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2009 소담출판사
사강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다
프랑수아즈 사강이라는 이름도 좀 들어본 것 같다
그 이름보다는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책 제목을 더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슬픔이여 안녕 이라는 문장 자체만으로도 특이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표지의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사진이 눈길을 끌었고 그 다음으로는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열어보니 3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는데 여자인게 분명하고 참 외소하고 약간 신경이 예민할 것 같기도 하고
또 같은 프랑스인인 샬롯 갱스부르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볼수록 분위기가 비슷하다...깡마르고 예민해 보이고..
사진 속의 사강 모습은 프랑스 여자 같다가도 런더너(?) 같기도 하고 그녀가 신은 저 신발은...
탐스 슈즈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뭔가 멋지다...ㅡㅡ;;
프랑수아즈 사강이 자신에 대해 쓴 책인 것 같았고 관심이 갔다
난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편인 것 같고 그리고 예술가인 경우 유명한 사람인 경우 그 관심은
훨씬 커진다...좀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헐리웃 배우 가십 따위에도 상당히 관심이 많아서 케이블에
나오는 연예 뉴스 따위를 보고 앉아 있기도 한다...근데 이상한 건 영화 배우의 사생활에 관심이 가는 경우
그게 좀 천박하게 느껴지지만 유명한 예술가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이 가는 경우에는 그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는 것...그들의 작품만큼 사생활도 예술적일 것이라고 기대해서 그런가...평범한 일상의 일도
그들에 관련된 것이면 심오한 의미가 있을거라고 생각되어서 그런 것일까...
이 책은 사강이 49세이던 1984년에 발표된 에세이다
글이 참 재미있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
과장되지 않은...지나치게 감상에 빠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남의 이야기 하듯이 써내려간 문체
게다가 종종 웃기기도 하다...물론 번역본이라서 사강의 본 문체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리고...솔직히 반 정도까지는 참 재밌었고 중간에 오손웰스와 루돌프 누레예프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도
없고 아니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문장이 머리에 잘 안들어왔다 문장을 읽긴 했는데 정신없었다...
같은 작가가 썼고 같은 번역가가 번역한건데...문제는 나에게 있겠지?
하여튼 저 두 이야기 빼고는 참 즐겁게 읽었다 특히 도박...아...이건 정말 웃음이 나와서 한가득 웃음을
머금고 앉아 읽었다 도박을 읽으니 사강이 대책없이 좋아지기 시작했다...사강은 도박을 정말 좋아했고
많은 돈을 잃기도 했고 따기도 했다...그녀는 도박하는 행위와 도박에 빠진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 것 같다
나도 그 글을 읽고 나니 뭔가...음...평소에는 도박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참지 못했고...이길 수 없음에도 계속 도전하고 덜 잃었다고 기뻐하는 그런 모습이
한심하다기 보다는 상당히 인간적이다...라는 요상한 생각이 들게 했다...물론 난 여전히 도박에 심취한
사람들이 싫긴 하다...하지만 감당 가능한 한도 내에서 바보짓임에도 불구하고 그 바보짓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낄낄거리는 인간들도 세상에 존재하는 게 재미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장 폴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니 사강은 사람을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독서에서 그가 반한 운명적인 3권의 책에 알베르 카뮈의 책이 있음에 뭔가
기분이 좋기도 했고 반면에 그가 최초로 언급한 책인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약간의 괴리감을
느꼈다...아무래도 다시 읽어볼 책인 것 같다...난 저 책에서 별다른 느낌을 못 받았다...
역시 나에게 문제가 있겠지...
프루스트의 책은 역시 명작인 모양이다....그의 책은 사강에게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아직 시도도 하지 못한 책이지만 언제가 되었든 꼭 읽어보아야 할 책...
사강에 대한 책이지만 누가 썼는지 알 수 없는 머리말에 언급되었듯이 그에 대한 직접적인 것은
드러나있지 않다...그게 좀 묘했다...그가 그 자신의 이야기를 썼지만 오히려 거기에 등장한
타인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그 자신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그래도 사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책...이 책에 드러난 사강은 하고 싶은 건 하는 사람...ㅡㅡ;;
도박이건 고속도로 질주건...연극 연출이건...실패하든 돈을 잃게 되든 일단 하고 보는 사람
그런 게 가능했던 건 그녀가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고 19세의 어린 나이에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고...어쩌면 그런 성격이기에 19세에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 낼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고...
마지막 부분에 사강은 말한다
글을 잘 쓰는 건 타고나는 것이라고...
솔직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면서도 살짝 배가 아픈....
타고난 작가인 그녀의 책을 읽어봐야겠다...
그들은 초록색 양탄자 위에서 펼쳐질 나의 첫 게임을 보는 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내 첫 게임을 보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게임은 보지 못했다
나는 그들의 시야를 벗어나 그들 없이 이 카지노에서 저 카지노로 뛰어다녔던 것이다
환하고 즐거워야 할 내 낮 시간들은 하얀 밤들로 대체되었다
베르나르 프랑크와 자크 사조와 나는 새벽과 밤에만 얼굴을 보았다
떄로는 이도 저도 아닌 마리화나를 조금 피우면서
새들의 노랫소리는 플라스틱 칩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덮여버렸고
초록색 양탄자가 풀밭을 대신했다
우리는 매일 밤 혹은 석달 동안 똑같은 얼굴들을 만나곤 했다
심지어 삼 년 동안 그런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저 안녕하세요 라는 말만 했다
그 외에는 상대방이 하는 게임의 진척에 따라 축하를 하고 애석해 하면서 서로 미소만 주고 받았다
우리는 행운 혹은 불운을 서로 나누었다
다시 말해 내밀한 속낸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보다 더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그런 식으로 알게 된 그러나 결코 잊지 못하는 몇몇 친구가 있다
우리는 제복을 입은 카지노 직원을 통해 우연히 그들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터무니없는 슬픔을 유발했다
멋진 직원이 은쟁반에 또 다른 칩 무더기를 담아 와 내 앞에 내려 놓았다
나는 그가 함께 가져 온 조그만 종이 쪽지에 사인을 했다
한 시간 뒤 내 에이전트의 얼굴이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나는 그 행복한 마비 상태에서
깨어났다 에이전트의 안색은 창백한 초록빛이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몇 마디 중얼거렸다
끝장났다 혹은 재앙 등의 단어들이었다
(이 부분이 가장 웃겼다...ㅋㅎㅎㅎㅎㅎㅎㅎ)
우리는 카지노의 출구에서 한 푼도 따지 못했지만 만족스러워하는 도박사들은 너무나 많이 만난다
그들은 환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 200프랑 잃었어
도박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매우 놀랄 일이다
그것은 그들이 예전에 그보다 더 많이 잃었음을 뜻한다
그들은 게임이 끝날 때 지금껏 게임을 하는 동안 잃었던 것보다 덜 잃은 것에 기뻐한다
그들은 그것을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그들이 그러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
도박은 단지 광기만을 무분별만을 정신에 존재하는 끔찍하고 용납할 수 없는 악덕만을 요구하지 않으며
냉정함과 의지 그리고 라틴어 virtus가 갖고 있는 의미의 미덕 즉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예전에 과자를 심하게 먹어대며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폭식은 쉬운 게 아니다...배가 부름에도 계속 참고 견디며 먹는 건 상당한 참을성을 요구한다...
살이 찐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배불러도 계속 먹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게다가 그걸
꾸준하게 반복하기란...어쩌고..)
나는 반은 겁에 질리고 반은 경탄하는 딜러들의 시선을 받으며 카지노에서 나왔다
나는 300프랑만 잃었고 기쁨과 자만심의 절정에 다다랐다
고백건데 내 희곡들의 성공적인 초연에 참여할 때도 그처럼 의기 양양한 적이 없었고
때때로 내 책들을 극구 찬양하는 평론을 읽을 때도 그처럼 충만한 자만심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세상은 온통 내 것 이었다
긴장감 어린 열흘간의 노력 끝에 300프랑만 잃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결론은 물론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잘 안다
그러나 한 번 더 말하건대 이것은 도박에 관한 이야기고 오로지 도박을 하는 사람들만을 위해 쓰인
이야기인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파리 생활 나이트클럽 위스키 연애 사건 떠들썩한 술파티에 싫증이 났다
독서여 난롯불이여 위대한 음악과 철학적 토론이여 만세
이것들에 대한 발작적인 이끌림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찾아와 내 삶을 뒤흔든다
기억은 상상만큼이나 광기와 예상치 못한 특성을 갖고 있다
다만 현재 내 성실성만 보장할 수 있을 뿐이다
밤을 지배하는 것은 더 이상 웃음이 아니고 쾌락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니다
그것은 즐거움 쾌락 호기심의 과시이다(일반적으로 거짓인)
그 과시는 부르주아적이고 획일적이고 험담을 좋아하는
그는 나에게 말했다(그=사르트르)
우리의 관계에서 그가 좋아했던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은 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마치 기차역의 플랫폼에 서 있는 여행자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
당신도 짐작했겠지만 내가 실명했을 때 (사르트르의 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쉰 살 이후 나는 하루에 열 시간씩 글을 썼고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소) 이제는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았고 자살 생각까지 했어요
추억속에서 문학에 대한 사랑은 모든 짧은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에 비해 큰 우위를 지닌다
우리는 언제 그리고 어디서 그 타인을 만났는지 그가 그 날 우리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반대로 문학은 우리를 첫눈에 매료시킨다
나는 내 인생의 위대한 책을 어디서 읽었는지 어디서 발견했는지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알베르 카뮈 <반항인>
랭보 <일뤼미나시옹>
<지상의 양식>은 명백히 나를 위해 쓰인
거의 내가 직접 쓴 것 같은 성스러운 책들 중 최초의 책이었다
(절묘한 표현.....내가 직접 쓴 것 같은 나를 위한 책..)
이 최초의 책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다시 말해 내가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알려주었다
(랭보 <일뤼미나시옹>을 읽은 날..)
그 날 아침 나는 평생동안 무엇보다도 사랑하게 될 어떤 것을 발견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내용)
한계라는 것이 없음을 바닥이라는 것이 없음을 진실은 도처에 있음을 인간의 진실은 확장되어
도처에서 존재함을 그리고 그 진실은 도달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인 동시에 바람직한 유일한 것
임을 발견했다
모든 작품의 재료가 인간 존재를 대상으로 하자마자 무한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이든 좋으니 어떤 감정의 탄생과 죽음을 묘사하기를 원했다
나는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글을 쓴다는 일의 멋진 격렬함을 발견하면서 제어할 수 없으면서도
늘 제어되는 열정을 발견했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이 공허한 표현이 아님을 그것이 쉽지 않음을
그리고 그 시절 떠돌던 생각과는 달리 진짜 화가나 진짜 음악가보다 진짜 작가가 더 드물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깨달았다
글을 쓰는 재능은 극소수 사람에게 주어지는 운명의 선물임을
여컨대 나는 프루스트를 통해 내 열정 속에 도사린 어려움과 위계의 의미를 배웠다
나는 프루스트를 통해 모든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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