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2011 다산책방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작가 이름은 생소했다 유명할텐데 내가 워낙 소설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그러다가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에서 김연수가 줄리언 반스를 언급하길래 무조건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김연수의 글은 무척이나 재밌는데 그게 스토리가 재밌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 자체가 재밌는 사람이라서
글이 재밌는 뭐 그런 의미...그러니까 어떤 글이건 그가 쓴 글은 웃길 것도 같고... 5년전 쯤? 벌써 5년...
하여튼 그 날도 김연수의 어떤 수필 비슷한 것을 읽고는 그 내용이 너무 웃겨서 운동하러 가서 실실
웃어대다가 아마도 그 웃어대는 표정이 만들어낸 어떤 일이 있었는데 뭐 그 내용을 여기에 쓰지는 않는 게
좋을듯...하여튼 김연수 덕분에 좋은 거 많이 얻어내는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을만큼 이 책 정말 정말
멋진 책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무서운 책...읽고 나서 멘탈이 좀 털림....두려움이 생겼고 심리적으로 좀
힘든 상태가 찾아옴...보고 싶지 않은,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무언가를 본 것만 같은 두려움...안 보려고 없다
고 생각하고 애써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왔는데 이 책이 내 머리를 붙잡고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버린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260 페이지 정도의 상당히 짧은 분량의 책이고 초반부부터 어려움 없이 글이 술술 읽힌다
김연수가 좋아하는 작가인만큼 줄리언 반스 또한 무척이나 유머러스함 그러면서도 내용이 의미심장....
이런저런 지적인 류의 나부랭이(?)들이 적당히 곁들여진 가운데 영국 남자 청소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재밌게 읽힌다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는 가볍게 유쾌하게 흥미롭게 진행되고 2부는 중간부분부터
혼돈스럽고 마지막에 다 읽고나면 충격이....모르겠다 나만 그럴지도...나는 뭔가 왜곡해 놓은 기억이
많이 있었던건지 다 읽고나니 불안하고 무섭고 두렵고 하여튼 쉽지 않은 심리 상태가 찾아와서 한참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흩어진 정신 찾아서 다시 제정신으로 붙들어 매느라고...ㅜㅜㅜㅜ
초반부에 나오는 수업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영국의 수업은 역시 한국의 그것과는 다르구나...
나도 저런 수업을 들어봤다면 좋았을텐데...생각도 들었고...그리고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개인이 자신에 대해 기억하고 과거의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것이 역사와 뭔가 통하는 부분이
있기에 아마 복선처럼 그 이야기를 꺼내 놓았던 것 같다 역사도 어떤 일에 대한 기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객관적인 역사란게 존재하는 건 불가능할 수도 있는거고 또 일부러 안 좋았던 건 왜곡하게
되기도 하고...개개인의 역사인 자신의 과거에 대한 것도 도움이 될만한 건 드러내놓고 의식하며
살 수 있지만 잘못된 것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은폐하고 잊게 되는지도 모르겠다...살기 위해
망각의 구덩이로 무의식적으로 밀어넣는.... 이 책을 읽고 심한 두려움을 느낀 게 아마 그 이유 때문일
거다...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나 무언가 일어났던 일이 혹시 있는 거 아닐까....생각만해도 너무 끔찍
하지 않나....그래서 그 일 자체는 현재 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 있었던 일이니까 그게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라면? 아이고 이런 공포가 어디있겠는가...
소설 속에서 회한이라는 말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 단어도 골똘하게 만들었다....
후회...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후회해도 사실 변하는 건 하나도 없는거다...이미 벌어진 일을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거고 그게 상당히 무서운거고.... 어떤 작은 일 하나로 그 뒤의 일이 싹 바뀔 수 있다
는 것도 무서움 유발의 원인이었던듯....이 소설 속에서는 편지 한 장으로 인해 연쇄적으로 불행한
일이 벌어진건데...음.. 매우 단순한 예를 들자면 아침에 우산을 가져가라고 했는데 안 가져왔고
그래서 누군가가 우산을 갖다 주러 오다가 사고를 당했다면...그 아침에 우산만 들고 나왔어도 그
뒤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거고.... 뭐 이런....이런 일 말이다...그 때 내가 그렇게만 안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경우가 살면서 종종 생기기 마련이지 않은가...나에게는 그런 일이 뭐가
있었을까...너무 많이서 어떻게 고를 수도 없다...어떤 행동이나 사소한 말 한 마디가 불러일으키는
연쇄작용....오해...그리고 그로 인한 후회....는 뭐 그냥 그 자체가 내 인생인듯...나는 날마다 후회한다
내가 왜 그랬지...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따위로 잠들기 전 한숨을 푹푹 쉬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이 자신의 과거의 일에 대해 떠들어대는 일이 많아진다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던데
요새 내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언제부턴가 별 일이 생기지 않는 지루지루한 나날이 반복되기
시작했고 그래서 괜히 앉아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스토리를 재미없게 주워섬기곤 했던 거
같은데... 이 책에 그런 말이 나온다 자신의 과거 일에 대해 떠드는 건 사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라고...자기 자신에게 그 일은 사실 이러이러한 일이었어 라고 안심시키는 뭐 그런 의미라는 것 같은
데 그게 또 공포스럽게 다가왔다...과거에 나는 이러이러했고 상대방은 이러이러해서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거고 나는 별 잘못이 없고 일이 그렇게 된거였다...고 떠든 게 어쩌면 내가 맘 편히 살기
위해 그러니까 후회하거나 죄책감의 구렁텅이에 빠져서 숨막히기 싫어서 어느 정도 왜곡해서 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어떤 정말 두려운 일들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 게 아닐까...하는...아 끔찍해......
읽고 나서 아주 잡다한 방향으로 공포와 불안감이 밀려들었는데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하겠다
단지 내가 바라는 건 내 기억 왜곡 장치가 고장나지 않고 잘 작동해서 맘 편히 살고 싶다는 것...ㅋㅋ
아니 망각의 구덩이로 억지로 밀어넣거나 착각으로 덮어버릴 일이 앞으로 생기지 않기를 바랄뿐....
조용히 평범하게 흘러가고 싶다는 것...근데 이 책의 주인공도 자신은 여러모로 평균형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건데 노년에 뒤늦게 스스로가 엄청난 일을 초래한 당사자라는 것을 알게된거였지?
아 무서워 역시 무서워...나는 이 소설을 공포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ㅜㅜㅜㅜ
살짝 아주 살짝 이언 매큐언의 <속죄>내용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나의 행동이 타인의 삶을 망쳐버리는 그런 내용이 좀 비슷해서 그랬던듯
책을 읽어나가면서 종종 앞날개의 작가 얼굴을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이 인간 어쩜 이리 재밌게 소설을 잘 쓰나? 하는 의미로...
즐리언 반스의 다른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아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바로 다시 읽게 된다고 하던데 나 역시 그랬다
1부를 빠르게 다시 읽어보게 됨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도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시간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마셜은 신중한 성격의 천치이되 진정한 무지가 갖는 독창성조차 결여된 타입이기 때문이었다(웃김)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유방식은 있는데 그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 -예를 들어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까지도 - 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
탄생 성교 그리고 죽음 이것이 TS앨리엇이 말한 인생의 총체이지
돈은 모자랐고 전자기기도 없었고 패션의 전제정치는 미약했고 여자친구는 전무했다(웃김)
어머니가 몇 년 전에 가족을 버렸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그와 여동생을 감당해야 했다
에이드리언은 우리가 아는 유일한 결손가정 출신이었다 그에겐 마땅히 실존적 분노의 저장탱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사실이었으나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했다 우리 셋은
에이드리언 몰래 그의 상황을 이리저리 따져본 후 하나의 이론을 정립했다
행복한 가족 생활을 영위하려면 애초에 가족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웃김)
아니면 최소한 함께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분석을 하고 나니 우리는 에이드리언이 더 부러워졌다
에이드리언이 함께하기 전까지 우리 중 철학자의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 앨릭스였다
앨릭스는 나머지 둘이 읽지 않은 책을 읽었고 그랬기 때문에 가령 밑도 끝도 없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연명할 법했다
그 말을 들은 콜린과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씩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곤 했다
앨릭스가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읽었다면 에이드리언은 카뮈와 니체를 읽었다
나는 조지 오웰과 올더스 헉슬리를 읽었고 콜린은 보들레르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한 가지 의미에서 보자면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철학적으로 자명합니다
사실 책임을 전가한다는 건 완전한 회피가 아닐까요 우린 한 개인을 탓하고 싶어하죠
그래야 모두 사면을 받을 테니까 그게 아니라면 개인을 사면하기 위해 역사의 전개를 탓하거나
그도 아니면 죄다 무정부적인 카오스 상태 탓이라고 해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제 생각엔 지금이나 그때나 개인의 책임이라는 연쇄사슬이 이어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그 책임의 고리는 하나하나가 불가피한 것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모두를
비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슬이 긴 건 아니죠 하지만 물론 책임 소재를 묻고자 하는 저의 바람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공정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제 사고방식의 반영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중점적인 문제 아닌가요 주관적 의문 대 객관적 해석의 대치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어
인생에 문학같은 결말은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 또한 두려워했다
우리 부모드을 보라 그들이 문학의 소재가 된 적이 있었나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라면 모르겠다
진정한 문학은 주인공들의 행위와 사유를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이고 사회적인 진실을 드러내야 했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아직도 순무를 조각한 것을 화폐 대신 쓰는 낡고 뒤쳐진 시대의 생존자가
된 기분이었다(웃김)
조 헌트 영감이 에이드리언과 논쟁을 벌이면서 한 말은 기억하고 있다
그는 행위를 근거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과거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이러저러하게 상처받게 마련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또 그 상처는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상처를 받아들여 중압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도 있을테고 상처받은 이들을 돕는 데 한 평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을테고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걔가 너무 똑똑해서 그랬을까?
지성과 자살이 연관이 있다는 통계는 본 적 없는데요
그래 토니 하지만 엄마 말이 무슨 뜻인지 알잖니
아뇨 사실 전혀 모르겠어요
그럼 이렇게 말해볼까 넌 똑똑한 아이야 하지만 이런 짓을 할 만큼 똑똑하진 않아
그는 검시관에게 자살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그는 삶이 바란 적이 없음에도 받게 된 선물이며 사유하는 자는 삶의 본질과 그 삶에 딸린 조건 모두를
시험할 철학적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고대와 현재의 철학자들을 언급하며 인생을 흘려보내는 무가치한 수동성에 적그걱으로 개입하는 행동의
우월함을 보여주었으나 그의 논지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뭐 둘 다일 수 있지 않을까
그 말은 좀 그만해
뭐 둘 다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앨릭스가 맥주를 쏟을 정도로 반쯤은 진심으로 그를 쳤다(웃김)
그는 논리적으로 사고했고 논리적 사고로 도출한 결론에 따라 행동했다
반면 우리 대부분은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충동적으로 결정한 다음 그 결정을 정당화할
논거의 하부구조를 세운다 그런 후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를 상식이라고 말한다
한 영국인이 결혼이란 처음에는 푸딩이 나오지만 그다음부턴 맛없는 음식만 나오는 식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제 나는 은퇴를 한 몸이다 얼마 전엔 동네 병원 도서 관리직에 자원해서 병동을 돌아다니며
책을 배달하고 수거하고 추천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덕에 외출도 하고 뭔가 쓸모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또 새로운 사람들도 조금 만난다 물론 아픈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들이긴 하다 그러나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적어도 병원 지리 정도는 알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웃김)
결국 우리는 모두 젊지 않음 이라는 동일한 카테고리로 일괄 통합된다
과일 케이크
은어로 정신병자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삶을 책임졌고 그것을 지휘했으며 온전히 포착했다
우리는 살면서 좌충우돌하고 대책없이 삶과 맞닥뜨리면서 서서히 기억의 창고를 지어간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생의 목적이 흔히 말하듯 인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님을 얼마의 시간이 걸리건 상관없이 기어코
납득시킨 끝에 고달파진 우리가 최후의 상실까지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회한의 주된 특징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나 자신의 동인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금 이 나이에 와서 나는 그녀가 나란 사람을 잘못 봤음을
증명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초창기에 나에 대해 생각한 것
그녀가 날 집에 데리고 갈 만큼 좋아했던 무렵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후의 일주일은 내 삶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고독했다
누가 말했던가 살면 살수록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사라져만 간다고
그는 유모차를 끄는 지옥같은 삶이 두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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