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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비사교적 사교성 - 나카지마 요시미치

by librovely 2019. 9. 1.

 

비사교적 사교성                       나카지마 요시미치            2016              바다출판사

이 책도 되게 재밌게 오래 전에....그러니까 3-4달 전에 읽은 책인데 미루다 미루다 이제서 쓴다

바로 앞에 올린 조화로움과 통하는 내용이 많았다 세트같은 책이다

일본인이 쓴 책인데 저자가 되게 솔직함 ㅋㅋㅋ 비슷한 사람이 있다 개인주의자 선언을 쓴 문유석

이 책을 읽고 발체도 한 거 같은데 블로그에 안 올렸었네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20대를 타겟으로 쓴 책인 것 같지만 여전히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해 허우적거리는 나와 같은

인간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저자는 칸트를 연구하는 사람...ㅋㅋㅋㅋㅋㅋ

조만간 칸트에 대한 책을 읽어봐야겠다

 

 

 

 

 

 

내 생각에 많은 경우 어른이 된다는 건 곧 감수성과 사고가 굳어지는 일이다

현실적이고 원숙한 판단이란 때로 인습적이고 정형적인 판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똑똑한' 판단인 경우가 많다

 

일말의 불안과 함께 그야말로 지금 인생이라는 바다로 나아가려는 당신은 근사한 가능성을 품고있다

이는 당신이 희망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책임한 격려가 아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부 당신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당신 스스로의 본질을 그렇게 결정하고 그것이 인생을 규정한다고 해석한다면

그 책임은 당신 자신에게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홀로 선다는 것

즉 부모나 그 밖의 보호자로부터 독립한다는 뜻이다

독립이란 두 가지 요건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경제적 독립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말이다 이것은 괜찮다

하지만 이와 함께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실현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편하게 느끼는 인간관계를 혼자 힘으로 개척하는 일이다

당신이 고독을 좋아한다면 이를 자력으로 달성하면 된다

철저히 고독한 것도 좋지만 일반적으로 말해 다양한 사람과 어울린다면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잘라 버리지 말고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설사 이유 없이 적대적일지라도 그런 사람들과의 곤란한 교류는 긴 인생에서 진정 당신의 보물이

될 것이다

 

칸트는 꽉 막힌 사람인가 하면 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무척 사교적인 사내다

비사교적 사교성이란 깊은 함축을 담고 있는 칸트의 말이다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성질과 자신을 개별화하는(고립시키는) 성질 둘 다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완전히 혼자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타인과 함께 있으면 불쾌한 일뿐이다

그 결과 누구나 도저히 못 참겠지만 썩 갈라설 수 없는 동료에 둘러싸인다

 

칸트가 매일 몇몇 손님을 오찬에 초대했다는 것은 유명한데 이는 사실 그가 예순세 살 무렵

자기 집을 가지고 나서 생긴 습관이다 이 오찬은 그만의 독특한 사교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여성은 초대하지 않고 철학자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이나 상인처럼 철학과 상관 없는 남자들뿐

철학 이외의 지식을 얻는 자리였다

그는 가까운 사람을 철저히 경계해서 같은 쾨니히스베르크에 사는 형제자매와도 연락을 끊었고

그 어떤 철학자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온갖 계층의 사람들과 두루두루

교제할 수 있었다 칸트는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혈연관계를 싫어했고 친구를 중심으로 하는

신뢰관계를 거부했으며 성애를 중심으로 하는 애정관계를 혐오했다 생각건대 이 모든 것은

상대방을 지배하려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지배를 받으려 함으로써 인간에게서 이성과 영혼의

자율성을 앗아 가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되면 손님을 싹 돌려보내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고독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좋기만 하다는 데에서 거짓을 느낀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꼬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악의도 있고 어리석음이나 나태도 있으며 무서운 일이지만 타인을 파멸시키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이를 장려할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세계 바깥으로 몰아내고 마치 모든 사람이 선의로

똘똘 뭉친 것처럼 기교를 부린 이상적인 세계에 산다는 것은 내게는 고통이다

 

타인의 아픔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을 아프게 하려고 의도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말을 하면 그가 상처 받고 어떤 대접을 하면 그녀가 상처 입는지 잘 알기 때문에 괴롭힘은 즐거운 것이다

 

20세기 초 독일의 현상학자 셀러는 타인의 마음을 감득하는 일은 공감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르다고

말했다 어떤 공감 없이도 누군가의 마음을 감득하는 일은 가능하며 손을 내미는 일조차 가능

 

내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의식이 있을 때마다 단상에서 들려오던 말

격려하고 칭찬하는 입바른 말의 홍수  게다가 거기에 공감하기를 요구하는 무지막지한 폭력

나는 학회나 교수회에서도 이 같은 말로부터 피신했고 쉰 고개를 넘었을 때는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비롯해 모든 의식에는 원칙적으로 참가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부모 장례식에는 갔지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막상 실천해 보고 큰 발견을 했다 의식에 가지 않으면 방대한 시간이 남는다

횡재한 셈이다 나는 다시금 결심했다 이제는 무뢰한이라 여겨져도 좋다

곧 있으면 죽을테니 이제부터는 너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쓰자

 

파스칼

그는 기독교를 배경으로 인간의 비참함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손에 잡히게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다

과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에게도 철학이란 다른 어떤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성립하는 것이었다 즉 정치를 비롯한 모든 인간 활동의 덧없음 비참함 불행을 속이지 않고

전부 다 보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과 불행 무지를 고칠 수 없었기 때문에 행복해지기 위해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팡세>

 

하지만 사람들은 떄때로 우리 인간이 내던져진 이 인생의 실상 즉 비참함을 직시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이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속이고 있을 뿐이고 이를 잊어버리기 위해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비참함을 위로해 주는 유일한 방법은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비참함이다 <팡세>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 묻기 시작하면 살아갈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

 

칸트

그는 바로 진리 자체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실로 칸트는 이 세계는 실재하지 않고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디(초월론적 관념론)

 

칸트는 평생 독신을 고수했지만 나는 막 서른다섯 살이 됐을 때 빈에서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은 왜 했어 라고 묻는다 이렇게 괴팍한 사람이 결혼한 게 퍽이나 희한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인간의 복잡함을 알지 못하거나 아니면 단순하게도 결혼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법이다 사르트르가 강조했듯 어떤 행위의 동기는 무한히 열거할 수 있지만

특히 결혼과 같은 무모한 일을 하는 동기는 찾으면 찾을수록 알 수 없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아내와의 결혼에서 그녀의 재력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결혼에는 뚜렷안 이유가 없어도 되지만 이혼에는 이유가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갓 결혼한 사람을 붙잡고 왜 결혼했어 라고 진지하게 묻지 않는 이유는 이 같은 태도가

결혼은 재앙이라는 함축적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한 친구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혼내는

듯한 태도로 이렇게 묻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혼은 재앙이라 여겨지기 때문에 그냥 이혼했어로는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

몇 번쯤 이혼하려다 그만둔 이유는 가족이나 친척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좀처럼 이혼하게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들이 어릴 때는 내 쪽에서 아들과 못 만나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세 번쯤 이혼 서류를 썼다 한 장은 아들이 발견하고 찢어 버렸는데(당시 일곱 살)그러자 아내가

울면서 하지 말자고 했다

 

참견 방송

어서 오십시오 잊어버린 물건은 없는지.... 이런 방송이 유럽에는 전혀 없다

극장 라운지에서 쉬고 있는데 직원이 이쪽이 극장 1층입니다 하고 새된 목소로리 소리쳐서 넌더리가

났다 그만하라고 부탁하자 헷갈리는 분도 계셔서요 하면서 멈추지 않았다

 

1835년 8월 1일 스물두 살의 키에르케고르는 코펜하겐 북부 셸란 섬 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갈릴라이에를 여행하고 그가 걸어갈 방향을 결의했다고 한다 100년 후 이곳에 실존주의 발상지를

기념하는 석비가 세워진다

나는 스무 살 때부터 키에르케고르를 애독했다

객관적 진리는 없다 내가 내 실존의 깊은 곳에서 파악한 것 그것이 진리다

 

튀빙겐

대학에 들어가 얼마 안 됐을 무렵 독일어가 너무 재밌어서 독일이라는 나라에 푹 빠졌다

당시 내게 독일은 남독일 그중에서도 네카어 강이 흐르는 튀빙겐

18살에 나는 헤세를 탐독했고 2009년 처음으로 튀빙겐을 찾았다

호텔 바로 맞은편에 있는 건물이 헤겔과 휠덜린, 셸링이 공부한 튀빙겐 신학교였다

여기서 네카어 강으로 내려가는 곳에 광기에 빠진 휠덜린이 서른여섯 살부터 일흔세 살로

죽을 때까지 틀어박혀 있었던 탑이 있다(휠덜린의 탑)

네카어 강에 걸린 다리 위에 서 본다 전망이 트여 있고 마침 해가 지려는 참이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는 이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타인에게 무관심하면서도 자원봉사에 열심인 젊은이들 김 빠진 무드에 젖어 있으면서도

유대를 바라는 젊은이들 청춘을 즐기기보다는 오히려 견실한 인생 설계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젊은이들

제대로 된 젊은이라면 한두 번쯤은 산다는 것 자체의 무의미함 덧없음이나 인간이라는 존재의

비열함 추함 어리석음을 생각하지 않을 리 없고 나아가서는 나는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어치파 죽을텐데 무엇을 한들 허무하지 않을까 같은 물음에 붙들릴 텐데 이러한 철학적인

물음은 완전히 차단돼있다 그런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내 눈에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괴로워하는 것은 재능이며 더군다나 소중히 키워야 하는 재능이다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을 읽고 상황을 헤아리는 것만 가르치는 문화의 폐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이는 헤아리는 능력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헤아리는 능력도 없는 데다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나 가공할 만한 외계인과 마주하는 꼴이다

상황을 전혀 못 읽는다는 것은 가르친다고 해도 바로 알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함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 프로네시스라는 말이 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적절히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실천적 앎을 뜻하는데 현려나 숙려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에게는 이 프로네시스가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다 오늘날 모든 정보는 위키디피아를

통해 간단히 손에 들어온다 하지만 프로네시스는 현실의 실천과 살아 있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획득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아픈 일을 겪지 않으면 몸속 깊은 곳에 스며들듯 알지는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