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의 맛 김사과 2014 쌤앤파커스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이 특이해서 뽑아 들었고 표지도 예쁘길래 펼쳐 봤는데 눈에 들어온 몇 문장들과 포르투..라는
소제목이 이 책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읽어보니 기대 이상...제대로 잡았구나!
84년생... 여행 책인 걸로 생각하고 빌렸는데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여행지에서의 이런 저런 생각들을 쓴 건
맞는데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그런 건 적은 편이고 그냥 생각하기 위해 떠난 여행 정도로의 의미...
한예종 출신이구나... 한예종 출신의 무용가나 연기자는 많이 봤지만 서사창작과는...칼럼니스트였던(?) 김현진
한 명 떠오른다...김현진은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 그런 거 같은데 블로그가 닫혀서 어떻게 사는 지 되게 궁금
하지만 알 길이 없네...어쨌거나 한예종 출신이라는 게 뭐 대단한 기대감을 심어주지는 않았는데...근데 읽다보니
그러니까 앞 부분만 읽었는데 아 ...이 작가가 보통 머리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생각이 뭔가 되게
예리해..표현이 예리한걸까? 아니 둘 다... 명쾌한 생각 그걸 또 제대로 글로 써 내는 능력이...확실한 작가구나...
읽다보니 영어도 맘 먹고 공부하니 의사소통에 문제 없게 곧잘 해낸 거 같고...어버버한 실력이었는데 외국에
가려고 학원에 다는 걸로 쓰여 있던데 여행지에서 원서를 사서 읽는 위엄을...현지인들과 어울리고...그리고
또 학창시절 영재반 따위에는 지긋지긋하게 소속되었던 그런 기억도 있던 모양이고... 하여튼 머리 좋은 사람이
쓴 글이 좋다...내 머리로 생각 못할 것들을 써 놓았을테니까...
저자와 같이 실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라에서 글을 쓰라며 외국에 체류할 기회도 주고 그러는 모양이었고
그래서 저자는 보내준다니까 선택한 곳이 물가 비싼 뉴욕이었던거고...뉴욕 좋지...허세가 아니라 뉴욕은 정말
가보면 느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긴 한 거 같다...저자도 뉴욕의 그런 묘한 에너지를 좋아하던데...근데 또
미국의 날것을 보고 온 어느 기자의 책을 보니 뉴욕에서 착취당하는 히스패닉과 또...동양인들...흑인들...
아니 뉴욕 갔을 때 동행인이 말했듯 인종이 아닌 돈 없고 교육 덜 받은 자들이 당하는 착취 내지는 차별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까 하여튼 그런 것도 있었을텐데 그런 거 까지 들여다 보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고...
좋았던 것이... 그런거다...저자도 대개의 사람들처럼 여행이 좋고 다른 나라에서 머무르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그런데 거기에서 끝이 나는 게 아니라...이제 진짜 여행이나 탐험은 없는거라는 말...장소만 이동했을
뿐이지 같은 글로벌 브랜드에 둘러싸여서 같은 커피를 마시고 같은 H&M 옷을 사고 아이폰을 만지작 거리고...
라는 식의 이야기들...맞는 말이지... 인생에는 환상이 필요하고 그게 안 될 경우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는 말도
공감한다...나도 나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걸까 그래서 이렇게 버티고 살아 있는 것일까? 가끔 내가 그냥
사실 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같이 대화하던 누군가가 또 자기 비하 시작했다고... 내 이야기는
항상 자기비하로 끝이 난다고 해서 같이 속없이 웃었는데...근데 난 내가 사실 자기비하를 심하게 한다고는
생각 안하는데...근데 이게 좋은 건 아닌 거 같다...스스로에게 역겨움을 수시로 느끼며 사는 건 좋은 게 아닌..
역겨운 내 실체를 알면서 그걸 개선하지도 못하니까...문제인걸까...이상한 소리로 가는데 하여튼 저자가
말했듯 저마다 자신의 실체가 아닌 환상 속의 자신을 보며 살아가는 면이 분명 있고 그냥 실체를 보게 되었
거나 환상을 만드는 것에서 실패한 사람은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무척이나 공감이 간다...
외국에 가도 저렇게 외국인들 거주지에서 같이 체류하며 그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있구나...하며 신기했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못되기에 그럴 생각이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저자가 외국인들과 이리저리 어울리고 클럽
가고 그러는 건 뭐 남의 세상 이야기 같아서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하여튼 저자의 글은 상당히 멋지다!
김사과는 본명은 아닌데...김사과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하루에 세 도시를 돌아보는 행군 같은 여행이 아니라
머무는 것인지 떠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길고 임시적인 이동에 익숙해질 것이다
우리는 가능성에 머무는 영혼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뉴욕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굳이 내 돈을 들여서 가지 않을 가장 비싸고 화려한 도시를 택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왜 여행에 매혹되는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동시대의 여행에 관한 어떤 환상도 슬픔도 없는 기록이며 동시에 냉소와 환멸로 가득 찬 가짜 여행기다
여기엔 두께가 없다 무게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사는 세계다
모마에 갔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6층을 둘러보다 미술관과 상점의 경계가 궁금해졌다
원래 둘은 같은 것이 아닌가?
그는 뉴욕의 삶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값비싸고 세련된 막다른 골목이며 레게와 두부 샐러드 따위로 거기에서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혼자가 되고 나서 그동안 내가 혼자 있을 시간을 절실히 필요로 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글쓰기를 중단하고 어정쩡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아 나는 뉴욕에 있는 거지 미국에 사는 게 아니지
내가 프라하에서 지낸 게 체코에서 살았던 게 아닌 것처럼
저 영화 속 미국인들은 유기농 무설탕 두유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미국을 모른다 관심 없다
소호의 새로 연 서점에서 조지 오웰의 책을 발견했다
그는 열 살도 되기 전에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을 알았다고 했다
도시와의 헤어짐은 사람과의 헤어짐에 비하며 슬픈 것이 없다
그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니까 돌아가면 되니까 어 그러면 되니까
곧 나는 내 세 번째 소설의 초고를 끝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당장 어디에 있든 상관없는 삶을 갖게 되었다는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기가 어디든 머물 이유도 떠날 이유도 없다
포르투갈을 블랙홀이야 떠나기가 쉽지 않아 정착하기가 너무 쉽거든
어느 날 어느 파티에서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숱한 여행들 속에서 결국 나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국가를 알지 못한다 오직 도시들이 숨 막히도록 서로 닮아가는 도시들의 근친상간
이야기가 여기 있다
두스만에 가서 지젝의 책을 샀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그것을 읽었다
이 멋진 도시 베를린을 향한 알 수 없는 역겨움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책은 아주 좋은 해독제가 되어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지젝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에 또 다시 구역질이 났다
나는 그 구역질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그저 돌려막기 하듯이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며
그 감정을 파묻고 또 파묻었다
잠에서 깨어나 천장을 보면 그것이 자신을 향해 무너져 내리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삶에는 환상이 필요하다
내가 나라는 환상 사랑받고 있다는 환상 우리가 함께한다는 환상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환상 이해받고 이해하고 있다는 환상
그것이 없으면 미친다
그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인간들은 견딜 수 없다
그것을 견디라는 것은 모욕이다 사물들의 본모습 맨얼굴을 드러낸 도시 치부와 금기들 사랑없는 성관계
개죽음 카페인에 빠진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가짜약과 인공향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정말 가짜인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여기서 환상과 거짓을 포함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것
살점들이 녹아 내리고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우울증이라 부른다
그렇다 인간들은 몰환상을 견딜 수 없다 하여 우울증이란 범주를 만들어냈다
만약 이 범주가 소멸된다면 더 이상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닐 것이다
나는 돈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괜찮았다
베를린은 가난하게 지내기 좋은 도시였다 특히나 내가 사는 동네는 소비욕을 자극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베를린의 멋진 점은 물질적 궁핍함이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근사한 일들이 많았다
나는 외식을 중단했고 요리들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곧 나는 요리왕이 되었다
절반 정도의 사람들이 우산 없이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더우면 에어컨을 트는 대신 땀을 흘리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는 대신 비를 맞는 이 베를린 사람들은
겨울이 오면 또 조용히 추위를 견디겠지 진정 자연의 삶이다 이게 무슨 도시인가
들어선 그의 집은 그 집이 있는 거리만큼 부유해 보였다...라기보다는 이케아적인 데가 전혀 없었다
닭가슴살과 덤벨 운동이 아니라 다년간의 노동을 통해 형성된 단단한 근육질의 팔뚝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극작가는 뷔휘너였고 그건 나와 같았다 부휘너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카프카와
옐리네크를 거쳐 헤어조크에 닿았다 그러고 보면 저 모든 근사한 독일어권 예술에 대해서 독일인과
이야기한 것이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반쯤 잠들어 있고 반쯤 깨어 있는 새벽의 공항은
불면증 환자의 내면세계를 부드럽게 형상화한 것만 같다
새삼 뉴욕이라는 도시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도시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듯 보이는데도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
햇살 오직 햇살 이 근사한 고독
이 모든 것이 혼자 있음에 의해서 가능하다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 나는 그 마음을 지울 10가지가 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곤잘레스가 말했다
결국 인간은 어디나 똑같아
그는 토할 정도로 많은 곳을 여행했으며 그 결과로 그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좀 더 잘 배우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겉보기에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안에 들어 있는 것은 교육과
자본과 아무 상관없다 진정한 고귀함은 흔하지도 않고 랜덤이다 운과 같다 막상 고귀한 상대를 만난다고
해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싶다
아니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고 싶다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면 내 몸이 침대 밑으로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산 채로 침대에 매장되는 듯한 느낌 나는 살기 위해 아니 그저 뭐라도 해보려고 이불 밖으로 기어나간다
노트북을 챙겨 카페로 간다 아무 감정도 느낌도 없다 오직 두통이 느껴진다
너무나도 선명하여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말을 걸면 입을 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고통이 나를 향해 엄청난 말들을 늘어놓을 것 같다
하지만 안 된다
그러면 진짜 미치는 거지
다행히 아직은 미치지 않았다
게다가 살아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서 그의 미래 전망은 어두웠다 그런 그는 미국인 같지 않아 보였다
그의 집안 풍경만큼이나 시니컬한 자학개그에 통달해 있는 비관적이며 취향 좋은 좌파 미국인
그것은 정말이지 미국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뉴욕적이다
더 이상 젊지 않다
화이트 컬럼의 전시회 오프닝 파티
여기에 있는 애들을 삽으로 퍼다 서울에 갖다 놓을 수 있다면,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서울이 좀 더 보기 좋은 도시가 될 텐데
사람들은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소유한다 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갖게 되었다
아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지나치게 충분하게 갖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진짜 필요한 것이 뭔지를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소비자일 뿐이니까
우리는 그저 소모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게 우리들의 삶이다 그저 쓰레기통에 처박기 위해
산다 판매자들을 위해 그게 사랑이고 우정이고 효이며... 그게 우리가 아는 관계들이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여 산다 너를?
지루한 설거지의 순간 누군가 음악을 틀었다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던 지루함의 커튼이 산뜻하게 걷어졌다
나는 감탄했다 음악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커튼 같은 거다
삶의 지루함을 메워줄 예쁜 벽지 늘어뜨린 커튼 꽃무늬 식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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