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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통이라는 따뜻한 감각 - 예슬

by librovely 2019. 9. 2.

 

고통이라는 따뜻한 감각                    예슬               2017                 들녘

 

앞서 올린 책은 마음의 병에 대한 책이라면 이 책은 신체의 병에 대한 책이다

몸이 많이 아팠고 그래서 죽음을 더 가깝게 느꼈고 결국 삶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가까운 일인데... 평소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죽음을 외면하기 마련...

어쨌거나 나보다 훨씬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쓴 책이라서

역시 의미있는 말이 있었다...가장 핵심은 유한한 짧은 인생 나에게 좋은 삶을 살아라...인듯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고 느낄 때 이제껏 익숙했던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새롭게 보였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누군가와 동행할 수도 없으며 온전히 자신이 떠맡아야 하는

유일한 상황이다

우리는 혼자 죽는다

그리고 죽음 앞에 또 죽는다는 두려움 앞에 홀로 마주 선다

 

죽음이 온전히 개인으로서의 죽음인 것처럼

삶 역시 나만의 고유한 삶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식이 씩씩하고 독립적일 때 당신들이 얻으시는 기쁨 못지않게

내가 기대고 도움을 청할 때 부모님이 느끼시는 행복이 클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무리 아끼고 애정하는 사람이어도 나를 위해 에너지를 쓰고 남은 여분으로 상태를 살펴야 한다

관계는 절대 일방통행으로 만들 수 없고 교감과 상호작용을 통해 건강하게 형성된다

자주 연락하거나 애쓰지 않아도 늘 마음이 맞닿아 현재진행형인 사람들

유한한 인생 속에 내 모습 그대로 자연스레 공감이 흐르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애정인지 집착인지 당신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쏟아지는 감정에 휩쓸려 나를 할퀴던 아픈 시간들

어리고 여려 뭘 어떻게 해도 마음을 다스릴 수 없어 외롭고 괴로웠다

한 순간의 표정 우리를 감싼 공기 그의 말줄임표 하나에도 수십 번씩 천국과 진흙 구덩이를

통과했다 버려진 헝겊처럼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싸매며 이렇게 괴롭고 아픈 게 사랑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너에게로 가는 길을 몰랐다

엄연히 존재하는 관계의 권력구도 안에서 늘 더 많이 좋아하고 그만큼 억울했다

그 기울어진 관계 안에서 때때로 서럽기까지 했다

 

사실 스트레스는 외부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가짐이 만드는 내부적인 상태였다

어떤 상황 상대를 만나든 스트레스를 조각하고 그 크기를 키워가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2008년 태국 우기 중 오랜만에

찾아온 푸르고 바삭바삭한 하늘

대나무 오두막에서 깊은 잠을 잔 나는 투명한 햇빛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떴다

밀린 빨래를 해서 널고 내가 묵고 있는 농장의 망고 분류작업을 도울 거다 오후에는 뒷동산에

산책 다녀와서 바나나를 튀겨 먹어야지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고 부족한 것도 없었다

늘 이런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적어도 주말을 기다리는 삶은 살지 말아야지

 

나는 그냥 내 일을 하는거다

그 결과가 좋으면 얻는 거고 아니라도 그 별로인 결과가 나를 멈추게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급히 일을 그만두고 3년 동안 몸과 마음을 바라보며 얻은 이 교훈을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일상을 살아내면서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