

 

얼마 전에 우연하게 본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어떤 여자는 럭셔리 브랜드 소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뭐냐고 하자 멋지게 차려 입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람들의 대우가 다르다고...여기서 사람들이란

상점의 점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사실 나도 그런 대접 받은 일 종종 있다...아니 대부분 그런가?

얼굴도 못생긴데다가 행색도 추리한 나는 백화점이나 면세점에 가면 직원의 환영을 전혀 받지 못한다...ㅎㅎ

누군가와 같이 가면 그나마 나은데 혼자 간 경우 심히 느낀다... 작년에 면세점에 시계를 사러 갔었는데...

다른 여자에게는 찰싹 달라붙어 그렇게 설명을 해대는데 나에게는 관심도 없고 보여달라고 겨우 겨우 불러야만

보여줌...좀 민망한 건 그 시계 파는 곳의 시계들이 그렇게까지 비싼 것들도 아니었다는 것...흠...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에 나온 여자가 말했듯 위아래로 훑어보고 아니다 싶은 경우 요상한 표정을 짓는다고도

하던데 그것도 느껴본 바 당연히 있다(자랑이다... ㅡㅡ;) 그런 경우 난 똑같이 위아래로 훑고 더 세게 노려봐주는데

솔직히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난 그냥 살 물건 잘 사면 되는거고...그 직원들이 날 그렇게 보건 말건 뭔 상관...모드

사실 시계 한 번 차 보기가 쉽지 않았던 그 날에는 좀 힘들긴 했다..쓰다보니 또 생각나네...뭔가를 면세점에서 샀었는데

직원이 나에게 그렇게도 수차례 반복했던 말...면세품을 찾아가지 않으면 자동 환불되고 시간이 얼마 걸린다나 어쩌고

난 환불할 생각 없다고 이 점원님아...그 때 같이 갔던 동행인도 그게 참 의아했다고 했다...내가 사는 척하고 안 찾아서

환불처리되게 만들 사람으로 딱 그렇게 보였구나...이런 대접을 받고도 속으로 낄낄대는 내가 바보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난 그냥 그랬는데 그 다큐멘터리 여자는 그런 대접들이 아주 속상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말 그녀가 직접 실험을 해 보였다...옷차림을 다르게 하자 평범한 의상인 경우 직원이 쳐다도 안 보는...ㅋㅋ

그리고 비싼 걸 걸치고 가니 따라다니며 설명해주고 친절하고 웃고...음...다큐멘터리에서도 짚어주는 사실이...

그 두 가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 그게 점원들이기 때문이라는...외려 사치스런 옷차림인 경우 지나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 사람의 도덕성이나 성실성 이타심 등이 어떠할 거 같냐고 했을 때 나쁜 대답이 나왔다...단지 긍정적인

면은 그녀가 연봉이 다소 높으리라는 것 하나...그렇구나...

 

그렇다면 사치스러운 옷차림과 좋은 가방이 도움이 되는 건 그 사람을 소비자로 대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거였다...

상점이나 레스토랑?  일반인들은 그냥 그런거지...그런데 이 두 경우 모두 큰 상관이 있을까? 어차피 본인에게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는 사람들이잖아...물론 서비스를 나쁘게 받는 건 불쾌하겠지만 단지 그 이유로 고가의 무언

가를 구입한다는 건 미련한 짓이고... 그럼 지인들...친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까? 이건 잘 모르겠네...

난 고가의 가방을 든 누군가를 보면 어땠지? 좋겠다...예쁘네...이 정도? 싸고 별로인 가방은? 싸네...안 예쁘네...

싸고 예쁜 건? 싸고 예쁘네..끗~ 이게 뭐야... 즉 가방이건 구두건 옷이건...정말 예쁘고 갖고 싶고 자신의 내면과

너무 잘 맞아 사고 싶은 경우에는 차라리 그럴만하지만 남의 눈 때문이라면 좀 바보짓인 것 같고...

근데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의 눈에 의한 것을 꼭 내 눈에 의한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기 마련이니까...

애매하구나...

 

 

사실 애매하다...

행복의 기준...

좋은 그릇에 예쁘게 차나 음식을 담아서 먹고 좋은 침대에 예쁜 침대커버를 씌우고 자며 깔끔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음질 좋은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며 신간을 빠르게 구입해 읽고 욕조에 향 좋은 입욕제를 넣어 목욕을 하고 떠나고

싶을 때는 캐리어 덜덜 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항으로 향하고 보고싶은 공연이 있으면 가장 좋은 자리 표를

구매해 즐기고...배우고 싶은 악기가 있으면 바로 사서 배우고 좋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고 예쁜 운동화와 운동복

차림으로 질 좋은 생수병을 들고 산책을 나가는...그런 삶...누구나 꿈꾸는 멋진 삶...에는 경제적 여유가 분명

필요한 것이고...그렇다고 저런 게 다 가능하다고 꼭 행복한 것도 아니고...저런 삶을 누리길 원하는 게 속물적인

것도 아닌 것 같고...

 

답은 뭘까?

자신에게 주어진 것 안에서 누리는 것이겠지요...

원하긴 원하되 구속되지는 않는 것? 뭔소리냐...

균형을 잘 잡아야겠지...

그 앞서 말한 다큐멘터리에서 뉴욕의 쓰레기에서 음식을 찾아 먹고 사는 사람들 이야기도 나오던데...그런 삶으

방식도 참 요상한 면에서 트렌뒤~~하게 느껴졌다...비소비적인 생활방식? 환경친화적 생활방식은 뭔가 깔끔한

맛은 없어도 요즘의 새로운 시쳇말로 개념있어 보이는 면에서 트렌디~ ㅎㅎ

트렌디 어쩌고 하는 것도 다 남들 눈을 의식한 말이 아닌지...나를 의식하면서 산다면 트렌디한게 아니라 그냥

나다운거겠지....

 

모르겠다...

돈 안드는 산책...도서관 책 읽기 가끔 극장에서 영화보기 정도로 만족하며 살아야겠지...책은 좀 사서 봐야할...

지난 번에 혼자 산책하다가 든 생각이..만약 공원이나 개천가 따위가 사유지라서 그런 곳에서 산책을 할려면

골프장 회원권처럼 비용을 많이 치러야 한다면...사람들의 위시리스트 혹은 트렌디한 삶의 중심에 공원 산책이

끼어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ㅎㅎ 언제부턴가 행복함의 척도를 그 물건이나 행위에 드는 비용이 대신하기

시작한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랬다...

 

 

좋은 책이다...

좋은 책~

조르주 페렉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

 

 

 

 

 

 

식탁에는 도시로 된 커다란 버터 그릇, 마멀레이드 단지, 꿀단지, 토스트, 반으로 자른 자몽이 놓일 것이다

이른 아침 5월의 긴 하루를 여는 시작일 것이다

그들은 우편물을 뜯어보고 신문을 펼칠 것이다 첫 담배에 불을 붙일 것이다 나갈 것이다

아침 일은 고작 몇 시간이면 끝날 것이다

그들은 점심때 만나 마음 내키는 대로 샌드위치나 그릴 요리를 들 것이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느린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펼쳐 보는 책 쓰고 있는 글 듣는 음반 매일 나누는 대화에 신경 쓸 것이다

그들은 오래 일한 후 저녁을 들거나 아니면 외식을 하러 나갈 것이다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산책할 것이다

책으로 둘러싸인 벽들 사이에서 오로지 그들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사물들에 둘러싸여 멋지고 단순하며 감미롭게 빛나는 사물들 사이에서 삶이

언제까지나 조화롭게 흘러가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삶에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홀연히 모험을 찾아 나서기도 할 것이다 어떤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원한이나 쓰라림 질투를 맛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소유와 욕망은 언제나 모든 지점에서

일치를 이룰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균형을 행복이라 부를 것이고 얽매이지 않으면서 현명하고

고상하게 행복을 지키고 그들이 나누는 삶의 매 순간 이를 발견할 줄 알 것이다

 

 

그들은 부자가 되고 싶었다

자신들이 부자일 줄 안다고 믿었다

그들은 부유한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바라보고 웃을 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부를 잊고 과시하지 않을 줄도 알았을 것이다 으스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강렬했을 것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빈둥거리고 고르며 음미하기를 즐겼을 것이다

삶을 누렸을 것이다 삶은 하나의 예술이었을 것이다

 

반대로 상황은 쉽지 않았다

가난하지만 않을 뿐 부를 갈망하는 가진 것 없는 젊은 커플에게 이보다 더 곤란한 상황은 없을 듯했다

그들은 수준에 맞는 정도로만 갖고 있었다

일자리를 잃은 그들이 맞딱드린 현실은 파산까지는 아니라도 최악의 상황일만큼 궁핍한 것이었다

비좁은 아파트 날마다 똑같은 식사 궁색한 휴가로 만족해야 했다

 

비라도 내리고 나면 땅으로부터 올라오는 낙엽 냄새 두엄 진한 숲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파리의 몇 안되는 곳이었다

 

그 크기를 확인할 엄두도 내지 않던 35제곱미터의 아파트는 조그만 현관과 절반은 세면실이 차지하는

턱없이 비좁은 부엌 작은 침실 그리고 서재이자 거실이며 작업실

어떤 날에는 비좁은 공간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상하리만치 달콤하게 빠져드는 부푼 몽상과 달리 실제로 그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객관적 필요와 재정 상태의 절충을 꾀한 어떤 이성적 계획도 끼어들지 못했다

무한한 욕망만이 그들을 압도했다

 

쉽게 흥분하고 발끈했으며 더 부자가 되고 싶은 갈망이 지나쳐 질투심에 불탔다

더 부자가 되고 싶은 집착은 대개 사소한 물건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행위로 드러났다

친구들과 어울려 멋진 파이프라든가 낮은 테이블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가 하면...

그들은 가방에 푹 빠지기도 했다 마치 그 가방이 뉴욕이나 런던으로의 여행의 즐거움을 대변해

주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구두가게 진열대 앞에 서서 마치 신성한 것을 논하기라도 하는 듯한

몸짓을 해가며 떠들어대는 그들은 우스꽝스럽고 유치해 보이기 짝이 없을 때가 많았다

 

그들의 세계에 수준보다 더 많이 갈망하는 것은 어떤 법칙에 가까웠다 이렇게 만든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문명의 법칙이었고 광고 잡지 진열장 거리의 볼거리 소위 문화상품이라 불리는 총체가

이 법에 전적으로 순응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가끔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었다

사소한 굴욕 즉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물건 값을 물어보거나 머뭇거리며 값을 깎아보려고 하고...

하지만 그들의 눈에 가장 멋지고 완벽해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물건을 단번에 흥정도 하지 않고

거의 홀린 듯이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샀을 때 더 우쭐했다

 

그들과 친구들은 이렇게 살았다

작고 뒤죽박죽인 아파트였지만 산책과 영화 함께하는 우정어린 식사 멋진 계획들이 있어 달콤했다

그들은 불행하지 않았다 찰나적이고 아스라한 삶의 행복들이 일상에 빛을 주었다

 

상상만 해도 멋졌다

카펫이 깔린 사무실에 전화기 두 대와 인터폰 냉장고를 들이고 벽에는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을 걸

수도 있으리라

 

오늘날 현대 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자신들이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아마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타인의 불행을 지워버림으로써 본인의 불행을 확대해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들은 별 볼 일 없었다

겨우 벌고 프리랜서로 일하며 뜬구름 잡는 축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세월이 그들 편인 것은 사실이었다

감정을 자극하는 이미지의 세상이 온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보잘것없는 위안이었다

 

돈이 부족하기 시작하면 서로에게 날카로워졌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신경을 곤두세워서 싸웠다

그들 사이에 돈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벽이었다

가난보다 더 끔찍한 것은 궁색함, 옹졸함, 얄팍함이었다

분명 새로 나온 책이나 영화감독 전쟁과 같은 다른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진정한

대화는 돈과 안락함 행복이라는 주제에서 맴도는 듯했다

 

그들은 더는 욕망하지 않았다

일상은 똑같이 반복되었다

수업 레장스 카페에서의 에스프레소 저녁시간에 보는 영화 두 편 신문 낱말 맞히기

그들은 몽유병자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이상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상실했다

 

그들은 탈출을 시도했다

광기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토록 많은 것을 약속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이 세계에서의 긴장은 너무 심했다

 

여행은 오랫동안 감미롭게 이어질 것이다

정오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식당칸에 갈 것이다

매그러운 냅킨과 침대차 문장이 찍힌 묵직한 식기류 받침 접시를 댄 두꺼운 접시는

사치스러운 정찬의 서막을 알리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들이 맛볼 식사는 밋밋할 것이다

 

 

 

 

수단은 결과와 마찬가지로 진리의 일부이다

진리의 추구는 그 자체로 진실해야 한다

진실한 추구란 각 단계가 결과로 수렴된 수단의 진실성을 의미한다

 - 카를 마르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