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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양을 쫓는 모험 - 무라카미 하루키

by librovely 2007.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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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무라카미 하루키    1995‘    문학사상사

 


집에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책...
10여년 전부터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펼쳐본 일이 없었다.
왜?  일단 제목이 전혀 끌리지 않는다...양을 쫓는 모험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말...게다가 북커버가 전혀 맘에 들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집에 있던 책 중 하나인 밀란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즐거움이라는 책과 뭔가 느낌이 비슷해...
그 책도 앞에 읽다가 내던진 아름다운 기억이 있었기에...

 


그러다가 왜 갑자기 이 책을 끄집어 냈는가...
11월은 너무 바빴다... 그래서 날짜 감각도 없이 살다가
그러니까...뭐 고개 들어보면 하루가 지나있고... 한 숨 한 번
쉬고 나면 이틀이 지나있고 이런 식이었다...그래서 반납일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짜 감각없이 살다가
반납일을 넘겨버렸고 또 내가 싫어하는 갑자기 외출하기로
인해 더 넘겨버려서 대출금지라는 불쌍한 신세가 되어버린것...
사실 요즘 바빠서 대출받은 책이 있어도 제대로 읽지 못했을
것이다... 퇴근이야 늦게 하지 않지만 낮동안의 바쁜 일과는
퇴근 후의 시간에 뭔가를 할 여력을 남겨두지 않는다...

 


하여튼 이리저리 하여 읽을 책을 대출받지 못한 상태...
급한대로 집의 책꽂이를 쭈그리고 앉아서 구경해 보았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이름은 멋지다..그냥 멋지다...괜히 감각적이다...
일본 작가에 대해 잘 모르며 더욱이 남자 작가에 대해서는
냉정과 열정사이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만 알고 있을 뿐...

 


무라카미 하루키는 예전에 TV CF에서 나온 그 상실의 시대
책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가...그 책도 사실 읽어보려고
만지작 거린 일이 있지만 책이 너무 두껍고 편집된 내용이
지루해 보였다... 그리고 남자가 쓴 사랑이야기라니 별로
일 것 같아서 안 읽었는데...

 


또 생각나는 건 대학교 다닐 때 친구가 사귀던 남자에게
받았다는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이었다... 그 남자가
읽던 책을 준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자리잡고 앉아 읽어
보았는데 읽다가 든 생각이 이런 책을 읽는 남자랑은
안 만나는게 좋지 않겠어 였다...(친구는 그 남자랑 결혼
해서 잘 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이었는데
아마도 TV피플이 아니었나 싶다...하여튼 그랬는데 내용이
뭔가 우울하거나 혹은 기이한 좀 요상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내용은 전혀 생각이 안난다...

 


하여튼 그다지 기대는 안하고 책을 펼쳤다...
책이 참 두껍다... 일본적이지 못하구나...일본 책은 정말
대부분이 얇은데...책의 뒤에 나와있는 작가의 외모도 으음...
뭐야... 좀 생각이 독특할 것 같긴 하지만 그냥 아저씨...
옷만 나름 젊어보이게 후드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로 보인다.
또 작가 외모 따지기 시작이구나...그게 무슨 상관인데...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글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하게 나열되는 내용... 뭔가 감정이 제거된 느낌...
그냥 이래가지고 저렇게 해서 요렇게 되었다....
사실만이 무덤덤하게 나열된 글... 부인과 이혼하게 된 주인공
그런 비참한 상황도 이 글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설명
된다...

 


주인공 남자는 부인과 헤어지고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담배를 피고 커피를 마시고 그렇게 무심하게 하루하루 산다.
이 남자를 보고 어떤 일이 떠올랐다...대학 다닐 때 선택 과목
중 성에 대한 것이 있었다...민망하지만 본능??에 따르기로
하고 그 과목을 선택해서 들었었는데... 성에 대한 여러 분야의
이야기를 듣고 나름대로 유익한 강의로 기억되는데...

 


한 번은 주제가 성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이야기..그러니까
매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어떤 복학생이 아주 단호한 말투로
매춘은 나쁜 게 아니며 (뭐 여기까지는 나도 그런대로 그냥
수긍할 수 있었다... )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여자가 더럽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강의를 듣고 있는 너희들보다 더 깨끗할
수 있다고 말했다...순간 강의실에 할 말을 잃은... 뭔가
서늘한 정지감이 뒤덮였는데...그 남자 분의 요지는 그런 여자는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기에 더 깨끗하다는 것
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느낀 것은 이 복학생이 참...
뭔가 비참해 보인다는 것...뭐가 비참하냐면... 그는 정상적인
여자와의 사랑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는 것...

 


제대로 된 사랑이란 이상일 뿐이며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전제가 있기에 그는 여자와의 감정적인 사랑이 아닌
돈으로 정당하게 주고 받는 사랑을 옹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생각해보니 그 복학생 외모가 보통 여자들에게
호감을 주기 힘든 외모였던 기억도 난다... 혹시 그런 외모로
인해 나름 여자들에게 상처를 받다보니 차라리 모진 보통의
여자들보다는 주는만큼 댓가가 있는 그녀들에게 더 마음이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이 소설 앞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들어서...
주인공 남자는 부인과의 이혼에서 이상하리만큼 별다른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냥 그럴수도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변치 않는 사랑은 없다? 아니 아예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뭐 이런 느낌이 들었다.

 


그는 우연히 알게 된 아름다운 귀를 가진 여자를 만날 때도
그녀와 뭔가 감정적인 교감을 만들기 보다는 그냥 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 무덤덤한 대화를 나누고 그 다음 함께한다.
이 둘의 만남은 분명 남녀의 만남이지만 난 이들의 만남에서
감정...사랑의 감정을 찾지 못하겠다...그래서 괜히 슬펐다...
그러나 이 둘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우리가 뭐가 어때서? 이게 진짜야...사랑이라는 감정?
그런게 어디 있어...그냥 좋으면 만나고 싫으면 헤어지면
되는거야... 영원한 사랑이란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아...
사랑이란게 존재한다면 우리가 하는게 사랑이야. 맘에 들면
만나고 변하면 제 갈길 가는거지... 정말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에서 귀가 예쁜 여자와 주인공 남자의 관계는 뭐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양을 찾으러 다닐
때 이 여자도 함께 하긴 하는데...결과적으로 양을 찾는 그 순간
에는 이 여자는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다. 무슨 의미일까?

 


이 소설은 쉽지 않다...
뭔가 상당히 난해하다...내가 지나치게 긴 기간동안 끊어 읽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내용 자체가 요상한건지 하여튼 쉽게 내용이
들어오지도 않는다...처음 부분은 나름 새롭고 해서 흥미롭게
읽었는데 중간에 양을 찾아다니는 부분에서는 읽다가 꼬박꼬박
졸기까지 했다...피곤해서 그런지 지루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 읽고 나서 해설부분의 줄거리 요약까지 읽다가 본격적인 해설
부분은 그냥 접어버렸다... 아무래도 내가 이 소설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긴 한데... 그 상태로 좀 두어도 나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책의 소개를 보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은 쉽지
않아서 해설집이 따로 나와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대목이
살짝 위로가 되었다... 나만 어려운 건 아니었구나...다행이다...

 


첫부분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흥미롭게 읽었고 중간부분은
살짝 지루하였고 그래서 다시는 무리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겠어...라고 되내였는데 끝부분에 가서는 뭔가 이
소설에 중요한 것이 숨어있음을 느꼈고 그래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씩 찾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오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잘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주인공은 부인과 이혼하고 그녀의 속옷을 의자에 걸쳐두고
싶어한다... 상실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그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그리고 이야기는 과거로 가서 어떤 여자...
그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 남자하고나 자는 여자와의 일이
나온다...그녀는 25살에 죽을거라고 하고 26살에 죽는다...

 


그는 광고일을 하는데...그러니까 팜플렛 같은 것을 만드는
회사 같다...친구랑 둘이서 하는데 친구는 평소에는 너무나
멀쩡하며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알콜 중독자이다. 무슨 의미지...
그러던 어느 날 귀 사진을 보고 그는 그 여자를 찾아내서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가고 거기에서 둘은 마음의 일치를 본다...
무슨 깊은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그냥 사귄다는 의미...

 


주인공의 친구 쥐...별명이 쥐다...하여튼 쥐가 보낸 양의
사진을 주인공은 광고에 사용하고 그 광고를 본 어떤
세력자의 비서에게 연락을 받는다. 그 비서는 주인공에게
광고에 실은 양을 찾아내라고 말한다. 한 달의 기간에 찾지
못하면 사업을 망하게 만들겠다고 말하며 돈을 쥐어준다.

 


주인공은 귀가 예쁜 여자와 함께 양을 찾아 나선다.
돌고래 호텔이라는 곳에 머무는데 그 곳은 양과 관련된
건물이었고 그 안에 양을 연구하는 노인이 살고 있다.
주인공은 이 곳을 거쳐 예전에 양을 기르던 동네를
찾아간다.  그 곳은 매우 가기 힘든 깊은 산에 있다.

 


그 곳에 있는 집에서 주인공은 쥐의 흔적을 발견한다.
거기에서 기거하면서 며칠을 보내는데 어느 날 여자는
떠나고 그 날 양을 뒤집어 쓴 키가 작은 남자가 찾아온다.
그 남자는 쥐에 대해 알고는 있으나 말을 잘 해주지 않는다
그러자 주인공은 화가 나서 기타를 부순다. 특이한 건 거울에
주인공은 비치나 양을 뒤집어 쓴 그 남자는 비치지 않는다.
양은 알고보니 쥐이다. 쥐는 일주일 전에 목을 메고 죽었다.
즉 그는 이미 죽은 상태이다.

 


세력자... 한 달 내로 양을 찾아오라고 한 세력자나...
돌고래 호텔에 머물고 있는 그 양을 연구하는 노인이나..
모두 양이 자신 안에 들어왔다가 나가버린 사람이다...
양이 들어왔다가 나가면 그 사람은 제대로 살 수 없는 모양이다.
양은 쥐에게도 들어왔다고 한다. 쥐는 그 양이 완전히 들어왔을 때
목을 메고 죽었다고 한다.  무슨 의미일까?

 


양은 떠나고 주인공은 다시 그 세력자의 비서를 만난다.
그는 세력자가 죽었음을 말해주고 이미 양이 찍힌 그 곳이
어디였는지 알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다만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자유의지로 주인공이 그 곳에 찾아가게 만들고 싶었
다는 것... 그는 주인공에게 큰 돈을 주고 주인공은 그 돈을
식당을 하는 친구에게 주며 동업인으로 자신과 죽은 쥐를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바닷가에 가서 두 시간동안 운다.
그리고는 고운 모래를 털어내고 일어선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 나는데...
난감하다.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양은 뭐고 양이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무엇이냐...
양이 몸에 들어왔다가 나가면 그 사람은 살 수 없다?
주인공이 양을 스스로 찾아가게 하려고 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난해할 순 없다...
쥐는 자신의 나약함 그 상태로 있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양이 들어온 상태에서 죽음을 택하였다고...
그럼 그 양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쥐가 품고
죽어버렸으니 그 안에서 양은 함께 사라진 걸까?
왜 주인공은 양을 찾아 나서야 했는가?
양을 잃어버린 세력자는 왜 주인공이 양을 찾아 나서게
한 것일까? 이미 위치를 알면서도 자유의지로 찾게 만들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양을 품으면 그 사람은 매우 강해지는 모양이다.
세력자도 그 양으로 인해 광고 및 언론계를 장악한 것 같으니...
양은 그 세력자를 그렇게 이용하고는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세력자의 뒤를 이을 사람이 필요한데 문제가 생긴
거라는...그럼 주인공이 양을 찾아 삼켜 세력자의 뒤를 잇기를
바란 것일까? 아니면 이미 품고 있는 쥐를 찾아내어 자신의
뒤를 이어가게 만들고 싶었던 걸까?

 


양을 뒤집어 쓴 채 자신이 쥐임을 밝히지 않은 상태일 때
주인공이 양을 쓴 쥐에게 왜 산 속에 들어와서 사냐고 묻자
그는 전쟁이 싫다...전쟁터에 끌려가기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전쟁... 일본의 1900년대 초중반의 무분별한 전쟁이 어쩌면
이 이야기의 중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리고 비단 그 전쟁만이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불합리한
권력...그런 것을 양이라는 것으로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힘이 한 인간을 지배하고 그 인간이 사회를 장악하면
그로 인해 엉망이 되어버리는 이 세상....
그래서 쥐라는 존재를 통해 그런 세력을 아예 죽여버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

 


쥐가 말했던 그 내용...인간의 나약함 그 상태가 좋다는 그 말..
인간의 자신을 넘어선 그 탐욕이 저지르는 끔찍함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나는 그냥 이 정도로 이 소설에서 의미를 찾았다.
아무래도 뭔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양은 그렇다 치고 귀가 유난히 아름다운 그 여자의 존재는
대체 무슨 의미일까?  얼핏 보면 평범한 그녀이지만 귀를 드러낸
순간 완전히 다른 여자로 돌변하는 그녀..귀...그녀는 직업은
3가지이다...뭐더라...일단 귀를 드러낸 모델이라는 직업과...
너무나 평범한 사무를 보는 회사원...또 하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이건 대체 무슨 의미에서 한 설정일까?
왜 눈이나 코 입술처럼 평범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다들 신경쓰지
않으며 뭐가 아름다운 것인지 기준조차 정해지지 않은 귀란
말인가...

 


이제부터는 책의 끝부분에 첨가되어 있는 해설을 읽은 후...

 


양 사나이는 관념이란다...쥐는 껍데기만 있는 존재...
양은 관념 쥐는 형식... 이 둘은 그래서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공백이 공백을 받아들이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쥐는 자살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젊은 시절 학생운동을 하며 지니고
있던 이데올로기를 죽인다는 의미란다...

 


돌고래 호텔은 사라져 간 것들의 창고이며 상실한 사람을
위한 위안의 장소란다.

이 소설은 대학시절 무라카미 하루키가 열심히 참여했던
학생운동으로 인해 상실한 것들을 되찾는 의미란다...
학생운동을 하였으나 되돌아온 극심한 허무와 체념...
그 시기의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다시 현실로 되돌아 오고자
한 작가의 시도가 담긴 그런 책이란다.

 


어째 설명된 내용도 잘 이해가 안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학 때 열심히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는데
사실 그 운동 자체도 별의미도 없고 얻은 소득도 없고 자신이
그런다고 궁극적으로 세상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
고는 작가는 허무감에 시달리고 이젠 현실을 받아들이자....
하는 의도로 쓴 소설이라는 말인 모양이다. 대학시절의 자신은
쥐라는 존재를 통해 죽여버리고 그 허무함을 바닷가에서 두 시간
목 놓아 우는 것으로 해결한 후 이젠 그냥 현실에 맞춰 스스로의
나약한 삶을 살겠다는 말일까? 왠지 즐거운 답이 아니다...
내가 발버둥쳐도 세상은 이 모양 이대로 흘러갈뿐이니 그냥
조용히 내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체념일까?

 


386세대로 불리는 우리나라 아저씨들이 이 책을 읽으면
뭔가 감회가 새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tv뉴스를 보면서 드는 생각 중 하나가...그들이 대학 때는
분명 독재정치 타도를 외치며 혹은 인권을 외치며 맹렬히
건전한 사회를 위해 운동을 했던 사람들일텐데 왜 지금은
저렇게 비리를 저지르며 과거 기성세대들이 하던 짓을 반복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 20대 때에는 그러지 않았을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물론 지금 20들은 아예 운동이라는
것을 안하지만... 운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몸짱 이정도를 떠올릴
세대들이니까... 얼마 후 대통령 선거도 있는데 투표권조차
내팽게 치고는 놀러가는 세대들이니...정치보다는 주가지수에
더 관심이 있는 세대들이니...)어쨌든 그들도 젊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발버둥쳐도 변하지 않는다거나...내가
추구한 그 이데올로기도 결국은 허점투성이임을 깨달았거나
아니면 운동 자체에서 이미 스스로를 너무 소모해 버렸다거나
하여 자신의 관념과 안녕을 고하고 현실과 타협해 버리는
그런 시기를 거치지 않았을까? 그들은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 소설을 읽으면 느껴지는 바가 많을 것 같다...나는 나 먹고 살
일만 가득한 상태로 살아왔기에 많은 것이 느껴지지 않아 다소
아쉽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민망하기도 했다...나는 아예 양이
없다... 그냥 쥐만 있을 뿐이니...존재만 있을 뿐이니...

 


양을 쫓는 모험도 해설집이 있을까?
있다면 꼭 읽고 싶다...

 


지금와서 드는 생각...
무라카미 하루키 대단한 작가 같다...
왜 대단하냐고?
그건 잘 모르겠다...  ㅡㅡ;;
이해가 아직도 잘 안된다니까....

 

 

이 책 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이란 어떤 관념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난 사실 이것이 관념이라기보다는 이상이라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어릴 때는 이상이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비단 정치적인 이상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상이 다 이런식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20대 초반에는 진정한 사랑이 있을꺼야

이러다가 30대가 되면 적당히 결혼을 해버리고 진실한 사랑 그런건

영화 속에나 소설 속에나 있어..이러면서 양을 죽이는 것이다.

혹은 어릴 때는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꿈꾸다가 자라면서

사회적으로 그냥 편하게 평범하게 갈 수 있는 길로 노선을 바꾸고는

꿈이 밥먹여주니...다 헛소리고 망상이야... 이러면서 양을 죽이는 것...

그렇게 양을 죽이고는 다시는 그 양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꾹꾹 억압해

놓는 것...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하루키는 양을 쫓는 모험

이라고 지은게 아닐까... 양을 잃어버리는 모험이 아니라 양을 쫓으라는...

내가 완전히 잘 못 이해한 걸까? 작가는 현실과 적당히 조율하라는

의미로 지은 것일까?  그런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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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나만이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1970년 가을에는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이 서글펐고 그리고 모든 것이 빠르게 바래져 가는
것만 같았다.

 


진짜로 말하고 싶은 건 제대로 말할 수 없는 법인가 봐

 


그는 잃어버린 것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 보다 깊은 알콜의
안개 속을 헤매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연의 대지를 정처 없이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연성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은 명확하게
일어난 버린 일이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아직 명확
하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배후의
모든 것과 눈앞의 제로 사이에 끼인 순간적인 존재고
거기에는 우연도 없고 가능성도 없다는 뜻이다.

 


도넛의 구멍과 마찬가지다.
도넛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냐 아니면 존재로 받아들이느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고 그 때문에 도넛의 맛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상징적인 꿈이 있고 그런 꿈이 상징하는 현실이 있다
또는 상징적인 현실이 있고 그런 현실이 상징하는 꿈이 있다.

 


거기에는 하나의 개념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약간의 예외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 예외가 얼룩처럼 번져
마침내 하나의 개념이 되고 만다.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예외가 생긴다

 


존재는 개체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혼돈으로서 있다네
존재가 커뮤니케이션이고 커뮤니케이션이 존재라네

 


개개의 질량은 변함없는데 의식만 확대되어 가면 그 궁극에
있는 것은 절망뿐이네. 내가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지.

 


겨울동안 양들은 우리 안에서 꼼짝 않고 있지요
따분해하지 않나 보죠?
댁은 자신의 인생을 따문하다고 생각하나요?
모르겠어요
양들도 비슷하겠지요. 그런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해봤자 알 턱도 없을 테니까요. 마른 풀을 먹기도
하고 오줌을 누기도 하고 가벼운 싸움을 하고 뱃속의
새끼도 생각하면서 겨울을 나는 거지요.

 


그녀가 없어서 쓸쓸했지만
쓸쓸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구원받은 느낌이었다.

 


멀리 떨어진 대지 위에서 사람들이 지금도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상했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나를
제외시키고도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가장 기묘했다.

 


나는 자유의지라는 말을 머리 속에 담아 두고 왼손의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으로 귀를 잡았다.

 


어둠 속에서 잠이 깨는 것처럼 불쾌한 일은 없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눈을 뜨고 처음 얼마 동안은 마치 남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과 겹쳐지기
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자신의 인생을 남의 인생으로 바라보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대단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내 인생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내 자신으로 되돌아왔다.

 


난 제대로 된 모습으로 자네를 만나고 싶었던 거야.
내 기억과 나 자신의 나약함을 지닌 본래의 내 모습으로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나약하지
일반론을 아무리 늘어놓아도 사람은 아무데도 갈 수 없어.
나는 지근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일반론은 그만두지.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물론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 그러나 진정한 나약함은 진정한 강인함과 마찬가지로
드문 법이야.

 


평범함은 머나먼 길을 걷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