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 에쿠니 가오리 2004 소담출판사
이 책을 읽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본 여작가는 에쿠니 가오리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만큼 좋았다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냥 원래 유명한 작가 에쿠니 가오리
제목을 보고 주말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특유의 소소한 문체로 써 내려간 그런 짧은 글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책은 결혼에 대한 책이다 에쿠니 가오리와 그녀의 남편의 결혼 생활에 대해 내가 느끼기
에는 상당히 솔직하고 매우 현실적으로 써 놓았다 애써 포장하지도 않았고 별로인 것을 과장하지도 않았고
그냥 자신이 느낀 결혼 후 일상에 대해 담담하고 담백하게 써 내려갔고 솔직한 글이라서 그런지 작가 스스로도
이 책을 쓰면서 뭔가 정리가 되는 면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솔직함이 좋고 작가라서 같은
상황도 더 예리하게 글로 써낼 수 있기에 더 좋았던 책
이 책은 결코 결혼을 미화하지는 않았는데 그 어떤 책보다도 아...결혼해서 사는 것도 생각보다 괜찮을 수
있겠어...따위의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흔히 에쿠니 가오리처럼 예민하고 감성적인 여작가는 결혼해서
함께 일상을 살아나가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오히려 예민하고 상황을 잘 파악하기에
더 양보나 배려가 가능하고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면도 있는 것 같다...저 여자는 똑똑해서 결혼
상대로는 적당하지 않아 혹은 저 여자는 예민하고 섬세해서 같은 살기 피곤할 거 같다...는 건 맞는 말이
아니다...같이 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저런 게 아니라 그냥 인성 문제인듯...오히려 더 잘 보고 더 잘 아는
사람이 더 잘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에쿠니 가오리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 들려줘서 재미있게 의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평범한 상황일지 모르지만 에쿠니 가오리는 아주 묘한 것들이지만 분명 존재하는 것을 끄집어 내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결혼하면 정으로 산다 의리로 산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서 더 좋았던걸까?
결혼하고 싸우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 투성이지만 여전히 에쿠니 가오리는 남편의 사랑에 대해 의심하기도
한다 서운해 하기도 하고....그 여전한 의심과 서운함...그게 좋았다
결혼에 대한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같이 있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번역한 책이지만 문체도 맘에 쏙 든다
좋은 책이다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각자 다른 일을 한다
한 우리에서 사는 두 마리의 동물처럼
나와 남편의 취향은 전혀 다르다 좋아하는 음악과 좋아하는 음식이 다르고 좋아하는 영화와 좋아하는
책도 다르고 뭘 하면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지도 다르다 그래도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고 오히려
다른 편이 건전하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같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한다
결혼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때다
아침에 남편을 보내놓고 한 숨 더 자고 점심때쯤 일어났다
눈을 뜨니 비가 내리고 있고 온 집안이 어두컴컴했다
나는 멍하니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주 차분한 기분으로 대체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하고 생각했다
결혼할 때 남편에게 약속 받은 일이 한 가지 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외간 여자에게 초콜릿은
선물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꽃다발이나 구두 가방 장신구는 상관없지만 초콜릿은 안 된다고
예쁜 상자에 리본까지 묶여 있는 초콜릿은 그것만으로도 왠지 특별한 느낌이 든다
행복의 상징
사랑의 선물
(귀엽다...가와이 에쿠니...결혼하면 생일마다 명품백 하나씩이라는 약속보다 무척이나 낭만적인 약속이네)
월요일의 나는 진이 빠져서 축 늘어져 있다
모든 일이 주말에 벌어지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 나의 에너지는 거의 주말에 소모된다
주말은 특별하다 아침에 남편과 함께 신문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까지도 기쁘다
남편은 어질러 놓기만 하고 치울 줄을 모르는 데다 만사에 무심하고 감정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고
나는 참을성이 없고 감정적이고 양보를 모른다(고 남편이 그런다)
그래서 우리 부부 사이에는 싸움 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둘은 때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외롭다
혼자일 때의 고독은 기분 좋은데 둘일 때의 고독은 왜 이리도 끔찍한 것일까
남편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밥은?을 외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일 때문에 더욱 슬퍼졌다
문을 열고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하는 첫 말이 밥은? 이라니 나는 더없이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평생 밥을 짓지 않겠다고 하면 당신 나하고 이혼할거야?
언젠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신문을 읽고 있던 남편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경향과 내 질문에
대한 대책을 터득하고 있으며 나 역시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을 정도로 그란 사람에 대해서 터득하고
말았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사람은 왜 서랍을 열어놓고 닫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겨우 손만 씻으면서 온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드는 것일까
게다가 왜 젖은 손을 타월에 닦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일까
이 사람은 왜 자기 옷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사람은 대체 왜
사람이 사람을 만났을 때 서로가 지니고 있는 다른 풍경에 끌리는 것이다
그때까지 혼자서 쌓아올린 풍경에
나는 남편을 타인으로 의식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아리스 먼로의 <마일스 시타 몬타나>에는
난 다 알아 당신은 태생이 제멋대로고 신뢰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란 대사가 있다
결혼은 struggle이다 만신창이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상처도 마르니 일일이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소박한 일들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면 도저히 사랑은 관철할 수 없다
정말 지겨워 죽겠어 헤어질 거야
도쿄의 멋쟁이인 그녀는 다소 격한 성격이라서 종종 그런 말을 입에 담는데 1년에 한 번은 꼭 일부러
전화를 걸어
아니야 나 절대 헤어질 수 없어
라고 말한다
간다 신사 축제 직후다 축제를 위해 민속차림을 한 남편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는 것이다
하얀 꽃잎을 올려다보면서 내년에도 이 사람과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인생이 조금은 좋아진다 묘한 느낌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행복한 것은 많은 가능성 속에서 한 가지가 선택되기 때문이고 그 선택에 나는
가슴이 설렌다
부부 관계란 그런 사소한 일로 지탱된다
결혼한(또는 결혼한 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왜 결혼에 대해 별 얘기를 하지 않는지 스스로 해 보고야
알았다 꿀처럼 행복하고 아까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고 그렇다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우울해서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결혼이 너무도 특수하고 개인적이어서 우연과 필연이 꽈배기처럼 꼬여 설명하기 곤란한 양상을
띄고 있기에
지금 생각하면 나는 모든 일을 의심했다 원래 의심이 많은 성격이기는 하다
그런데다 연인들에게서 근거를 빼앗아가는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의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함께 살기 전에는 남편이 만나러 와주면 무척 기뻤다 만나러 온다는 것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었으므로 그런데 막상 함께 살기 시작하니 남편이 매일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아도 돌아온다 그게 영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어리석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도무지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한 쪽이 관용을 갖추고 있다면 다른 한 쪽은 정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
종종 왜 결혼을 했느냐는 질문을 당하는데 나는 어쩌면 나만의 남자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갓 결혼했을 무렵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자기 짐이 들어 있는 박스에서 비디오 테이프와 카세트 테이프
CD를 꺼내 종류별로 책상에 쌓아 놓았다
자기가 회사에 있는 동안 심심할 테니까 그래서 배려를 하는 모양인데 내 생각은 달랐다
갇힌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당신이 없어도 할 일은 얼마든지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남편은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들을 음악은 내 손으로 고를 거야"
물론 지금은 전혀 다르다
만약 지금도 남편이 그런 배려를 해준다면 얼마나 감격에 겨울까
기뻐서 포옹이라도 할 것이다 하루 종일 들으면서 일을 할 것이다
3년이란 그런 시간이다
나는 남편의 차를 기다리면서 마음속으로 결혼 생활이란 이 바나나 쉐이크처럼 어이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다고 그리 나쁜 것은 아니라고
결혼하고야 내가 지겹도록 사리정연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혼이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니
거의 심신의 파멸 다만 결혼하고야 나는 분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이 한층 혼란스럽다
그러나 결국 결혼이란 그럼에도 혼자이길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있는 것
나는 일하는 아내라서 내가 뭘 하는지 남편이 모르는 시간이 제법 많다
남편이 모르는 지기도 물론 있다 여행도 다니고 새벽까지 마시고 돌아오는 일도 있다
남편이 그런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내게서 그런 생활을 빼앗으면 내가 공황에
빠지리란 것을 남편은 알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아주 가끔 나무 그늘에서 먹는 복숭아처럼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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