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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 어빈 얄롬

by librovely 2007.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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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눈물을 흘릴 때             어빈 얄롬       2006'      리더스북

 

 

 

 

이 책을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튼 좋은 책이라는 소개글을 읽었고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미 대출중이었다...많이 들어본 제목은 아닌데...

그래서 예약을 했고 대출을 받으러 가서는 좀 놀랐다..

책이 두꺼운 편이다...600페이지가 좀 안되는 분량...

제목도 그렇고 좀 지루하지 않을까?

 

 

 

그래서 대출받은 책 중 거의 마지막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기우였다...

재미있다~

흥미롭고 독특하다...

읽는 내내 가슴이두근두근거렸다...

그만큼흥미진진~~

아주 약간은 추리소설의 느낌도 나고 생소한1882년도

지식인들의일상을 옅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철학자 니체와 브로이어라는 의사가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프로이트도 등장한다.

저 두 남자와 그들과 얽힌 개성강한 여인들베르타루 살로메...

니체, 브로이어, 프로이트, 베르타, 루 살로메...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이 실제로 존재했던 유명인들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큰 틀은 허구지만 그 안의 내용들은 실제로 각

인물들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이라고 한다...사실 읽는 동안 이게

진짜 있었던 이야기일까? 궁금했는데 읽으면서 대부분이 허구가

아닐까 생각했다...그냥 니체의 철학책 2 권의 내용을 모티브로

대강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근데 각 개인들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실제로 있었다니...신기...

 

 

 

이 책은 제목보고 혹~했다가 두께를 보고 으음...했다가 다시

목차의 소제목들을 보고는 혹~ 하게 되었다...소제목들이 모두

심리기법과 관련있게 보여서 관심이...지난 번에 대출받았다가

시간이 없어서 하나도 읽지 못하고 그대로 반납했던살인의 해석

이런 형식의 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설에도 프로이트가 나온다던데...이 소설에서는 조연이었던

프로이트가 주인공인것 같던데...

 

 

 

니체...

전혀 모른다... 신은 죽었다...생철학...이 정도만 생각났다..

그럼 나의 스승님 네이버 백과사전에게~

 

독일의 시인·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의지철학을 계승하는

‘생의 철학’의 기수()이며, S.A.키르케고르와 함께

실존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된다. 주저는 《반시대적 고찰》

(1873~187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

(1883∼1885) 등이 있다.

국적독일
활동분야시, 철학
출생지독일 레켄
주요저서

《반시대적 고찰》(1873~187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1883∼1885)

국적이 없다더니 독일이네...소속된 국가가 국적 아닌가?

대부분의 과목이 그렇지만 가장 뜻 모르고 배우고 지나간 과목이

도덕이 아닐까? 이름은 들어본 기억이 어렴풋 하지만 도대체

그들이 어떤 생각을 말했는지 알 수가 없구나...

 

 

 

브로이어는 실제로 프로이트의 선배 의사로 둘은 절친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는 항상 보던 프로이트의 늙은 사진이 무색하리만큼

젊은 프로이트를 만날 수 있다...그래서 참 색다르게 느껴졌다....

프로이트는 자기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브로이어처럼

부인을 여자문제로 힘들게 만들지 않겠다고 하는데...참 프로이트

답지 않게 해맑은 편지가 아닐 수 없다...ㅎㅎㅎ 무의식이 어쩌고

그래서 프로이트 하면 뭔가 인간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냉소적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뭐랄까..의사들이 수술을 하다보면 연인이

인간적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수술대에 오를 대상 물체?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비슷한 이유로... 프로이트는 정말 그 연인과

행복했을까? 이 책을 보면서 잠깐잠깐 등장한 호기심 많고 똑똑

하며 예의바른 청년 프로이트의 일생에 관심이 생겼다...궁금해~

 

 

 

물론 가장 궁금한 것은 니체...

지난 번 북 페스티발에서 본 그 어마어마한 분량의 니체 전집이

다시 떠오른다...니체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과연 이해가 갈까?

그의 삶도 너무 궁금하다.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천재이고 고독했고

루 살로메라는 여인으로 인해 처절히 실연의 고통을 당했던 니체...

신은 죽었다면서 신에게 의지하는 나약함에서 벗어나라고 말한...

영겁회귀...이 말이 책에 나오는데 정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 무한 반복된 것이 현재? 철학의 어려움은...

꼭 우주를 배울 때 느꼈던 난감함과 닮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넓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나...

어쨌든 가능한 생각의 범위를 넘어선 생각을 하라고 하는 것 같다.

 

 

 

니체는 루 살로메의 어떤 점에 마음을 뺏긴 것일까?

루 살로메라는 여자도 실존 인물로 상당히 유명했다는데...

이 여자는 릴케와도 염문이 있었고 그랬다는데...나이도 니체 나이

절반밖에 안 된 어린 여자였다는데...20대초반의 여성임에도 상당히

지적이고 미모가 뛰어났으며 자기 주장이 강한 여성이었다는데...

궁금하구나...

 

 

 

브로이어는 베르타라는 자신의 환자에게 빠져들었다...

그녀를 치료하면서 자꾸 베르타에 대해 성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집에 있는 그의 돈많고 가문 좋으며 게다가 매우 아름답기까지 한

부인에 대해서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그가 치료한 베르타

라는 여자도 실존 인물이라고 한다...그 나라의 우표에도 등장할

만큼 유명해진 여자란다...가문도 좋고...어떻게 상상임신으로

소란을 피우던 여자가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을까?

 

 

 

스토리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스토리가 뻔하다...읽어나가면서 대강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그러나글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는

저자의실력이 대단하기에 너무 재미있고 또 스토리에 녹아든

니체의사상이 읽는 중간중간 놀라게 만든다...읽다가 그들의

대화에서발견하게 되는 생각할거리들이 상당히 많다....

워낙 생소한 니체~ 였기에 더 의미있었다...그리고 그들이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었기에 그런지 대화의 내용이 논리적이며 깊은....

 

 

 

철학을 소설에 녹여내어서 마냥 어렵지만도 않고 가볍게

재미만있지도 않고... 흥미로우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책이다...

이런 소설 상당히 바람직하다 !  딱 내가 원하던 그런 형식이다.

 

 

 

고독...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

인간이 사는 과정이 어찌보면 고독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아닐지..

그렇게 이성적으로 날카롭던 니체도 결국은 고독에 대해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나는 나 혼자일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자체도 스스로의 고독함을 말하는 게 아닐지...

 

 

 

외로움과 고독은 같은 말일까?

외로움... 그런거 예전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몰랐는데...

요즘 그런게 좀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소설에도 나오는데 고독함이란 누구와 함께 있다 아니다의 차원이

아니라고 한다... 내가 요즘 살짝 느끼는 그 감정도 그런 것 같다...

누가 옆에 있다고 해도 극복이 될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

나만 그럴까?  아니면 누구나 그런 걸 느끼는 걸까?

 

 

 

니체가 원하는사랑...

그가 말하는 사랑은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 기술에서 이상적인 사랑

으로 말한 그 사랑과 상당히 비슷하다... 역시 그게 진짜인 모양이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혼자임을 극복하지 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로 존재하면서 사랑해야 한다는 것... 분리불안을 극복한 성숙

한 인격체 간의 사랑만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는...

철학자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그건 범인들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집착이 없는 사랑이라...

조건이 없는 사랑이라... 과연 그게 가능할까?  니체 스스로도

루 살로메와 그런 사랑을 만들지 못했지 않는가? 그의 증오에 불타

는 편지만 봐도 알수가 있다...집착이 없다면 각자로 존재한다면

그녀가 그의 프로포즈를 거절했어도 그냥 그녀의 결정을 인정하고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는게 아닌가...

 

 

 

또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하나...

나는왜 사는가?

니체는 브로이어가 베르타의 생각만을 강박적으로 하게 되면서

그로 인해 생각하지 못하는 생각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 생각을 못하게 하려고 베르타의 생각이 자꾸 겉으로 등장하는

것이라는 말이다...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왜 사는가....이 질문이

얼마나 무서운 질문인가...나는 맞게 살아가고 있는가...정말 좋은

답이 나오기 힘든 질문이며 동시에 좋은 답대로 실천하기도 힘든

질문이 아닌가...실존? 이런게 실존이라는 건가? 그 암울한 이야기

를 써대던 작가들이 실존주의 작가 아니었는가...

사람들이 중독되는 것들...술...도박...사치...이성... 이런 저차원

적인 것에 자신을 중독시키는 것이 사실은 실존 문제의 우울함을

떠올리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는 니체나 브로이어나 마찬가지이다...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그들은 무신론자였나?

기독교인 나는 이런 글을 만날 때마다 너무 혼란스럽고 두렵다...

신을 믿음으로 나약해지는 측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신은 죽었다고해야 하나... 모르겠다...도통...

 

 

 

나는 왜 사는걸까?

인간은 왜 사는걸까?

인간의 본연의 모습은 어떤걸까?

난 인생의 3분의 1이나 살아버렸다...

이 짧은 삶을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맞게 사는걸까?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때에 나는 어디에 있었나?

내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나?

내가 태어나고 살다가 죽는다는것이 타인 혹은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런 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슨 책을 읽어보아야 할까?

일단은 성경을 좀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게 안전할 것 같다...

어찌보면 섣불리 니체의 책을 읽는 것이 좀 위험할지도...

물론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아무 위험이 없을 확률이 매우크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이미지도 그의 망막에서 대뇌피질로 전달된 것이 없었다.

오로지 그의 관심은 베르타에게 쏠려 있었다.

 

 

이것이 영원한 내 삶의 몫일까?

나는 베르타의 기억이 영원히 공연되는 무대에 불과한 운명일까?

 

 

저는 한 사람에게만 도리를 다 하는 건 포기했어요

제 영원한 자유를 위해서죠

결혼과 그로 인한 소유와 질투라는 한 쌍은 영혼을 노예로 만들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를 지배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즐거운 학문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_   니체

 

 

박사님이 인생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헌신하고 있다면

나는 그와 반대로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데 헌신하고 있어요

 

 

희망이라고 하셨나요? 희망이야말로 최후의 악입니다.

나의 책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을 때 제우스가 넣어두었던 악의 세력들이 인간세상으로

달아났는데 거기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최후의 악이 바로 희망이라고 했지요.

 

 

니체가 대담하게 말하는 방식들

희망이 악 중에서 최악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신은 죽었다니!

진실은 그것이 없으면 우리가 도무지 살 수 없는 오류라고!

 

 

뼈와 살, 내장과 혈관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혼의

동요와 열정은 허영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견딜 수 있다.

허영은 영혼의 살갗이므로.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려는 순간, 말하자면 타자에게 가까이 다가

가려는 그 순간, 상대방을 자신의 계획대로 따라오도록 유도하게

된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 다리를 건널 수 없게 된다는 거죠.

왜냐하면 상대방에게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요.

 

 

어떤 질문이라도 던져주면, 니체는 가장 작은 질문의 씨앗에서도

비옥하고 무성한 사상의 싹들을 틔워냈다.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타인을 위해서 행동하는 법은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이기적이고 모든 봉사는 자기를 위한 봉사이며

모든 사랑은 자기애니까요

 

 

제 일과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어요.

베르타와 함께 있는 나, 그녀와 다시 만날 것을 기다리고 있는 나

 

 

관심을 가져달라고 아우성치는 그의 문제들이 실제로는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그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친구가 안식처를 요구하면, 딱딱한 침상을 제공하는 것이 상책인

법이다!

 

 

남들이 자기를 좋게 봐주면 자기 자신을 좋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러나 이건 잘못된 해결책이죠.

타인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이니까요.

 

 

육욕은 모든 타인을 지배하려는 탐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사랑하는 대신 사랑하는 대상을 독점하는 걸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용이 자기 보물창고를 지키는 것이나 다를바 없는...

 

 

결국 문제는 **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그 밖의 것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지요. 좀더 소중한 어떤 것, 그야말로 무한히 귀중한

게 사라진다는 거죠!

어중이 떠중이들은 육욕의 여물통에서 꿀꿀거리는 돼지처럼 

인생을 낭비합니다.

 

 

인생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비천한 자들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자들을 창조하는 겁니다. 당신 안에 있는 영웅을 발전시키는

데 어떤 것도 방해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소망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포옹해야 한다.

반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버리고 자기 인생

을 탐구하는 데 바쳐야 한다.

 

 

초자연적인 힘이 주는 위로와 쇠사슬로부터 해방되고 싶다면

믿음을 회피하고 무신론을 받아들이면서도 그와 동시에 산자로서

누리는 하찮은 위안을 갈망할 수 없다는 겁니다!

당신이 신을 죽였으면 사원이란 피신처로부터도 떠나야 합니다.

 

 

그는 자기 실존의 공포 속을 깊이 들여다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너무 많은 것을 보았을 겁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의 아가리를 보았을지도 모르고, 자기 자신의 무가치를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자기 자신이 한 점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

라는 것도 보았을 겁니다. 아니면 인생의 무상함과 우연성을

보았을 수도 있겠지요. 육욕이 공포를 진정시켜주던 그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두려움은 너무 생생하고 끔찍합니다.

따라서 그는 육욕을 자기 마음속에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허나 육욕이라는 잔혹한 경쟁자는 다른 모든 생각들을 몽땅

집어삼켜버리지요. 육욕은 생각할 줄 모릅니다.

오로지 갈망하고 회상할 줄밖에는요.

 

 

나는 나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그것을 환영한다.

사랑하면서도 혐오하는 사람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나 역시 알고 있다!

 

 

당신은 인생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더군요. 잘못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부질없으며 잘못된 목적을 새롭게 설정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영에다 영을 곱해봤자 영이니까요!

 

 

오로지 이 말에만 빠져들었다.

평생동안 이런 대화를 기대했는지 모른다.

 

 

그는 칸트나 헤겔과 같은 철학자들을 경멸했다. 그에 따르면 이런

철학자들은 완전히 학문적인 저술을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그의

철학은 인생에 관한 인생을 위한 것이었다.

 

 

거리를 충분히 두고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고 얘기한 거예요.

우주적 관점은 늘 비극을 완화시키는 법 이거든요.

충분히 높이 오르면 비극이 더 이상 비극으로 보이지 않는 높이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_ 관점의 변경

 

 

그는 편안함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편두통으로 얻은 이익이 뭐냐고 물었던 것 기억합니까?

바젤대학에서의 일은 나에게 사형선고 같은 것이었습니다.

공허한 학문생활을 하고 평생 어머니와 누이를 경제적으로

보살피도록 하는 선고였던 거죠.

 

 

그런 딜레마를 이해해요. 가장 욕망하는 여자가 가장 두려운 여자

이기도 하니까. 물론 그녀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는 문제 때문이지요. 정말 슬픈 일이지만!

 

 

욕망의 대상보다 욕망 그 자체를 더 사랑한다!

 

 

인간이 지식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더 이상 나약함을 도덕률로

위장하지 않을 때

 

 

열쇠는? 근원보다는 의미를 생각하는 것!

의미를 잘 봐야 한다. 증상은 불안이 정신의 깊은 심연에서 폭발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일 따름이다. 유한함에 대한 깊은

근심, 신의 죽음, 고립, 목적, 자유, 일생동안 가둬둔 깊은 근심이

이제 족쇄를 풀고 정신의 창과 문을 두드린다. 그들의 증상은 뭔가

얘기하고 싶어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 책에서 어떤 것은 친구들에게만 얘기할 수

있다. 또 어떤 것은 친구들에게조차 얘기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어떤 것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얘기할 수 없다고 썼다!

 

 

어릴적부터 난 인생을 두 개의 텅 빈 공간 사이에서 터지는 불꽃이

라고 생각했어요. 탄생 이전의 암흑과 죽음 이후의 암흑 사이에

있는 불꽃이라고 말이죠.

 

 

하르트만의 <무의식의 철학>

 

 

서로가 소유하려 들지 않는 그런 사랑을 꿈꿉니다.

얼마 전에 난 그런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했었죠.

결국 착각이었지만요.

난 두 사람이 함께 좀더 고귀한 진리를 향해 탐색하는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을 꿈꿉니다.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겠

지요. 그것의 진정한 이름은 우정일 테니까

 

 

살아 있을 때 살아라! 삶을 최대한 누릴 때 죽는다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올바른 때에 살지 못하면 올바른 때 죽지도 못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최대한 누리고 있는가?

 

 

악마가 당신에게 지금처럼 사는 것, 과거처럼 사는 것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 것도 한 번이 아니라 헤아릴 수도

없이 반복해야 한다면, 새로울 게 전혀 없이 반복되는 삶,

당신 인생에서 모든 고통과 기쁨과 크고 작은 일들이 그대로

되풀이 된다면 그것도 똑같은 순서대로 되풀이 된다면...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를 계속해서 뒤집는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매번 뒤집을 때마다 당신과 내가 그냥 하나의 점으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이 순간도 이미 있었던 건 아닐까요?

무한히 뒤로 가는 시간은 또한 무한히 앞으로 뻗어 있는 건 아닐

까요? 이 순간, 아니 매 순간 우리는 영겁회귀하는 건 아닐까요?

 

 

영겁회귀는 일종의 불멸을 약속한다는 거요?

아뇨! 불멸은 지금의 인생이고 지금 이 순간이죠.

다음 생이란 없어요. 지금 지향해야 할 인생의 목적지라는 것도

없고 묵시록적인 심판같은 것도 없습니다. 이 순간만이 영원히 존재

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당신만이 유일한 관객입니다.

 

 

난 우리가 되기 전에 나 자신이 되었어야 했소. 난 선택을 할 적당한

시기가 되기도 전에 선택부터 했던 거요.

 

 

니체가 옳았다.

필요에 의해서 아이를 낳고 외로움을 덜어보려고 아이를 이용하고

자신의 또 다른 복제판에서 재생산해내면서 삶에 어떤 목적을

마련하는 것은 잘못이었다. 자신의 씨가 마치 자신의 의식을 담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 씨를 미래에 토해내어 불멸을 추구하는 것 역시

잘못이었다.

 

 

난 이상적인 결혼 관계는 오로지 그것이 각자의 생존에 필요한 것이

아닌 경우에만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난 단지 서로 충분히 관계를 맺으려면 먼저 자기 자신과 관계 맺어

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만일 우리가 자신의 고독을 감씰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그저 자기 고독을 막아줄 방패막이 정도로만

이용할 거라는 거죠. 독수리처럼 살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거든요. 오로지 그런 경우에만 다른 사람의 존재가 확장되도록

관심을 기울일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만일 우리가 결혼을 포기할

수 없다면 결혼을 파멸할 운명이라는 거죠.

 

 

결혼을 구하기 위해 그것을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운명을 사랑하라

따라서 그렇게 되었노라

따라서 내가 그것을 욕망하노라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

 

 

니체

틈이 없다는 당신의 해석이 맞아요.

난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집도 없고 매일같이 얘기할

친구도 없고 소지품이 넘쳐나는 서랍장도 없고 가족들이 모여드는

벽난로도 없어요. 심지어 소속된 국가도 없죠. 

 

 

가장 중요한 통찰은 베르타와의 문제에서 핵심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에게 내가 갖다붙인 모든 개인적인 의미들, 그녀와

전혀 상관없는 의미들이라는 점입니다.

 

 

역설이군요! 고독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존재하죠.

일단 같이 공유되면 그것은 소멸합니다.

 

 

작가후기

앙드레지드 - 역사는 일어났던 허구다.  

                   반면 허구는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역사다

이 책에 나온 모든 사건들은 역사가 역사의 축으로 약간만 회전했

다면 현실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